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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foodie

성북동 20평 한옥 안주인 쌔비의 야무진 집밥

글 이미주

입력 2020.10.30 10:30:02

‘치익 칙 칙’ 매일 압력솥 추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구수한 냄새가 풍긴다. 그러다 종종 도란도란 대화 소리, 웃음소리가 대문 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작지만 알찬 한옥, 성북동 소행성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소란과 안주인 쌔비에 대하여.

단순하지만 깊은, 쌔비의 집밥

성북동 한옥 소행성의 공사 중에 나온 여러 겹의 도배 용지 중 가장 안쪽에 있던 ‘소화 14년’(1939년) 신문을 그냥 버릴 수 없어 액자를 만들어 입구에 걸어두었다.

성북동 한옥 소행성의 공사 중에 나온 여러 겹의 도배 용지 중 가장 안쪽에 있던 ‘소화 14년’(1939년) 신문을 그냥 버릴 수 없어 액자를 만들어 입구에 걸어두었다.

소행성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응접실. ‘가장 좋은 집은 사람들이 놀러 오는 집’이라는 부부의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소행성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응접실. ‘가장 좋은 집은 사람들이 놀러 오는 집’이라는 부부의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강제 집밥 시대가 도래하면서 SNS에는 ‘맛집’ 대신 집밥 관련 해시태그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인스타그램에 7백만 개가 넘는 형형색색 #집밥 게시물 가운데 오히려 평범해서 더 눈에 띄는 소행성 쌔비(@the_savvy_table)의 집밥은 전혀 ‘인스타그래머블’하지 않다. 보통은 밥과 김치, 반찬 1~2가지가 상에 올라오고, 어쩌다 찌개 하나만 덜렁 놓일 때도 있다. 하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에는 계절이 담겼고 항상 갓 지은 밥이 함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북동 쌔비’라는 닉네임으로 SNS와 블로그에 매일 밥상을 공유하는 윤혜자 씨는 단순한 집밥을 추구한다. 그녀는 집밥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선 간소화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잘 차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일상 밥상이 가능해져요. 매끼를 영양 맞춰 예쁘게 차려 먹는다는 게 사실은 불가능하잖아요. 조금 소홀해 보여도 가족이 그걸 수용할 수 있을 때 집밥이 지속되는 것 같아요.” 혜자 씨는 단출하게 차리는 대신 제철 재료를 사용해 매끼 손이 갈 만한 반찬을 그때그때 만든다. 또 압력솥으로 갓 지은 밥을 올리고, 종종 채소와 고기를 넣고 한 그릇 밥을 짓기도 한다. 국이 꼭 있어야 한다는 강박과 반찬 가짓수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 심적 부담과 함께 염분 섭취가 줄었다. 자연스럽게 건강이 좋아졌고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없어 궁극적으로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혜자 씨의 집밥은 밥, 김치, 장 3가지를 근간으로 한다. 이는 그녀의 요리 멘토인 고은정 자연발효음식 전문가의 영향이 크다. “결혼이 늦은 편인데 그 전에는 음식에 관심도 없었고 요리할 기회도 없었어요. 아침을 챙겨 먹어야 하는 남편을 위해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죠.” 주간지와 월간지 기자를 거쳐 출판기획자로 활동 중인 혜자 씨는 요리도 글로 배우기 시작했다. 사단법인 끼니의 음식인문학 강좌에서 고은정 씨의 강의를 들은 것이 그녀의 요리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약선 요리 전문가로도 유명한 고은정 씨는 7년 전 지리산에 ‘맛있는 부엌’을 열어 전통 장과 김치, 밥 짓기 등을 교육하며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쌀 씻는 것부터 시작해 생각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장이나 김치 담그는 법을 선생님은 정말 쉽게 가르쳐주셨어요. 또 선생님 레시피는 별 치장 없이도 맛이 보장돼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돼요.”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고은정 씨의 요리 강좌가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되자 혜자 씨는 기획자의 면모를 발휘해 스승을 설득했다. 그리고 고은정 씨의 쿠킹 스튜디오가 있는 지리산에서 매달 한 번, 1박 2일 집중적으로 음식을 배울 수 있는 1년 과정의 쿠킹 클래스 ‘고은정의 제철음식학교’를 기획해 1기 수강생을 자처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지리산을 찾았던 그녀는 내친김에 또 다른 1년을 투자해 심화 과정 격인 ‘고은정의 시의적절약선학교’도 수강해 올여름까지 전 과정을 이수했다.


작지만 야무진 한옥, 성북동 소행성

굽이진 골목마다 오래된 주택과 크고 작은 한옥을 만날 수 있는 성북동은 서울의 인심과 온정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깊은 골목 안, 거의 끝자락에 닿으면 ‘小行星’이라 쓰인 문패가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혜자 씨의 집이다. 소행성은 ‘작지만 행복한 별(집)’이란 의미로,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남편 편성준 씨가 작명했다. ㄷ자 구조로 작은 마당을 품고 있는 소행성은 공사할 때 나온 신문의 발행일을 근거로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오래된 한옥인 만큼 이곳저곳 손볼 데가 많아 서까래와 대들보만 남겨두고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공간 레이아웃을 다시 짰다. 사람을 모아 재미난 일을 기획하는 혜자 씨를 위해 주방 겸 응접실을 가장 크게 만들고, 작가인 남편을 배려해 작은 작업실도 만들었다. 건평 20평 남짓한 공간에 손님방을 따로 내고 화장실을 3개나 만든 것은 ‘가장 좋은 집은 사람들이 놀러 오는 집’이라는 집에 대한 부부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다른 주거 공간에 비해 수납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옥은 혜자 씨의 삶을 자연스럽게 변화시켰다. 살림살이와 먹거리, 옷과 신발 등 의식주 전반에 걸쳐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게 된 것.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책도 절반 이상 정리했고 냉장고도 양문형에서 외문형으로 바꿨어요. 놓을 데가 없으니 꼭 필요한 것만 갖게 되더라고요.” 계절과 함께 호흡하는 법도 배웠다. “아파트와 달리 문 열면 바로 외부 공기가 들어오니까 계절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빗방울만 하더라도 자동차 등 뭔가에 부딪치는 소리만 듣다가 바로 땅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니 그것마저 새롭더라고요.” 혜자 씨가 생각하는 소행성의 백미는 바로 마당이다. 아파트 베란다와 달리 일일이 곰팡이를 떠주지 않아도 장독대의 장은 무르익고, 여름이면 간이 수영장을 설치해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그리고 요즘은 화로를 만들어 친구들과 고기 구워 먹는 재미에 푹 빠졌다. “5~6평 되는 작은 마당이 생기면서 삶이 무척 풍족해진 느낌이에요. 올겨울엔 여기서 김장도 하고, 내년 정월 즈음엔 장도 담글 거예요.”

食과 文의 공간이 되다

혜자 씨에게 살림살이 사는 재미를 처음 알게 해준 공방 ‘은곡도마’. 주방의 아일랜드 상판도 은곡도마에서 맞춤 제작했다.

혜자 씨에게 살림살이 사는 재미를 처음 알게 해준 공방 ‘은곡도마’. 주방의 아일랜드 상판도 은곡도마에서 맞춤 제작했다.

성북동 소행성에서는 매달 세 개의 소모임이 열린다. 지난 9월에 시작한 ‘제철음식학교-서울교실’은 지리산에서 열리는 제철음식학교의 서울 버전으로, 고은정 씨의 요리 수업과 수강생들의 사는 이야기로 채워진다. 혜자 씨가 기획한 또 다른 음식 모임인 ‘비건밥상’은 성북동 이웃들과 함께한다. “저를 포함해 참여자들이 모두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비건 메뉴를 공유하며 지구 환경과 동물권 등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또한 남편이 진행하는 독서 모임 ‘독하다토요일’은 올해 5월 소행성 입주를 계기로 매달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두 달 간의 공사를 마치고 혜자 씨가 소행성을 봤을 때 든 생각은 ‘이 집이 우리 놀이의 플랫폼이 되겠구나’였다. 여기서 논다는 것은 ‘rest’가 아닌 ‘play’를 의미한다. “남편은 카피라이터와 기획실장으로 20년 넘게 일하다 최근 퇴직해 작가로 전향했고, 저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1인 출판기획자로 활동 중이에요. 부부가 둘 다 집에 있으니 노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노는 행위들이 자연스럽게 생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최근 남편 편성준 씨는 혜자 씨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상과 소행성에서 누리는 소소한 행복, 놀면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에세이집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간단하지만 종합 선물 세트 같은 혜자 씨의 매일 밥상. 압력솥으로 갓 지은 차돌박이버섯밥, 직접 담근 장으로 끓인 채소된장국, 갓 버무려 아삭한 연근사과김치, 그리고 농장 직거래로 받은 채소로 뚝딱 만든 제철채소스틱.

간단하지만 종합 선물 세트 같은 혜자 씨의 매일 밥상. 압력솥으로 갓 지은 차돌박이버섯밥, 직접 담근 장으로 끓인 채소된장국, 갓 버무려 아삭한 연근사과김치, 그리고 농장 직거래로 받은 채소로 뚝딱 만든 제철채소스틱.

일 년에 최소 세 번, 소행성에서는 연례행사처럼 음식 소동이 일어날 예정이다. 올 11월을 기점으로 입동 직후에는 김장을, 정월 즈음에는 장을 담그고, 다시 40~60일 후에 장 가르기(간장과 된장으로 분리하는 작업)를 하기 때문. “친구들과 같이 하면 또 그 재미가 있어 이곳에 오기 전부터 매년 해왔어요. 특히 함께 장을 담가 우리 집 장독대에 맡기고 간 친구들이 몇 달 후 장 가르기를 하러 다시 모이는데, 이날은 돼지고기 수육도 삶아 작은 파티를 열어요.” 일을 놀이처럼, 놀이를 일처럼 하는 혜자 씨는 검증된 정보는 뭐가 됐든 재미난 일을 모의해 지인들과 공유한다. 밥, 김치, 장만 제대로 만들면 매일 집밥이 어렵지 않다는 것, 이 세 가지를 제대로 만드는 것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그녀는 스승인 고은정 씨의 음식 철학을 여기저기 전파 중이다. 그리고 새로운 보금자리 소행성은 사람을 모아 뭐든 나누기 좋아하는 혜자 씨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공유 플랫폼이 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성북동 한옥 소행성의 첫 번째 겨울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 홍태식



여성동아 2020년 1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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