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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거위의 꿈

주부 김보라 강인숙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아나운서 도전기

MBC ‘신입사원’ 오디션 참가

글·김민지 기자 사진·지호영 현일수 기자, MBC 제공

2011. 05. 18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 속에서 승자만큼이나 패자들도 주목받고 있다. MBC ‘신입사원’ 아나운서 공개채용에 도전했다 아쉽게 탈락한 주부 김보라·강인숙씨에게 ‘오디션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도전의 짜릿함 속에 산후 우울증 싹~ 주부 김보라

주부 김보라 강인숙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아나운서 도전기


결혼 2년 차 김보라씨(30)는 최근 꿈만 같았던 두 달을 떠올리면 아기를 보다가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MBC 아나운서 공개채용 프로그램 ‘신입사원’에 도전한 뜻 깊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5천5백여 명이 지원해 64명만 남은 3차 테스트까지 올라갔다 결국 4차 관문을 눈앞에 두고 탈락했지만 그는 아쉽지 않다. 그에게 오디션 탈락은 실패가 아닌,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고마운 기회여서다.
김씨가 아나운서에 도전할 용기를 얻은 것은 남편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다. 그의 남편은 전 국가대표 펜싱선수인 한상규씨(30). 2월, 우연히 TV에서 아나운서를 뽑는다는 광고를 본 남편이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니 그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며 “꼭 지원해보라”고 권했다.
사실 김씨는 지난해 9월 아들을 낳고 산후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아기를 돌보고 있었지만 그에겐 모든 상황이 버겁고 우울하기만 했다. 자꾸 자신이 초라해보였고,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남편은 제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나가보라고 권유했던 것 같아요. 제가 방송에 아주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시잖아요. 아나운서라고 하면 왠지 대단한 사람만 해야 하는 것 같고, 제 전공과도 무관했고…. ‘언감생심’이란 말이 딱 들어맞죠(웃음).”
김씨는 방송인 김나영의 사촌이다. 김씨는 2009년 MBC 예능 프로그램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에 김나영과 함께 출연한 적이 있다. 그렇게 사촌과 방송을 했으면서도 수줍음이 많아 방송 활동은 엄두조차 내지 않던 그가 고민 끝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저 같은 아기 엄마도 뽑힐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어요. 서류가 통과됐단 얘기를 듣고 ‘이제 여기서 끝이겠지’ 생각했는데 계속 기적이 일어나더라고요.”
김씨는 오디션 기간 중 아이가 많이 아파서 시험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3차까지 올라갔고, 4:4 팀원 대결 미션에서 아기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담은 스토리로 심사위원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사실 여기까지만 와도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4차 때부터 합숙을 해야 했는데 아기가 아직 젖을 떼지 못해 걱정이 컸거든요. 지원자 대부분 오래 준비했고 실력 있는 분들이 많아서 저는 초반에 탈락할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남편과 아이에게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뿌듯했어요.”
김씨의 팀 멘토였던 나경은 아나운서는 탈락한 그를 붙잡고 함께 펑펑 울었다. 나 아나운서는 그에게 “보라씨에게 많이 배웠다”며 “이렇게 아나운서를 향한 꿈을 뜨겁게 품은 만큼 뭘 해도 다 잘될 것”이라고 위로했다.
“동갑내기에다 지난해 아들을 출산한 경험까지 같아 저의 탈락을 더욱 아쉽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방현주 아나운서도 제가 녹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격려해줘서 정말 감사했어요.”
다시 평범한 아기 엄마로 돌아온 김씨지만 이젠 하루하루가 즐겁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감을 되찾았고,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방송을 통해 당당해진 제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이쪽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려면 공부도 더 해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게 많아요.”
끝으로 그는 ‘신입사원’에 남은 지원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프로그램에 나온 지원자 중 어느 한 명도 꿈의 크기가 작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계속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 떨어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잖아요. 그때 끝까지 가지 못했다고 자기 자신을 비하하지 않았으면 해요. 탈락을 끝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접었던 배우의 꿈 20여년 만에 다시 꺼낸 주부 강인숙

주부 김보라 강인숙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아나운서 도전기

3월 초 첫 방송된 MBC ‘신입사원’은 나이, 학력, 성별에 관계없이 아나운서를 공개채용해 그 전형 과정을 방송하고 있다. 지원자 대다수가 20대 취업 준비생이지만 김보라씨나 강인숙씨처럼 주부 지원자들도 도전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인데 이렇게 도전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만약 이 기회가 없었다면 후회가 엄청났을 거예요.”
‘신입사원’ 2차 미션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딸을 데리고 와 인상적인 지원자로 기억된 강인숙씨(50). 딸과 함께 무대에 올랐지만 아쉽게 탈락했다. 그래도 강씨는 그 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20대 중반 호기심에 극단 오디션을 봤다가 덜컥 붙었다. 그러나 집안의 반대로 배우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이후 결혼을 하고 미술학원과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바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차 2월, 갑작스런 사정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면서 그는 문득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딸아이도 바라던 직장에 다니고, 아들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남편 역시 원하던 교수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저는 어떻게 살았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꿈 많던 내가 가족 뒷바라지하면서 이렇게 시간을 다 보냈구나. 나도 이제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연히 강씨는 TV에서 ‘신입사원’ 모집 방송을 보았다. 그는 이 기회가 ‘운명’처럼 느껴졌다. 딸도 “엄마를 위한 기회가 분명하다”며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크고 작은 모임에서 사회자로 나선 경험이 있던 강씨이기에 ‘아나운서’란 꿈이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서류 합격 후 1차 카메라 테스트를 위해 시험장에 들어선 순간 강씨는 얼어붙고 말았다. 젊고 잘생기고 똑똑하기까지 한 지원자들을 보고 위축된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친구들만 모였는지 다들 너무 쟁쟁한 거예요. 솔직히 시험 보기 싫어서 도망가려고 했어요. 다행히 딸이 옆에 있어서 큰 힘이 됐죠.”
일할 때나 집에서나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인 강씨는 짧은 시험 일정 속에서도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하루 종일 뉴스만 틀어놓고 앵커나 기자의 멘트를 따라 했고, 그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줬던 책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렇게 준비했는데도 막상 무대에 올라섰을 땐 정말 두근거리더라고요. 그래도 안 떨린 척, 당당한 척 연륜으로 맞섰죠. 아쉽게 2차 시험에서 탈락했지만 꿈 많은 지원자들을 만나고 심사위원들의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어서 좋은 추억이 됐습니다.”

주부 김보라 강인숙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아나운서 도전기


강씨는 ‘신입사원’에 출연하면서 2명의 아나운서가 기억에 남는다. 1차 시험 때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던 그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줬던 이재용 아나운서와 2차 탈락 후 그를 쫓아와 “안타깝다”며 격려해준 최재혁 아나운서 국장이다.
“제가 이재용 아나운서의 너털웃음을 좋아한다고 심사 때 얘기했더니 한번 따라 해보라는 거예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는 제게 먼저 특유의 웃음소리로 ‘껄껄’ 웃어줘서 그 순간을 잘 모면했죠. 최 국장님은 탈락하자마자 나가는 절 따라오면서 제가 될 줄 알았다며 ‘굉장히 아쉽다’고 진심으로 위로해줘서 고마웠어요.”
강씨는 이번 ‘신입사원’ 지원을 계기로 앞으로 자신의 꿈을 찾아 더 열심히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갱년기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제가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힘이 됐다고요. 자기도 다시 꿈을 찾아 열심히 살고 싶다고 말하는데, 가슴 뭉클했어요. 이렇게 한번 하고 싶었던 일에 부딪혀보니 더 자신감이 생겼어요. 단역 배우나 방송 일처럼 제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도전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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