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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박또박 거침없이, 스크린 속의 김태리

심미성 프리랜서 기자

2022. 07. 28

짧다면 짧은 6년 동안 김태리는 한국의 대표 배우로 성장했다. 특유의 솔직함과 당당함으로 그만의 단단함이 실린 인물들을 그려냈다. 바쁜 김태리의 오늘만큼이나 선명한 출발이 있었다. ‘아가씨’의 숙희부터 ‘외계+인’의 이안까지, 스크린 속의 김태리를 짚어봤다. 

7월 13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외계+인’ 1부 시사회에서 김태리는 가장 먼저 심호흡부터 내쉬었다. 늘 당찬 매력으로 승부해온 그에게도 불안은 찾아온다. 짧은 자기 최면 뒤에 활짝 웃음을 띤 얼굴, 우리가 아는 그 당찬 김태리다. “모든 작업 앞에서 두려움과 불만족을 느낀다”는 그는 여느 배우와 다름없이 ‘내가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나약한 모습도 갖고 있다. 하지만 당연한 불안마저 독이 된다는 걸 알기에 영민하고 노련하게 툭 불안을 벗어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단 몇 초 만에 또박또박,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면서 유쾌한 농담도 던진다. 김태리를 사랑하는 팬들이 가장 감응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태도다. ‘나’에 함몰되지 않고 ‘나’를 지켜내는 것.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 박찬욱의 직감, 김태리의 발견

김태리는 7월 20일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에서 신비의 검을 쫓는 ‘이안’ 역을 맡았다. 신묘한 능력을 뽐내는 캐릭터들 속에서 유일하다시피 평범한 인물이지만 굳은 심지와 눈빛은 누구보다 돋보인다.

김태리는 7월 20일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에서 신비의 검을 쫓는 ‘이안’ 역을 맡았다. 신묘한 능력을 뽐내는 캐릭터들 속에서 유일하다시피 평범한 인물이지만 굳은 심지와 눈빛은 누구보다 돋보인다.

김태리의 데뷔는 화려했다. 비록 화려함과 거리가 먼 하녀 ‘숙희’의 모습이었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첫 스크린 데뷔를 치른다는 건 행운만큼이나 부담이 따르는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가씨’(2016)에서의 당돌한 김태리를 보면 그가 어떻게 1500명의 지원자 중 유일하게 박찬욱의 마음을 끌었는지를 십분 짐작할 수 있다.

수위 높은 퀴어 서사 속에서 숙희 캐릭터가 가진 면면은 매우 다층적이기까지 하다. 정성을 다해 아가씨를 보필하지만 그 뒤에는 음흉한 속내가 있고, 다시 음모의 희생양이 됐다가 결국 사랑의 구원자로 거듭난다. 이 모든 사정을 설득해낼 얼굴이 필요했던 박찬욱에게 김태리의 천연덕스럽고도 무해한 얼굴은 완벽한 숙희의 모습 그 자체였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함이 있고 주눅 들지 않는 성격을 가진 김태리를 보자마자 직감이 왔다”고 오디션장의 김태리를 회고했다. ‘아가씨’의 숙희를 통해 김태리는 그해 디렉터스 컷 어워즈, 청룡영화상 등 각종 시상식의 신인배우상을 꿰찼다.

‘아가씨’로 단번에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오른 김태리. 그의 독립영화 출연작 ‘문영’(2017)이 이듬해 1월에 개봉했다. 개봉 시기는 ‘아가씨’ 이후지만, 촬영은 ‘아가씨’보다 훨씬 앞섰다. 연극 무대를 시작으로 몇몇 단편영화 작업을 이어가던 시기의 김태리가 처음으로 단독 주연을 맡은 영화가 바로 ‘문영’이었다. 게다가 영화가 단편에서 64분의 중편 길이로 확장해 개봉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아가씨’가 불러일으킨 파장과 신예 김태리에 쏟아진 세간의 호기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가 맡은 ‘문영’은 어두운 캐릭터다.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는 대신, 캠코더를 들어 사람들의 얼굴을 강박적으로 담는다. 대사나 표정이 거의 없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묵묵한 태도 속에 불안을 가둔 김태리의 담담한 연기가 훌륭하다는 찬사가 잇따랐다.

이제 본격적으로 김태리의 새로운 페이즈(phase)가 열리기 시작한다. 이 빛나는 신인을 탐낸 감독들의 러브 콜이 이어졌고, 그 첫 번째 결과물로 영화 ‘1987’(2017)이 개봉했다. 일찍이 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로 언더그라운드의 전설이 된 장준환 감독이 민주화운동을 다룬 시대극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공개된 ‘1987’에서 김태리는 유일한 여성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1987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6·10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한국 현대사의 뼈아픈 단락을 여러 국면에서 다룬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영화에서 김태리가 맡은 역할 ‘연희’는 허구적으로 창조된 인물이다. 위험을 불사하고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무모하게만 여기던 연희는, 이후 이한열 열사와의 접점을 그리며 점진적인 각성으로 나아간다. 연희의 변화가 중요한 만큼, 소시민적인 태도와 각성은 모두 균형 있게 다뤄져야 했다. 김태리는 소신과 강단을 두루 갖춘 연희와 교감하며 관객을 천천히 설득해나갔다.

김태리는 다음 작품에서 전원적인 풍경 속 차분한 얼굴로 돌아온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을 만든 임순례 감독의 복귀작 ‘리틀 포레스트’(2018)에서 주인공 ‘혜원’ 역을 맡았다. 동명의 일본 작품을 리메이크한 ‘리틀 포레스트’에는 농촌 출신의 20대가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 소박한 밥상을 정성껏 준비하는 과정이 담긴다. 배경을 한국으로 옮겨오면서 시험, 연애, 취업 등 한국인의 공감을 살 만한 세밀한 설정들이 혜원의 서사에 주어진다.

혜원은 삶의 부침과 힘든 기색을 필요 이상으로 꽁꽁 감추는 성정의 캐릭터다. 대신 성실하게 텃밭을 가꾸고, 담담하게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묵묵히 견디며 나름의 결론을 지어간다. 무엇보다 그를 고요한 시골에 다시 데려온 것은 따뜻하고 풍족한 밥 한 끼였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레시피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주하며 밥을 짓는 동안, 혜원은 단지 ‘엄마’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어머니를 차분히 이해해간다. 흉내 내고 연기한다는 느낌보다 몸에 익은 듯 척척 할 일을 해내는 혜원의 모습이 배우 김태리의 강점과 곧잘 맞물렸다.

“비켜라, 이 무능한 것들아”
- 지구 밖에서도 빛날 카리스마

‘아가씨’의 숙희 역으로 데뷔한 김태리.

‘아가씨’의 숙희 역으로 데뷔한 김태리.

김태리가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으로 입지를 굳힌 뒤, 영화계는 향후 이 업계를 이끌어갈 새로운 여성 주자로 너도나도 김태리를 꼽았다. 이 기대를 증명이라도 하듯 김태리는 작품에서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장해나갔다. 2021년, 한국형 SF의 가능성으로 기대를 모은 조성희 감독의 신작 영화 ‘승리호’(2020)가 베일을 벗었다.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들로 이루어진 우주 해적단에서 김태리가 맡은 ‘장 선장’은 승리호의 명실상부한 리더다. 첫 대사를 내뱉자마자 그 똑 부러지는 단단한 음성으로부터 ‘자, 이제 장 선장만 믿고 가면 되겠구나’ 싶은 확신이 샘솟는다. 앳된 얼굴과 아담한 체구보다 더 먼저 감지하게 되는 김태리만의 당당한 기세가 있다. 아마도 영화의 첫 번째 레퍼런스가 됐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의 미워할 수 없는 오합지졸은 장 선장의 지휘 아래 ‘승리호’에서 매력적인 안착을 해냈다. 조성희 감독은 “김태리가 아닌 장 선장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2년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김태리는 마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낸 듯 이질감 없는 캐릭터를 연기해, 마침내 백상예술대상의 최우수연기상을 거머쥔다. ‘아가씨’로 데뷔한 지 6년도 안 돼 이룬 성과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행보를 잇는 중인 김태리를 이제 누가 선점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았다.

올여름 김태리는 최동훈 감독의 신작 ‘외계+인’ 1부로 다시 극장을 찾아왔다. 영화 ‘타짜’(2006), ‘도둑들’(2012), ‘암살’(2015) 등 대중들의 취향을 겨냥해온 최동훈의 7년 만의 신작이다. 영화 ‘전우치’(2009)의 한을 풀어내듯, 감독은 기상천외한 도술과 외계의 공격이 교차하는 세계를 ‘외계+인’에 야심 차게 구현해놓았다.

김태리는 이 영화에서 630년 전 고려를 배경으로 푸른빛을 발하는 신비의 검을 쫓는 ‘이안’ 역을 맡았다. 신묘한 능력을 뽐내는 캐릭터들 틈에서 이안은 유일하다시피 한 평범한 인간을 연기하지만, 호기로운 액션과 굳은 심지의 눈빛을 뿜어내는 모습은 과연 김태리다운 자태다. 2023년에 이어질 2부를 아껴두고 ‘외계+인’ 1부만이 공개된 지금, 천만 관객 영화 두 편을 만든 최동훈 감독과의 협업으로 김태리의 행보에 새로운 역사가 쓰일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

#김태리 #외계+인 #여성동아

사진 동아DB 사진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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