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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웃집 프레데터, 국가가 막아야 할 괴물”

김현미 기자

2023. 02. 16

프레데터(predator)는 포식자, 약탈자, 육식동물 중에서도 직접 사냥을 해 잡아먹는 동물을 가리킨다. 100명 중 1명꼴로 나타난다는 사이코패스. 그들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사냥감을 찾는다.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59) 경기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이기영(32)을 망설임 없이 ‘프레데터’라고 불렀다.

“프레데터들은 아무나 사냥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약자, 잘 걷지도 못하는 이들을 골라서 약탈한다. 그런데 ‘왜 그런 사람을 만났어?’ ‘왜 그런 사람을 피하지 않았어?’라며 마치 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을까? 피해자는 단지 재수가 없었던 걸까? 프레데터는 국가가 상대해야 한다. 국가는 개인이 프레데터를 상대하도록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

이기영은 지난해 12월 20일 음주 운전을 하다 택시와 충돌하자 합의금을 주겠다며 택시 기사 A(61) 씨를 집(죽은 동거녀 B 씨 소유의 집)으로 유인해 둔기로 살해했다. 12월 25일 택시 기사 A 씨의 가족이 실종 신고를 했고, 같은 날 이기영과 교제 중인 여자 친구 C 씨가 집으로 찾아왔다가 옷장에서 A 씨의 시신을 발견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8월 이후 행방이 묘연한 동거녀 B 씨의 휴대전화를 이기영이 가지고 있는 것을 수상하게 여겨 추궁한 끝에 이기영으로부터 동거녀를 둔기로 살해한 뒤 하천 변에 버렸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하지만 피의자의 자백만 있을 뿐 아직까지 시신을 찾지 못해 ‘시신 없는 살인사건’으로 불린다. 현재 이기영에게 적용된 혐의는 강도살인 및 살인, 사체 유기, 사체 은닉, 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등 6가지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기영의 엽기적 행각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집주인을 죽이고도 계속 자신의 집인 양 거주하며 새로운 파트너를 불러들였고, 살해한 택시 기사의 카드로 불과 4일 만에 수천만 원을 탕진했다. 이번 사건도 발단은 음주 운전이었지만, 이기영은 과거 육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음주 운전 단속을 피하려고 경찰관을 차에 매달고 도망치거나 차 열쇠를 뽑으려는 경찰관의 손을 이빨로 무는 등의 범행으로 실형을 산 음주 운전 전과 4범이다. 일정한 직업 없이 일용직을 전전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재력가 손자”라거나 처음 만난 사람에게 “돈을 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느냐”고 묻는 등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입만 열면 거짓말, 손아귀에 들어오면 약탈자 본색

어떻게 이처럼 터무니없는 행각이 가능한 것일까.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교수는 이기영을 ‘반사회성 성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유형으로 진단한다. 이 교수가 동료 심리학자 이은진 씨와 쓴 ‘범죄심리 해부노트’에 따르면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주요 특징은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범하는 것과 공감 능력 부족, 거짓말을 잘하고 무모한 행동을 일삼으며 자기중심적이다. 위험하고 위법한 행위에 대한 책임감과 도덕적 양심이 결여돼 있다는 점에서 다른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보다 타인에게 해를 가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하지만 자신의 행위로 인해 생긴 피해자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받을 피해를 마땅히 입은 것이라 여긴다. 자신의 범행을 입증하는 자료 앞에서 조금도 개의치 않고 거짓 눈물을 보이며 죽일 의도가 없었다고 거짓 주장하는 것이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도드라진 특성이라고도 했다.



“이기영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온갖 감언이설로 여성들을 현혹했고, 택시 기사도 15분간 설득해서 집으로 유인하지 않았나. 유인할 때 이미 죽일 생각이었을 것이다. 계획적으로 유인했다고 본다. 이미 사람을 죽여봤고(동거녀 B 씨),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복잡한 과정에서 자신의 전적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 차라리 죽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심지어 경찰도 속였다. 처음엔 동거녀 B 씨의 시신을 유기한 장소가 경기도 파주시 공릉천 변이라고 했다가 돌연 말을 바꿔 3km가량 떨어진 다리 밑에 묻었다고 특정 다리를 지목한 뒤 ‘내가 경찰에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약도까지 그려줬다고 한다. 직접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이기영은 나이에 비해 젊고 순진한 인상으로 보인다. 그런 이미지로 여성들에게 접근해 거짓말하고, 상대가 손아귀에 들어온 순간 폭행하고 돈을 뜯어내며 약탈자 본색을 드러낸다.”

1월 17일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이들이 거주했던 아파트 벽면 등에 튄 핏자국을 감식한 결과, 동거녀 B 씨의 DNA와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외부의 충격으로 상처가 생기면서 피가 튄 흔적인 비산흔(飛散痕)은 이기영이 A 씨를 살해한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 이 교수는 “현재 드러난 살인 피해자는 2명이지만 이기영이 이런 인스턴트 만남을 지속하고 누군가를 등쳐서 생계를 유지해온 사람임을 감안하면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면서 “살인까지는 아니어도 이기영이 약탈한 여성은 한둘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기영은 사이코패스일까? 이 교수에 따르면 싸움을 자주 일으키고 무책임한 사람을 흔히 ‘사이코패스(psychopath)’, 우리말로 ‘정신병질자’라고 부르는데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하위개념으로 만들어졌다.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진단할 때는 아동기부터 품행장애와 반사회적 행동 패턴을 보였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정신병질은 그중에서도 반복되는 비행 습벽보다는 정서적 특질, 특히 냉담함과 공감 능력의 결여 등이 더욱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상대의 고통 이해하지 못하는 쾌락 추구형

이기영에 대해 진행된 사이코패스 검사 결과 ‘진단 불가’라는 결론이 내려진 이유는 뭔가.

사이코패스 경계에 있는 것 같다. 아주 냉혈한이고, 치밀한 연쇄살인범과는 조금 다른 캐릭터이긴 하다. 잡범처럼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시신이 옷장 안에 있는데도 다른 파트너를 집으로 불러들이지 않았나.

피해자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건 무슨 뜻인가.

상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힘들었을까, 상대의 죽음이 나에게 얼마나 공포를 일으키나 이런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다. 옷장 안에 시신을 넣어두고도 일상을 영위하는 데 불편이 없다. 외면하면 되니까. ‘모른다’라고 하면 끝이다.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잘못하면 그 대상자가 자꾸 떠올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불편해진다. 그러나 사이코패스적인 사람은 애초에 그런 생각을 못 하거나 안 하는 게 습관이 됐거나 해서 냉혈한이 된다.

왜 시신을 치우지 않고 옷장 안에 두었을까.

살인하고 시신을 바로 치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치우고 싶으나 여건이 안 돼 못 한 경우다. 교통편이 없다거나, 날이 밝아서 사람들 눈에 띌까 봐 못 하고 있다거나. 하지만 이기영은 이도 저도 아니다. 야밤에 죽였고 차도 있었다. 그냥 귀찮아서 안 한 거다. 갖다 버리자니 매장해야 하고 얼마나 번거롭나. 마침 크리스마스인데 먼저 놀고 나중에 하지, 했을 거다. 범죄자들도 취사선택을 한다. 이 사람의 우선순위는 쾌락이다.

이기영은 연쇄살인범인가.

연쇄살인으로 정의하려면 일단 3인 이상의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연쇄살인범은 일정한 컴포트 존(comfort zone)이 있고 그 주변에서 피해자를 물색하다가 죽이는데, 범행과 범행 사이에 냉각기라는 게 있다. 이기영의 경우 아직까지 밝혀진 살인은 2건뿐이어서 연쇄살인 요건에 맞지 않지만 여죄가 드러날 가능성은 있다.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은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경에 의해 범죄의 본질도 변화한다.

음주 전과 4범인 것으로 보아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리는 주폭(酒暴) 아닐까.

술이든 약물이든 중독 상태가 지속되면 뇌가 망가진다.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려면 뇌가 멀쩡해야 하는데 전전두엽, 변연계에 손상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충동이 일어나도 ‘억제’가 안 된다. 보통 사람들은 화가 나 주먹이 나가려 해도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이러면 안 되지’ 하며 참는데 이기영 같은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 ‘억제’가 안 되는 거다. 서구 학자들은 사이코패스의 발생 원인으로 유전적 소양을 얘기하지만 후천적 영향도 있다. 10대 때부터 계속 술 또는 약을 한 사람은 뇌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되다 보니 일반인보다 훨씬 상황 분별력이 떨어진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른다. 출소하면 또 충동적인 행위를 반복하면서 전과가 쌓인다.

주변에서 이런 사이코패스를 만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100명 중 1명이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들 중 일부는 지능이 뛰어나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다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있다. 이를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사이코패스들은 남의 희생을 딛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힘들다.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되면 조직원들을 마구 경쟁시키고 쓸모없어지면 팽한다, 너무 괴롭히니까 자살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지난해 갱생보호시설(출소자의 자활·갱생을 위한 시설)에 있는 출소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는데, 그 시설에 오는 사람 대부분이 가족이 없거나 포기한 무연고자다. 평균 전과 9회 이상. 지능이 떨어질까? 멀쩡하다. 아이큐는 평균이고, 140 이상도 있다. 그중 사이코패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타인의 정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서인식능력검사를 하면 지능은 높은데도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내지 못한다.

사이코패스를 포함해 반사회성 성격장애 범죄자들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지난해 여름 김근식(아동·청소년 11명 성폭행)의 출소를 앞두고 인천 지역 맘 카페에서 “조두순보다 더한 김근식이 출소한다”며 난리가 났다. 출소 직전 김근식의 추가 성범죄가 드러나 재수감되면서 일단락됐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20대 여성 8명을 성폭행한 ‘수원 발발이 사건’의 범인 박병화도 지난해 10월 출소했다. 이들에 대해 이미 징역형을 다 살았으니 더 이상 국가가 개입하면 인권침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김근식은 과거에도 출소 16일 만에 범행을 저지르는 등 4개월 동안 11명을 성폭행한 상습범이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거나 반성하지도 않는다. 단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한다. 이런 범죄자들은 국가가 보호수용을 해야 한다.

연간 스토킹 신고 1만5000건, 스토킹 피해자 보호가 우선

이들의 범행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다. 이유는 뭔가.

이들은 약탈자다. 쉽게 등칠 수 있는 먹잇감을 고른다. 연고가 없고 현금이 있고 위로가 필요한 외로운 사람. 여자들이 그 쉬운 대상이다. 하나 더, ‘천사 판타지’가 있는 여자다. 그런 여자는 남자의 폭력성을 알고도 단지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불쌍한 존재로 여기고 구제해주겠다며 그와 결혼하기도 한다. 그러나 습벽처럼 물든 반사회적 행동과 사고는 쉽게 고칠 수 없다. 개과천선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자신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줄 여자는 널려 있고 여자만 잘 꼬시면 다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당장 헤어져야 한다. 폭행해도 상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폭행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폭행하고 다음 날 사랑한다고 하고 선물도 주고 그러다 또 수틀리면 폭행하면서 상대를 조종한다. 그 과정에서 희열도 느낀다. 그런 관계는 여자가 도저히 참지 못해 남자를 죽이거나, 남자가 여자를 죽이거나 결국 인명 피해를 봐야 끝난다.

지난해 9월 지하철 신당역에서 여성 역무원이 살해당한 사건은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보여주었다. 2021년 10월 발효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에서 보완돼야 할 점은 무엇인가.

스토킹처벌법 덕분에 적어도 스토킹을 범죄로 신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21년 10월 이후 1년간 신고된 스토킹이 무려 1만5000건이다. 그중 기소된 사건이 20%가량 되고, 유죄 판결까지 받는 경우는 그보다 적겠지만 피해자들은 신고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경찰이 스토커를 찾아가 수사를 해주지 않나. 범죄라는 인식 때문에 스토킹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신당역 사건 이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스토킹 범죄에 적용되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하고, 온라인상 스토킹 범죄도 처벌하는 등 피해자 보호를 확대하는 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여야 모두 ‘스토킹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위한 법안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주장하는 성폭력상담소, 쉼터 같은 시설을 만들고 NGO를 통해 간접 지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쉼터를 아무리 잘 만들어놓아도 직장과 일상을 포기하고 쉼터에 들어갈 사람은 많지 않다. 신당역 여성 역무원도 자신의 일터에서 살해당했다. 그들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직접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경찰이 보호하기 어렵다면 민간업체에라도 보호를 의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이수정교수 #사이코패스 #프레데터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뉴시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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