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살인자ㅇ난감’ ‘더 글로리’ ‘눈물의 여왕’ 등 잘나가는 한류 드라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편의점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것. 드라마 속 청춘들은 퇴근 후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며 애환을 달래고, 백수 주인공의 서사는 흔히 편의점 알바에서 시작된다. 심지어 드라마 속 한국 재벌들은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으며 서민의 삶을 배운다. 한류 드라마에 빠진 외국인들이 한국 관광을 오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편의점이란 이야기도 있다.
비단 드라마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편의점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아침저녁으로 출출할 때, 심심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편의점이다. 우리나라 편의점 점포 수는 5만 개가 넘으며 하루 이용자는 약 1600만 명, 업계 종사자는 30만 명에 달한다. 편의점이 담당하는 역할도 다양하다. 도시락 먹을 땐 식당, 커피 마실 땐 카페, 택배 보낼 땐 우체국, 소주 마실 땐 포장마차, 위급할 땐 파출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각김밥, 허니버터칩, 포켓몬빵, 대용량 요구르트 같은 무수한 인기템을 배출한 트렌드의 중심이기도 하다. 새벽이나 늦은 밤 불이 켜져 있는 편의점을 만나면 괜스레 반갑고, 어제까지 2+1이던 제품이 갑자기 정상가로 돌아오면 세상이 무너진 듯 속상하다. 그러다가도 직원의 친절한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우울했던 기분이 풀리고, 운 좋게 인기 상품을 득템한 날은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듯 신이 난다.
한국 사람들이 편의점을 어찌나 사랑하는지,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던 주인공이 우연히 청파동의 한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 2022년 교보문고와 예스24 모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해당 책은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 최다 대출 일반 도서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미 친숙하지만 더 알고 싶은 흥미로운 공간, 편의점을 소재로 한 또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이번에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다. 국내 편의점업계 1위(점포 수 기준)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유철현 홍보팀 수석이 펴낸 ‘어쩌다 편의점’이 그것이다. 편의점 홍보 업무를 10년 넘게 해온 그는 1989년 첫 점포를 연 이래 35년간 우리를 웃고 울린 편의점 속 상품과 마케팅,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 어떤 시트콤보다 재미있고 휴먼 다큐보다 따뜻하게 들려준다. 그가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풀어놓았다.
외국인들도 한국 편의점을 좋아한다고.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면.
CU가 지난해 서울 홍대 쪽에 ‘라면 라이브러리’라는, 라면에 특화된 편의점을 오픈했다. 책장 같은 곳에 라면들이 가지런히 전시돼 있고 시식대도 컵라면 모양을 본떠 만들었는데,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핫 플레이스가 돼 한국 관광 책자에도 소개됐다. 일본 후지TV를 비롯한 외국 언론, 유튜버들도 굉장히 많이 방문한다. 이곳에는 라면이 130종 있는데 얼마 전 한 중국 고객이 모든 종류의 라면을 1봉지씩 다 구매했다. ‘대륙의 스케일이 이런 거구나’ 새삼 느꼈다(웃음).
그런 걸 보면 편의점 MD들은 ‘기획의 달인’ 같다. MD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디서 영감을 얻나.
MD는 최신 트렌드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거기에 맞는 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한다. 밤낮으로 손품, 발품을 팔고 새로운 것을 찾아 미국, 유럽, 동남아 등지로 출장도 많이 다닌다. 우리나라에 편의점이 처음 생긴 때가 1989년인데, 초창기에는 일본을 많이 벤치마킹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도 사업력이 35년 되다 보니 한국 편의점 모델이라는 게 만들어졌고, 상품과 기획도 다양해져 외국에 진출도 했다.
CU도 해외에 진출해 있나.
몽골과 말레이시아에 진출했고, 최근에는 카자흐스탄에도 매장을 오픈했다. 몽골에는 예전에 ‘써클 K’라는 편의점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철수한 상태다. 그래서 몽골에선 CU가 편의점 고유명사처럼 인식되고 있고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한다. 몽골은 공중화장실이 많지 않은데 우리 편의점은 화장실을 갖춰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매출에도 도움이 되고 사회적 인식도 좋다. 말레이시아에는 일본 브랜드와 같이 진출했다가 지금은 독립한 상태인데 한국에 대한 로열티가 굉장히 높다. 모든 텍스트 디자인이 한글로 돼 있고, 상품 진열 방식도 한국과 같다. 매출 1위 상품은 떡볶이다. 일반 떡볶이에서 지금은 로제떡볶이, 짜장떡볶이 등으로 라인업을 강화했다. 떡볶이 매출에 힘입어 점당 매출이 일본 브랜드를 앞질렀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과 꾸준히 팔리는 효자상품을 꼽자면.
단품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건 컵얼음이다. 2010년쯤 아이스드링크가 나왔는데 컵얼음은 이를 위한 보조 제품이었다. 그런데 아이스드링크뿐 아니라 술, 탄산, 생수 등 다른 제품과도 궁합이 잘 맞다 보니 판매량이 점점 증가해 2013년 전체 제품 중 판매량 1위에 올랐고 지금까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드라마로 치면 조연이 주연이 된 셈이다. 효자상품은 계절, 날씨, 시즌에 따라 많이 바뀐다. 신학기에는 도시락이나 간편식품, 요즘 같은 나들이 철에는 디저트류 판매가 늘고 겨울에는 ‘붕세권’이란 말이 나왔을 만큼 붕어빵 인기가 오른다.
‘편의점에서 이런 것까지 판다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아주 적은 무게의 금을 골드바처럼 카드 형태로 만들어 판매한다. 요즘 금테크를 많이 하지 않나. 과거에는 명절 이색 선물로 1600만 원짜리 이동형 주택, 6000만 원대 외제 차를 판매했는데 실제로 팔렸다. 9억 원짜리 요트도 판매한 적이 있다.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기보다 소비자들에게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하려는 차원이다.
요즘에는 다이어트 음식류도 다양하게 나오더라.
사람들이 건강이나 미용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편의점도 상품 기획에 신경을 많이 쓴다. 칼로리와 나트륨 함량을 낮춘 건강식 라인업을 갖추고 있고 닭 가슴살, 샐러드류도 많다. 최근에는 당과 칼로리를 낮춘 라라스윗 아이스크림이 편의점 빙과 매출 부동의 1위인 메로나 를 제치고 가장 인기 있는 제품으로 등극했다. 군고구마는 원래 겨울철 간식이었는데 요즘에는 다이어트식으로 인기가 높아 계절 상관없이 많이 팔리는 숨은 효자상품이다.
편의점 제품은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이 있는데.
부산 출신인데, 1992년 방영된 드라마 ‘질투’를 통해 처음 편의점이란 걸 접했다. 거의 매회 최수종·최진실 커플이 편의점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머니가 같이 TV를 보시며 “저기는 비싸니 절대 가면 안 된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웃음). 지금은 그때완 달리 편의점도 가격 경쟁력이 상당하다. 닭 가슴살을 예로 들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상품이 4000원대인데 CU의 PB상품인 ‘득템 시리즈’는 똑같은 국내산을 사용하는데 1900원이다. 원통형 감자칩은 보통 4000원대지만 우리 PB상품은 40~50% 저렴한 2000원대다. 마케팅 등 제반 비용을 줄이고 마진율을 낮춘 PB상품을 다양하게 출시해 부담 없이 들어왔다가 득템하는 기분으로 나가실 수 있을 거다.
CU 편의점의 큰손은 어떤 분들인가.
지난 연말 CU가 ‘내 맘대로 어워드’라고, 재밌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엉뚱한 시상식을 한 적이 있다. ‘그 정도면 백화점 가세요’ 상을 받은 분은 하루 평균 5.2회 방문하고 1년 동안 1740회 결제하셨다. 결제 금액은 1000만 원 정도 된다. 1년 동안 750회 정도 방문한 외국인 고객도 있다. 연령별로 보면 편의점은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소비 채널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실제로 20~30대 비중이 60%에 이를 정도로 많았는데, 지난해 지각변동이 일어나서 40대의 매출 비중이 가장 높아졌다. 편의점 역사가 35년이니 40대는 10~20대 때부터 편의점에 익숙한 세대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고스란히 편의점의 큰손이 된 거다.
점주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CU는 점포 수 1만8000개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중 직영점은 1~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가맹점이다 보니 점주님들이 정말 다양하다. 책에 소개된 분 외에 편의점을 운영해 북한에서 아들을 데리고 온 탈북자도 있다. 최근에는 20대 젊은 점주가 늘고 있다. 그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회사에 들어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것보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벌면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분이 많았다. 편의점은 다른 업종에 비해 창업 비용도 적고 점주가 상품을 발주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트렌드를 잘 아는 젊은 분들이 점포 운영에 유리할 수 있다. 포켓몬빵이 유행할 때 편의점에 포켓몬 만화 그림을 그려 인터넷 바이럴이 된 분도 있고, 셀럽들이 우리 제품을 SNS에 올린 걸 빠르게 캐치해 발주를 많이 넣었다가 대박 난 사례도 있다.
편의점에서 안 팔린 물건의 운명은 어떻게 되나.
유통기한이 지난 신선식품은 폐기하는데 본사에서 폐기 비용을 지원하기도 하고 반품 가능한 상품은 반품을 받는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은 물류센터가 주도해 지역 푸드뱅크로 보내기도 하고 최근에는 자원순환 차원에서 사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밀웜을 배양하는 스타트업이 많아 최근에는 그쪽으로도 많이 간다. 그동안은 중국에서 사료를 수입했는데 편의점 식품을 이용하면서 비용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밀웜도 사람들처럼 편의점 식품을 되게 좋아한다고 한다.
인기템은 구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넉넉히 만들면 안 될까.
공장을 풀로 돌려도 판매량을 따라갈 수 없다. 1만8000개 점포에 똑같이 나눠 납품해야 하기 때문에 각 점포마다 발주 제한이 걸린다. 예전에는 인기 상품을 구하기 위해 소비자가 점포마다 다니며 “000 있어요?”라고 물어봐야 했지만 지금은 모바일 앱에서 재고 조회가 가능하다.
우리 집 근처만 해도 가까운 거리에 CU,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가 다 있다. 각사 편의점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한다면.
CU는 점포 수 기준 업계 1위다 보니 상품과 서비스 측면에서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것 같다. 빵, 라면, 초저가 제품 등 기획이 다양하고 스탯이 수준급이다. GS25는 편의점뿐 아니라 슈퍼, 홈쇼핑, 호텔 등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어 그 안에서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서비스가 꽤 있다. 세븐일레븐은 국내에서는 3위지만 전 세계 1위 브랜드라 일본 세븐일레븐에서 히트한 상품을 국내에서 단독으로 판매하는 식의 글로벌 파워가 있다. 이마트 24는 이마트 자회사다 보니 그와 연계한 상품이나 마케팅에 강점이 있는 것 같다.
편의점 상품에 일회용기가 많이 사용된다. 회사 차원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전개하는 활동이 있다면.
환경문제 같은 경우엔 정부 규제보다 더 빠르게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부분이 있다. 일회용 비닐 봉투 사용 금지 정책이 나오기 전부터 이를 퇴출시키고 100% 식물성 소재로 만든 생분해성 봉투를 사용하고 있다. 생수도 PB제품은 모두 무라벨이다. 소비자들이 라벨을 분리하는 번거로운 활동을 하지 않고도 친환경 소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편의점 인스턴트 음식이 청소년 건강을 해친다는 인식도 많은데.
처음 편의점을 홍보할 때 ‘삼각김밥은 묵은쌀로 만든다’ ‘식품첨가물이 들어간다’ 이런 얘기가 돌았다. 직접 공장에 가서 확인해봤는데 전혀 근거 없는 얘기다. 자신 있게 말씀드리면, 편의점 가공식품은 대량생산을 할 뿐이지 집에서 만드는 재료와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 삼각김밥에 들어가는 쌀은 전라도 지자체와 계약을 맺어 생산하고, 직접 씻은 쌀을 매일 검수해서 좋은 것만 사용한다. 김은 완도산이다. 해썹(HACCP) 인증은 당연히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기준은 그 이상이고, 나트륨 함량 같은 영양 성분도 기준을 엄격하게 지킨다. 집밥보다 맛있을 수는 없겠지만 집밥에 준하는 품질과 위생, 정성이 들어간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다.
요즘 편의점업계의 고민은 무엇인가.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유통업도 전반적으로 날씨가 흐리다. 편의점은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업종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따라서 고객의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는 새로운 제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짜기 위해 노력 중이다. CU는 ‘득템 시리즈’ 같은 초저가 PB상품을 늘리고 있고, ‘불황에는 빅 사이즈 제품이 많이 팔린다’는 통설에 따라 스리 엑스 라지 삼각김밥을 4개 묶은 ‘슈퍼 라지킹삼각김밥’, 일반 핫도그보다 2배 큰 ‘자이언트 핫도그’ 같은 재미와 실속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제품도 내놓고 있다.
#어쩌다편의점 #편의점대란템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비단 드라마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편의점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아침저녁으로 출출할 때, 심심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편의점이다. 우리나라 편의점 점포 수는 5만 개가 넘으며 하루 이용자는 약 1600만 명, 업계 종사자는 30만 명에 달한다. 편의점이 담당하는 역할도 다양하다. 도시락 먹을 땐 식당, 커피 마실 땐 카페, 택배 보낼 땐 우체국, 소주 마실 땐 포장마차, 위급할 땐 파출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각김밥, 허니버터칩, 포켓몬빵, 대용량 요구르트 같은 무수한 인기템을 배출한 트렌드의 중심이기도 하다. 새벽이나 늦은 밤 불이 켜져 있는 편의점을 만나면 괜스레 반갑고, 어제까지 2+1이던 제품이 갑자기 정상가로 돌아오면 세상이 무너진 듯 속상하다. 그러다가도 직원의 친절한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우울했던 기분이 풀리고, 운 좋게 인기 상품을 득템한 날은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듯 신이 난다.
한국 사람들이 편의점을 어찌나 사랑하는지,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던 주인공이 우연히 청파동의 한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 2022년 교보문고와 예스24 모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해당 책은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 최다 대출 일반 도서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미 친숙하지만 더 알고 싶은 흥미로운 공간, 편의점을 소재로 한 또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이번에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다. 국내 편의점업계 1위(점포 수 기준)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유철현 홍보팀 수석이 펴낸 ‘어쩌다 편의점’이 그것이다. 편의점 홍보 업무를 10년 넘게 해온 그는 1989년 첫 점포를 연 이래 35년간 우리를 웃고 울린 편의점 속 상품과 마케팅,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 어떤 시트콤보다 재미있고 휴먼 다큐보다 따뜻하게 들려준다. 그가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풀어놓았다.
CU가 서울 홍대에 오픈한 라면 특화 편의점 ‘라면 라이브러리’,
CU가 지난해 서울 홍대 쪽에 ‘라면 라이브러리’라는, 라면에 특화된 편의점을 오픈했다. 책장 같은 곳에 라면들이 가지런히 전시돼 있고 시식대도 컵라면 모양을 본떠 만들었는데,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핫 플레이스가 돼 한국 관광 책자에도 소개됐다. 일본 후지TV를 비롯한 외국 언론, 유튜버들도 굉장히 많이 방문한다. 이곳에는 라면이 130종 있는데 얼마 전 한 중국 고객이 모든 종류의 라면을 1봉지씩 다 구매했다. ‘대륙의 스케일이 이런 거구나’ 새삼 느꼈다(웃음).
그런 걸 보면 편의점 MD들은 ‘기획의 달인’ 같다. MD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디서 영감을 얻나.
MD는 최신 트렌드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거기에 맞는 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한다. 밤낮으로 손품, 발품을 팔고 새로운 것을 찾아 미국, 유럽, 동남아 등지로 출장도 많이 다닌다. 우리나라에 편의점이 처음 생긴 때가 1989년인데, 초창기에는 일본을 많이 벤치마킹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도 사업력이 35년 되다 보니 한국 편의점 모델이라는 게 만들어졌고, 상품과 기획도 다양해져 외국에 진출도 했다.
CU도 해외에 진출해 있나.
몽골과 말레이시아에 진출했고, 최근에는 카자흐스탄에도 매장을 오픈했다. 몽골에는 예전에 ‘써클 K’라는 편의점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철수한 상태다. 그래서 몽골에선 CU가 편의점 고유명사처럼 인식되고 있고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한다. 몽골은 공중화장실이 많지 않은데 우리 편의점은 화장실을 갖춰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매출에도 도움이 되고 사회적 인식도 좋다. 말레이시아에는 일본 브랜드와 같이 진출했다가 지금은 독립한 상태인데 한국에 대한 로열티가 굉장히 높다. 모든 텍스트 디자인이 한글로 돼 있고, 상품 진열 방식도 한국과 같다. 매출 1위 상품은 떡볶이다. 일반 떡볶이에서 지금은 로제떡볶이, 짜장떡볶이 등으로 라인업을 강화했다. 떡볶이 매출에 힘입어 점당 매출이 일본 브랜드를 앞질렀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과 꾸준히 팔리는 효자상품을 꼽자면.
단품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건 컵얼음이다. 2010년쯤 아이스드링크가 나왔는데 컵얼음은 이를 위한 보조 제품이었다. 그런데 아이스드링크뿐 아니라 술, 탄산, 생수 등 다른 제품과도 궁합이 잘 맞다 보니 판매량이 점점 증가해 2013년 전체 제품 중 판매량 1위에 올랐고 지금까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드라마로 치면 조연이 주연이 된 셈이다. 효자상품은 계절, 날씨, 시즌에 따라 많이 바뀐다. 신학기에는 도시락이나 간편식품, 요즘 같은 나들이 철에는 디저트류 판매가 늘고 겨울에는 ‘붕세권’이란 말이 나왔을 만큼 붕어빵 인기가 오른다.
‘편의점에서 이런 것까지 판다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아주 적은 무게의 금을 골드바처럼 카드 형태로 만들어 판매한다. 요즘 금테크를 많이 하지 않나. 과거에는 명절 이색 선물로 1600만 원짜리 이동형 주택, 6000만 원대 외제 차를 판매했는데 실제로 팔렸다. 9억 원짜리 요트도 판매한 적이 있다.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기보다 소비자들에게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하려는 차원이다.
요즘에는 다이어트 음식류도 다양하게 나오더라.
사람들이 건강이나 미용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편의점도 상품 기획에 신경을 많이 쓴다. 칼로리와 나트륨 함량을 낮춘 건강식 라인업을 갖추고 있고 닭 가슴살, 샐러드류도 많다. 최근에는 당과 칼로리를 낮춘 라라스윗 아이스크림이 편의점 빙과 매출 부동의 1위인 메로나 를 제치고 가장 인기 있는 제품으로 등극했다. 군고구마는 원래 겨울철 간식이었는데 요즘에는 다이어트식으로 인기가 높아 계절 상관없이 많이 팔리는 숨은 효자상품이다.
편의점 제품은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이 있는데.
부산 출신인데, 1992년 방영된 드라마 ‘질투’를 통해 처음 편의점이란 걸 접했다. 거의 매회 최수종·최진실 커플이 편의점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머니가 같이 TV를 보시며 “저기는 비싸니 절대 가면 안 된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웃음). 지금은 그때완 달리 편의점도 가격 경쟁력이 상당하다. 닭 가슴살을 예로 들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상품이 4000원대인데 CU의 PB상품인 ‘득템 시리즈’는 똑같은 국내산을 사용하는데 1900원이다. 원통형 감자칩은 보통 4000원대지만 우리 PB상품은 40~50% 저렴한 2000원대다. 마케팅 등 제반 비용을 줄이고 마진율을 낮춘 PB상품을 다양하게 출시해 부담 없이 들어왔다가 득템하는 기분으로 나가실 수 있을 거다.
CU 편의점의 큰손은 어떤 분들인가.
지난 연말 CU가 ‘내 맘대로 어워드’라고, 재밌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엉뚱한 시상식을 한 적이 있다. ‘그 정도면 백화점 가세요’ 상을 받은 분은 하루 평균 5.2회 방문하고 1년 동안 1740회 결제하셨다. 결제 금액은 1000만 원 정도 된다. 1년 동안 750회 정도 방문한 외국인 고객도 있다. 연령별로 보면 편의점은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소비 채널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실제로 20~30대 비중이 60%에 이를 정도로 많았는데, 지난해 지각변동이 일어나서 40대의 매출 비중이 가장 높아졌다. 편의점 역사가 35년이니 40대는 10~20대 때부터 편의점에 익숙한 세대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고스란히 편의점의 큰손이 된 거다.
“편의점 생긴 지 35년, 당시 1020 고객이 지금의 큰 손”
책에는 어쩌면 우리가 오늘 마주쳤을지도 모를 다양한 점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허니버터칩 품절 대란이 일었을 당시 고객들이 빈손으로 돌아서는 게 안타까워 시식용을 따로 ‘꿍쳐’ 두었다가 단골 고객들에게 맛이라도 보라고 나눠준 점주도 있고, 오후에 텅 빈 매대를 보며 ‘오늘도 장사를 잘했구나’란 뿌듯함을 즐기려고 상품 발주를 지나치게 아끼는 점주도 있고,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따 편의점 이름을 짓는 ‘편의점계의 JYP’ 같은 인물도 있다.점주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CU는 점포 수 1만8000개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중 직영점은 1~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가맹점이다 보니 점주님들이 정말 다양하다. 책에 소개된 분 외에 편의점을 운영해 북한에서 아들을 데리고 온 탈북자도 있다. 최근에는 20대 젊은 점주가 늘고 있다. 그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회사에 들어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것보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벌면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분이 많았다. 편의점은 다른 업종에 비해 창업 비용도 적고 점주가 상품을 발주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트렌드를 잘 아는 젊은 분들이 점포 운영에 유리할 수 있다. 포켓몬빵이 유행할 때 편의점에 포켓몬 만화 그림을 그려 인터넷 바이럴이 된 분도 있고, 셀럽들이 우리 제품을 SNS에 올린 걸 빠르게 캐치해 발주를 많이 넣었다가 대박 난 사례도 있다.
편의점에서 안 팔린 물건의 운명은 어떻게 되나.
유통기한이 지난 신선식품은 폐기하는데 본사에서 폐기 비용을 지원하기도 하고 반품 가능한 상품은 반품을 받는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은 물류센터가 주도해 지역 푸드뱅크로 보내기도 하고 최근에는 자원순환 차원에서 사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밀웜을 배양하는 스타트업이 많아 최근에는 그쪽으로도 많이 간다. 그동안은 중국에서 사료를 수입했는데 편의점 식품을 이용하면서 비용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밀웜도 사람들처럼 편의점 식품을 되게 좋아한다고 한다.
인기템은 구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넉넉히 만들면 안 될까.
공장을 풀로 돌려도 판매량을 따라갈 수 없다. 1만8000개 점포에 똑같이 나눠 납품해야 하기 때문에 각 점포마다 발주 제한이 걸린다. 예전에는 인기 상품을 구하기 위해 소비자가 점포마다 다니며 “000 있어요?”라고 물어봐야 했지만 지금은 모바일 앱에서 재고 조회가 가능하다.
우리 집 근처만 해도 가까운 거리에 CU,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가 다 있다. 각사 편의점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한다면.
CU는 점포 수 기준 업계 1위다 보니 상품과 서비스 측면에서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것 같다. 빵, 라면, 초저가 제품 등 기획이 다양하고 스탯이 수준급이다. GS25는 편의점뿐 아니라 슈퍼, 홈쇼핑, 호텔 등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어 그 안에서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서비스가 꽤 있다. 세븐일레븐은 국내에서는 3위지만 전 세계 1위 브랜드라 일본 세븐일레븐에서 히트한 상품을 국내에서 단독으로 판매하는 식의 글로벌 파워가 있다. 이마트 24는 이마트 자회사다 보니 그와 연계한 상품이나 마케팅에 강점이 있는 것 같다.
편의점 상품에 일회용기가 많이 사용된다. 회사 차원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전개하는 활동이 있다면.
환경문제 같은 경우엔 정부 규제보다 더 빠르게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부분이 있다. 일회용 비닐 봉투 사용 금지 정책이 나오기 전부터 이를 퇴출시키고 100% 식물성 소재로 만든 생분해성 봉투를 사용하고 있다. 생수도 PB제품은 모두 무라벨이다. 소비자들이 라벨을 분리하는 번거로운 활동을 하지 않고도 친환경 소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편의점 인스턴트 음식이 청소년 건강을 해친다는 인식도 많은데.
처음 편의점을 홍보할 때 ‘삼각김밥은 묵은쌀로 만든다’ ‘식품첨가물이 들어간다’ 이런 얘기가 돌았다. 직접 공장에 가서 확인해봤는데 전혀 근거 없는 얘기다. 자신 있게 말씀드리면, 편의점 가공식품은 대량생산을 할 뿐이지 집에서 만드는 재료와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 삼각김밥에 들어가는 쌀은 전라도 지자체와 계약을 맺어 생산하고, 직접 씻은 쌀을 매일 검수해서 좋은 것만 사용한다. 김은 완도산이다. 해썹(HACCP) 인증은 당연히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기준은 그 이상이고, 나트륨 함량 같은 영양 성분도 기준을 엄격하게 지킨다. 집밥보다 맛있을 수는 없겠지만 집밥에 준하는 품질과 위생, 정성이 들어간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다.
요즘 편의점업계의 고민은 무엇인가.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유통업도 전반적으로 날씨가 흐리다. 편의점은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업종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따라서 고객의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는 새로운 제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짜기 위해 노력 중이다. CU는 ‘득템 시리즈’ 같은 초저가 PB상품을 늘리고 있고, ‘불황에는 빅 사이즈 제품이 많이 팔린다’는 통설에 따라 스리 엑스 라지 삼각김밥을 4개 묶은 ‘슈퍼 라지킹삼각김밥’, 일반 핫도그보다 2배 큰 ‘자이언트 핫도그’ 같은 재미와 실속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제품도 내놓고 있다.
#어쩌다편의점 #편의점대란템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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