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

education

슬기로운 부모들이 국어 먼저 시작하는 이유 민성원 소장 ‘초등 국어의 왕도’

글 정혜연 기자

2020. 07. 08

국어는 모든 공부의 중심에 있는 학문이다. 최근에는 대학 입시의 당락을 결정짓는 과목으로 부상했다. 학부모들 사이에 이슈가 되고 있는 ‘초등 국어 뿌리 공부법’의 저자 민성원 소장에게서 국어 공부의 왕도를 들었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어 영역의 비문학 지문 하나가 화제가 됐다. 국제결제은행 산하의 바젤위원회가 결정한 BIS(자기자본비율) 규제와 관련된 지문으로, 중간에 BIS 구하는 수식까지 나와 수험생들을 당황케 한 것. 해당 지문에는 BIS 이외에도 단기후순위채무, 위험가중자산, 자기자본의 손실 복원력 등 전문가 수준의 어휘들이 대거 등장했다. 결국 해당 지문과 연결된 5개의 문제는 입시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킬러 문항’으로 작용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수능에서 국어의 중요도가 높아졌다. 영어(외국어) 영역은 2018학년도부터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부담이 줄어들었다. 이후 많은 수험생이 수리 영역에 집중하자 수능에서 변별력을 높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추세다. 이렇게 되자 국어 영역에서 킬러 문항이 늘어 대입 당락을 결정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자녀를 영어, 수학 학원에 이어 국어 학원까지 보내는 것이 답일까. 영어, 수학 학원만으로도 벅찬 아이와 학부모들에게 국어 학원까지 추가하는 건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 책을 많이 읽히면 좋겠지만, 소설이나 학습 만화를 많이 보는 것이 수능에서 국어 영역의 성적을 올리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지난 4월 출간된 ‘초등 국어 뿌리 공부법’은 이런 고민을 갖고 있는 초등학교 학부모 사이에 입소문이 나 인기를 얻고 있다. 20여 년간 대학 입시 컨설팅을 전문으로 해온 민성원 민성원연구소 소장이 국어 공부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국어를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길잡이 역할을 해준 것이 인기 비결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수능 불패를 이룰 국어 실력을 갖게끔 지도할 수 있을지 민 소장에게 길을 물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어가 입시의 당락을 결정한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체감하는가. 

수능에서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국어, 수학의 비중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수학은 범위가 정해져 있어서 어렵게 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딱 3문제만 어렵게 내 그것으로 1, 2등급을 가린다. 그런데 국어는 킬러문항이 10개로 그중 8개가 독해, 2개가 문법이다. 이외 말하기, 쓰기, 화법, 작문은 거의 대부분이 맞힌다. 최상위 학생들은 문법 문제도 안 틀린다. 암기만 하면 다 맞을 수 있다. 당락은 독해의 비문학 지문에서 결정되는데 경제학, 물리학, 법학 등 다양한 학문의 개론 정도 수준으로 나오기 때문에 대부분 학생들이 어려워한다. 이 때문에 ‘국포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초등학교 학부모 사이에 ‘초등 국어 뿌리 공부법’이 화제다. 어떻게 출간하게 됐나. 

20여 년 동안 대학 입시 지도를 해왔는데 고등학생 학부모와 초등학생 학부모의 정보 비대칭이 심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초등 학부모들은 “아이가 커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상적인 바람을 말하면서도 ‘그래도 기본은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영어, 수학 학원을 보낸다. 그런데 처음에는 ‘좋은 인생’을 막연하게 꿈꾸다가 자녀가 클수록 ‘왜 학원을 보내지?’라는 의문만 남는 순간이 온다. 자녀가 중학생쯤 되면 목적 없이 남들 하는 대로 사교육을 시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대입이라는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며 초등학생 때부터 목적을 갖고 국어 공부를 시키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초등 학부모들에게 그런 정보와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목적성 있는 국어 공부’를 지적했는데, 초등 학부모들은 독서와 일기, 논술 학원 등 여러 방법으로 국어의 기본을 잡아주기도 한다. 부족하다고 보는가. 

독자들에게 다양한 피드백이 온다. ‘독서만 시키고 있는데 부족하냐’ ‘일기를 꾸준히 쓰는데 국어 공부에 도움이 되냐’ 등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강조되어온 국어 공부법인데, 국어 실력을 올리는 데 실질적 도움이 되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서는 수능 국어로 따지면 화법, 작문, 문법, 비문학 가운데 하나의 영역에 불과하다. 소설책만 열심히 읽어서는 수능 국어 성적이 높게 나오기 어렵다. 중요한 건 국어 1등급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효율적인 국어 공부를 하느냐이다. 또 일기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면, 아이들은 대체로 일기를 쓰기 싫어한다. 이순신 장군도 난중에만 일기를 썼다. 글감이 있어야 일기를 쓸 수 있는데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보낸 아이에게 일기를 쓰라고 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 국어 공부법이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독서록도 마찬가지다. 책을 5권 읽으면 숙제가 5개 생기는데 어떤 아이가 책을 많이 읽고 싶겠나. 책에서는 배경지식을 쌓고 감동만 받으면 된다. 독서나 일기 쓰기가 국어 공부와 직결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많은 교사와 학자들이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한다. 어떻게 지도하는 것이 좋은가, 

독서를 한 뒤 자녀에게 “너의 생각은 어때”라고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초등학생들 대부분 제대로 답하는 경우가 없다. 지엽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전체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독서는 첫째 분석적 사고, 둘째 논리적 사고, 다음 비판적 사고, 마지막으로 창의적 사고가 순서대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려면 언어 반복을 통해 어휘 암기가 기본적으로 되어야 하고, 배경지식도 쌓아야 하며, 문제 풀이를 통해 지식을 점검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어릴 때 발현되어야 할 창의력이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 결과 창의력은 50대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고, 베토벤이 ‘운명 교향곡’을 작곡한 때가 50대다. 그만큼 무수한 배경지식과 경험이 쌓여야 창의력도 꽃을 피우는 것이다. 아이의 창의력이 꺾일까봐 어휘 암기, 문제 풀이 등을 병행하며 책을 읽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면 수능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효율적인 독서법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 수능 국어에서는 비문학이 중요한데 이를 잘하려면 독해력, 배경지식, 어휘력 등 3개 능력이 필요하다. 저학년 때 독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끊어 읽기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책을 읽으라고 하면 단어만 훑는 아이들이 많다. 심지어 중학생도 끊어 읽기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교과서를 읽을 때 엄마가 옆에서 슬래시를 쳐주며 끊어서 읽도록 연습을 시키면 아이는 지문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한결 수월해진다. 또 자습서를 활용하길 권한다. 지문을 읽고 난 후 자습서를 통해 문단의 요지를 한번 살피고 넘어가는 것이 축적되면 어느 순간 스스로 문단의 요지를 파악하게 된다. 배경지식은, 책에 국한하지 말고 TV나 동영상 등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하면 좋다. 요즘은 다큐멘터리도 잘 만들어져 있고, 깊은 감동을 주는 영화도 많다. 이를 적절하게 선택해 가족이 함께 보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어휘력은, 자습서의 어휘를 한번씩 보게 하면서 어휘책 하나를 부교재로 삼길 바란다. 영어 공부를 할 때 단어장은 하나씩 갖추면서 국어는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국어 어휘 공부를 많이 해두면 책은 물론 법, 경제, 철학 등 비문학 지문도 쉽게 읽히기 마련이다. 

초등 저학년 때까지는 창작동화나 세계문학을 많이 읽는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법, 철학, 경제 관련 책을 읽혀야 하는가. 

독해력을 키우려면 한 번에 줄줄 읽히는 책보다 곱씹어야 겨우 이해되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 사실 아이가 좋아하는 책만 읽게 놔두면 독서 편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책은 휴식 시간에 머리를 쉬게 하는 용도로 읽으면 된다. 초등학교 5, 6학년 정도 되면 전 과목에서 깊은 공부를 시작한다. 이때 한국문학이나 세계문학 전집을 보는 것도 좋다. 나 역시 그 즈음 ‘데미안’ ‘죄와 벌’ ‘레 미제라블’ 등을 읽고 이해하려 애쓴 결과 독해력이 향상되는 경험을 했다. 국어 체력이 좋은 초등 고학년 학생이라면 법, 철학, 경제 관련 책을 읽히는 것을 권한다. 어휘도 조금씩 익히게 한다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시 암송을 강조하는 것도 독특했다. 시를 암송하는 것이 국어 실력을 높이는 것과 관련이 있는가. 

공부를 하는 데 있어 암기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요즘은 암기하는 과정이 괴롭다며 아이들에게 암기를 잘 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 암기력을 키우지 않으면 중고생 때 밤을 새워도 외우기 힘들어진다. 언어 암기 능력이 생기면 국어뿐 아니라 사회, 과학 등의 과목이 쉬워진다. 또 시는 압축적 표현이 많아서 한번 외워두면 내신 점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중학교에서는 특정 시들이 시험에 많이 나오고, 역설적 표현과 반어적 표현 등 자주 출제되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답을 맞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책에는 연구소에서 체계적인 국어 공부를 하고 수능 국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성공적인 케이스들이 등장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면. 

현재 중학교 3학년인 나윤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영재원에 입학할 정도로 탁월한 아이였다. 그런데 영재원 입학과 동시에 수학, 과학 과목 몰입 수업을 받으면서 잠과 사투를 벌이며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로 손톱이 다 뜯겨나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모님에게 수학, 과학 학습량을 줄이고 국어 공부 시간을 늘리라고 조언했다. 불안해했지만 동의했고 앞서 말한 대로 독해력, 배경지식, 어휘력을 잡는 국어 공부와 함께 국영수과 4과목을 균형 있게 학습했다. 그 결과 나윤이는 고3 수능 모의고사에서 국어 1등급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여유롭게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고 있어 사실 다른 아이들보다 유리한 고지에 섰다고 본다. 

국어 공부는 하루에 얼마 정도 해야 하는가. 

초등학생들은 숙제를 포함해 일주일에 2시간만 집에서 국어의 기초를 다지는 시간을 가지면 충분하다. 중학생은 일주일에 3시간, 고등학생은 일주일에 4시간만 할애해도 국어 성적은 오른다. 국어는 체계적으로 공부하면 금방 결과가 나오는 과목이다. 또 국어는 하방경직성을 가지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다른 과목을 공부하느라 국어 공부 시간을 줄여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 중학교 때까지 집에서 꾸준하게 국어 영역의 저변을 확대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 

국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하는 학부모가 많다. 이들에게 핵심적으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수능에서 국어 영역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국어 공부는 대부분 따로 하지 않고 있다.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따로 국어 공부를 하지 않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첫 수능 모의고사를 보고 나면 그때서야 대부분 정확한 자신의 실력을 인지하게 된다. 고등학교 입학 직후 자녀가 자신감을 가지고 치고 올라가게 하려면 집에서 올바른 국어 학습 습관을 들이고, 다양하게 읽고 풍부한 어휘력을 쌓으며, 깊게 읽고 요약하는 힘을 키우고, 반복 연습으로 실전 감각을 깨운 뒤 시험으로 매듭짓도록 지도하길 바란다.

국어 뿌리를 내리는 5단계 공부법

1단계 : 올바른 국어 학습 습관 만들기
● 올바로 읽기_표준발음법에 맞는 정확한 발음으로 읽기, 띄어 읽어야 할 곳 충분히 띄어 읽기, 스스로 읽는 시간 갖게 하기
● 올바로 쓰기_손 글씨를 똑바로 맞춤법에 맞게 쓰도록 습관 기르기
● 올바로 말하기_일상 대화에서 정확한 발음을 사용하도록 연습하기 

2단계 : 다양하게 읽고 풍부한 어휘력 쌓기
● 다양한 분야의 책 읽게 지도하고, 좋은 영상물 활용해 배경지식 쌓기
●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표시하고, 단어 뜻과 함께 예문도 보기 

3단계 : 깊게 읽고 요약하는 힘 키우기
● 세계문학, 서양사, 과학 서적 등 깊게 읽고 언어 사고력 키우기
● 지문 요약 연습 후 문제집 및 공인 국어 시험 쳐보기 

4단계 : 반복 연습으로 실전 감각 깨우기
● 중1, 문법과 시 암기
● 중2, 내신과 수능 국어 병행하며 고2 모의고사로 수준 파악 
● 중3, 비문학 독서 집중과 고전문학·문법 심화로 국어 체력의 뿌리 완성하기 

5단계 : 시험으로 매듭짓기
● 고1~3, 비문학 배경지식 확장하고 수능과 친해지기

사진 홍태식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