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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issue

디올의 첫 한국인 디자이너 임세아

골든 글로브 레드카펫 드레스 비하인드

EDITOR 이나래

입력 2020.02.09 10:00:01

얼마 전 열린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샤를리즈 테론을 포함한 세계적인 여배우 세 명이 한국인 디자이너의 손길이 머문 드레스를 선택하며 시선을 모았다. 디올의 아틀리에에서 일하는 패턴 디자이너 임세아 씨와의 인터뷰를 여성동아가 단독으로 진행했다.
디올의 첫 한국인 디자이너 임세아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전 세계 영화 팬의 축제인 동시에, 패션 하우스의 치열한 각축장이기도 하다. 패션 애호가들은 어떤 이가 올해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밟을지를 점치고,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배우들은 자신만의 매력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드레스를 찾기 위해 시상식이 열리기 몇 달 전부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2020년 골든 글로브에서는 특히 샤를리즈 테론의 그린 컬러 페플럼 드레스가 큰 화제를 모았다. 촘촘한 드레이프가 우아하게 흘러내려 마치 그리스 여신을 연상시키는 실크 가운에 얇은 뷔스티에 톱이 절묘하게 매치된 이 드레스는, 샤를리즈 테론의 아이디어에 디올 오트쿠튀르를 지휘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스케치로 구현된 것! 그런데 이 디자인을 평면에서 입체로 끌어내는 과정에 한국인 디자이너의 손길이 더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 번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 주인공은 디올의 패턴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는 임세아 씨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는 그녀와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눴다.

샤를리즈 테론의 드레스 작업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샤를리즈 테론이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인 레슬리 프리마를 통해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그린 컬러의 드레스를 입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은 레슬리 프리마는 “마리아 그라치아에게 말해볼게요!”라고 했고요.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마리아 그라치아가 그린 컬러의 페플럼 드레스 스케치를 아름답게 그려냈고, 그 결과물이 샤를리즈 테론과 레슬리 프리마를 모두 만족시킨 덕분에 드레스로 탄생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디자인을 옷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임세아 씨의 역할이군요. 

네, 제가 하는 일을 설명하려면 우선 패턴 디자이너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요. 미국에서는 패턴 디자이너, 프랑스에서는 모델리스트라고 불러요.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실제 옷으로 구현하는 직종이라고 할 수 있죠. 

패턴 디자이너의 상세한 작업 과정이 궁금한데요. 

디자이너가 스케치를 통해 옷의 이미지를 구현하고 작업 의뢰를 해오면 패턴 디자이너가 나설 차례예요. 평면에 나타난 이미지를 입체화 하려면 볼륨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입을 사람의 사이즈에 맞게 마네킹을 세팅하고 거기에 드레이핑을 해서 셰이프를 만들어내죠. 간단하게 들리지만, 철저하게 계산이 필요한 작업이지요. 인체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고요. 그다음으로 천을 재단해서 옷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진행되는 거죠.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에요. 패턴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옷을 입을 당사자와 만나 피팅을 하면서 몸에 맞는 옷을 만들어가야 해요. 아마 맞춤옷을 입어보신 분이라면 이해가 빠르실 텐데요. 이 과정에서 불편한 부분을 고치거나, 아쉬운 부분을 개선하기도 하죠. 디테일이 중요한 작업이에요. 



눈부시게 화려한 드레스가 레드카펫 위에 등장하면 많은 이들이 뜨거운 찬사를 보내지만, 실제로 그 드레스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특히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지곤 하는 옷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2020년 골든 글로브의 샤를리즈 테론 드레스 작업에 함께 참여하기도 한, 할리우드의 유명 패션 스타일리스트 레슬리 프리마는 “완성된 작품만 보는 사람은 패턴을 제작하고 재봉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드레스를 입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피팅을 반복하기도 한다. 작품은 하룻밤 만에 완성되지 않는다”고 패턴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패션 하우스, 특히 오트쿠튀르에서 패턴 디자이너의 영역은 재단이나 패턴에 국한되지 않는다. 옷을 입을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단점을 보완하기도 하고, 디자이너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캐치하고 아이디어를 더해 한 단계 레벨 업시키는 역할도 맡는다.

샤를리즈 테론의 드레스는 실크 드레이프를 일일이 손으로 잡아가며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그녀의 드레스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숙련된 패턴 디자이너 세 명이 200시간 이상을 매달려야 했어요. 꼬박 일주일 이상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해요. ‘애플 그린’이라고 이름 붙여진 디올 특유의 그린 컬러 실크를 일일이 손으로 드레이프를 잡고, 한 땀 한 땀 떠서 셰이프를 완성해야 했으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요.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드레이핑이 어긋나거나 겉돌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보디라인을 따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플리츠가 생겨나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작업이랍니다. 


디올의 첫 한국인 디자이너 임세아
이번 골든 글로브에서 무려 세 명이나 되는 톱 여배우의 드레스를 만들었다고요. 

샤를리즈 테론의 드레스가 가장 화제가 되긴 했지만, 제니퍼 애니스톤이 입은 블랙 울 드레스와 다코타 패닝의 라일락 컬러 튤 드레스도 함께 진행했어요. 제니퍼 애니스톤의 드레스는 총길이가 25m에 달하는 울 실크 크레이프를 활용해서 만들었는데 가슴 쪽은 러플, 드레스는 계단식의 풍성한 주름으로 드라마틱하게 연출했죠. 재니퍼 애니스톤 특유의 클래식한 무드를 잘 살렸다는 평이 있더군요. 다코타 패닝의 경우에는 라일락 컬러의 튤 드레스에 퍼프 소매를 더해 청초하면서 사랑스러운 매력을 살렸고요. 

여러 벌의 드레스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골든 글로브는 한 해를 여는 큰 시상식이고, 많은 드레스를 짧은 시간 안에 준비해야 해서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컸어요. 연말연시에 휴가를 즐기면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한 분들도 많으셨을 텐데, 저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죠. 심지어 지난해 12월 31일에는 작업을 마무리하느라 아틀리에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었어요. 거의 자정이 다 되어 귀가를 하려고 보니, 샹젤리제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이 열리고 있더라고요. 의도치 않게 새해를 맞이하는 물결에 휩쓸려버렸고요. 모두들 흥겨운 얼굴로 연말연시를 즐기고 있었는데, 저는 그저 집에 가서 어서 쉬고 싶은 마음에 인파에서 빠져나오느라 고생했던 기억만 크게 남아 있네요. 


샤를리즈 테론에게 목걸이 선물 받아

다코타 패닝의 드레스 패턴 디자인 작업을 하는 임세아 씨. 오른쪽은 제니퍼 애니스톤의 드레스 스케치. 패턴 디자이너는 디자이너가 스케치한 드레스를 실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한다.

다코타 패닝의 드레스 패턴 디자인 작업을 하는 임세아 씨. 오른쪽은 제니퍼 애니스톤의 드레스 스케치. 패턴 디자이너는 디자이너가 스케치한 드레스를 실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한다.

힘든 과정을 거치지만, 완성된 드레스와 그 옷을 입은 주인공을 보면 고단함은 눈 녹듯 사라진다. 옷을 입어본 이들이 보내오는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말도 지친 임세아 씨를 일으켜세우는 원동력이 된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 직후 샤를리즈 테론은 “나를 기쁘게 해준 놀라운 팀에게 감사한다”며 임세아 씨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했고, 다코타 패닝도 감사의 의미로 꽃다발을 보내 고마움을 전했다고. 이런 감사의 말들이 런웨이 뒤, 레드카펫 밖에서 최선을 다하는 패턴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을 고양시키는 거름이 된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디올이라는 거대 패션 하우스의 패턴 디자이너가 되었다는 점 역시 임세아 씨를 달리게 하는 자긍심이다.

한국인 최초로 디올 오트쿠튀르 패턴 디자이너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2008년 디올의 어시스턴트 모델리스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어요. 폴 카(Paule Ka)와 프랑크 소르비에(Frank Sorbier)의 오트쿠튀르를 거치며 경력을 차곡차곡 쌓았고요. 2010년에 셀린느로 자리를 옮겼다가 2012년에 파코 라반이 오트쿠튀르를 재론칭할 때 패턴실 실장으로 스카우트됐죠. 이후에는 카타르 왕비인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알미스네드가 론칭한 카타르 럭셔리 그룹 소속 패션 브랜드 QELA에 몸담기도 했어요. 이처럼 여러 브랜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다 보니 다시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디올로 돌아왔네요. 

패턴 디자이너라는 독특한 직업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제가 패턴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대학 시절에는 춤에 흠뻑 빠져 있었거든요. 래퍼 윤희중 씨의 추천으로 ‘철이와 미애’의 미애 씨를 알게 되었고, 그녀가 만든 안무팀 ‘스위치’에 소속되어 활동을 시작했어요. DJ DOC의 ‘런투유’ 활동 때, 싸이 ‘챔피언’ 때 백댄서로 참여했었죠. 제법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예상치 못하게 발목 부상을 당했어요. 더 이상 춤을 출 수가 없게 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죠. 다른 길을 찾으려고 고심하다가 떠올린 게 디자인이었어요. 어린 시절에는 이브 생 로랑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거든요. 

춤에서 디자인으로, 방향 전환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당시에는 대안이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할 만큼 용감했던 것 같네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미 대학을 졸업할 나이였고,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나마 불문학을 전공했으니 그거 하나 믿고 파리행 티켓을 끊었죠. 그게 2005년의 일이었어요.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파리에 적응하던 시기에 패턴 디자이너 양성 학교인 AICP에서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죠. 재단사 출신인 라데베즈가 1837년에 설립한, 유서 깊은 학교거든요. 무작정 지원서를 냈는데, 운 좋게 입학 허가를 받았죠. 

우연이었지만,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네요. 

네, 처음에는 막연하게 패턴 디자인을 배우면 디자이너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작해보니 제 성격과 이 작업이 매우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무척 꼼꼼한 편이라 때론 까다롭게 보이기도 하는데, 패턴을 그릴 때 이런 꼼꼼한 면이 장점이 되더라고요. 1~2mm만 차이가 나도 옷의 느낌이 매우 달라지다 보니 디테일을 잘 잡을 수 있어야 하거든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프랑스어가 유창해지기까지 제법 고생을 해야 했죠.


디올의 첫 한국인 디자이너 임세아
골든 글로브가 끝났지만, 하루를 분과 초 단위로 쪼개서 살아야 하는 패턴 디자이너 임세아 씨의 바쁜 일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20년 가을과 겨울 시즌의 트렌드를 소개하는 파리 패션위크의 옴므 컬렉션이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오트쿠튀르 컬렉션이 1월 25일부터 28일까지 열리기 때문. 취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임세아 씨의 숨 가쁜 스케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골든 글로브가 끝났지만, 파리 패션위크 준비로 정신이 없으실 것 같은데요. 

맞아요. 쇼 두 개가 겹쳐서 정말 정신이 없어요. 매일매일 숨 쉴 틈 없이 일하는 중이에요. 시간이 조금 더 있다면 질문에 더 빠르고 상세하게 답변을 보내드리고 싶은데, 정말로 시간이 부족하네요.(실제로 활발한 소통을 이어가던 그녀의 SNS 계정은 1월 7일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위해 할리우드로 출장을 간 날 이후 업로드가 멈춘 상태다.) 

파리 패션위크가 끝나도 아카데미 시상식(2월 9일)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혹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누가 임세아 씨의 드레스를 입게 될지 미리 귀띔해주실 수 있나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레드카펫이 깔리는 날까지는 비밀이라서 알려드릴 수 없기도 하고요(웃음).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고, 한국 영화의 활약이 대단한데요. 혹시 임세아 씨가 개인적으로 드레스를 디자인해보고 싶은 한국의 배우가 있나요. 

훌륭한 여배우가 너무 많아서 누구 한 명을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게 느껴지네요. 하지만 ‘기생충’의 조여정 씨는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사심을 듬뿍 담아 말하자면, 저의 절친이기도 한 배우 심은진 씨의 드레스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실제로 은진이가 2013년 열었던 사진전을 축하하는 의미로 화이트 컬러의 비대칭 리넨 드레스를 선물하기도 했었답니다. 

분명 임세아 씨처럼 파리의 패션 하우스에서, 오트쿠튀르를 만드는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싶은 이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나 조언이 있다면요. 

파리에는 여러 패션 브랜드의 수많은 아틀리에가 있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계로는 일본 사람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한국 동료나 후배들이 점차 많아지는 게 느껴져요. 그런 모습을 볼 때 정말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제가 처음 패턴 디자이너로 자리를 잡던 10여 년 전에는 외로움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거든요. 물론 패턴 디자이너가 결코 쉬운 직업은 아니에요. 우선 자리가 매우 한정되어 있어 진입하기가 어렵고, 된다 해도 체력과 인내심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이 필요하죠. 하지만 그 어떤 직업보다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에요. 패턴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끈기를 가지고 도전해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더 많은 한국인들을 아틀리에에서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세계적인 명품 패션 하우스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국인 패턴 디자이너이자, 촉망받는 인재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디자이너 임세아. 2020년의 시작을 골든 글로브로 쏘아 올린 그녀의 행보가 앞으로도 더욱 성공적이길, 그래서 우리가 더 자주 그녀의 드레스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가 론칭할 브랜드를 통해 그녀가 만든 옷을 입을 수 있기를!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게티이미지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디올 인스타그램




여성동아 2020년 2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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