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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돈·인맥 다 가진 ‘본투비 센 언니’, 낸시 펠로시

이승원 ‘바이든 플랜’ 저자

입력 2022.08.23 10:00:01

강렬한 붉은색 코트에 멋진 선글라스를 쓴 한 여성이 경쾌하고 당당하게 문을 박차고 나온다. 백악관 출입 기자들은 그의 패션은 물론 표정과 몸짓, 심지어 발걸음까지 기사화한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기습 대만 방문을 보며 떠오른 2018년 12월의 백악관 모습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미국의 18선 하원의원이다. 하원의장직만 네 번째 (110·111·116·167대)다. 그의 굵직한 이력과 정치적 무게가 짐작 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이력만 화려한 정치인이 아니다.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고위직 여성 정치인 자체가 많지 않다는 걸 감안한다면, 무엇보다 미국이라는 보수적인 정치 환경에서 하원의장을 무려 4번이나 역임했다는 사실은 호감·비호감 여부를 떠나 그만이 경험했을 정치 투쟁사를 말해준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1940년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5남매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 47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처음 하원의원이 됐다.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소속 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2003년부터 민주당 간판 역할을 해왔다. 2년마다 치러지는 하원 선거에서 18번 잇달아 승리했고 여성 최초 정당 대표(민주당 원내대표), 하원의장(2007~2011, 2019~)을 역임하며 차곡차곡 정치적 입지를 다져왔다.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늘 엇갈리기 마련이지만 ‘강한 카리스마 펠로시’ ‘골수 좌파 펠로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물론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친 펠로시’를 추가했다).

정치 입문 때부터 ‘센 언니’

8월 2일(현지 시간)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왼쪽). 4일 펠로시 의장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찾았다.

8월 2일(현지 시간)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왼쪽). 4일 펠로시 의장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찾았다.

왜 이런 별명이 붙었을까. 그의 삶에서 민주주의, 여성, 인권 이 세 단어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이를 위한 전투력과 강단도 남달랐다. 1987년 정계에 입문한 펠로시는 4년 뒤인 1991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을 찾는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천안문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현수막을 기습적으로 내걸고 성명을 낭독했다. 후과(後果)는 컸다. 중국 공안이 달려들어 펠로시를 그 자리에서 체포했고 구금시켜버렸다.

펠로시의 대중(對中) 투쟁은 계속됐다. 2007년에는 중국 정부가 가장 민감해하는 인물 중 한 명인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그는 티베트 독립운동의 구심점이다. 이후에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유치 반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 보이콧 등을 줄기차게 이어갔다. 8월 기습적으로 대만을 방문했을 때, 중국 공산당을 대변하는 ‘환구시보’의 전 편집장 후시진이 “펠로시가 탄 항공기와 호위하는 미국 전투기를 격추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트윗을 게시하며 과도하게 흥분한 이유다.

그의 전투력은 미국 내에서도 대단했다. 협상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상대 당인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도 치열한 싸움을 이어갔다. 펠로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이라크전쟁에 반대했고 이라크 내 미군 철수를 강력히 주장했다. 부자 감세 정책과 이민자 문제 등을 두고는 공화당과 끊임없이 대립했다. 오바마 정부 당시엔 당내 반발을 잠재우고, 공화당까지 설득해 ‘오바마 케어(국민건강보험법안)’가 통과되는 데 중추 역할을 했다. 한편 스스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낙태와 동성 결혼에 적극 찬성한다. ‘뼛속까지 좌파’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그의 전투력이 가장 빛났던 사례는 트럼프 정부 때다. 2018년 12월, 펠로시는 야당 대표이자 하원 대표로 백악관을 찾았고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및 연방정부 셧다운(폐쇄) 문제를 놓고 트럼프와 설전을 벌였다. 언론 카메라가 채 꺼지기도 전, 펠로시는 작심 발언을 시작했고 못마땅한 트럼프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얼굴을 찌푸리며 여과 없이 불만을 드러냈다. 펠로시는 회동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때 포착된 그의 붉은 막스마라 코트와 아르마니 선글라스 주문이 폭주해 재생산에 들어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공화당은 펠로시를 ‘리무진 리버럴(강남 좌파)’이라고 비판해왔는데, 그의 스타일이 사진 하나에 고스란히 담겼고 일부 언론은 “펠로시표 정치의 정수를 보여줬다”고 평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후 ‘미친 펠로시’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트럼프와의 악연은 계속됐다. 2020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 끝나자마자 트럼프 등 뒤에 앉아 있던 하원의장 펠로시는 연설문을 박박 찢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펠로시의 여성 인권에 대한 열의는 그 무엇보다 뜨겁다. 처음 하원의장이 됐던 2007년 취임식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200년 넘게 기다려온 순간입니다. 믿음을 잃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얻기 위해 수년간 투쟁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저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 우리 딸들과 손녀들을 위해 오늘 우리는 대리석 천장을 깨뜨렸습니다.”

“대통령보다 하원의장이 더 어렵다”

2020년 2월 2일(현지 시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당시 트럼프 대통령 연두교서 연설문을 찢었다.

2020년 2월 2일(현지 시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당시 트럼프 대통령 연두교서 연설문을 찢었다.

하원의장으로 다시 돌아온 2019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하원에는 두 세기에 걸쳐 형성된 남성들만의 서열이 있다”며 “그 견고함은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라기보다 대리석 천장marble ceiling)에 가까웠기에 여성이 하원의장보다 대통령이 되는 게 쉬울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다”고 말했다. 여성이라는 ‘신분’으로 하원의장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었는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앞서 펠로시는 정치 입문 과정에서도 여성 사이의 연대를 강조했다. 1987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연방 하원의원이던 살라 버튼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펠로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이를 두고 한 작가가 “여성이 정치계의 정점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다른 여성들의 헌신적인 후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결정적 증거”라고 말하자 펠로시가 이렇게 화답한다.

“이건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한 여성의 성공은 다른 여성의 기회를 박탈해 얻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모든 여성의 성공은 다른 여성들을 돕는다.”

최근 대만 방문 당시 여성인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난 자리에서 “첫 여성 미국 하원의장과 첫 (여성) 대만 총통의 만남은 큰 자부심이며 각자의 정부에서 유리 천장을 깬 인물”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남성 상원의원들이 대만에 방문했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며 중국 정부의 여성 차별을 우회적으로 꼬집기도 했다.

대만을 찾을 당시 그의 패션이 다시 화제에 올랐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만큼이나 ‘패션은 곧 메시지’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정치인이다. 대만 타이베이 쑹산 공항에 도착할 때 그는 위아래 핑크색 슈트를 착용했다. 다음 날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의 만남에서는 흰색 슈트와 액세서리 차림이었다. 핑크는 ‘괴롭힘 방지’, 흰색은 ‘여성 참정권’을 상징한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 중국이 대만을 따돌리는 걸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진 아시아 순방에서 돋보였던 위아래 ‘컬러 매칭(깔 맞춤)’을 두고 CNN은 ‘파워 플레이’라고 표현했다.

‘캘리포니아 골드’에 엇갈린 평가

‘과감’과 ‘과격’ 사이를 오가는 그가 정치 인생을 지속해올 수 있는 까닭은 모금 능력에 있다. 엄청난 선거 자금을 펠로시가 끌어오면서 그는 ‘캘리포니아 골드’로도 불린다. 2002년부터 2019년까지 5억 달러(약 5600억원)를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중간선거 당시 끌어온 정치 자금만 무려 1억 달러(약 1137억원)였다고 한다. 이는 그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연방 하원의원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시장을 지낸 아버지(토머스 달레산드로)와 엄청난 자산가인 남편의 영향력 또한 그의 자산이기 때문.

펠로시는 올해 하원의장을 마지막으로 정계 은퇴를 고민하다 최근에는 올해 중간선거에서 ‘19선 도전’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전부터 민주당 일각에서도 ‘구악’ ‘기득권’ ‘올드 제너레이션’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다). 그가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가 정치인으로 삶을 이어가든, 누군가의 할머니로 살아가든 그의 좌우명은 계속될 것이다.

“Win, baby(이겨라, 베이비).”

#낸시펠로시 #하원의장 #여성정치인 #여성동아

사진 뉴시스 사진제공 미국하원의장실



여성동아 2022년 9월 7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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