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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column

부모와 자녀의 티키타카 감정 공유에 대하여

이성배 아나운서

입력 2021.11.12 10:30:01

요즘 여러 가지 일이 많다 보니 아들 헌이와 집에서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퇴근하고 들어가면 이미 아이는 잠들어 있고, 그러다 보니 큰 대(大) 자로 뻗어 있는 녀석의 볼에 뽀뽀만 해주고 나오기 마련이다. 다음 날도 이른 아침부터 나가야 해 헌이와 소통할 시간이 거의 없다. 벌써 초등학교 3학년 2학기를 맞이한 헌이가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교우 관계는 문제없는지, 학업은 잘 관리되고 있는지 걱정이 앞섰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니 내 책상에 헌이가 올려둔 몇몇 증서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2학기 학급회장에 당당히 당선돼 받은 당선증과 한자 시험 최우수상이었다. 이보다 눈에 들어온 건 피아노 콩쿠르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헌이가 최근 연습하는 악보들이었다. 특히 ‘Summer’라는 곡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편곡돼 있었다. 화성학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스스로 편곡한 것을 보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피아니스트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나이에 비해 엄청난 역량이라며 작곡가로 키워보는 것을 추천했다.

부모로서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조금씩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역량을 키워가는 헌이가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많은 시간을 함께해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부모로서 헌이의 실력 향상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준 것이 있다면 많은 대화가 아닐까 싶다. 출장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헌이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근황을 짚어보고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려 했다.


헌이 : 아빠! Summer의 중급 버전(한 옥타브 높게)과 고급 버전(반음 높게)을 만들어보았어요!

나 : 잘했어요. 그럼 중급과 고급 버전을 만들면서 생기는 감정의 변화를 이야기해볼까요?


헌이 : 잘 모르겠어요.


나 : 기쁘다, 신난다, 슬프다, 눈물이 날 것 같다 등의 감정을 이야기해보는 거예요.


헌이 : 아, 고급 버전은 조금 더 슬픈 느낌이 났어요!


나 : 바로 그거예요. 그런 감정을 생각해서 다른 악보도 고급 버전을 만들어보아요.



이런 식의 대화를 통해 헌이의 생각과 감정을 나눴다. 또 대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헌이 스스로 알게 하고 그것을 써보도록 했다. 음악이 주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감정 변화가 생기는 것이 헌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해주고 싶었다. 자녀가 피아노를 치다가 못하면 “왜 틀렸어? 다시!”라고 지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행동을 지적하는 대화는 감정만 상하게 할 뿐 고치게 할 수 없다. 먼저 아이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유튜브만 보는 아이를 윽박지른다고 해서 시청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오히려 그 감정을 이해해주고 다른 행동으로 유도하는 것이 좋다. 나 역시 “지금 ‘신비아파트’ 보는 게 밥 먹는 것보다 좋지? 그런데 아빠랑 지금 밥을 먼저 먹고 30분 정도 시간을 정해서 봤으면 좋겠어. 할 수 있지?”라며 변화를 유도한다.



부모의 말을 전부 이해하고 따라오는 자녀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와 감정을 공유하면서 창의적인 생각과 변화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과정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는 평소 잦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생각을 주로 하는 요즘, 헌이를 칭찬해주고 싶어 아이스크림 한 박스를 사 들고 퇴근했다. 그런데 신나게 딸기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서 이 닦기가 싫었는지 헌이는 내가 안 보는 사이에 이를 닦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욱하는 마음을 누르며 깊게 호흡하고 헌이에게 이야기했다. “아들, 요즘 이 닦을 때 치약이 매워서 입 찢어진 부분이 많이 아프지? 그렇지만 지금 닦아두지 않으면 이 속까지 상해서 치과 가야 하니까 지금 닦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아이 입장을 헤아리며 말하자 헌이가 조용히 일어섰다. 자녀를 무조건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려 하면 얻을 수 있는 결실이 많지 않다. 부모를 믿고 지시에 따라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먼저다.

‘싱글 대디’ 아놔리의 육아 라이프

이성배 아나운서는 2008년 MBC에 입사해 ‘섹션TV 연예통신’ ‘생방송 오늘 아침’ 등에서 리포터와 MC로 활약했다. 8년 전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싱글 대디. ‘아놔리(아나운서 리)’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는 그가 자신만의 특별한 육아 경험을 담은 칼럼을 여성동아에 연재한다.



사진제공 이성배



여성동아 2021년 11월 6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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