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가볍게 한 잔’ 어때? 제로 맥주의 세계

‘곰표 밀맥주’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시발점이었다. 2020년대 초반 편의점 냉장고는 라면, 스포츠, 심지어 구두약과도 컬래버레이션한 수제 맥주들이 판을 쳤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신상 맥주들에 소비자의 호기심이 동한 것도 잠깐. F&B 시장의 핵심은 결국 ‘맛’인데 수제 맥주는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 무슨 맛일지 궁금해서 집어 든 맥주가 맛이 없어 끝내 다 못 마셨다는 이야기가 흔히 들려왔다. 이색 컬래버와 독특한 패키지에 집중한 나머지 정작 맥주 맛의 완성도는 끌어올리지 못한 탓이다.

맥줏값이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맥주 고르는 기준이 보다 까다로워진 것도 수제 맥주의 부침에 한몫했다. 편의점 맥주 ‘4캔 1만 원’ 공식은 지난 2022년 무너졌다. 4캔에 1만1000원으로 가격이 오른 지 1년 만인 지난해 또다시 1만2000원으로 값이 뛰었다. 올 1월부터는 1인 가구를 겨냥한다는 명목으로 ‘3캔 9000원’ 정책이 편의점 업계의 공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객도 도전 정신으로 1캔쯤 이색 맥주를 시도하기에는 심리적 허들이 높아졌다. 실패하지 않는, 이미 맛이 보장된 맥주를 고심해서 고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수제 맥주가 주춤한 자리를 파고든 것은 숫자 ‘0’을 전면에 내세운 심플한 패키지의 ‘제로 맥주’다. 국내외 브랜드 가리지 않고 칼로리부터 알코올까지 모두 0에 수렴하는 맥주 제품들을 공격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오비맥주는 프리미엄 라이트 맥주(100㎖ 기준 열량이 30㎉ 이하인 맥주) ‘미켈롭 울트라’의 국내 도입을 결정했고 하이트진로는 상반기 중 신제품 ‘테라 라이트’ 출시를 예고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올 5월 알코올 함량이 0.05% 미만인 비알코올 맥주 ‘기네스 0.0’을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출시했다. 편의점 CU 역시 같은 달 국내 최저 도수*인 ‘1.5도 맥주’를 출시했다. 시장 규모 역시 급성장 중이다. 시장조사 전문 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는 2012년 13억 원에서 2021년 200억 원으로 약 10년 만에 15배 이상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향후 2~3년 안에 시장 규모가 20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주세법에 따르면 알코올 도수가 1도 미만일 경우 무알코올 음료로 분류되고 1도일 경우는 알코올 도수의 오차 발생 가능성으로 인해 주류로 분류되지 않는다. 도수가 1도보다 높아야만 주류로 인정받을 수 있기에 1.5도가 국내 최저 도수인 것.)

굳이 제로맥주 마시는 이유

2010년대까지만 해도 라이트 맥주나 무알코올 맥주는 임산부나 다이어터를 위한 차선책으로 여겨졌다. ‘맥주는 자고로 진해야 제맛’이라는 국내 맥주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지는 못한 것이다. 오비맥주가 2006년 ‘카스 아이스 라이트’를 선보이고 하이트진로가 2012년 국내 최초의 무알코올 맥주 ‘하이트제로 0.00’을 출시했지만 큰 반향은 없었다. 알코올을 뺀 맥주는 상대적으로 밍밍하고 싱겁다는 이유로 외면받아왔다. 하지만 미국 맥주 시장에서는 ‘버드 라이트’가 2001년부터 2023년 6월까지 22년간 판매량 1위를 지켜왔다. 일본에서도 2008년부터 ‘기린’ ‘삿포로’ ‘산토리’ 등 규모 있는 브랜드들이 앞다퉈 제로 맥주 시장에 뛰어들었다.

주류문화 칼럼니스트인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교수는 최근 국내 제로 맥주의 인기를 두고 “팬데믹 동안 건강관리와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시장조사 전문 업체 마켓링크에 따르면 국내 제로 탄산음료 시장 규모는 지난 2020년 924억 원에서 2022년 3683억 원으로 2년 만에 약 4배 늘어났다. 롯데웰푸드가 지난 4월 국내 빙과업계 최초로 선보인 제로 칼로리 아이스크림 ‘죠스바’와 ‘스크류바’는 출시 1개월 만에 약 720만 개가 팔렸다. 지속 가능한 건강관리를 추구하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에 힘입어 주류업계에도 무알코올과 저도수를 의미하는 ‘놀로(NoLo·No and Low)’ 열풍이 부는 것이다. 특히 알코올의 칼로리는 1g에 7㎉로 지방(9㎉)과 유사한 수준이다. 저칼로리 맥주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무알코올 · 비알코올 맥주도 자연스레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이상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는 음주문화도 한몫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과거 과음을 즐기는 음주문화가 MZ세대 위주로 가볍게 오랜 시간 즐기는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저도수 주류 시장이 확대되는 추세”라며 “건강을 위해 당 섭취를 줄이려는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당 함량을 낮추거나 줄이고 칼로리도 낮춘 주류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맥주 대신 제로 맥주를 마신 지 반년이 넘었다는 김아현(28) 씨는 “‘무알코올 맥주를 마실 바에야 음료수를 마시는 게 낫지 않냐’는 얘기도 종종 듣지만 둘은 다른 종류의 음료”라며 “맥주 마시는 기분을 내고 싶고 술자리 분위기에 어우러지기 위해 무알코올 맥주를 즐긴다”고 말했다.

맥주 마니아들도 건강을 생각해서 혹은 순전히 새로 출시되는 제로 맥주의 ‘맛’이 좋아서 슬금슬금 제로 맥주로 손을 뻗치고 있다. 취할 염려 없이 갈증을 해소하고, 살찔 걱정도 덜어내서 언제 마셔도 편하다는 설명이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절실한 여름, ‘술배’ 걱정 없이 마실 수 있는 제로 맥주 8종을 모아봤다. 맛있게 먹으면 0㎉라는 우스갯소리가 맛있게 먹어도 0㎉인 진실로 바뀌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다음 날 걱정 없는 제로 맥주 추천 8

무알코올
알코올이 전혀 없는 음료. 도수 0.00으로 표기된 음료는 주로 무알코올이다.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
_{씁쓸함은 덜고 부드러움은 더했다. 은은한 과일향이 킥.
용량 350ml, 칼로리 30kcal, 가격 1300원}

하이트 제로
_{국내 원조 제로 다운 품격. 호불호 갈리지 않는 깔끔함.
용량 350ml, 칼로리 13.8kcal, 가격 1200원}

아사히 드라이 제로
_{칼로리도 알코올도 0. 직구만 가능하다는 함정.
용량 350ml, 칼로리 0kca, 가격 2580원}

넌, 강서
_{촘촘한 탄산 사이로 느껴지는 진한 홉향
용량 355ml, 칼로리 58kca, 가격 2600원}

논알코올
1% 미만 소량의 알코올이 함유된 음료.
도수 0.0으로 표기된 맥주는 논알코올(비알코올)인 경우가 많다.

어프리데이 페일에일 
_{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감돌며 강한 탄산이 일품.
용량 355ml, 칼로리 65kcal, 가격 4500원}

카스 레몬 스퀴즈 0.0
_{입안 가득 레몬의 청량함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
용량 330ml, 칼로리 117kcal, 가격 1500원}

기네스 0.0
_{오리지널의 진한 커피향과 거품이 살아있다.
용량 440ml, 칼로리 75kcal, 가격 2500원}

라이틸란 꾸꼬 라거
_{오리지널보다 평 좋은 논알코올.
용량 330ml, 칼로리 13kcal, 가격 3800원}

#제로맥주 #맥주추천 #여성동아

_{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롯데칠성음료 하이트진로 세븐브로이 부족한녀석들 오비맥주 라이틸란 롯에아사히주류 디아지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