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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city tour

정조와 문화 이야기가 담긴 수원 행궁동 걷기 여행

글 두경아

2020. 11. 19

조선의 개혁가 정조와 천재 실학자 정약용의 만남은 ‘동양 성곽의 백미’로 꼽히는 수원화성을 탄생시켰다. 성곽 도시의 고유한 윤곽이 남아 있는 수원화성과 정조가 머물던 화성행궁, 성공적인 도시재생사업으로 주목받는 행궁동 벽화마을과 공방거리가 있는 수원 행궁동을 천천히 걸으며 구석구석을 즐겨보았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은 우리나라 성곽 문화의 백미로 손꼽힌다. 흔히 수원화성을 이야기할 때는 정조의 효심과 정치적 포부 등을 먼저 언급한다. 정조는 1794년, 불운하게 생을 마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으로 이장해 기리고 군사적 요충지로 강력한 왕도정치의 발판을 삼기 위해 수원화성을 축성했다. 중요한 사실은 수원화성이 건축학적으로 조선을 대표하는 수많은 건축물 중 단연 으뜸이라는 점이다. 조선시대 천재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설계했는데, 거중기와 녹로 같은 새로운 기계를 활용한 덕분에 자그마치 둘레 5.52km, 높이 4~6m 성벽과 40개가 넘는 건물을 짓기까지 2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옹성, 성문, 암문, 산대, 체성, 치성, 적대, 포대, 봉수대 등 우리나라 성의 구성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어 대한민국의 성곽 건축 기술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역사적  ·  건축학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수원화성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관광지다. 완벽하면서 멋스러운 건축물과 이를 둘러싼 주변 공원 등의 자연환경은 감탄을 자아낸다. 서울 안에도 뜻깊은 궁과 성문, 성곽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이처럼 고유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성곽 도시를 경험하기는 힘든 게 사실. 물론 수원화성의 원형도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심각하게 훼손돼 지금의 모습은 1975년 이후 복원된 상태다. 수원화성을 지을 당시 남긴 완벽한 공사 기록서인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수원화성도 근사하지만 성 안 행궁동도 볼거리가 가득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카페들이 자리하고, 행궁동 벽화마을과 공방거리 등 트렌디한 명소들이 전통적인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과거 이곳은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개발 제한으로 인해 낙후됐었다. 하지만 주민과 작가, 시민단체 등이 주도해 벽화마을을 꾸미면서 이제는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며 관광지로도 인기다.
수원시는 12월부터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두 가지 역사 코스, 카페 투어, 가족 힐링 코스 등 총 4개의 관광 루트를 개발해 선보일 계획이다. 보물 같은 수원화성과 그 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행궁동에 기자가 먼저 가 생생하게 체험해보았다. 


건축 당시 원형에 가까운 서쪽 문 _ 화서문

수원화성의 서쪽문인 화서문.

수원화성의 서쪽문인 화서문.

여행의 시작은 수원화성의 서쪽 문, 화서문에서부터 시작하면 좋다.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운 문이다. 공심돈은 군사가 들어가 적을 살필 수 있도록 안이 비어 있는 구조의 건축물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화서문은 성 밖에서 보면 둥근 반원 모양의 옹성으로 한 겹 둘러싸여 있다.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 장치다. 옹성 오른쪽으로 나 있는 입구로 들어서면 사각형 모양의 돌을 쌓아 만든 축대 위, 1층 건물이 비교적 소박하게 서 있다. 축대 가운데에 나 있는 홍예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화서문을 중심으로 성벽을 따라 왼쪽은 화서공원, 오른쪽은 장안공원이 이어져 아름답다. 


임금이 행차하는 문 _ 장안문

수원화성의 정문인 장안문.

수원화성의 정문인 장안문.

장안문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문이라 정문이 됐다. ‘장안’은 옛 중국의 수도였던 장안에서 따온 것으로, 당나라 때 장안성처럼 화성도 융성한 도시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 붙였다. 그런 의미가 담긴 만큼 한껏 화려한 모양새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2층의 문루를 세웠다. 화서문과 마찬가지로 둥근 반원 모양의 옹성을 만들고, 가운데에 홍예문을 냈다. 




정조와 SNS가 사랑한 연못 _ 용연  ·  방화수류정

SNS 인증샷 명소 용연.

SNS 인증샷 명소 용연.

장안문에서 조금 더 걸어가다 수원천을 만나면 성 밖으로 나가야 한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용연이 바로 이곳에 있어서다. 연못 가운데에는 동그란 작은 섬이 들어서 있는데, 그 주변으로 여름이면 연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단풍과 갈대로 아름답다. 남쪽 언덕 위에 자리한 방화수류정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보름달이 수면 위를 비추는 풍경을 ‘용지대월(龍池待月)’이라 하며 수원 8경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역시 숨 막힐 정도로 근사하다. 신발을 벗고 올라설 수 있는데, 이곳에 서야만 용연의 전체 그림을 조망할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놓치지 말아야 할 사진 포인트 _ 화홍문(북수문)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수원천 위에 설치된 수문으로, 홍화문이라고도 부른다. 화홍문에서 화(華)는 화성을 뜻하고, 홍(虹)은 무지개를 의미한다고. 무지개는 화홍문의 일곱 가지 수문의 모양이다. 누각은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정자로 쓰였다. 문을 등지고 바라보는 수원천도 아름답고, 수원천을 따라 조금 걸어 나와 작은 다리 위에서 화홍문을 바라볼 때의 풍경도 백미다. 수원8경으로 꼽힐 만큼 풍경이 근사해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사랑받고 있다. 또한 사철 풍경이 잘 드러나 사진작가나 SNS 이용자들에게 사랑받는 포토 스폿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지고 마는 동화 속 그곳 _ 행궁동 벽화마을

주민과 아티스트들의 협업으로 탄생한 행궁동 벽화마을.

주민과 아티스트들의 협업으로 탄생한 행궁동 벽화마을.


수원천을 따라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행궁동 벽화마을에 닿는다. 좁은 골목에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담벼락, 대문, 전신주, 쓰레기통 등을 캔버스 삼아 그려놓은 벽화들이 동네 전체를 갤러리로 만들었다. 대안공간 눈과 예술공간 봄을 중심으로 사랑의 쉼터 길, 행복하 길, 숨어 있기 좋은 길, 사랑하다 길, 처음아침 길, 로맨스 길, 뒤로 가는 길로 이루어져 있다. 20년 전만 해도 낙후되고 사건 사고가 빈번했던 동네였으나, 대안공간 눈이 들어선 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 행사에 참가했던 브라질 작가 라켈 셈브리가 벽화를 그리면서 지금의 벽화마을이 시작됐다. 주민과 작가, 시민단체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공간으로 의미가 있으며 도시재생 성공 사례지로도 유명하다. 2011년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정조가 머물던 가장 큰 행궁 _ 화성행궁

걷기여행 명소로 떠오른 화성행궁.

걷기여행 명소로 떠오른 화성행궁.

벽화마을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정조가 현륭원에 행차할 때마다 머물렀던 화성행궁이 있다. 행궁은 왕의 임시 거처로, 화성행궁은 국내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을 융릉으로 옮긴 뒤 12년간 13차례 화성에 행차했고,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다. 원형은 5백76칸으로 정궁 형태였으나 일제 강점기 때 낙담헌을 제외하고 파괴됐었다. 1996년 복원 공사가 시작돼 4백82칸으로 1단계 복원이 완료됐고 2003년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경기도기념물 6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6월 8일 사적으로 승격했다.


보물이 숨겨진 거리 _ 공방거리

행리단길이라 불리는 공방거리에서는 각종 체험과 벼룩시장 등이 열린다.

행리단길이라 불리는 공방거리에서는 각종 체험과 벼룩시장 등이 열린다.

행리단길로 불리는 공방거리는 화성행궁에서 팔달문에 이르는 약 420m 길이다. 이 길을 따라 30여 개의 공방들이 들어섰다. 목공예, 금속공예, 규방공예, 가죽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모인 공방길에 그들의 작품이 전시  ·  판매 되고 있다. 공방거리에서는 관광객들이 직접 작품을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는데, 주말이면 다양한 체험 활동과 벼룩시장 등의 행사가 열린다.


원형이 남아 있는 보물 _ 팔달문

보물 제402호로 수원화성 안쪽에 있는 여러 건물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발달된 조선 후기의 성문 건축 형태를 고루 갖추고 있는 문화재다. ‘팔달’은 인근 산 이름이기도 하지만, 정조는 ‘사방팔방에서 배와 수레가 모인다’는 뜻으로 풀기도 했다. 규모와 형식은 정문인 장안문과 같다. 훼손됐던 장안문과 달리 팔달문은 원형이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당시 건축물뿐 아니라 공사 감독과 석공의 이름을 새긴 실명판, 현판까지 모두 남아 있다. 게다가 2013년 문루를 수리할 당시에도 원래 목재를 최대한 사용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수원시

최근 수원시는 다채로운 도시재생사업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를 이끄는 수원시지속가능도시재단  이재준 이사장을 만나보았다. 글 강현숙 기자

수원시의 도시재생사업지 가운데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품은 행궁동은 ‘정조와 문화 이야기가 담긴 투어’가 진행될 정도로 관광자원이 되었습니다. 

수원시 행궁동은 수원의 심장이자 중심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주거 지역 쇠퇴, 기반 시설의 노후화, 주요 업종 및 매출 감소 등으로 주민들은 삶의 질 저하와 생계까지 위협받는 상황이었죠. 새롭게 변화를 도모하던 행궁동은 도시재생으로 새롭게 태어났어요. 변화를 위해 생태교통 수원 2013, 수원형 도시르네상스 사업, 지역 기반시설 개선 등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시작으로 원도심 재생사업을 위한 기반을 다졌지요. 이후 수원 지역 최초로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북수동, 매향동, 남수동, 팔달로1·2가) 일원 약 78만7000㎡의 면적에 약 1백억원의 사업비가 투여돼 행궁동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됐어요. 노후화된 주거지를 개선하고 문화재 구역을 정비해 낙후된 생활 환경을 좋게 만들고, 도시재생거점센터를 세워 도시재생 대학이나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 공동체를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행궁동 벽화마을을 비롯한 수원시 도시재생사업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져 더욱 뜻깊은 것 같습니다. 

사업의 중심은 단연 주민입니다. 수원시지속가능 도시재단은 민관 협치를 담당하는 수원시의 대표적인 공공기관이에요. 행정과 주민 그리고 중간 지원 조직이 장소 중심의 도시재생사업 추진을 위한 협치의 틀을 세우고 운영하고 있지요. 현재 행궁동의 경우 행궁동도시재생사업주민협의체(주민), 실무회의체(재단), 행정과 단위 협업 체계를 구축해 주민들과 밀접한 현장 중심의 운영을 도맡아왔습니다.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사업의 경험을 부여하고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거점센터를 현장에 마련하는 등의 노력들이 현재 자발적인 주민 참여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변화된 수원시의 모습을 본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한지요. 

행궁동 도시재생사업은 주민과 지역에서 관심을 유도해 새로운 성공 사례들을 발굴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지역 주민들의 정주 환경을 정비하고, 보행 활성화를 위해 골목 환경 개선사업으로 주민의 원하는 수요에 대응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이와 함께 화단 정비 및 조성, 셔터 벽화, 건물  ·  담장 도색, 가로 정비 등 지역 환경 개선으로 주민들이 지역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사업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고요. 또한 행궁동에는 연간 약 1백70만 명이 방문하는데,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 마켓의 활성화를 통해 수익 창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수원문화재단, 수원시와 함께 대규모 축제 연계 운영을 매년 추진하며 관광객을 유도할 수 있는 지역 문화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2016년 수원시는 국내 최초로 도시 문제와 관련된 통합형 재단인 ‘수원시지속가능도시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올해 10월부터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계시는데 향후 계획은요. 

이제 4년 차에 접어든 수원시지속가능도시재단은 도시재생, 경제사회, 생태환경 분야의 다양한 지원 사업을 전개해 지속 가능한 도시를 구현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수원은 정조의 계획도시이자 개혁도시이며 역사문화의 도시로 인식되어 왔지만 활력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재단에서는 새로운 거버넌스 지원체계 운영, 스마트시티(디지털 뉴딜) 적용, 그린뉴딜 사업 추진, 일자리 창출 및 사회적 경제육성 등을 핵심과제로 설정해 향후 적극 실행하려고 합니다.

사진 김도균 제작지원 & 사진제공 수원시지속가능도시재단 일러스트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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