본문 바로가기

CULTURE

뉴진스에서 빈지노까지, 게임체인저 ‘BANA’

김성대 대중음악평론가

2023. 03. 07

힙합부터 K-팝의 중원까지. 필드를 넓게 쓰면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뿜어내는 레이블, 바나의 대표 김기현. 다재다능함을 바탕으로 그가 한국 음악에 남긴 족적과 그가 일군 바나 사단에 대해 알아봤다.

7개월 전 데뷔와 동시에 K-팝 걸 그룹의 생태계를 바꾼 뉴진스. 지난해 8월에 공개한 ‘Hype boy’, 1월에 공개한 ‘OMG’와 ‘Ditto’는 음원이 출시되고 꽤 시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국내 각종 음원 차트 톱 3권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 강력한 현상은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핫 100)에까지 번져 각각 79위(‘OMG’)와 90위(‘Ditto’)로 그 아성을 뽐내고 있다. 차트가 아닌 뉴진스 곡의 작곡과 프로듀싱으로 눈을 돌리면 반복되는 두 이름이 있다. 바로 250과 박진수(활동명 FRNK)다.

이단아끼리의 만남 그리고 뉴진스

250(왼쪽), 빈지노

250(왼쪽), 빈지노

서두에 250과 FRNK(프랭크)를 언급한 건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같은 레이블에 소속돼 있기 때문이다. 해당 레이블은 이 글에서 다룰 주제이기도 하다. 바로 SM엔터테인먼트(SM) 내 인터내셔널 A&R(레이블 내 아티스트와 악곡의 발굴, 계약, 제작을 담당하는 직책)로 3년 가까이 몸담았던 김기현이 2014년 설립한 바나(BANA · Beasts And Natives Alike)다.

변두리인 힙합에서 K-팝이라는 중원까지 가리지 않고 영향력을 끼치는 레이블 바나. 위 일러스트는 바나의 로고.

변두리인 힙합에서 K-팝이라는 중원까지 가리지 않고 영향력을 끼치는 레이블 바나. 위 일러스트는 바나의 로고.

바나는 힙합을 포함한 음악 외 패션과 전시, 영상과 공연 등 분야를 불문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기획, 제작하며 대중문화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의 진출을 노리는 회사다. 흥미로운 건 뉴진스를 기획한 어도어(ADOR)의 대표 민희진과 김기현이 SM 재직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라는 사실. 두 사람은 관습이나 정해진 틀을 거부하는 성향이 닮아 가까워졌는데, 당시 SM이 구축한 시스템과 추구하는 방향에 어긋나 회사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 와서 보면, 두 사람이 각자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따로 회사를 차린 건 우연이 아닌 필연에 가까웠다.

뉴진스는 그런 이단아들에 의해 잉태됐다. 민희진은 남과 다른 것을 해보려는 자신의 의지에 가장 공감해줄 파트너로 김기현을 선택했다. 두 사람은 긴 시간 소통하며 K-팝의 현재가 될 뉴진스의 미래를 그려나갔다. 그 과정에서 김기현이 세운 바나 소속 아티스트들이 수혈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50은 뉴진스라는 이름이 대중의 뇌리에 둥지를 틀 때 선두에 있던 곡 ‘Attention’과 차트에서 롱런 중인 ‘Hype boy’, 데뷔 앨범에 함께 수록된 ‘Hurt’ 그리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오른 ‘Ditto’에 관여했다. 그는 “이박사는 무조건 제칠 것”이라는 각오로 트로트를 낮잡아 이르는 ‘뽕’을 재해석해 동명의 앨범을 내놓았다. 4년을 매달린 끝에 완성한 앨범으로 그는 한국대중음악시상식 5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또 1명인 박진수는 힙합 팬들에겐 FRNK라는 예명으로 익숙하다. 그는 래퍼 김심야와 함께 ‘KYOMI’ 그리고 ‘Language’ 시리즈로 한국 힙합계를 뒤흔든 그룹 XXX의 프로듀서 출신이다. 그의 이름은 뉴진스 데뷔 앨범의 ‘Cookie’와 빌보드 차트에 입성한 ‘OMG’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진스의 성공은 사실상 어도어와 바나의 합작품에 가까워 보인다.

이처럼 김기현은 자신의 인맥을 활용할 줄 알았다. 모름지기 인맥을 활용하려면 평소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상대에게 인지시켜두어야 하는 법. 서른 살이 되면 자신만의 힙합 레이블을 차리기 위해 회사를 떠날 것이라 말한 곳(SM)이 바나에 투자한 일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김기현은 SM의 대표이사 이성수가 과거 가장 선호했던 A&R 직원상이었던 것이다.

김기현에게 인맥 활용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감독 에릭오 영입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픽사(Pixar) 출신 에니메이터로, 작품 ‘오페라’를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최종 후보에까지 올린 에릭오는 김기현과 어린 시절부터 친분을 이어온 사이였다. 두 사람의 친분은 예술과 문화를 대하는 비슷한 태도, 즉 ‘다양한 영역에 걸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서 비롯했다.

독보적인 심미안과 탁월한 마케팅 감각

뉴진스의 히트곡에는 모두 바나 소속 프로듀서들이 참여했다. 뉴진스의 성공은 어도어와 바나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뉴진스의 히트곡에는 모두 바나 소속 프로듀서들이 참여했다. 뉴진스의 성공은 어도어와 바나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김기현은 바나의 대표이자 기획자, 제작자 겸 마케터이기도 하다. 무릇 좋은 기획자, 제작자, 마케터가 되기 위해선 재목을 가릴 눈이 있어야 하고 수작과 범작을 구분할 줄 아는 심미안을 지녀야 한다. 그렇게 걸러지고 숙성된 완성품을 대중의 품에 잘 전달하는 일은 탁월한 마케팅의 영역이다. 이것들을 두루 갖춰 자신만의 레이블을 만들기 위해 SM을 떠난 김기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아티스트는 E SENS(이센스)였다.

E SENS는 다이나믹 듀오가 설립한 아메바컬쳐와 계약 관계를 끝낸 2013년부터 구상한 솔로 데뷔곡 ‘The Anecdote’를 준비할 즈음 바나를 만났다. 김기현과 E SENS는 사적으론 친분이 없었지만, E SENS의 가능성을 높이 산 김기현과 바나의 콘셉트에 공감한 E SENS의 만남은 시작부터 운명처럼 보였다.

당초 E SENS의 첫 솔로 앨범은 해외 프로듀서 여러 명으로 꾸려갈 계획이었다. 실제 E SENS와 김기현 앞에는 300개가 넘는 곡이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기 힙합의 기운’을 원했던 E SENS는 그 느낌을 가장 잘 살린 래퍼 출신 프로듀서 오비(Obi)의 비트에만 랩을 얹기로 한다. 오비 또한 김기현이 SM 시절 여러 해외 프로듀서들과 교류할 때 알게 된 인물이었다. 김기현은 프로듀서가 결정된 뒤 철저하게 제작자 겸 A&R로서만 E SENS의 작품 구상을 거들었다.

그런데 일이 틀어질 뻔한다. E SENS가 앨범 발매를 앞두고 대마초 흡연 건으로 1년 6개월 실형을 살게 된 것이다. 옥중에서 앨범을 내느냐, 발매를 미루느냐. 바나와 E SENS는 상의 끝에 전자를 택했다. 결과는 대박. ‘The Anecdote’는 2015년 8월 10일부터 일주일 진행한 예약 판매 기간 동안 준비된 1만6000장이 모두 팔려나갔다. E SENS의 솔로 데뷔곡은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받았고, 2018년에 나온 책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선 순수 랩 앨범으론 최고 순위인 56위에 오르며 예술성과 성취도를 함께 인정받았다. E SENS는 지난해 9월 “각자의 다음 챕터로 나아가기 위해” 바나와 계약 관계를 끝냈다.

바나를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킨 ‘The Anecdote’에는 프로듀서 오디 외 E SENS를 도운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심야다. 김심야는 앞서 얘기한 FRNK와 힙합 듀오 XXX를 이끄는 래퍼로, 유력 매체 ‘피치포크’로부터 “분노로 펄펄 끓을 때 가장 훌륭”한 냉소적 래핑을 한다는 평을 받았다. 김기현은 XXX의 음악을 바나 미디어 팀으로부터 처음 소개받았다. 음원을 듣고 깜짝 놀란 그는 확신 끝에 같은 음악을 E SENS에게도 들려주었다. E SENS 역시 감탄사를 내뱉으며 멤버인 김심야를 자신의 앨범에 유일한 피처링 멤버로 받아들인다.

신예 김심야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주는 에피소드다. 결국 그가 속한 XXX는 데뷔작 ‘KYOMI’와 ‘Language’ 1,2탄으로 국내외 힙합 평단 및 팬들을 한꺼번에 들뜨게 했다. 그것은 E SENS 현상에 이은 250 현상 이전 바나가 선보인 두 번째 ‘게임 체인징’이었다.

바나는 이후 켄드릭 라마와 작업한 디샌더스, 베테랑 래퍼 마스타 우, 언더그라운드에서 잔뼈가 굵은 DJ 겸 프로듀서 말립 등을 영입했다. 그리고 2021년 3월, 대한민국 최고 래퍼로 꼽히는 빈지노가 바나에 합류한다. 빈지노 역시 음악 외 미술, 사진에까지 두루 손 뻗는 종합 예술인. 그는 바나에 최적인 예술가였다. 빈지노는 현재 2집 솔로 앨범 ‘NOWITZKI’ 발매를 앞두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싱글 ‘Trippy’를 발매한 상태다. E SENS를 보냈지만 빈지노를 얻은 김기현. 바나는 또 한 번의 게임 체인징을 준비하고 있다.

#김기현 #바나 #뉴진스 #빈지노 #여성동아

사진제공 ADOR BANA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