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빠였어. 제대로 해주진 못했어도 그래도 6년 동안 아빠였어.”
료타는 6년간 키운 아들 케이타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야 자신이 돼먹지 못한 아버지였음을 고백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묻는다. 과연 가족은 주어지는 것인가.
가정의 달을 맞아 ‘여성동아’가 만난 여섯 모양의 가족은 “우리는 이렇게 가족이 됐다”고 말한다. 한일 커플은 국경을 뛰어넘어 결혼하기 위해, 입양 가족은 내가 낳지 않은 아이와 가족이 되기 위해 수십 장의 서류를 정부에 제출했다. 네 자매는 “언젠가 같이 살자”는 어릴 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남편을 비롯해 15명의 동의를 구했다. 수많은 난관을 뚫었지만 아직 법적으로는 가족이 되지 못한 레즈비언 커플과 그 딸도 있다.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사돈지간이 함께 사는 가족), ‘일상과 마음을 나눌 존재’(네 자매 가족), ‘함께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이민 가족),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족’(레즈비언 커플) 등 각각 정의하는 가족은 다르지만 마음은 어딘가 닮아 있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
“이 가족에 끼고 싶다.”
호주에서의 나날을 기록하는 유튜버 쪼앤(고해은)의 가족 일상 브이로그에 매번 달리는 댓글이다. 구독자들은 “강아지로라도 입양되고 싶다”며 애정을 표한다. 누구든 브이로그 속 가족들 모습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막내인 고해은 씨를 포함해 4남매 중 3명이 각자의 가정을 이뤘는데, 생일 때마다 3대가 모두 모여 잔치를 연다. 며느리와 사위들의 생일에도 어김없이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선물을 나눈다. 호주 골드코스트에 살고 있는데도 명절이면 ‘가족 배 송편 빚기 대회’를 여는 등 누구보다 한국 문화에 진심이다. ‘경기도 호주시’에 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그럴 만하다.
가족 구성원 전반에 흐르는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 덕분에 브이로그 영상은 시트콤처럼 유쾌하다. 부모님인 고광덕·이미영 부부를 필두로 현규·해주·해수·해은 4남매와 각각이 이룬 가정까지 합쳐 이들은 유튜브에서 ‘고팸(고씨네 패밀리)’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화상으로 만난 고해은 씨는 “호주로 이민 오면서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었기에 지금처럼 똘똘 뭉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언제 호주로 이민 갔나요.
그날의 날씨까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2010년 3월 31일에 호주에 도착했습니다. 가족들이 다 같이 이민을 오니 처음에는 호주에 있다는 사실조차 실감이 안 났는데, 학교에 다니면서는 언어와 문화 차이로 많이 힘들었어요. 일단 영어를 못 하니까 하루 종일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답답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오니 허망하더라고요. 초반에는 아이들 사이에서 괴롭힘도 당했어요. 한 번은 제가 한국에서 가져온 필통을 빼앗고 제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더라고요. 말리는 과정에서 손이 샤프에 찔려 피가 나는 바람에 마냥 울기만 했었는데, 그때 아버지께서 학교에 오신 기억이 나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이민자들은 누구나 한 번쯤 힘든 시기를 겪었을 거예요.
다른 가족도 각자의 환경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민 초반에는 가족 모두 각각의 눈물이 있었어요. 이를 서로가 알아주었기 때문에 가족 사이가 더욱 깊어졌죠. 특히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고군분투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가족 모두가 각자의 집단에서 잘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낯선 환경인 만큼 가족들끼리 더 돈독해졌을 것 같아요.
한국에 있을 때는 가족들 모두가 바빠서 개인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다 같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거나 주기적인 모임을 갖는 일이 드물었죠. 그런데 호주에 오니까 정말 가족밖에 없더라고요(웃음). 정착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각자 친한 친구들이 생겼지만, 그때는 맛집이나 여행을 함께 갈 사람이 가족밖에 없으니까 매일같이 몰려다녔어요. 평일에는 모두 모여 식사하고, 주말마다 나들이를 다녔죠.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어요. 특히 언니들이랑은 학교를 같이 다녔기 때문에 그곳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서로 공감하면서 더욱 애틋해졌죠. 한국에서 쭉 살았다면 각자의 삶에 치여서 가족 단위로 이렇게 똘똘 뭉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한편으론 가족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족 내 갈등이 생기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다행히 가족 내부 갈등은 거의 없었어요. 큰오빠 아래 자매 셋이 있는데, 우선 서열이 확실했어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세워진 위계질서가 있다 보니까 하극상이 일어나면 곧바로 응징했죠(웃음). 그러다 보니 서로 덤비는 일도 크게 없었고, 부딪히지 않고 사이좋게 지냈어요. 자매들끼리는 다툴 때도 있었지만 큰오빠가 워낙에 성격이 무던해서 중심을 안정적으로 잘 잡아줬고요.
호주에서 일찍이 새로운 가정을 꾸렸어요.
호주라는 나라 자체가 가족 중심적이어서 쇼핑센터나 여행지를 가도 가족 단위 고객이 많아요. 또 부모님이 일찍 결혼하셨는데,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도 자연스레 일찍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물론 나이가 들면서 가족에게 터놓지 못하는 고민은 있었죠. 그러다가 스무 살 때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도 어린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어 이민 생활에 서로 깊이 공감했죠. 부모 형제가 아닌 배우자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잖아요.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서 스물네 살에 결혼했어요.
형제들이 결혼하고도 가까이 살며 자주 모이는데, 가장 좋은 점은 뭔가요.
가족 간의 사랑이 자녀 세대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지금처럼 화목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가족 분위기를 아이들에게도 쭉 이어주고 싶어요. 사실 다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다 보면 각자의 가정에 신경 쓸 일이 많아지고 바쁘고 그래서 형제간에 멀어지기 쉬워요. 이를 알고 있기에 서로 더 노력하는 부분도 있어요. 암묵적인 의무감일 수도 있는데, 의무감이라고 해도 강제성은 없어요. 가족이기에 당연히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고요.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은 없나요.
솔직히 저뿐만 아니라 오빠, 언니들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거예요. 호주로 이민 와 14년을 늘 가까이서 살다 보니 당연히 피로할 때도 있죠. 개인적인 일로 쉬고 싶을 때도 가족 일정이 있으면 참여해야 하니까요. 저 역시 1시간 거리라도 떨어져서 살아볼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힘들 때 다 같이 모여서 떠들고 이야기하다 보면 오히려 힘을 얻게 되더라고요. 고민이 많을 때는 부모님과 같이 식사만 해도 기운이 나요. 이제는 멀리 떨어져서 살면 무척 외로울 것 같아요.
가족 단위 이주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결국 가족밖에 없다는 말을 실감해요.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단단해지는 관계가 가족이거든요. 한국에서 위기를 겪었던 가족일지라도 외국에서 다 같이 모여 살다 보면 분명 저희처럼 똘똘 뭉칠 거예요.
#쪼앤 #가족이민 #여성동아
사진제공 고해은 사진출처 유튜브
료타는 6년간 키운 아들 케이타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야 자신이 돼먹지 못한 아버지였음을 고백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묻는다. 과연 가족은 주어지는 것인가.
가정의 달을 맞아 ‘여성동아’가 만난 여섯 모양의 가족은 “우리는 이렇게 가족이 됐다”고 말한다. 한일 커플은 국경을 뛰어넘어 결혼하기 위해, 입양 가족은 내가 낳지 않은 아이와 가족이 되기 위해 수십 장의 서류를 정부에 제출했다. 네 자매는 “언젠가 같이 살자”는 어릴 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남편을 비롯해 15명의 동의를 구했다. 수많은 난관을 뚫었지만 아직 법적으로는 가족이 되지 못한 레즈비언 커플과 그 딸도 있다.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사돈지간이 함께 사는 가족), ‘일상과 마음을 나눌 존재’(네 자매 가족), ‘함께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이민 가족),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족’(레즈비언 커플) 등 각각 정의하는 가족은 다르지만 마음은 어딘가 닮아 있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
“이 가족에 끼고 싶다.”
호주에서의 나날을 기록하는 유튜버 쪼앤(고해은)의 가족 일상 브이로그에 매번 달리는 댓글이다. 구독자들은 “강아지로라도 입양되고 싶다”며 애정을 표한다. 누구든 브이로그 속 가족들 모습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막내인 고해은 씨를 포함해 4남매 중 3명이 각자의 가정을 이뤘는데, 생일 때마다 3대가 모두 모여 잔치를 연다. 며느리와 사위들의 생일에도 어김없이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선물을 나눈다. 호주 골드코스트에 살고 있는데도 명절이면 ‘가족 배 송편 빚기 대회’를 여는 등 누구보다 한국 문화에 진심이다. ‘경기도 호주시’에 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그럴 만하다.
가족 구성원 전반에 흐르는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 덕분에 브이로그 영상은 시트콤처럼 유쾌하다. 부모님인 고광덕·이미영 부부를 필두로 현규·해주·해수·해은 4남매와 각각이 이룬 가정까지 합쳐 이들은 유튜브에서 ‘고팸(고씨네 패밀리)’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화상으로 만난 고해은 씨는 “호주로 이민 오면서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었기에 지금처럼 똘똘 뭉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언제 호주로 이민 갔나요.
그날의 날씨까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2010년 3월 31일에 호주에 도착했습니다. 가족들이 다 같이 이민을 오니 처음에는 호주에 있다는 사실조차 실감이 안 났는데, 학교에 다니면서는 언어와 문화 차이로 많이 힘들었어요. 일단 영어를 못 하니까 하루 종일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답답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오니 허망하더라고요. 초반에는 아이들 사이에서 괴롭힘도 당했어요. 한 번은 제가 한국에서 가져온 필통을 빼앗고 제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더라고요. 말리는 과정에서 손이 샤프에 찔려 피가 나는 바람에 마냥 울기만 했었는데, 그때 아버지께서 학교에 오신 기억이 나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이민자들은 누구나 한 번쯤 힘든 시기를 겪었을 거예요.
다른 가족도 각자의 환경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민 초반에는 가족 모두 각각의 눈물이 있었어요. 이를 서로가 알아주었기 때문에 가족 사이가 더욱 깊어졌죠. 특히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고군분투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가족 모두가 각자의 집단에서 잘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낯선 환경인 만큼 가족들끼리 더 돈독해졌을 것 같아요.
한국에 있을 때는 가족들 모두가 바빠서 개인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다 같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거나 주기적인 모임을 갖는 일이 드물었죠. 그런데 호주에 오니까 정말 가족밖에 없더라고요(웃음). 정착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각자 친한 친구들이 생겼지만, 그때는 맛집이나 여행을 함께 갈 사람이 가족밖에 없으니까 매일같이 몰려다녔어요. 평일에는 모두 모여 식사하고, 주말마다 나들이를 다녔죠.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어요. 특히 언니들이랑은 학교를 같이 다녔기 때문에 그곳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서로 공감하면서 더욱 애틋해졌죠. 한국에서 쭉 살았다면 각자의 삶에 치여서 가족 단위로 이렇게 똘똘 뭉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한편으론 가족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족 내 갈등이 생기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다행히 가족 내부 갈등은 거의 없었어요. 큰오빠 아래 자매 셋이 있는데, 우선 서열이 확실했어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세워진 위계질서가 있다 보니까 하극상이 일어나면 곧바로 응징했죠(웃음). 그러다 보니 서로 덤비는 일도 크게 없었고, 부딪히지 않고 사이좋게 지냈어요. 자매들끼리는 다툴 때도 있었지만 큰오빠가 워낙에 성격이 무던해서 중심을 안정적으로 잘 잡아줬고요.
호주에서 일찍이 새로운 가정을 꾸렸어요.
호주라는 나라 자체가 가족 중심적이어서 쇼핑센터나 여행지를 가도 가족 단위 고객이 많아요. 또 부모님이 일찍 결혼하셨는데,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도 자연스레 일찍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물론 나이가 들면서 가족에게 터놓지 못하는 고민은 있었죠. 그러다가 스무 살 때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도 어린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어 이민 생활에 서로 깊이 공감했죠. 부모 형제가 아닌 배우자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잖아요.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서 스물네 살에 결혼했어요.
형제들이 결혼하고도 가까이 살며 자주 모이는데, 가장 좋은 점은 뭔가요.
가족 간의 사랑이 자녀 세대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지금처럼 화목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가족 분위기를 아이들에게도 쭉 이어주고 싶어요. 사실 다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다 보면 각자의 가정에 신경 쓸 일이 많아지고 바쁘고 그래서 형제간에 멀어지기 쉬워요. 이를 알고 있기에 서로 더 노력하는 부분도 있어요. 암묵적인 의무감일 수도 있는데, 의무감이라고 해도 강제성은 없어요. 가족이기에 당연히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고요.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은 없나요.
솔직히 저뿐만 아니라 오빠, 언니들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거예요. 호주로 이민 와 14년을 늘 가까이서 살다 보니 당연히 피로할 때도 있죠. 개인적인 일로 쉬고 싶을 때도 가족 일정이 있으면 참여해야 하니까요. 저 역시 1시간 거리라도 떨어져서 살아볼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힘들 때 다 같이 모여서 떠들고 이야기하다 보면 오히려 힘을 얻게 되더라고요. 고민이 많을 때는 부모님과 같이 식사만 해도 기운이 나요. 이제는 멀리 떨어져서 살면 무척 외로울 것 같아요.
가족 단위 이주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결국 가족밖에 없다는 말을 실감해요.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단단해지는 관계가 가족이거든요. 한국에서 위기를 겪었던 가족일지라도 외국에서 다 같이 모여 살다 보면 분명 저희처럼 똘똘 뭉칠 거예요.
#쪼앤 #가족이민 #여성동아
사진제공 고해은 사진출처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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