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를 비롯한 어도어 경영진의 갈등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 대표의 ‘역대급 기자회견’ 이후에도 무속 경영,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인사 무시 논란, 불법 감사 논란 등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약 한 달간 벌어진 공방 중 갈등의 원인이 된 핵심 쟁점을 4가지로 정리하고 법조계와 K-팝 업계 관계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하이브와 어도어는 각각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세종, 국내 최정상 로펌과 손잡고 전면전에 나섰다.
5월 17일, 민 대표가 하이브의 의결권 행사를 막아달라고 낸 가처분 심문 기일에 하이브 측은 “민 대표는 경영권을 탈취하기 위해 하이브의 주요 주주인 두나무와 주요 협력사인 네이버의 고위직을 만났다”며 “이들에게 하이브를 비난하며 접근했으나 두 회사 모두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도록 민 대표를 차단하고, 민 대표가 불순한 의도로 접근했다고 하이브 측에 알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배임이 성립되기 어렵다고 본다. 배임 혐의의 성립 여부는 경영권 탈취 계획을 시행했느냐다. 형법 제355조에 따르면 배임은 ‘타인의 업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해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거나 당사자에게 손해를 가했을 때’ 성립된다. 모의만으로는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변호사들의 일반적인 판단이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는 “배임은 재산상에 실질적인 위협이 발생해야 성립할 수 있다”며 “설령 경영권을 찬탈하려는 프로젝트가 실제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예비·음모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고상록 변호사는 “어도어 측의 경영권 찬탈 시도에 대한 도의적인 비판이 가능할지 모르나 지분 인수를 시도하려 했다는 것 자체로는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지분 인수를 하도록 권유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회사에 직접적인 손해를 발생시켰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이브 측은 배임의 또 다른 증거로 경영권 탈취 목적으로 핵심 정보를 유출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노 변호사는 “핵심 자료를 유출했다고 해도 그 일과 재산상 피해의 인과성이 인정돼야 한다”며 “가령 삼성이라면 반도체 설계도 정도의 자료 유출이 있어야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브 측이 언론에 공개한 증거 외에 확실한 물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시각도 있다. 송혜미 법률사무소 오페스 대표변호사는 “어떤 패를 갖고 있는지 피고소인인 민 대표가 모르는 게 하이브 입장에서 유리하다”며 “처음 이를 문제화해 일을 키운 것이 하이브인 만큼 후폭풍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배임의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5월 19일 민 대표는 기자회견 이후 처음으로 개인적인 입장을 밝혔다. 경영권 찬탈을 위해 두나무와 네이버 고위직을 만났다는 문제 제기에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분들인데 상식적으로 인수 제안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말장난처럼 ‘만남’을 확인받지 말고 ‘만남의 목적과 나눈 대화’에 대한 확인을 받으라”고 반박했다. 현재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배임 혐의 고발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민 대표는 지난해 12월부터 일부 조항에 대해 수정을 요구해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러 차례의 협상 과정에서 요구한 사항은 크게 3가지다. △풋옵션 배수를 13배에서 30배로 늘릴 것 △하이브 동의 없이 주식을 매각할 수 없도록 한 조항 삭제할 것 △뉴진스 전속계약 해지권을 줄 것.
민 대표의 요구는 정당했을까. 민 대표는 어도어 지분 중 13.5%에 대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풋옵션은 특정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지분을 팔 권한으로, 민 대표는 올해 말부터 영업이익의 13배 가격에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풋옵션 행사 시점 연도와 전년도 평균 영업이익의 13배 가격에 하이브가 민 대표 주식을 반드시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추산 가치는 1000억 원 규모다. 지난해 말 민 대표는 풋옵션 배수를 30배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적용하면 풋옵션 행사가는 1000억 원에서 2400억 원 규모로 훌쩍 뛴다. 어도어 측은 입장문을 통해 “차후 보이 그룹 제작 가치를 반영한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하이브는 민 대표의 해당 요구를 거절했다.
전문가들은 민 대표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이라 보고 있다. 송 변호사는 “양측이 원하기만 하면 주주 간 계약 내용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지만 대개 앞으로의 예상 수익까지 풋옵션 조항에 넣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걸 그룹보다 보이 그룹이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지만, 과도한 요구로 보인다”며 “다만 협상 과정에서 던져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13배와 30배 중간 지점에서 배수 협상을 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민 대표는 나머지 지분 4.5%를 하이브 동의 없이 매각할 수 없다는 조항에 대해서도 삭제를 요구했다. 민 대표는 4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어도어 주식을 보유하는 동안 경업(競業)을 금지하는 조항을 두고 “노예 계약”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이브는 이를 두고 “계약서상의 매각 관련 조항에 해석의 차이가 있었고, 해석이 모호한 조항을 해소하겠다고 민 대표 측에 답변했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4.5%의 주식에 대해서도 단계별로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계약 기간을 3년 더 늘릴 것을 민 대표 측에 제안했다’는 것. 이에 민 대표 측은 “그 내용은 어떤 법률인이 봐도 해석이 모호하지 않다”며 “올해 3월 중순이 돼서야 하이브 측으로부터 수정 제안을 받긴 했다“고 반박했다. 고 변호사는 “하이브의 제안은 합리적으로 보인다”며 “다만 타임라인상 하이브 제안 이후 아일릿 카피 문제가 터지며 협상이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민 대표는 아티스트 전속계약 해지권을 요구하기도 했다. 민 대표 측은 “뉴진스 데뷔 과정에서 나왔던 불합리한 간섭을 해결하고, 독립적인 레이블 운영을 위한 요청 사항”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뉴진스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을 민 대표가 갖겠다는 요구는 다소 일방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송 변호사는 “레이블은 자회사 개념인데, 자회사 대표가 단독으로 계약 해지 권한을 갖고 있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주 간 계약을 둘러싼 논쟁은 앞선 배임 의혹 제기와 연관돼 있다. 배임이 사실로 드러나 민 대표의 계약 위반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하이브는 민 대표가 가진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주주 간 계약상 콜옵션 대상 주식에 대한 1주당 매매대금은 1주당 액면가와 공정가치의 70%에 해당하는 금액 중 더 적은 금액으로 한다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61억 원의 어도어 자본금을 고려하면 민 대표는 28억 원 수준을 받을 수 있다. 1000억 원대로 추정되는 금액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하이브가 민 대표의 주식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노 변호사는 “결국 1000억 원 vs 30억 원의 싸움”이라며 “하이브와 민 대표 간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하이브는 민 대표를 해임하고 약 30억 원의 콜옵션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고, 민 대표는 뉴진스의 가치를 최대화한 상황에서 올해 말 풋옵션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희철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는 “하이브 측은 주주 간 계약을 검토해보고 민 대표에게 1000억 원을 주지 않기 위해 배임 혐의로 민 대표를 고발한 것으로 보인다”며 “배임이 확실해지면 하이브는 콜옵션을 행사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양측이 합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레이블마다 개성이 달라야 레이블인데, 허울 좋게 멀티 레이블 이야기하면서 개성을 안 살리잖아요.”
4월 25일 민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주주 간 계약 문제로 대립하던 하이브와 민 대표 사이 갈등은 뉴진스의 아일릿 카피 의혹 제기가 결정타로 작용했다.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의 걸 그룹 아일릿은 3월 데뷔 때부터 콘셉트나 안무 등이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K-팝 업계 내부에서도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8년 차 뮤직비디오 감독 A 씨는 “아일릿이 콘셉트 등을 카피했다고 느껴질 만하다”면서도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 뉴진스의 등장 이후 그 영향을 받지 않은 신인 그룹은 없다”고 말했다. 뉴진스가 K-팝 신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A 씨는 “기존에는 SM엔터테인먼트가 구축해둔 세계관 등이 K-팝 질서를 선도했다면, 뉴진스는 가볍고 편안한 분위기라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기 때문에 민 대표가 억울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같은 모회사의 아티스트로 콘텐츠 만드는 방식을 공유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이브 전 직원 B 씨는 “만약 뉴진스와 아일릿의 유사성이 있다면 하이브 입장에서는 한 그룹의 성공 방식을 다른 그룹과 공유하려는 전략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량적 판단 기준이 모호한 지식재산권 문제는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 대표가 카피 문제를 강조한 것은 표절을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송 변호사는 “민 대표가 기자회견 등에서 지속적으로 표절 문제를 제기한 것은 민심을 끌어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레이블 체제에서 경영과 창작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지만, 모회사나 다른 자회사가 창작물을 모방했을 때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없었을 것”이라며 “이에 민 대표가 내부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4월 25일 민 대표의 기자회견은 ‘올해의 라이브 쇼’라 부를 만하다. 2시간 15분간 민 대표는 억울함과 폭로, 욕설과 비속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할 말을 쏟아냈다. 대중은 열광했다. 민 대표는 ‘국힙 원톱(한국 래퍼 중 최고)’ 등으로 불리며 모든 발언이 밈이 됐고 유튜브 조회수는 폭발했다.
동시에 민 대표의 기자회견은 다양한 논쟁거리를 남겼다. 우선 지금의 뉴진스가 되는 데 그 공이 누구에게 있느냐다. 민 대표는 “뉴진스와 그 부모님에게 할 만큼 다 했다”며 뉴진스를 ‘내 새끼’ 등으로 부르고, 뉴진스가 자신이 만든 그룹임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민 대표는 뉴진스 음원, 앨범, 뮤직비디오 등 제작 영역 전반을 총괄했다. 그의 기획력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도 입증됐고, 하이브 역시 이를 홍보에 적극적으로 이용할 만큼 그의 크리에이티브 능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상황. 대중 역시 민 대표를 ‘뉴진스 맘’이라 부르며 그의 제작 능력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내부의 의견은 갈린다. 뮤직비디오 감독 A 씨는 “대형 기획사가 만든 모든 그룹이 뉴진스 정도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하이브의 자본력보다 민 대표의 기획력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5년 차 엔터테인먼트 업계 직원 C 씨는 “민 대표와 어도어 직원들은 달갑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뉴진스라는 그룹을 누가 만들었냐는 질문에 하이브라고 답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밖에서 보기엔 크리에이티브나 제작 능력만 두드러질 수 있지만 K-팝은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다. 계약이나 라이선스를 담당하는 법무 팀, 재무적인 일을 하는 파이낸스 팀, 마케팅과 홍보까지 수많은 사람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만약 뉴진스가 민 대표의 그룹이라고만 판단된다면, 추후에 기획자가 아티스트에 대한 절대적인 지분을 요구하는 등 악용 사례가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기자회견 이후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 하이브 직원들의 성토가 이어지기도 했다. 뉴진스를 위해 일한 하이브 직원들이 모욕을 당했다는 것. 하이브 솔루션이나 하이브 플랫폼 팀은 레이블과 협업해 2차 창작물을 만들고 팬들과의 소통 창구를 담당하는 등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이브 전 직원 B 씨는 “그간 하이브 내에서 어도어가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어도어와 협업했던 하이브 직원들이 민 대표의 일방적인 주장에 아쉬움과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라 설명했다. 홍보나 촬영 등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어도어 측의 매뉴얼을 벗어난 요청에도 묵묵히 응해왔지만 민 대표가 억압을 받았다는 주장만 강조하니 반발을 사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민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K-팝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폭로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중간 판매상에게 음반 물량의 일정 부분을 구매하도록 해 판매고를 올리는, 이른바 ‘음반 밀어내기’나 랜덤 포토 카드 등 미끼상품을 이용해 팬들에게 수십 장의 앨범을 사게 하는 실태를 공개적으로 고발한 것. 버려지는 앨범 쓰레기만 한 해에 800t(2022년 기준)에 달할 만큼 환경 문제도 제기돼왔다. 강혜원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초빙교수는 5월 2일 열린 ‘하이브-어도어 경영권 분쟁,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에서 “수백만 원어치 앨범을 사야 팬 사인회를 갈 수 있는 문화가 심각하다”며 “팬들이 듣지도 않을 앨범을 사면서 죄책감을 느끼니 이를 기부하는 문화가 생겨날 정도”라고 말했다.
민 대표는 ‘개저씨’ ‘군대 축구’ 등의 남성 중심 문화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내가 실적이 떨어지길 해, 뭐를 해. 너네처럼 기사를 두고 차를 끄냐, 술을 마시냐, 골프를 치냐. 내 법인카드엔 야근 식대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 여성들에게 민희진은 K-팝 가부장제와 싸우는 젊은 여성”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5년 차 엔터테인먼트 업계 직원 C 씨는 “K-팝 업계에서 결정권자는 대부분 소수의 남성”이라며 “한 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프로듀서가 여러 단계로 이뤄지는 K-팝의 결과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하이브 전 직원 B 씨는 “하이브는 방 의장과 박지원 대표가 회사 전체의 비전을 제시하고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한두 사람의 지휘하에 전 회사 직원이 이에 맞춰서 움직이는 걸 보고 민 대표가 ‘군대 축구’로 표현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민 대표의 해임 여부는 5월 31일 열리는 어도어 임시주주총회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하이브가 어도어 지분 80%를 갖고 있는 만큼 민 대표의 해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법적 공방은 이제 시작이다. 노 변호사는 “해임이 결정되면 민 대표는 해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배임 여부 역시 수사기관에서 계속 조사할 것”이라며 “향후 3년간 법적 분쟁이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될 사안이 원만한 합의를 이루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고 평가한다. 4월 22일 이후 약 한 달간 주고받은 사적인 메시지가 공개되고 아티스트와 그 부모가 사실상 공방에 참가하는 등 이제는 하이브와 민 대표의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가 나온다. 승자가 누가 되든 K-팝 산업은 큰 생채기를 안게 된다. 엔터테인먼트 전문 노 변호사의 말이다.
“기나긴 싸움 끝에 민 대표가 이기면 투자자들은 엔터 업계 투자를 꺼릴 것이다. 아티스트 독립을 선언했을 때 통제 장치 없이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이브가 승리하면 아티스트들이 훌륭한 창작물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위축될 것이다. 누가 이겨도 K-팝 산업에 악영향을 주는 셈이다.”
K-팝 업계 내부에서도 이번 공방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뮤직비디오 감독 A 씨는 “K-팝 시장이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음악적 다양성이 부족하고 산업 구조적인 면에서 거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공방을 통해 다양한 시도가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년 차 엔터테인먼트 업계 직원 C 씨 역시 “서로를 비방하는 과정에서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계속 언급되는 등 하이브 소속은 물론 타사의 아티스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며 “처음 제기된 K-팝 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에 대한 문제의식은 잊히고 하이브와 민 대표 간의 여론전만 계속돼 피로함마저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이브 #민희진 #어도어 #뉴진스 #여성동아
사진 뉴스1 뉴시스
사진제공 빌리프랩 어도어
01. 배임 혐의 “성립 어려워”
K-팝 제국의 유례없는 갈등이 시작된 건 4월 22일 하이브 측이 민 대표를 비롯한 어도어 관계자에 대한 감사를 착수한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사흘 뒤인 4월 25일 하이브는 민 대표와 어도어 부대표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감사 결과 민 대표가 경영권 탈취 계획을 수립했고 이에 대한 물증을 확보했다는 것. 하이브는 민 대표가 경영권 탈취 계획을 세우고 외부 투자자 등을 접촉했다며 “어도어를 빈껍데기로 만들어서 데리고 나간다”는 내용의 메신저 대화를 증거로 내세웠다.5월 17일, 민 대표가 하이브의 의결권 행사를 막아달라고 낸 가처분 심문 기일에 하이브 측은 “민 대표는 경영권을 탈취하기 위해 하이브의 주요 주주인 두나무와 주요 협력사인 네이버의 고위직을 만났다”며 “이들에게 하이브를 비난하며 접근했으나 두 회사 모두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도록 민 대표를 차단하고, 민 대표가 불순한 의도로 접근했다고 하이브 측에 알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배임이 성립되기 어렵다고 본다. 배임 혐의의 성립 여부는 경영권 탈취 계획을 시행했느냐다. 형법 제355조에 따르면 배임은 ‘타인의 업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해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거나 당사자에게 손해를 가했을 때’ 성립된다. 모의만으로는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변호사들의 일반적인 판단이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는 “배임은 재산상에 실질적인 위협이 발생해야 성립할 수 있다”며 “설령 경영권을 찬탈하려는 프로젝트가 실제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예비·음모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고상록 변호사는 “어도어 측의 경영권 찬탈 시도에 대한 도의적인 비판이 가능할지 모르나 지분 인수를 시도하려 했다는 것 자체로는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지분 인수를 하도록 권유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회사에 직접적인 손해를 발생시켰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이브 측은 배임의 또 다른 증거로 경영권 탈취 목적으로 핵심 정보를 유출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노 변호사는 “핵심 자료를 유출했다고 해도 그 일과 재산상 피해의 인과성이 인정돼야 한다”며 “가령 삼성이라면 반도체 설계도 정도의 자료 유출이 있어야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브 측이 언론에 공개한 증거 외에 확실한 물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시각도 있다. 송혜미 법률사무소 오페스 대표변호사는 “어떤 패를 갖고 있는지 피고소인인 민 대표가 모르는 게 하이브 입장에서 유리하다”며 “처음 이를 문제화해 일을 키운 것이 하이브인 만큼 후폭풍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배임의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5월 19일 민 대표는 기자회견 이후 처음으로 개인적인 입장을 밝혔다. 경영권 찬탈을 위해 두나무와 네이버 고위직을 만났다는 문제 제기에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분들인데 상식적으로 인수 제안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말장난처럼 ‘만남’을 확인받지 말고 ‘만남의 목적과 나눈 대화’에 대한 확인을 받으라”고 반박했다. 현재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배임 혐의 고발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02. 1000억 원 vs 30억 원, 문제의 주주 간 계약
주주 간 계약이 하이브와 민 대표의 갈등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주주 간 계약은 주주들 사이에 체결하는 계약으로 주식 매매 조건, 가격, 향후 처분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이브는 2023년 3월 민 대표를 비롯한 어도어 경영진과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갈등이 외부에 공개되기 전부터 하이브와 민 대표 측은 주주 간 계약 내용을 두고 대립을 이어왔다.민 대표는 지난해 12월부터 일부 조항에 대해 수정을 요구해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러 차례의 협상 과정에서 요구한 사항은 크게 3가지다. △풋옵션 배수를 13배에서 30배로 늘릴 것 △하이브 동의 없이 주식을 매각할 수 없도록 한 조항 삭제할 것 △뉴진스 전속계약 해지권을 줄 것.
민 대표의 요구는 정당했을까. 민 대표는 어도어 지분 중 13.5%에 대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풋옵션은 특정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지분을 팔 권한으로, 민 대표는 올해 말부터 영업이익의 13배 가격에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풋옵션 행사 시점 연도와 전년도 평균 영업이익의 13배 가격에 하이브가 민 대표 주식을 반드시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추산 가치는 1000억 원 규모다. 지난해 말 민 대표는 풋옵션 배수를 30배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적용하면 풋옵션 행사가는 1000억 원에서 2400억 원 규모로 훌쩍 뛴다. 어도어 측은 입장문을 통해 “차후 보이 그룹 제작 가치를 반영한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하이브는 민 대표의 해당 요구를 거절했다.
전문가들은 민 대표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이라 보고 있다. 송 변호사는 “양측이 원하기만 하면 주주 간 계약 내용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지만 대개 앞으로의 예상 수익까지 풋옵션 조항에 넣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걸 그룹보다 보이 그룹이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지만, 과도한 요구로 보인다”며 “다만 협상 과정에서 던져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13배와 30배 중간 지점에서 배수 협상을 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민 대표는 나머지 지분 4.5%를 하이브 동의 없이 매각할 수 없다는 조항에 대해서도 삭제를 요구했다. 민 대표는 4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어도어 주식을 보유하는 동안 경업(競業)을 금지하는 조항을 두고 “노예 계약”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이브는 이를 두고 “계약서상의 매각 관련 조항에 해석의 차이가 있었고, 해석이 모호한 조항을 해소하겠다고 민 대표 측에 답변했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4.5%의 주식에 대해서도 단계별로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계약 기간을 3년 더 늘릴 것을 민 대표 측에 제안했다’는 것. 이에 민 대표 측은 “그 내용은 어떤 법률인이 봐도 해석이 모호하지 않다”며 “올해 3월 중순이 돼서야 하이브 측으로부터 수정 제안을 받긴 했다“고 반박했다. 고 변호사는 “하이브의 제안은 합리적으로 보인다”며 “다만 타임라인상 하이브 제안 이후 아일릿 카피 문제가 터지며 협상이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민 대표는 아티스트 전속계약 해지권을 요구하기도 했다. 민 대표 측은 “뉴진스 데뷔 과정에서 나왔던 불합리한 간섭을 해결하고, 독립적인 레이블 운영을 위한 요청 사항”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뉴진스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을 민 대표가 갖겠다는 요구는 다소 일방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송 변호사는 “레이블은 자회사 개념인데, 자회사 대표가 단독으로 계약 해지 권한을 갖고 있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주 간 계약을 둘러싼 논쟁은 앞선 배임 의혹 제기와 연관돼 있다. 배임이 사실로 드러나 민 대표의 계약 위반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하이브는 민 대표가 가진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주주 간 계약상 콜옵션 대상 주식에 대한 1주당 매매대금은 1주당 액면가와 공정가치의 70%에 해당하는 금액 중 더 적은 금액으로 한다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61억 원의 어도어 자본금을 고려하면 민 대표는 28억 원 수준을 받을 수 있다. 1000억 원대로 추정되는 금액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하이브가 민 대표의 주식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노 변호사는 “결국 1000억 원 vs 30억 원의 싸움”이라며 “하이브와 민 대표 간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하이브는 민 대표를 해임하고 약 30억 원의 콜옵션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고, 민 대표는 뉴진스의 가치를 최대화한 상황에서 올해 말 풋옵션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희철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는 “하이브 측은 주주 간 계약을 검토해보고 민 대표에게 1000억 원을 주지 않기 위해 배임 혐의로 민 대표를 고발한 것으로 보인다”며 “배임이 확실해지면 하이브는 콜옵션을 행사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양측이 합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03. 법 대신 대중에 호소한 표절 시비
4월 25일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2시간 15분간 하이브 측에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4월 25일 민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주주 간 계약 문제로 대립하던 하이브와 민 대표 사이 갈등은 뉴진스의 아일릿 카피 의혹 제기가 결정타로 작용했다.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의 걸 그룹 아일릿은 3월 데뷔 때부터 콘셉트나 안무 등이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K-팝 업계 내부에서도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8년 차 뮤직비디오 감독 A 씨는 “아일릿이 콘셉트 등을 카피했다고 느껴질 만하다”면서도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 뉴진스의 등장 이후 그 영향을 받지 않은 신인 그룹은 없다”고 말했다. 뉴진스가 K-팝 신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A 씨는 “기존에는 SM엔터테인먼트가 구축해둔 세계관 등이 K-팝 질서를 선도했다면, 뉴진스는 가볍고 편안한 분위기라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기 때문에 민 대표가 억울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같은 모회사의 아티스트로 콘텐츠 만드는 방식을 공유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이브 전 직원 B 씨는 “만약 뉴진스와 아일릿의 유사성이 있다면 하이브 입장에서는 한 그룹의 성공 방식을 다른 그룹과 공유하려는 전략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량적 판단 기준이 모호한 지식재산권 문제는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 대표가 카피 문제를 강조한 것은 표절을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송 변호사는 “민 대표가 기자회견 등에서 지속적으로 표절 문제를 제기한 것은 민심을 끌어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레이블 체제에서 경영과 창작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지만, 모회사나 다른 자회사가 창작물을 모방했을 때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없었을 것”이라며 “이에 민 대표가 내부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04. 분노 혹은 응원, 2시간 15분 라이브 쇼
아일릿(아래)이 뉴진스(위)의 안무 등을 따라했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동시에 민 대표의 기자회견은 다양한 논쟁거리를 남겼다. 우선 지금의 뉴진스가 되는 데 그 공이 누구에게 있느냐다. 민 대표는 “뉴진스와 그 부모님에게 할 만큼 다 했다”며 뉴진스를 ‘내 새끼’ 등으로 부르고, 뉴진스가 자신이 만든 그룹임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민 대표는 뉴진스 음원, 앨범, 뮤직비디오 등 제작 영역 전반을 총괄했다. 그의 기획력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도 입증됐고, 하이브 역시 이를 홍보에 적극적으로 이용할 만큼 그의 크리에이티브 능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상황. 대중 역시 민 대표를 ‘뉴진스 맘’이라 부르며 그의 제작 능력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내부의 의견은 갈린다. 뮤직비디오 감독 A 씨는 “대형 기획사가 만든 모든 그룹이 뉴진스 정도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하이브의 자본력보다 민 대표의 기획력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5년 차 엔터테인먼트 업계 직원 C 씨는 “민 대표와 어도어 직원들은 달갑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뉴진스라는 그룹을 누가 만들었냐는 질문에 하이브라고 답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밖에서 보기엔 크리에이티브나 제작 능력만 두드러질 수 있지만 K-팝은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다. 계약이나 라이선스를 담당하는 법무 팀, 재무적인 일을 하는 파이낸스 팀, 마케팅과 홍보까지 수많은 사람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만약 뉴진스가 민 대표의 그룹이라고만 판단된다면, 추후에 기획자가 아티스트에 대한 절대적인 지분을 요구하는 등 악용 사례가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기자회견 이후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 하이브 직원들의 성토가 이어지기도 했다. 뉴진스를 위해 일한 하이브 직원들이 모욕을 당했다는 것. 하이브 솔루션이나 하이브 플랫폼 팀은 레이블과 협업해 2차 창작물을 만들고 팬들과의 소통 창구를 담당하는 등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이브 전 직원 B 씨는 “그간 하이브 내에서 어도어가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어도어와 협업했던 하이브 직원들이 민 대표의 일방적인 주장에 아쉬움과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라 설명했다. 홍보나 촬영 등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어도어 측의 매뉴얼을 벗어난 요청에도 묵묵히 응해왔지만 민 대표가 억압을 받았다는 주장만 강조하니 반발을 사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민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K-팝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폭로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중간 판매상에게 음반 물량의 일정 부분을 구매하도록 해 판매고를 올리는, 이른바 ‘음반 밀어내기’나 랜덤 포토 카드 등 미끼상품을 이용해 팬들에게 수십 장의 앨범을 사게 하는 실태를 공개적으로 고발한 것. 버려지는 앨범 쓰레기만 한 해에 800t(2022년 기준)에 달할 만큼 환경 문제도 제기돼왔다. 강혜원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초빙교수는 5월 2일 열린 ‘하이브-어도어 경영권 분쟁,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에서 “수백만 원어치 앨범을 사야 팬 사인회를 갈 수 있는 문화가 심각하다”며 “팬들이 듣지도 않을 앨범을 사면서 죄책감을 느끼니 이를 기부하는 문화가 생겨날 정도”라고 말했다.
민 대표는 ‘개저씨’ ‘군대 축구’ 등의 남성 중심 문화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내가 실적이 떨어지길 해, 뭐를 해. 너네처럼 기사를 두고 차를 끄냐, 술을 마시냐, 골프를 치냐. 내 법인카드엔 야근 식대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 여성들에게 민희진은 K-팝 가부장제와 싸우는 젊은 여성”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5년 차 엔터테인먼트 업계 직원 C 씨는 “K-팝 업계에서 결정권자는 대부분 소수의 남성”이라며 “한 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프로듀서가 여러 단계로 이뤄지는 K-팝의 결과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하이브 전 직원 B 씨는 “하이브는 방 의장과 박지원 대표가 회사 전체의 비전을 제시하고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한두 사람의 지휘하에 전 회사 직원이 이에 맞춰서 움직이는 걸 보고 민 대표가 ‘군대 축구’로 표현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05. “K-팝 고질적 병폐 해소 기회로 삼아야”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 사이의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K팝 팬들은 양측의 반성을 촉구하는 트럭 시위를 벌였다.
전문가들은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될 사안이 원만한 합의를 이루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고 평가한다. 4월 22일 이후 약 한 달간 주고받은 사적인 메시지가 공개되고 아티스트와 그 부모가 사실상 공방에 참가하는 등 이제는 하이브와 민 대표의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가 나온다. 승자가 누가 되든 K-팝 산업은 큰 생채기를 안게 된다. 엔터테인먼트 전문 노 변호사의 말이다.
“기나긴 싸움 끝에 민 대표가 이기면 투자자들은 엔터 업계 투자를 꺼릴 것이다. 아티스트 독립을 선언했을 때 통제 장치 없이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이브가 승리하면 아티스트들이 훌륭한 창작물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위축될 것이다. 누가 이겨도 K-팝 산업에 악영향을 주는 셈이다.”
K-팝 업계 내부에서도 이번 공방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뮤직비디오 감독 A 씨는 “K-팝 시장이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음악적 다양성이 부족하고 산업 구조적인 면에서 거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공방을 통해 다양한 시도가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년 차 엔터테인먼트 업계 직원 C 씨 역시 “서로를 비방하는 과정에서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계속 언급되는 등 하이브 소속은 물론 타사의 아티스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며 “처음 제기된 K-팝 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에 대한 문제의식은 잊히고 하이브와 민 대표 간의 여론전만 계속돼 피로함마저 느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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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스1 뉴시스
사진제공 빌리프랩 어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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