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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아트 디렉터 이광기 11년 전 세상 떠난 아들의 선물

글 김지은

입력 2020.08.27 10:30:02

배우 이광기의 이름 앞에 어느덧 크리에이터, 아트 디렉터, 미술품 컬렉터 등 예술과 관련된 단어들이 친숙해졌다. 파주와 일산에 갤러리를 오픈하고, 온라인 미술품 경매쇼를 펼치는 등 예술과 사랑에 푹 빠진 그가 전하는 특별한 이야기.
“쉰 살까지 배우로서의 인생을 살았다면 그 이후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걸 하면서 즐기며 살고 싶었어요. 요즘은 취미가 직업이 되는 시대잖아요. ‘인생을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저도 이제는 조금은 단순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 이광기(51)가 ‘문화 콘텐츠 기획자’ ‘유튜버’ ‘컬렉터’ ‘포토그래퍼’ 등 예술과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는 ‘예술가’의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 혹자는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그마저 싫어져서 안 된다던데, 그는 요즘 취미로 즐기던 것을 일로 할 수 있어 그렇게 신나고 즐거울 수가 없단다. 

연기자로서의 삶이 싫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열여섯 살 어린 나이에 아역배우로 시작해 KBS ‘왕과 비’ ‘태조 왕건’ ‘정도전’, SBS ‘야인시대’, JTBC ‘인수대비’ 등 굵직한 사극과 시대극에서 무게감 있는 배역을 맡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멀티테이너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사극에서의 진중한 연기 톤과 예능인으로서의 유머러스한 캐릭터 사이 쉽지 않은 간극까지도 자연스럽게 메울 줄 아는 ‘끼’ 많은 엔터테이너였다. 하지만 방송가에서의 삶은 너무나 치열하고 각박했다고.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던 것 같아요. 동료 연기자들을 경쟁자 삼아 시청률과 이미지 등을 항상 신경 써야 했죠. 물론 무한 경쟁도 중요하지만 이렇게까지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활형’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연기자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에요.”

예술 사랑을 담은 공간, ‘스튜디오 끼’ & ‘문화공간 끼’

이광기가 미술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지인을 통해 미술품을 구입하면서부터다. 컬렉터로서의 재미를 알게 된 뒤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과 나들이 삼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을 찾았다. 인사동에는 관람료가 무료인 작은 갤러리는 물론 가족들과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맛집도 많았다. 그렇게 그림 구경을 다니다 보니 마음에 드는 작품이 하나 둘 눈에 띄었고, 구입을 위해 작가들과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알게 됐다. 



아트 디렉터로서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건 지난 2018년 9월 ‘스튜디오 끼(Studio KKI)’를 오픈하면서다. 오래전부터 ‘나이가 들면 이 동네에 살아야지’라며 눈여겨봐뒀던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인근의 부지를 매입해 264㎡(80평) 규모의 스튜디오 건물을 지었다. 서울처럼 왁자지껄하지 않고, 마음 잘 통하는 출판인과 예술가들, 영화인들과 이웃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이곳은 그가 기획한 문화예술 공연이나 전시가 열리고, 방송이나 광고를 촬영하는 스튜디오가 되기도 한다. 

올해 7월에는 일산역 인근의 구도심에 자리한 낡고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두 번째 공간 ‘문화공간 끼’를 열었다. 구도심의 정겨움을 간직한 뉴트로 스타일 2층집으로, 오래된 벽돌집의 골격을 그대로 살리면서 화이트와 오렌지로 심플하게 멋을 냈다. 전시장과 파티 하우스, 공유 주방 등 다양한 형태로 변신 가능한 멀티 스페이스다. 

“문화공간 끼가 자리한 골목 어귀만 벗어나면 바로 일산역이 나오는데 이 동네가 지금은 이렇게 허름해 보여도 과거에는 일산의 경제 중심지였어요. 최근에 주변이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50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도 올라가고 있고, 이런저런 공사가 한창입니다. 재밌게도 그 옆에는 마치 시골처럼 5일장이 크게 열리는 재래시장이 있고요. 한마디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 매력이 넘치는 동네예요.” 

오래된 시골 마을의 정취를 엿볼 수 있는 이곳은 이광기가 몇 해 전부터 기획해온 공유경제를 실천하기에도 최적화된 장소다. 문화공간 끼를 통해 작은 활력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도 담았다.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도 부담 없이 들러 전시 작품들을 둘러볼 수 있을 만큼 문턱이 낮은 곳이죠. 요즘은 사람 많은 음식점에서 모임을 하긴 꺼려지고, 집에서 파티를 열기도 부담스럽잖아요. 이런 경우 공유 주방이나 파티 하우스로 쓸 수도 있어요. 문화공간 끼가 자리를 잡으면 바로 앞에 있는 일산시장 활성화에도 적잖은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문화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던 이들에게 작은 기쁨과 힐링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요.” 

이광기는 지난해 유튜버로도 데뷔했다. 채널 이름은 ‘이광기의 광끼채널’로,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본떠 지었다. 

“어릴 때는 제 이름이 무진장 싫었어요. 친구들이 ‘광끼, 광끼’ 하면서 놀려대는 통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 다시 생각해보니 광끼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끼’라는 건 예술이자 기쁨이기도 하니까요. 공간의 이름도 그래서 누군가에게 기쁨이 넘치는 공간, 기쁨의 샘물 같은 공간이 되라는 의미에서 ‘끼’라고 지은 거고요.”

완판 행렬 이어진 이광기표 온라인 미술품 경매쇼

대중들이 미술품에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재미있게 소개하는 것이 광끼채널의 시작이었다. 올해부터는 그가 직접 고른 작품을 온라인 경매에 붙이는 라이브 경매쇼도 운영하고 있다. 출품작들을 구두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오프라인 경매와 달리 사전 제작한 영상을 통해 작가들의 작업실에서 현장감 있게 진행되는 인터뷰까지 만나볼 수 있는 것은 광끼채널만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안현정 학예사가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로 흥미를 돋우는 점도 볼거리다. 

이렇게 빨리 본격적인 언택트 시대가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광끼채널의 경매쇼는 프로그램 개설과 동시에 초유의 인기를 얻으며 완판을 이어가는 중이다.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금으로 사용하는 건강한 운영 방식은 미술품 경매를 처음 접하는 대중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그림을 감상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꼭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가야만 가능한 시대는 지났죠. 지난 몇 개월간 경매를 통해 작품을 구매하신 분 중에는 동네 치킨집 사장님도 계세요. 그분이 농담처럼 그러시더라고요. ‘작품을 사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닭을 튀겨야겠다’고요. 사실 대중의 입장에서는 가격표도 안 붙어 있는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든다고 선뜻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거든요. 주머니 사정도 생각해야 하고, 작품에 대해 물어보다 괜히 무안이라도 당할까 걱정도 되니까요. 그런 분들에게 광끼채널은 정말 쉽게 미술품을 접하고 다가갈 수 있는 열린 기회를 제공합니다. 문화공간 끼와 스튜디오 끼는 그 온라인 채널을 오프라인으로 실현하는 플랫폼이고요.”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광끼채널을 통해 자신이 컬렉션한 작품들의 스토리를 소개하고, 예술가들의 진정성을 녹여내면서 미술품 경매를 ‘돈 있는 사람들의 놀이’나 ‘투기’ 정도로 이해하던 사람들의 선입견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술품 경매가 예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으로 정착해가는 과정을 이광기 스스로가 감격스레 목격하고 있다고. 특히 그는 경매의 심장 쫄깃한 스릴을 만끽한 구매자가 자신이 산 작품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은 미술 시장을 활성화하고 건전한 예술 활동을 장려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시대가 올 줄 미리 알았냐’고들 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시장이 변하지는 않았겠죠. 시기가 어찌 되었든 지금 필요한 것은 온라인 마켓으로의 확장입니다. 온라인 7, 오프라인 3 정도의 비율을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오프라인 공간은 제가 기획하고 있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딱 필요한 규모로만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광기가 이처럼 온라인 채널 운영에 집중하는 이유는 단순히 미술품 경매나 예술의 저변 확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최근 유기농산물 생산자들의 직거래 플랫폼인 ‘프롬’이라는 회사와도 손을 잡았다. 자신이 생산한 먹거리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 생산자를 건강한 먹거리를 신뢰하는 소비자와 연결하는 일은, 일견 좋은 미술품을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구매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는 자신이 펼쳐나가고 있는 이 모든 활동들을 다원예술, 다원마켓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현대 예술의 흐름과 함께 호흡했다고 평가받는 미국의 미술평론가 아서 단토가 예견한 대로 지금의 시대는 예술 세계의 비관적 종말이 아닌 그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광기가 펼쳐는 일련의 활동들은 예술가들에게도 훌륭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14년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심미식, 음악인 송솔나무, 화가 문형태 등 평소 친분 있던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예술 활동을 선보이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났다. EBS ‘글로벌 프로젝트 나눔’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된 이 예술 프로젝트는 그간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을 바라보던 슬프고 암울한 시선 대신 그곳의 아이들에게 예술을 통해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출국을 앞두고 문형태 작가가 ‘너무 떨린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해외로 나가는 게 처음이더라고요. 그곳에서 2주간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돌아왔는데 그 뒤로 그 친구 그림이 많이 바뀌었어요. 따뜻하고 행복해졌달까요. 나중에 들어보니,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형태를 따라다니던 아이가 조그만 손으로 그의 손가락을 꼬옥 잡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야, 그게 사랑이야.’” 

어쩌면 이광기의 실천은 단순히 예술적인 것 혹은 물질적인 무언가를 공유하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고 있지 않을까. 인간의 가치로운 삶 자체가 예술이 되는 과정,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허물고 보다 따뜻하고 유연한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도 연결되는 모양새다.

일곱 살 아들이 떠나며 남긴 아름다운 선물

일산역 인근 구도심에 자리한 낡고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문을 연 ‘문화 공간 끼’.

일산역 인근 구도심에 자리한 낡고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문을 연 ‘문화 공간 끼’.

그간의 이야기를 하는 이광기는 무척 행복하고 편안한 모습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행에 옮기고 사람들과 좀 더 재미있게 공유할 수 있을지 얘기할 때는 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어쩌면 이 또한 2009년 신종플루로 세상을 떠난 아들이 남긴 선물일 수 있겠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배우 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무슨 미술품 경매고 다원예술, 다원마켓이냐 하겠지만 그에게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아들을 떠나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티에서 지진이 났어요. 심적으로 너무 많이 힘들 때라 무작정 봉사 활동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꿈에 아들이 나와서 그러더라고요. ‘내 친구들 많이 도와줘’. 그때가 아들 보낸 지 1백 일쯤 됐을 무렵이었거든요. ‘이 아이가 천국에 잘 있구나’.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지 몰라요. 그때부터 내가 뭘 어떻게 도와야 하나 생각했는데 지진으로 무너진 학교가 보이더라고요. 그냥 ‘학교를 다시 지어줘야겠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때마침 NGO 단체인 월드비전에서 그에게 홍보대사 일을 제안해왔고, 예전부터 인연이 있던 젊은 작가들이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 당시 서울옥션 대표였던 이학준 크리스티 코리아 대표도 옥션의 경매 시스템을 활용해보라며 공간과 시간을 내어주었다. 

2010년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첫 번째 자선 경매는 완판을 기록하며 1억원이 넘는 기금을 조성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기금의 절반은 작가들에게, 나머지 절반은 학교를 세우기 위한 종잣돈으로 모으기 시작해 3년째 되던 해 2억원을 마련하고 첫 번째 학교를 세웠다. 그렇게 하나씩 쌓아올린 학교 건물이 이제는 3개 동으로 늘어 6백여 명의 아이들이 예전처럼 등교하고 있다. 아들이 남긴 기적 같은 선물이기도 하다. 

이광기 가족들에게 하늘로 먼저 떠난 아들의 생일이 있는 8월은 언제나 특별하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3년이 지난 뒤 태어난 늦둥이 셋째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형의 생일을 챙길 만큼 의젓하고 속 깊은 아이로 자랐다. 올해 8월에는 문화 콘텐츠 기획자로서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이광기의 온오프라인 아트쇼’를 열게 된 것. 유튜브와 네이버 TV를 통한 온라인 생방송과, 관객 초청 오프라인 쇼가 동시에 진행되는 독특한 콘셉트의 ‘융합예술 아트쇼’다.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예술 공연과 전시를 직접적으로 접하기 어려워진 대중들에게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다양한 예술 장르와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되는 아트쇼를 통해 컬렉터블한 신진 작가들과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피아니스트 조윤성, 첼리스트 김규식, 김나이 무브먼트 콜렉티브(NKMC), 케렌시아 음악명상콘서트 등의 공연도 함께 즐길 수 있다. 8월 22일에는 인기 강사 김미경의 리부트 강연도 준비되어 있다. 

8월 25일 돌아오는 첫째 아들 생일에는 어김없이 막내아들과 손잡고 형을 만나러 가기로 했단다. 그리고 아이가 세상을 떠난 11월에는 그가 지금까지 작업해온 사진들을 모아 포토 에세이를 출간할 예정이다. 과거에는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던 것들, 듣고도 알지 못했던 세상이 지난 기록으로 필름에 담겼다. 그에게는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11년 전 아들이 남긴 유산이다.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이광기



여성동아 2020년 9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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