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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ory

모델계의 전설 김동수· 럭비계 신화 안드레 진 모자

글 강현숙 기자

입력 2021.10.05 10:30:01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 사람들에게는 반짝반짝 빛나는 에너지가 가득하다. 열정 만렙 모습이 너무나 똑 닮은 김동수와 안드레 진 모자의 이야기다. 
올해 열렸던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 행진을 이어간 선수들 못지않게 국민들에게 감동을 연출한 팀이 있다. 5전 5패를 기록했지만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아름다운 꼴찌’라 불린 비인기종목 럭비팀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에 럭비가 들어온 지 98년 만에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해 값진 27득점을 올린 그들의 열정 넘치는 모습은, 승부를 떠나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 같았다. 특히 눈길을 끈 선수는 안드레 진 코퀴야드(30. 한국명 김진)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이었던 그는 대한민국 럭비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귀화까지 강행했을 만큼 한국 사랑과 럭비에 진심이다. 특히 안드레 진의 어머니가 한국 모델계의 전설로 통하는 김동수(64) 동덕여대 모델과 교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김 교수는 1980~90년대 한국 모델 중 최초로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1세대 모델의 대표 주자로, 칼 라거펠트·이브생 로랑 등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동양계 모델 최초로 해외 패션쇼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외국 생활을 하다 1985년 귀국한 뒤에는 앙드레 김, 지춘희, 진태옥, 이영희 등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의 패션쇼 무대에 서며 한국을 대표하는 톱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동덕여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한국모델콘텐츠학회를 이끌면서 체계적인 모델 교육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김 교수가 ‘보석 같은 아들’이라고 칭하는 안드레 진은 한국에서 태어나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 노엘 코퀴야드 씨를 따라 한국과 일본, 중국을 오가며 초등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이후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럭비를 처음 접했고, 미국 17세 이하 대표팀에서 뛸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미국 명문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에 진학해 럭비를 이어나갔지만 미국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고, 럭비를 그만두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2014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스포츠 비즈니스 회사에 근무하며 탄탄대로를 밟던 그는 럭비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중 홍콩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됐다. 사실 그 전에는 국가대표 럭비 선수를 다시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홍콩에서 실력을 인정받게 되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안드레 진은 바로 대한럭비협회에 연락해 “한국에서 뛰고 싶다”고 밝히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군체육부대 상무팅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다 2017년 우수 선수로서 특별 귀하 허가를 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뒤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생경했던 유럽의 패션 무대에서 씩씩하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던 어머니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은 지금 한국 럭비를 대표하는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분야는 다르지만 아름다운 도전 정신이 똑 닮은 열정 넘치는 모자를 서울 성수동에 자리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베테랑 모델답게 아들에게 포즈를 가르쳐주고, 다정다감하게 어머니와 대화하는 둘의 모습을 보니 따뜻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김 교수님은 대한민국 모델계의 전설로 통하는 워낙 유명한 분인데 요즘은 ‘안드레 엄마’로 불리고 계세요. 올림픽 이후 두 분 근황은 어떠신가요.

김동수(이하 김) 안드레 엄마로 불려 기쁘고 감사하죠(웃음). 평상시처럼 학교 수업과 내년 진행할 예정인 시니어 모델 교육 프로그램, 모델 지도자들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 준비로 적당히 바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안드레 진(이하 안드레) 올림픽 전에는 운동과 재활에만 집중했는데, 지금은 방송과 패션 화보 촬영, 뉴스 출연, 개인 운동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기분 좋게 지내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올해 2회를 맞는 청년의 날(청년의 권리 보장 및 청년 비전의 중요성을 알리고, 청년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로,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 기념행사에 참여하게 돼 청년들에게 전하는 손 편지와 선물을 전달했고, 짧은 영상도 촬영했어요. 지난해 방탄소년단이 함께한 행사로, 올해에는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이 참여하는데 럭비 대표로 저도 함께하게 됐지요. 저희가 전달한 손 편지와 선물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기탁되어 19년 뒤인 2040년 청년의 날에 공개된다고 하니 뜻깊은 것 같아요.



럭비 인생 그리고 가족들

안드레 진 고등학교 파티 때 가족이 함께한 모습. 김동수 교수의 남편은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안드레 진 고등학교 파티 때 가족이 함께한 모습. 김동수 교수의 남편은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98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럭비가 올림픽에 출전했어요.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나요.

안드레 처음부터 메달권에 들어가는 게 힘들 줄 알았지만, 이번 기회에 럭비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럭비의 매력을 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멋진 모습과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열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아들의 모습이 무척 자랑스러웠을 것 같아요. 한 방송에서 안드레 진 선수가 올림픽 기간 중 어머니가 자주 전화를 했다고 토로(?)한 모습도 기억에 남아요.

사실 코로나19로 인해 올림픽 개최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었잖아요. 막상 아들이 출전한 모습을 방송으로 보고 나서는 몸살을 앓았어요. 저뿐 아니라 모든 올림피언 부모들이 똑같았을 것 같아요. 럭비는 비인기종목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중계방송도 없었잖아요. 경기 결과도 궁금하고 부상은 안 당했는지 걱정돼 전화를 했던 거예요.

올림픽 이후로 안드레 진 선수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무척 크고, 방송계의 러브 콜도 이어지고 있어요.

미식축구와 럭비가 헷갈릴 만큼 한국에서는 비인기종목인데, 아들이 사랑하는 럭비를 조금이라도 알린 것 같아 기뻐요. 지난 몇 년간 마음고생하는 모습, 무릎 수술 과정 등을 안타깝게 지켜봤는데, 요즘 럭비 홍보차 많은 곳에서 불러주고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안드레 시합 결과를 떠나서 노력과 열정을 인정받는 것 같아 감사해요. 저는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성격이라 빨리 럭비 대표팀 합숙으로 돌아가 내년에 있을 중요한 게임들을 준비하고 싶어요. 지금은 성적을 내야 할 타이밍인 것 같아요. 우선 내년에 남아공에서 럭비 월드컵이 있는데 여기에 나가려면 아시아 리그에서 1, 2등을 해 진출권을 따야 해요. 또 내년에 있을 아시안게임에서의 금메달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할 계획입니다. 힘든 목표이긴 하지만 일본이랑 10번 게임을 하면 2~3번은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안드레 진 선수가 “럭비는 인생의 선물”이라고 말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럭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안드레 럭비는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선물이에요. 럭비를 한 덕분에 대한민국 국적이 생겼고, 스리랑카 같은 여행하기 힘든 곳들도 가볼 수 있었지요. 부모님 외에 럭비를 통해 감독님들, 친구들, 선배들이라는 다양한 롤 모델을 만날 수 있었고요. 럭비가 주는 선물은 날마다 다른데, 오늘은 럭비 덕분에 촬영과 인터뷰를 하게 됐잖아요. 2019년 11월 24일, 도쿄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 결승에서 역전승으로 홍콩을 이기고 한국의 올림픽 진출이 확정되었을 때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중학교 때까지 축구를 했는데, 캐나다에서 진학한 고등학교가 럭비(교양필수 과목)로 유명한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럭비를 시작했는데 곧 두각을 나타냈죠. 적성에 잘 맞더라고요. 이를 계기로 훗날 미국 청소년 대표팀으로도 활동했고, 지금까지 럭비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아들이 럭비를 한다고 했을 때 어떠셨나요.

전 미식축구와 럭비의 차이만 알 정도로 문외한이었어요. 아들이 다닌 고등학교가 사립이라 그런지 공부 외에 다양한 특별활동을 하던 터라 그 과정 중 하나인 줄로만 알았지요. 남편 역시 그렇게 알았고요. ‘생뚱맞게 럭비라니?’라고 생각하며 의아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걸 선택하고 즐기는 걸 보니 흐뭇했어요.

UC버클리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면서 럭비도 계속 했던 걸로 알아요.

안드레 저희 학교는 럭비로도 유명해요. 이번 도쿄 올림픽만 봐도 UC버클리 출신 선수가 49명이었어요. 대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는 물론 운동도 열심히 하며 밸런스를 맞췄어요. 2가지를 병행하느라 비록 졸업이 1년 늦어졌지만요. 아버지께서 해주셨던 “시간이 많은 사람은 게을러진다”는 말이 특히 와닿았어요. 바쁘면 더 힘이 생기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새벽 운동 후 수업을 듣고 오후에 또 운동하면서 대학 생활을 그 누구보다 바쁘게 지냈습니다. 그런 시간들 덕분에 길게 보면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운동 능력을 키웠고, 이와 더불어 정치외교학을 전공해 훗날 선수 은퇴 후에도 운동 외에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중국 상하이에서 스포츠 비즈니스 회사를 다니다 귀화까지 하면서 다시 럭비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안드레 18개월 정도 근무했던 스포츠 비즈니스 일도 적성에 잘 맞았어요. 나중에 다시 해보고 싶은 분야이기도 해요. 하지만 사랑하는 것을 잠시 접고 난 뒤 제가 얼마나 럭비를 사랑하는지 알게 됐어요(웃음). 홍콩에서 럭비 시합을 뛰다가 홍콩 귀화를 추천받았는데, 그게 오히려 한국으로 귀화할 동기가 되어주었어요. 홍콩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는데, 홍콩의 라이벌이 제 모국인 한국이더라고요. 저는 항상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협회에 직접 연락하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다시 럭비를 한다고 했을 당시, 처음에는 김 교수님이 반대하셨다고 들었어요.

우선 처음에 든 생각은 ‘한국에도 럭비팀이 있나?’였어요. 반대한 이유는 외국에서는 운동을 하다가 얼마든지 다양한 길로 진로를 변경할 수 있는데, 한국은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또 학교나 인맥 등도 중요할 것 같았고요. 줄곧 외국에서 자랐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가 한국에 돌아온다니 상당히 의외였어요. 한편으로는 ‘오, 그래? 한번 도전해봐라’ 하는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누구보다 김 교수님이 안드레 진 선수의 든든한 서포터스인 것 같아요. 안드레 진 선수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중 교수님의 열성적인 응원 모습에 눈길이 많이 가더라고요.

워낙 비인기종목이다 보니 아들과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주고 싶어서 매 경기마다 응원을 가는 편이에요. 5명, 10명 부럽지 않게 목청 터져라 응원하는데, 가끔은 아들이 창피해하는 것 같기도 해요(웃음).

안드레 엄마의 열성적인 응원이 팀원들의 힘을 북돋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해요. 운동장에서 엄마와 이모 목소리가 제일 커서 부담스럽기는 했지만요(웃음). 워낙 비인기종목이라 응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가족이 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하고 든든해요. 저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을 위해 크게 응원해준 엄마가 고맙습니다.

럭비는 워낙 과격한 운동이다 보니 부상당하는 일도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도핑테스트를 자주 하는 운동이 럭비예요. 그래서 보약 한 첩 제대로 지어주지 못했어요. 처방제라고 할지라도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 몰라 기본 음식 이외에 섭취가 조심스러워서요.

안드레 럭비는 마우스피스 외에 특별한 보호 장비 없이 맨몸으로 부딪치면서 경기해요. ‘뼈가 무기, 근육이 보호대’라고 할 수 있지요. 럭비를 시작한 첫날을 제외하고 부상 없이 운동한 날은 없을 정도예요.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요.

안드레 올림픽 이후 약간 알려졌지만, 내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로 알려지고 싶습니다.

무엇을 하든 안드레를 믿고 지켜볼 따름이에요. 국가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안드레 선수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심지가 단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 모토가 궁금하네요.

안드레 예전에 외국 감독님께 주변 사람들을 더 좋게 만들고,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게 참된 리더십이라고 들었어요. 저는 제 행복보다 남의 행복을 도울 때 더 좋아요. 제가 빛나는 것보다 다른 선수들이 잘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게 행복하고요. MBTI 테스트를 해보니 동료애가 많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고 인화를 도모하는 일을 중요시하는 ESFJ(누구보다 친절한 협력가)가 나왔는데, 비교적 잘 맞는 듯해요. 또한 목수들이 작품을 만들려고 나무를 자를 땐 딱 한 번에 성공해야 하잖아요. 저 역시 마음을 먹기까진 모든 상황을 고려하느라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결심하면 밀어붙이는 성격이에요. 후회 없이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설영희 디자이너가 선물한 의상을 입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동수.  모델계의 전설답게 카메라 셔터가 터질 때마다 근사한 포즈를 다채롭게 연출했다.

설영희 디자이너가 선물한 의상을 입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동수. 모델계의 전설답게 카메라 셔터가 터질 때마다 근사한 포즈를 다채롭게 연출했다.

母子의 가슴 뛰는 한국 사랑

안드레 진 선수는 외국에서 오래 살았는데 한국말이 유창해 놀랐어요.

안드레 한국에 살 때도 국제학교를 다녔지만 한국말과 젓가락질을 못하면 엄마께 혼났어요(웃음). 엄마가 한국의 뿌리를 강조하며 한국말과 풍습을 많이 알려주셨지요. 럭비 국가대표를 하면서 한국어만 사용하다 보니 실력이 더 는 것 같기도 해요.

한국을 강조한 건 정체성의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서양과 한국의 장점을 부각하려고 노력했어요. 열린 생각과 넓은 시야 등이 플러스로 작용하리라 생각했지요. 여러 나라를 다녀본 부모의 경험을 토대로 국제인으로 키우려고 했는데 모국어와 자국 음식, 풍습이 기초가 돼야지만 남의 것도 잘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두 분에게 각자는 어떤 존재인가요. 서로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안드레는 신중한 아이예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항상 스스로 찾아갔어요. 앞으로도 본인이 선택한 일을 마음껏 즐기며 후회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때로는 고통이 따를지라도요. 아들에게 “너는 소중하다. 너의 꿈을 펼쳐라. 나는 네 편이다”라고 전하고 싶어요.

안드레 엄마는 모델 시절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셨듯이, 저에게 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여유를 가르쳐주셨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 함께 살고 있는데, 편한 사이지요.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지만, 이제 저도 성인이니 잔소리 좀 살살 해주세요(웃음).

김 교수님은 모델학과 교수이자 한국모델콘텐츠학회 회장으로 활동하시며 2018년에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상도 수상하셨어요. 국내 모델 교육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계세요.

그저 제 갈 길을 갈 뿐이에요. 사실 처음 국내에 들어왔을 땐 외로웠어요. 지금은 나의 길을 뒤쫓아오는 후배나 제자들에게 앞서간 사람으로서 필요하다면 조금은 알려주고 싶고 힘이 되고 싶어요.

톱 모델이었던 엄마의 끼를 물려받아 안드레 진 선수도 방송계나 모델계에 진출해도 좋을 듯해요.

원한다면! 인생은 무한하잖아요. 판단은 본인 몫이라고 생각해요.

안드레
올림픽 전까지는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조차 없었어요. 우선 내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최선을 다한 뒤 생각하고 싶습니다.

두 분 각자 준비하는 활동은요.

지금처럼만 유지하고 싶어요(웃음). 장애인과 시니어 모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에요.

안드레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내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어요. 내년에 모든 경기를 마무리하면 은퇴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 후에는 대학원에 다닐 생각이에요. 전 스스로 답을 찾으며 공부하는 걸 즐기는 편이라 다시 학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주변에서 럭비 지도자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많이 주셔서 그 부분도 고려하고 있고요. 또 제가 럭비라는 큰 선물을 경험해봤잖아요. 기회가 되면 스포테이너로 활동하며 럭비를 홍보하는 일에도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김동수



여성동아 2021년 10월 6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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