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그 이야기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삶에 대한 정수를 담아낸 작품들은 시대가 달라지더라도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진다. ‘갈매기’ ‘바냐 아저씨’ 등 19세기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수많은 작품도 여전히 전 세계 극장에서 상연되고 있다.
1904년 쓰인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의 유작이다. 로마노프 왕조 몰락의 단초가 된 제1차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이다. 체호프는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몰락하는 귀족 가문에 현미경을 갖다 댔다. 귀족 여성 라네프스카야는 6년 만에 자신의 고향 집 벚꽃 동산으로 돌아온다. 가문의 영광과 그의 유년 시절이 모두 담겨 있는 이곳은 지금 경매에 부쳐질 위기에 처했다. 상인 로파힌은 이 부지를 별장으로 임대해 빚을 갚자고 설득하지만 라네프스카야는 주저한다. 그 외에도 가정교사, 하인 등 다양한 계급적 배경의 인물과 세대의 인물이 벚꽃 동산의 몰락을 함께 지켜본다.
사이먼 스톤은 20세기 러시아 인물들을 21세기 서울로 데려온다. 그는 프랑스 파리오페라극장,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가극장 등 전 세계 최고의 극장에서 창작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리스 비극부터 입센, 체호프 등의 고전을 그 나라의 상황에 맞게 재창조한다. 1853년 만들어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의 이탈리아 사교계 여성을 파리의 인플루언서 모델로 재해석하는 식이다.
20세기 러시아에 귀족 가문이 있었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재벌이 있다. 귀족 여성 라네프스카야는 재벌 3세 송도영이 됐다. 농노 출신이지만 신흥 상인으로 성공한 로파힌은 송도영의 가문에서 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두각을 나타낸 황두식으로 바뀌었다. 사실주의의 대가 체호프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시대의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줬다. ‘벚꽃 동산’은 계급이 요동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신분의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후 서울을 방문했던 사이먼 스톤은 자연스럽게 ‘벚꽃동산’을 골랐다. 어느 사회보다 경제적 계급이 분명하고, 지난 100년간 격동의 시기를 보낸 서울을 배경으로 한 연극으로 ‘벚꽃동산’이 선택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K-컬처에 대한 관심을 털어놨다. 그는 2002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처음 본 후 다양한 K-콘텐츠를 접했다. 계급과 저택을 전면에 내세운 이번 극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호주 출신 연출가의 극본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고증했다. 120년 전의 각본을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용산 참사, 재벌 문화, 페미니즘의 도래 등 21세기 서울의 이야기가 살아 넘친다. 그는 이번 각본을 쓰기 전 200편의 영화와 책을 섭렵했다고 한다.
서울 판 ‘벚꽃동산’은 ‘전도연의 연극’으로 주목받았다. 전도연은 1997년 ‘리타 길들이기’ 이후 2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섰다. 사이먼 스톤은 인터뷰에서 전도연을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배우도 관객을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도연은 “첫 공연 날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감과 두려움이 컸다”며 “연극을 안 했으면 집에 누워 넷플릭스를 봤을 텐데 내 발등을 (내가) 찍었구나 싶었다”고 털어놨다. 연습 과정에서 대본을 수차례 수정하는 사이먼 스톤의 연출 스타일도 배우들의 불안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물론 긴장감은 전도연의 기우였다. 첫 공연에서 전도연은 전도연다운 연기를 보여줬다. 그는 입을 열 때마다 관객들을 휘어잡았다. “당신은 세월을 비껴가지 못했군요. 나는 비껴간 것 같은데” 같은 천연덕스러운 대사도 철없는 두 딸의 엄마인 송도영답게 소화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벚꽃동산’의 안주인 전도연이 도드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를 가졌지만 여전히 열등감에 사로잡힌 황두식을 연기한 박해수, 낭만은 알지만 세상 물정엔 무지해 가업을 위기에 빠뜨린 송도영의 오빠 송재영을 연기한 손상규를 비롯해 베테랑 배우들의 호흡은 감탄을 자아낸다. 가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첫째 딸(최희서), 영화과 학생이자 엄마와 함께 뉴욕에 다녀온 둘째 딸(이지혜) 등 젊은 배우들 역시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법이 없다. ‘벚꽃동산’에서의 연기는 배우 10명의 조화 속에서 완전해진다. 심지어 이들의 연기 호흡은 회가 진행될수록 날로 좋아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집 전체가 투명하게 뚫려 있는 이층집 무대도 인상적이다. 관객은 대사를 하는 배우 뒤로 다른 배우가 저택의 안과 밖에서 각자의 상황에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건축 디자이너 사울 킴은 집 옥상에서 오른쪽 무대 끝까지 유려한 포물선을 계단으로 만들어 이곳 역시 무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와의 처마를 떠올리게 하는 이 공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며 흥미를 돋운다. 이따금 의도적으로 일상 소음이나 목소리가 겹치도록 한 연출도 인상적이다.
대극장에서 진행된 큰 규모의 공연인 점은 아쉽다. 명배우들의 연기가 시종일관 펼쳐지지만 비교적 가까운 자리에 앉아야 배우들의 표정 연기를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극장의 크기 때문에 배우들이 마이크를 사용해 육성을 듣지 못하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체호프의 ‘벚꽃동산’이 희극이냐, 비극이냐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K-패치가 된 스톤의 ‘벚꽃동산’ 역시 이러한 각본의 모호함을 십분 살렸다. 관객은 서사를 따라가며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희비는 개별 인물에 적용해도 동일하다. 송도영의 처지에서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결국 쫓겨나게 되는 건 비극이나 그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황두식의 입장에선 결국 저택을 차지하게 된 것은 희극이나 어릴 적 깊이 각인된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벚꽃 동산’에는 희극과 비극을 적절하게 오가는 K-패치가 적용돼 있지만 그럼에도 납작하게 한국 사회를 요약한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이따금 한국 사회 내부에서 바라본 시선이 아닌 바깥에서 우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 않아. 아무것도 없군. 아무것도….”
원작의 백미는 극 중심에서 물러나 있던 하인 피르스가 말하는 마지막 대사다. 사이먼 스톤은 이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바꿨다. 저택의 몰락과 함께 전자기타의 굉음으로 끝을 낸다. 그리고 황두식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 이 각색을 두고 스톤은 “모든 관객이 똑같은 생각을 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한 2시간 10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커튼콜에서 긴장감을 내려놓고 환하게 웃는 전도연의 표정이 관객들을 흐뭇하게 했다. 공연은 7월 7일까지 계속된다. 회가 누적돼 농익은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고 싶다면 취소 표를 노려보길 바란다.
#벚꽃동산 #전도연 #사이먼스톤 #여성동아
사진 뉴스1 뉴시스
사진제공 LG아트센터
1904년 쓰인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의 유작이다. 로마노프 왕조 몰락의 단초가 된 제1차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이다. 체호프는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몰락하는 귀족 가문에 현미경을 갖다 댔다. 귀족 여성 라네프스카야는 6년 만에 자신의 고향 집 벚꽃 동산으로 돌아온다. 가문의 영광과 그의 유년 시절이 모두 담겨 있는 이곳은 지금 경매에 부쳐질 위기에 처했다. 상인 로파힌은 이 부지를 별장으로 임대해 빚을 갚자고 설득하지만 라네프스카야는 주저한다. 그 외에도 가정교사, 하인 등 다양한 계급적 배경의 인물과 세대의 인물이 벚꽃 동산의 몰락을 함께 지켜본다.
사이먼 스톤은 20세기 러시아 인물들을 21세기 서울로 데려온다. 그는 프랑스 파리오페라극장,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가극장 등 전 세계 최고의 극장에서 창작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리스 비극부터 입센, 체호프 등의 고전을 그 나라의 상황에 맞게 재창조한다. 1853년 만들어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의 이탈리아 사교계 여성을 파리의 인플루언서 모델로 재해석하는 식이다.
20세기 러시아에 귀족 가문이 있었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재벌이 있다. 귀족 여성 라네프스카야는 재벌 3세 송도영이 됐다. 농노 출신이지만 신흥 상인으로 성공한 로파힌은 송도영의 가문에서 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두각을 나타낸 황두식으로 바뀌었다. 사실주의의 대가 체호프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시대의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줬다. ‘벚꽃 동산’은 계급이 요동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신분의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후 서울을 방문했던 사이먼 스톤은 자연스럽게 ‘벚꽃동산’을 골랐다. 어느 사회보다 경제적 계급이 분명하고, 지난 100년간 격동의 시기를 보낸 서울을 배경으로 한 연극으로 ‘벚꽃동산’이 선택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K-컬처에 대한 관심을 털어놨다. 그는 2002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처음 본 후 다양한 K-콘텐츠를 접했다. 계급과 저택을 전면에 내세운 이번 극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호주 출신 연출가의 극본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고증했다. 120년 전의 각본을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용산 참사, 재벌 문화, 페미니즘의 도래 등 21세기 서울의 이야기가 살아 넘친다. 그는 이번 각본을 쓰기 전 200편의 영화와 책을 섭렵했다고 한다.
배우와 무대가 다 했다
연출가 사이먼 스톤은 “전도연은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면 상찬했다.
물론 긴장감은 전도연의 기우였다. 첫 공연에서 전도연은 전도연다운 연기를 보여줬다. 그는 입을 열 때마다 관객들을 휘어잡았다. “당신은 세월을 비껴가지 못했군요. 나는 비껴간 것 같은데” 같은 천연덕스러운 대사도 철없는 두 딸의 엄마인 송도영답게 소화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벚꽃동산’의 안주인 전도연이 도드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를 가졌지만 여전히 열등감에 사로잡힌 황두식을 연기한 박해수, 낭만은 알지만 세상 물정엔 무지해 가업을 위기에 빠뜨린 송도영의 오빠 송재영을 연기한 손상규를 비롯해 베테랑 배우들의 호흡은 감탄을 자아낸다. 가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첫째 딸(최희서), 영화과 학생이자 엄마와 함께 뉴욕에 다녀온 둘째 딸(이지혜) 등 젊은 배우들 역시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법이 없다. ‘벚꽃동산’에서의 연기는 배우 10명의 조화 속에서 완전해진다. 심지어 이들의 연기 호흡은 회가 진행될수록 날로 좋아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집 전체가 투명하게 뚫려 있는 이층집 무대도 인상적이다. 관객은 대사를 하는 배우 뒤로 다른 배우가 저택의 안과 밖에서 각자의 상황에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건축 디자이너 사울 킴은 집 옥상에서 오른쪽 무대 끝까지 유려한 포물선을 계단으로 만들어 이곳 역시 무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와의 처마를 떠올리게 하는 이 공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며 흥미를 돋운다. 이따금 의도적으로 일상 소음이나 목소리가 겹치도록 한 연출도 인상적이다.
대극장에서 진행된 큰 규모의 공연인 점은 아쉽다. 명배우들의 연기가 시종일관 펼쳐지지만 비교적 가까운 자리에 앉아야 배우들의 표정 연기를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극장의 크기 때문에 배우들이 마이크를 사용해 육성을 듣지 못하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물과 서사에 오가는 희극과 비극
‘벚꽃동산’에서 전도연은 송도영을, 박해수는 황두식 역할을 연기했다.
‘벚꽃 동산’에는 희극과 비극을 적절하게 오가는 K-패치가 적용돼 있지만 그럼에도 납작하게 한국 사회를 요약한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이따금 한국 사회 내부에서 바라본 시선이 아닌 바깥에서 우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 않아. 아무것도 없군. 아무것도….”
원작의 백미는 극 중심에서 물러나 있던 하인 피르스가 말하는 마지막 대사다. 사이먼 스톤은 이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바꿨다. 저택의 몰락과 함께 전자기타의 굉음으로 끝을 낸다. 그리고 황두식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 이 각색을 두고 스톤은 “모든 관객이 똑같은 생각을 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한 2시간 10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커튼콜에서 긴장감을 내려놓고 환하게 웃는 전도연의 표정이 관객들을 흐뭇하게 했다. 공연은 7월 7일까지 계속된다. 회가 누적돼 농익은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고 싶다면 취소 표를 노려보길 바란다.
#벚꽃동산 #전도연 #사이먼스톤 #여성동아
사진 뉴스1 뉴시스
사진제공 LG아트센터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