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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년 다닌 대기업 뒤로하고 마흔 넘어 '의대'간 사연은?

44세에 의대 22학번 신입생 된 곽영호 씨 인터뷰

이경은 기자

2023. 03. 16

‘수능 유턴족’. 직장을 다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대기업 부장직을 포기하고 수능 준비를 시작해 지난해 의대생이 된 곽영호 씨. 뒤늦게 인생 경로를 바꾼 이유가 궁금하다. 



2020년 9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성인 남녀 1672명에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재응시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절반 이상(56.6%)이 그렇다고 답한 것. 이 중 56.7%는 그 이유로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것 같아서’를 들었다. 이들 모두가 수능을 다시 보지는 않겠지만 사회인 중 더 나은 삶을 위해 수능을 다시 보는 선택지를 생각해본 이가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의대에 도전해볼까.’

속으로만 되뇌는 직장인의 소망을 실천에 옮긴 사람이 있다. 2022년 조선대 의예과 신입생으로 입학한 곽영호(45) 씨다. 대기업에서 17년간 직장 생활을 한 곽 씨는 2019년 돌연 휴직하고 수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2022년 의대 입시에 성공했다. 그가 부장직을 내려놓고 ‘유턴족’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수험생 된 대기업 부장님

왜 수능을 다시 보기로 결심했나요.

마흔이 되니 남은 직장 생활에 대한 방향을 결정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그 무렵 아이도 태어났고요. 고민이 많던 중에 일은 더 바빠졌죠. 아이가 크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과연 지금이 내가 바라던 삶이 맞나 의문이 들었죠. 아기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크잖아요. 결국 수능을 다시 보기로 했어요. 한의대나 의대를 목표로요.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제가 환갑이니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했죠.



주변에서 말리진 않았나요.

사실 아내가 먼저 수능을 다시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어요. “오빠가 나보다 공부 잘했잖아” 하면서요. 하하. 많은 대화 끝에 결정을 내렸죠. 돈벌이도 중요하지만, 서로 얼굴은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데 공감했어요.

갑작스러운 결심에 회사 동료들도 놀랐을 듯합니다.

반발이 없진 않았죠(웃음). 한창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3월에 휴직하겠다고 했으니 동료 직원들은 굉장히 난감했을 거예요. 그래도 당시 전무님이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도전하라”면서 응원해주셨어요.

의대 진학을 위해 만학도를 자처한 지금과 달리 고3 시절의 그는 의대라면 치를 떨었다. 충남과학고 졸업생인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물리학자를 꿈꿔왔기 때문이다. 과학자였던 곽 씨의 아버지는 “자연과학은 배고픈 학문”이라며 우수한 수능 성적을 거둔 그에게 의대 진학을 권유했지만 그는 물리학과를 고집했다. 결국 공대에 진학하기로 합의점을 찾았고, 그렇게 1997년 서울대 전기공학부에 입학했다.

공대와 자연대는 꽤 다른데요.

첫 수업에서 공대 학장님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당신들은 사이언티스트(scientist)가 아니라 엔지니어(engineer)다. 마인드가 다르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는 걸 강조한 말씀인 것 같은데, 어려서부터 과학자만 꿈꿔왔던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그때부터 방황이 시작됐어요. 아나운서 준비를 한다고 했다가,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가, 학점은 0.01까지도 받아봤어요. 덜컥 졸업은 했는데 백수 되는 게 무서워서 도피하듯 취직했어요. 그렇게 월급을 받다 보니 17년이 지났어요.

그토록 싫어했던 의대를 목표로 한 이유가 뭔가요.

제가 처한 상황에 따라 목표도 바뀐 거죠. 스무 살 제가 추구하던 가치와 지금 제가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거든요. 지금은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가는 게 제 목표예요. 어렸을 때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면 순수한 물리학 공부보단 아인슈타인 같은 위인, 천재라는 칭호와 명예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학 시절에 아나운서를 꿈꾼 이유도 유명해지고 싶어서였던 것 같고요. 의대 진학 후 유튜브를 하면서 대중과 소통하니 그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욕구가 풀리는 기분이에요(웃음).

실제로 곽 씨를 비롯한 ‘수능 유턴족’은 점차 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의치한약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를 목표로 입시에 뛰어든다. 종로학원이 한국교육개발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1년 의약 계열 입학자 중 26세 이상 성인은 582명으로 2017년(130명)보다 약 4.5배 증가했다. 그는 “매년 1억 원씩 저축해도 20년을 모아야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살 수 있다”며 “수능은 직장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비교적 현실적인 수단”이라고 짚었다.

공부 스케줄 ‘년-월-일’로 쪼개 관리

곽영호 씨가 수험생활 때 사용한 노트와 볼펜들.

곽영호 씨가 수험생활 때 사용한 노트와 볼펜들.

그가 수능에 투자한 시간은 총 2년 반, 그동안 세 차례 수능에 응시했다. 회사 내 온갖 휴직 제도를 활용해 시간을 냈다. 권 씨는 한 인터넷강의 사이트에서 ‘프리패스’(1년 동안 사이트 내 모든 강의를 수강할 수 있는 이용권)를 끊어놓고 혼자 공부했다. 그는 “집중력은 좋은 편이라 속도 조절도 가능하고, 필요한 부분만 효율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인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휴직을 신청할 때 혹시 실패할까 불안하지 않았나요.

휴직을 신청하기 전에 수능 기출문제를 몇 년 치 풀어봤어요. 오랜만에 풀어보는데 생각보다 할 만하더라고요. ‘너무 괴롭지는 않겠다’ 정도(웃음). 1997학년도 수능을 봤을 때보다 범위 자체는 확 줄었으니까요. 오히려 괜찮겠다 싶었는데, 그게 결국 나이 많은 수험생 발목을 잡았죠.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범위는 줄었지만 그 탓인지 문제를 꼬아 내는 정도가 어마어마했어요. “괴랄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죠. 특히 문제 푸는 데 시간이 엄청 촉박했어요. 과학탐구만 해도 30분 안에 20문제를 풀어야 해요. 정말 숨 쉴 시간도 없어요. 과거에 비해 사교육 시장은 더 커지고 학생들의 학습 능력도 올라갔으니 당연한 결과겠죠.

속도를 따라잡는 데 오래 걸렸겠네요.

공부 시간을 늘리면서 계속 연습했어요. 초반엔 공부 시간 완급 조절도 못 했어요. 5월부터 수능 준비를 시작했는데 무리해서 공부하다가 10월에 한 번 쓰러졌거든요. 몇 주간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거죠. 그때 체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루에 30분씩 헬스장을 다니면서 건강관리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하니 놀랍게도 몸이 버티더라고요.

슬럼프는 없었나요.

딱히 없었어요. 직장 생활 노하우로 얻은 일정 관리 능력 덕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제가 속한 부서는 대형 프로젝트의 시스템을 만들고 계획을 수립하는 곳이었어요. 많게는 3000억 원이 왔다 갔다 했죠. 그러다 보니 중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게 중요했어요. 이걸 공부에 그대로 적용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예를 들어 3월까지 개념 문제집 네 권을 끝내야 하면 1월과 2월엔 각각 두 권씩, 3월에 네 권을 각각 2회독하는 식으로요. 긴 목표를 설정하고 연월일 순으로 차례차례 쪼개면 내가 하루에 처리해야 하는 양이 나와요. 그 목표를 달성해나가면 매일매일이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과로 느껴지지 않아요. 보통 슬럼프는 어제와 오늘이 비슷한데 먼 미래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오잖아요. 이런 식으로 하면 전체 흐름에서 내가 서 있는 현 위치가 보이고,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마음처럼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가 마음대로 안 되더라도 다른 일에서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게끔 자존감을 여러 분야에서 키워야 해요. 한 분야의 성공과 실패를 자존감과 바로 연결하면 그게 잘 안 됐을 때 ‘멘붕’(멘털 붕괴)이 크게 와요.

고3 땐 가족들과 갈등이 잦잖아요. 수능을 준비하면서 부부싸움은 없었나요.

성적이 잘 안 나와서 싸우진 않았어요(웃음). 다만 아내가 “제발 고집부리지 말고 내 말 좀 듣자”고 여러 번 충고했는데 그 말을 듣지 않아 부딪혔어요. 제가 과거에 더 공부를 잘했다는 이유로 두 번째 수능까지는 제 고집대로 공부했거든요. 특히 국어요. 처음부터 아내 말을 들었으면 한의대는 6개월 만에 갔을 것 같아요(웃음). 말을 듣지 않아 2년 반이나 걸린 거죠.

합격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그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죠. 사실 마지막 수능 때 시험을 망친 줄 알고 집에 와서 채점을 하지도 않은 채 양가 부모님께 “이번 시험도 아쉽다”고 전화를 드렸어요. 그런데 밤늦게 채점해보니 생각보다 정말 잘 본 거예요. 대박이다 싶었죠. 회사에 복직할 때 이 ‘쪽팔림’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늦었지만 후회 없어”

대학교 동기들과 팀플을 하는 모습. 왼쪽에서 네 번째가 곽영호 씨.

대학교 동기들과 팀플을 하는 모습. 왼쪽에서 네 번째가 곽영호 씨.

수능 시험장에서 ‘웃픈’ 사연이 있었다고.

지금은 동기들이 놀랄까 봐 꼬박꼬박 염색하고 다니지만, 회사 다닐 땐 머리카락 절반 이상이 흰머리였어요. 어리다고 무시하는 게 싫어 일부러 염색도 안 하고 다녔거든요. 수험생 때도 그걸 계속 유지했어요. 그러다 보니 한번은 마지막 과목 시험이 끝나고 짐을 챙기는데 젊은 감독관 선생님이 조용히 제게 오셔서 “어르신이 무슨 이유로 수능을 다시 보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하고 묻는 거예요. “어르신은 아닌데” 하고 속상해했죠. 수능 고사장 입구에서 “감독관 선생님은 저쪽입니다”라고 감독관 대기실로 안내해주기도 했고요(웃음).

요즘 학교생활은 어떤가요.

학교에서 좋은 인연이 많이 생겼어요. 권위적인 선배나 교수님이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교수님, 학장님, 동기들 모두 제게 먼저 다가와 줘서 고마워요. 선배들에게 존댓말을 하면 “제발 반말해주세요” 하기도 하고요.

의대 공부량을 따라가기 힘들지 않나요.

아직은 예과(본과 전 예비 공부를 하는 단계)라 공부량 자체가 많지는 않아요. 보고서, 팀 프로젝트가 주를 이뤄요. 그러다 보니 회귀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에요. 대학교 2회차에다 직장 생활까지 경험하고 온 저로서는 어렵지 않았어요. 앞으로는 체력이 가장 걱정이에요. 본과로 올라가면 하루 내내 서서 해부를 하는 등 체력 소모가 큰 과목을 배워야 하거든요. 요즘엔 체력 증진에 집중하고 있어요.

조급하진 않나요.

처음 대학에 왔을 땐 직장 생활 17년이 버려진 시간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지금 보니 의사 경력을 회사에서 얻은 인맥과 지식에 결합하면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요즘엔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으로 두 분야를 섞는 사업을 구상해요. 개그맨 박명수 씨의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요(웃음). 저는 늦었다면 늦은 건데, 그런데도 ‘그게 어때서’라고 생각해요. 내 상황이 바뀌는 게 아니니까요. 고민할 것만 고민하고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요.

최근 유턴을 꿈꾸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수능을 다시 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일 뿐 꼭 이것만이 답은 아니에요. 어떻게 고민했고 얼마나 신중한지가 중요하죠. 무슨 선택을 하든 어차피 후회의 시간은 와요. 성공하고 싶으면 경쟁이 있는 곳으로, 안정을 추구하면 루틴(routine)이 있는 곳으로 각각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유턴을 해라, 마라가 아니라 선택의 순간은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계속 오기 때문에 한 번쯤 스스로를 제대로 돌아보라고 하고 싶어요.

새롭게 꿈꾸는 목표가 생겼다고요.

앞서 말했듯 저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인명사전에 내 이름 한번 올리는 게 아직도 목표예요. 책을 쓰거나 유튜브에 영상을 찍어 올려서요. 지난 경험을 살려 의학에서 새로운 모델의 사업도 시도해보고 싶어요.

#곽영호 #수능 #유턴족 #전문직 #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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