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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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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보다 오래된 흙집이 아름다운 이유

독일인 주부 유디트의 좀 다른 시선

기획·한여진 기자 글&사진·유디트

2011. 08. 04

고층 아파트보다 오래된 흙집이 아름다운 이유


몇 년 전 밭에서 예초기로 풀을 자르다가 풀잎 사이에 흙더미처럼 웅크리고 있는 꿩을 보았다. 예초기로 꿩을 죽일 뻔했는데, 다행히 마지막 순간에 꿩을 알아보고 점프해서 피했다. 꿩은 많이 놀랐을 텐데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 예초기의 시끄러운 소리에도 꼼짝하지 않고 말이다. ‘이놈이 왜 도망가지 않을까’ 의아해하며 살펴보니 꿩은 나뭇가지와 잎으로 둥지를 만들어 알을 품고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도 꿩은 알을 끝까지 보호했다. 마치 나에게 소리 없이 “내 둥지를 부수지 말아주세요”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서 둥지 주변을 나뭇잎으로 쌓아 더욱 아늑하게 만들어주었다.
강원도 삼척의 우리 집도 꿩 둥지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산 속에 숨어 있다. 처음 집을 보았을 때는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고 유리창도 없고 곳곳에 거미줄이 덮여 있었다. 먼지로 뿌연 집 안을 휴대전화 불빛을 이용해 구석구석 보면서 속으로 ‘쓰레기 더미’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집 밖으로 나와 집을 다시 보니 집이 나에게 “아는 척하지 말고 그냥 가!”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고층 아파트보다 오래된 흙집이 아름다운 이유


1 지은 지 1백년이 넘은 집을 남편과 수리하고 단장해 살고 있다. 울창한 나무와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멋스럽다.
2 수리하기 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집 모습.
3 예초기로 마당의 풀잎을 자르고 있는 유디트. 이때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꿩의 모습을 보고 오래된 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고층 아파트보다 오래된 흙집이 아름다운 이유

1 2 3 유디트 집 주변에 오래된 빈집들. 오래된 집들은 자연 속에 위치해 조금만 정비하면 멋진 집으로 변신한다.





삼척으로 이사를 결심하고 한국 친구에게 이 집 얘기를 하니 열이면 열 모두 집을 부수고 새집을 지으라고 했다. “옛날 집은 너무 불편해! 젊은 사람이 이런 집에서는 못 살지. 보일러도 없고 수세식 화장실도 없네. 조립식 집을 지어라!” 남편과 나도 이 집을 수리할지 부수고 새집을 지을지 오랫동안 결정하지 못했다.
우리는 우선 이 집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집을 수리하지 않고 지내기엔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때 바로 그 꿩 둥지를 발견한 것이다. 꿩이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둥지를 보호하려던 이유는 무엇일까? 둥지에는 꿩에게 가장 소중한 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이 집에도 뭔가 소중한 것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우리 집을 껍데기만 있는 ‘빈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불현듯 “우리 집이 정말 ‘빈집’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1백 년 넘는 이 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상상해보니 그들의 모습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산골 외딴집에서 화전민들이 가족과 함께 땅을 일구며 힘들지만 행복하게 생활했을 것 같았다. 옛날 한국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도 생각해보았다(외국인인 나에게 한국의 과거 모습은 흥미로운 세계다).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집이 한국의 과거와 연결해주는 문처럼 보였다. 집을 처음 봤을 때부터 가졌던 묘한 느낌은 1백 년이 넘는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독일에서는 오래된 집일수록 인기가 높다. 독일 사람들은 현대적인 콘크리트 집보다 오래된 집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 잘 보존하려고 노력한다. 한국도 그런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집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먼지와 거미줄 대신 손으로 직접 다듬어 만든 나무 기둥과 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핸드메이드라서 모든 기둥이 자연스럽고 멋스러웠다. 기둥을 손으로 천천히 만져보니 집을 만든 사람의 노력이 느껴졌다. 이 집에는 한국의 과거와 전통, 그리고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집을 지키기로 결심했어”라고 외쳤다.
남편과 나는 집의 기본 구조는 가능한 한 유지하면서 화장실과 주방 등 생활에 불편한 부분만 고쳤다. 보일러도 설치하지 않고 구들장을 정비해 온돌을 계속 사용하도록 했다. 집을 수리하는 동안 집의 숨은 매력이 하나둘씩 눈에 띄었다.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오고 사계절 색다른 멋을 뽐내는 곳. 아침이면 청명한 새소리가 잠을 깨우고 비가 내리면 지붕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가슴까지 적시는 우리 집…. 우리 집에 와본 이들은 하나같이 ‘집이 정말 멋지다’고 한다. 이젠 집을 부수고 살기 편한 새집을 지으라고 말하는 이도 없다.
한국 사람들은 오래된 것보다 새로운 것, 현대적인 것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 처음 온 10년 전만 해도 오래된 한옥이나 흙집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고층 아파트로 거의 바뀌어 북촌 한옥 마을에나 가야 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옛날 집의 가치를 모를까?’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종종 든다. 지금도 우리 집 주변에 버려진 오래된 집들이 많이 있다. 그 집들도 조금만 돌보면 매력적인 집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아파트 장만에 혈안이 된 한국 사람들이 하루빨리 오래된 집의 가치를 알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어딘가에는 오래된 집의 가치를 아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고층 아파트보다 오래된 흙집이 아름다운 이유


유디트씨(40)는…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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