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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무비디깅| 이토록 섹시한 테니스 영화라니

문영훈 기자

2024. 05. 30

한국판 히어로물 ‘범죄도시4’가 1000만 관객의 도파민 지수를 올리는 가운데 안타깝게 묻힌 영화가 있다. 그 자극의 정도는 마석도 형사의 주먹 못지않다.

2018년의 어느 날, 시나리오 작가 저스틴 커리츠케스는 세레나 윌리엄스와 오사카 나오미의 US 오픈 결승 경기를 보는 중이었다. 당시 윌리엄스는 심판의 코칭을 받았다는 이유로 제재를 당했다.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경기 중 코칭은 금지돼 있다. 커리츠케스는 생각한다. 분명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말로 할 수 없는 상황. 심지어 그게 코트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연관된 문제라면 어떨까. 커리츠케스는 경기장 위 두 남자와 코트 밖 여성의 삼각관계를 떠올렸고, ‘챌린저스’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테니스는 거들 뿐

촉망받는 테니스 루키였던 타시(젠데이아 콜먼)는 남편 아트(마이크 파이스트)의 코치로 일하고 있다. 부상을 이겨내고 코트 위로 돌아온 아트는 이번 시즌이 잘 풀리지 않는다. 타시는 아트에게 메이저 대회 준비 차원에서 챌린저급 대회에 나가볼 것을 추천한다. 그 대회 결승에서 맞닥뜨린 건 아트의 어릴 적 친구이자 타시의 전 남친인 패트릭(조시 오코너). 두 남자의 결승 경기가 영화 전체의 틀이며 사이사이 세 주인공의 스리섬(threesome) 혹은 악연으로 불릴 만한 과거가 계속 들이닥친다.

18세 아트와 패트릭은 ‘얼음과 불’로 불리며 주니어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복식 듀오였다. 둘은 같은 대회에 참가한 타시의 경기를 보게 된다. 당시 타시는 테니스계의 주목을 받는 주니어 선수로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 플레이를 펼친다. 동시에 자신에게 빠져든 두 남자에게 타시는 남자 단식 결승에서 우승한 사람과 데이트하겠다고 제안한다. 패트릭이 승리해 타시의 마음을 얻는다. 하지만 패트릭은 ‘야수의 심장’을 가진 안하무인의 테니스 플레이어. 테니스에 대한 집념과 몰입이 더 중요한 타시는 그와 다투고, 당일 타시의 무릎 부상까지 겹치며 둘은 이별 수순을 밟는다. 그로부터 3년 뒤 타시를 다시 만난 아트는 자신의 코치가 돼달라고 제안하고, 둘은 커플이 된다. 그동안 패트릭은 세계 순위 200위권 밖의 한물간 선수가 돼 있다. 그리고 셋은 코트 위에서 다시 만난다.

“테니스는 관계야.” 타시가 자신을 두고 경쟁하는 패트릭과 아트를 향해 한 말이다. 네트를 넘나드는 테니스공처럼 타시의 마음은 패트릭과 아트 사이를 넘나든다. 관계의 주도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타시가 쥐고 있다. 처음 호텔방에서 패트릭과 아트와 키스하다 뒤로 슬쩍 빠져 두 남자의 키스를 지켜보는 장면에서는 먹잇감을 지켜보는 사자를,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를 펼치며 “가자(Come on)!”를 외칠 때는 먹잇감을 향해 질주하는 표범을 연상케 한다. 미국 Z세대 아이콘인 젠데이아 콜먼은 ‘챌린저스’로 배우로서 한 번 더 도약한다. 그동안 동네 여사친(‘스파이더맨’ 마블 시리즈)과 반항적인 전사(‘듄’ 시리즈) 등 다양한 매력을 보여줬지만 남성 주연을 뒷받침하는 캐릭터였다. 이번 영화에서는 두 남성 위에 군림하는 맹수의 포지션을 취한다. 출연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자 역할도 맡았다.

패트릭과 아트의 대조되는 성질 또한 구미를 더한다. 불같은 패트릭은 야성적이지만 무모하다. 얼음을 상징하는 아트는 새침하지만 순종적이다. 타시는 퇴폐적인 놈팡이 늑대와 매끈한 스핑크스 고양이 사이를 자극하고 관망하며 깔끔한 각도의 정삼각형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관능을 추가하는 것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연출이다. ‘아이 엠 러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여름의 끈적임과 욕망을 카메라에 욱여넣던 그는 테니스 코트 위로 앵글을 옮긴다. 이번엔 대놓고 세 사람의 육체를 강조한다. 영화는 아트의 땀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근섬유가 옹골차게 들어차 있을 것 같은 세 배우 몸을 클로즈업하며 코트 위에서 끈질기게 역동하는 몸을 뒤쫓는다. 아트를 연기한 마이크 파이스트는 한 인터뷰에서 우스갯소리로 “감독이 테니스에는 애매한 정도로 관심이 있었고 진짜 좋아했던 건 몸과 땀이었다”고 말했다.

땀뿐만 아니라 셋의 욕망을 표현하는 장면은 침으로 흥건하다. 바닥에 라켓을 내리치며 포호하고, 혀가 뒤섞이는 키스를 하고, 상대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기도 한다. 하지만 적나라한 섹스 신은 없다(무려 15세 이상 관람가). 대신 태양이 쏟아지는 코트 위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서브와 리시브를 주고받는 육체만 있을 뿐이다. 침과 땀으로 범벅이 된 이야기를 불쾌하지 않게 표현하는 능력은 오롯이 구아다니노 감독의 것이다. 땀으로 가득한 육체 위에 얹어지는 세련된 의상도 한몫한다.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JW앤더슨의 수장 조나단 앤더슨이 의상 감독을 맡았다.

테니스 경기가 주는 아드레날린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모든 촬영 수단을 동원한다. 카메라는 타시와 함께 관중의 자리에 있다가, 랠리를 펼치는 아트와 패트릭의 눈 안으로 들어간다. 경기가 절정에 달하면 시속 200㎞에 달하는 공의 시점이 되기도 한다. 표면이 투명하다는 전로 바닥으로 카메라가 들어가 코트 위를 비추는 장면도 있다. 관객은 테니스 코트를 이리저리 오가며 마치 경기장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역동감을 느낀다.

여기에 작곡가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가 아드레날린을 자극한다. 매우 빠른 비트의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경기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 지속적으로 사용된다. 재밌는 건 같은 음악이 대화 장면에도 끼어든다는 점이다. 강렬한 아이 콘택트 상황 속에서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볼륨을 올리는 음악은 “테니스는 관계야”라는 타시의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세 사람은 코트 밖에서도 내내 빠른 속도의 공을 주고받는다.

절정의 타이브레이크

몰라도 큰 지장은 없지만 몇 가지 테니스 규칙을 알면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다. 테니스 스코어는 15, 30, 40점 순서로 올라가고 4포인트를 따면 1게임을 획득한다. 6게임을 이기면 1세트를 획득한다. 5:5 상황에는 듀스 룰이 적용돼 7:5가 돼야 1세트를 가져가는데, 6:6 상황에는 타이브레이크가 적용돼 7포인트를 먼저 딴 사람이 1세트를 가져간다. 영화는 아트와 패트릭의 타이브레이크 상황까지 내달린다.

궁금할 것이다. 누가 러닝타임 131분의 경기에서 우승하게 될지. 하지만 트로피의 주인공은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세 사람은 13년 전처럼 다시 불타오르게 됐으니까. 관객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주는 감흥인지 내면에서 올라오는 욕망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무언가에 휩싸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 마음을 보다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으면 좋을, 영화의 OST ‘Challengers: Match Point’를 추천한다.

#챌린저스 #테니스 #여성동아

사진제공 워너브라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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