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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키우는 기쁨, 먹는 즐거움 홈파밍(home farming)

이나래 프리랜서 기자

2024. 07. 18

말 그대로 집에서 작물을 기르는 ‘홈 파밍(home farming)’이 대세다. 물가가 올라서, 열매가 예뻐서, 유기농 채소를 먹고 싶어서 등. 홈 파밍을 시작한 이유는 다 달라도 결론은 하나다. 일상이 다채롭고 풍성해졌다는 것.

꽃밭부터 텃밭까지, 일상을 채우는 아름다움
정유정(@sentimental_green)

정유정 씨 텃밭 고추존과 키우고 있는 토마토와 산딸기.

정유정 씨 텃밭 고추존과 키우고 있는 토마토와 산딸기.

아파트 옥상 텃밭을 가꾸고 있는 정유정 씨. “원래는 꽃을 좋아해서 화초를 주로 키웠어요. 몇 년 전 우연히 화원에서 발견한 산딸기 모종의 열매에 반한 게 시작이었죠. 관상용으로 키울 생각이었는데, 익은 걸 따서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있더라고요. 그 이후로 과일나무를 들이고 꽃밭 겸 텃밭을 가꾸게 됐어요.” 텃밭을 가꿔본 적이 없다면, 식물을 키우듯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보라는 정유정 씨의 조언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모종이나 씨앗을 먼저 살 필요도 없다. 마트에서 참외나 수박을 사 먹고 남은 씨앗을 상토에 심기만 해도 싹을 볼 수 있다고. 싹을 틔우는 데 성공한 이후에 큰 화분을 들여도 충분하다.

이제 옥상 텃밭은 정유정 씨와 가족들을 위한 유기농 채소 코너가 됐다. 상추, 루콜라, 래디시, 고추, 당근, 아스파라거스, 고수, 바질, 방울토마토 같은 채소류부터 오디, 산딸기, 딸기, 머루포도, 미니사과 알프스오토메, 수박, 참외 같은 과일류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는 배제하고, 바로 딴 신선한 작물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대체 불가능한 매력이다. “과일은 유통 과정의 특성상 덜 익은 상태에서 따고 운반 과정에서 후숙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집에서 과일을 키우면 충분히 익은 후에 따 먹을 수 있어요. 과일 본연의 맛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정말 매력적이에요. 올해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유전자 조작을 거치지 않은 재래 품종인 에어룸 토마토의 맛과 향이 궁금해서 토마토 빌라도 지어봤어요.”

공간의 한계가 분명한 옥상 텃밭에서 작물을 키우는 그녀만의 방법은 올해 주력하는 작물을 우선적으로 배치하고, 나머지 작물은 다른 화분의 빈자리를 활용해서 심는 식이다. 작물을 가꾼 후부터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과정부터 열매 한 알이 열려 완전히 익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길고 정성스러운지를 알게 되니 모든 식물이 귀하게 여겨진다고.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확장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텃밭 농사에 도전할 이유가 충분하다.

자급자족의 삶을 꿈꾸는 도시 농부
이덕수(www.youtube.com/@Farmer-Kkotnim)

자연농법에 도전 중인 이덕수 씨의 옥상 텃밭.

자연농법에 도전 중인 이덕수 씨의 옥상 텃밭.

이덕수 씨의 하루는 동틀 녘에 시작한다. 자동차보다 새와 곤충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시간이다. 옥상 텃밭에 올라 날씨와 공기, 식물의 상태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흠뻑 흡수할 수 있다. 빛과 바람, 비와 벌레가 함께 키우는 작물을 통해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텃밭을 돌보는 건강한 노동을 통해 육체의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유튜브를 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채소 키우는 영상에 푹 빠져들었어요. 생각해보니 가족이 먹을 식재료를 직접 키우면 안전하고, 생활비도 줄일 수 있겠더라고요. 영상을 보고 입문했으니 ‘유튜브 채널도 개설해보자!’ 하는 즐거운 도전으로 이어졌고요. 옥상 텃밭은 온 가족이 함께 만든 놀이터 같은 공간이에요.”
‘도시 농부’라는 이름을 앞에 내걸었을 만큼 이 가족은 농사에 진심이다.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가족이 직접 먹을 작물을 키우는 것이니 농약과 화학비료를 배제하고, 대신 미생물이나 토양생물을 활용해 흙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농사를 짓기로 결심하고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작물별로 비료와 영양제, 약제가 다 다르니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던 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연농법을 접했는데,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노지 농사와 옥상 텃밭 농사는 분명한 차이가 있겠지만, 텃밭 상자의 흙을 변화시켜나간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죠. 초보 농부의 용감한 도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흙을 변화시켜가는 과정으로 지렁이를 투입하거나 낙엽, 각종 유기물을 활용해 토양을 개선하고 있어요.”

가꾸는 작물도 다양하다. 잎채소부터 열매채소, 뿌리채소, 과실수까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여러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방울토마토나 오이, 고추 같은 작물은 기본이고, 순지르기를 해야 해서 초보들이 어려워하는 참외나 수박, 호박도 너끈히 키워낸다. 오크라나 공심채처럼 흔치 않은 채소에 도전하는 재미도 크다.

“열매 작물을 키우면 수확하는 기쁨이 크고 재미도 있죠. 초보라면 상추나 루콜라 같은 잎채소부터 시작해서 토마토나 고추 같은 열매채소로 넘어가는 게 무난할 듯해요. 꼭 옥상이나 베란다 같은 야외 공간을 고집할 필요도 없어요. 새싹채소는 주방 창문 앞에서도 충분히 키울 수 있고, 찾아보면 미나리나 콩나물, 숙주 같은 실내 작물도 많거든요. 작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건 기술적인 정보보다는 관심과 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작은 씨앗이 가져다줄 거대한 힘을 믿고 먼저 시작해보세요.”

베란다에서 싹튼 가능성
이현실(@gonggan_simda)

아파트 베란다도 텃밭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아파트 베란다도 텃밭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식집사들에게 확장하지 않은 베란다 공간은 도시 속 온실이자 정원으로 기능한다. 이현실 씨는 아예 베란다 전체에 흙을 깔아 거대한 텃밭으로 조성했다.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니 텃밭은 상상만 했지, 막상 실천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던 중 지난해 겨울 이사하려고 집을 알아보다가 베란다가 운동장만 한 이 집에 완전히 꽂혔죠. 이전에 사시던 분들이 베란다 텃밭을 가꾸면서 상추나 방울토마토 같은 작물을 심었다는 걸 알고 얼마다 설렜는지 몰라요. 이사 이후에 본격적으로 텃밭 농사에 돌입했어요.”

이왕이면 온 가족이 텃밭 농사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편과 딸, 아들에게도 심고 싶은 작물을 조사했다. 남편은 고기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쌈채소를 원해 적상추와 로메인, 청오크라에 오이를 추가했고,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는 딸은 좋아하는 이탤리언 요리에 주로 쓰이는 바질과 루콜라, 가지, 방울토마토, 로즈메리, 애플민트, 고수 같은 허브류를 심기로 했다. 좋아하는 식재료를 직접 선정해 심고 나니 가족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상승했다. 초기에는 관심이 덜했던 아들도 종종 텃밭을 찾아 작물이 얼마나 자랐는지를 둘러볼 정도가 됐다. “처음엔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에 좋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느껴요. 공간이 완전히 달라졌고, 생활이 변했고, 가족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다채로워졌으니까요. 남편은 식물에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퇴근 후 베란다에 나가 식물을 들여다보고, 둘이 나란히 앉아 차도 한 잔 마셔요. 대화의 장소가 바뀌고 시간도 훨씬 늘어났죠.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텃밭을 가꾸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개설한 SNS는 세상을 향한 새로운 통로가 됐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텃밭에 관심을 보였고, 소통을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또 예상치 못한 일도 일어났다. 인스타그램 채널을 통해 텃밭 조성 과정을 지켜본 지인들의 요청으로 집이나 사업장 플랜테리어를 조언하는 일을 시작한 것.

“저는 베란다 텃밭을 통해 삶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텃밭을 가꾸면서 흙을 만지고 식물을 돌보는 일은, 그들을 키우는 동시에 나를 돌보는 일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이현실 씨의 말처럼 텃밭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택배로 받은 스티로폼 박스에 상추만 몇 포기 심어도 충분하다. 식물을 키우는 동시에 자신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아이와 함께 만드는 작은 생태계
장지연(@cozy_jiyeonkitchen)

딸과 함께 레몬, 허브, 토마토 등을 가꾸고 있는 장지연 씨의 베란다 텃밭.

딸과 함께 레몬, 허브, 토마토 등을 가꾸고 있는 장지연 씨의 베란다 텃밭.

죽이는 게 더 힘들다는 선인장조차도 말려 죽이는 괴력 탓에 ‘식물계 저승사자’로 불리며 놀림 받았던 장지연 씨. 그랬던 그녀가 텃밭을 가꾸게 된 계기는 딸이 가져온 작은 모종이었다. “아이가 세 살 때쯤 어린이집에서 작은 모종을 하나 받아왔어요. 자신과 이름이 같은 친구라는데, 도저히 죽일 수는 없더라고요. 잘 키워보자고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 어쩌다 보니 베란다 텃밭으로 이어지게 됐네요.” 본격적으로 작물을 가꿔보기로 했지만, 식물을 키우는 공간이 동향이라 일조량이 부족한 점을 극복하는 게 첫 번째 과제였다. 몇 년 동안 공부도 하고, 실험도 하면서 환경에 맞는 식물을 찾았다. 식물마다 잘 기르는 방법이 다르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농사를 짓는 주변 어르신들을 찾아 팁을 얻는 등 나름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이제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게 됐다.

“지금 가꾸고 있는 레몬, 토마토와 허브는 해를 정말 좋아해요. 그에 비해 관엽식물은 반음지가 생육 환경으로 적절하고, 양치식물은 습한 공간에서 생기가 돌죠. 키우고 싶은 건 많은데 공간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저만의 방법을 찾기로 했어요. 실험과 공부를 해가며 만든 이 공간은 저만의 1평짜리 작은 숲속 마을이라고 생각해요.”

이 과정에서 항상 함께해준 동반자는 그녀의 딸이다. 홈 파밍의 문을 열어준 아이와 함께 식물을 키우고 돌보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도심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작물의 성장 과정을 함께 지켜보면서 모녀의 공감대는 더욱 커졌다. 장 씨는 홈 파밍의 순간들을 인스타그램 계정에 기록하고 있다. “딸은 키즈 카페보다 식물원을 좋아해요. 농원이나 원예 클래스도 항상 함께 가죠. 봄이면 모종을 사러 가고, 가을에는 과실을 거두고, 겨울에는 한 해의 수확을 정리하면서 다음 해에 뭘 심을지를 얘기하고요. 제가 요리를 하고 있으면 아이가 토마토나 허브를 따오는 것도 서로에게 큰 기쁨이에요. 매일이 체험학습 같아요.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이런 즐거움을 함께 누려보시길 추천해요.”


#홈파밍 #옥상텃밭 #베란다텃밭 #여성동아

기획 최은초롱 기자
사진제공 이덕수 이현실 장지연 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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