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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그때 그 사람

‘21년 만에 마주친 그대’ 구창모와의 추억 토크

“여전히 노래 잘한다는 말 들을 때 가장 행복”

글·김민지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SBS 제공

2011. 05. 17

8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던 그룹‘송골매’ 리드싱어 구창모. 가요계 은퇴 이후 사업가로 활동하던 그가 SBS 라디오 ‘브라보 라디오, 구창모입니다’ DJ로 돌아왔다. 사업을 할 때도 늘 무대가 그리웠다는, 천생 ‘노래꾼’인 그에게 노래 인생 공백기 동안의 이야기를 들었다.

‘21년 만에 마주친 그대’ 구창모와의 추억 토크


7080세대에게 영원한 ‘젊은 오빠’인 그가 돌아왔다. 80년대 가요계에서 큰 인기를 얻다 돌연 은퇴, 사업가의 길을 걷던 구창모(57)가 SBS 라디오 DJ로 복귀한 것. ‘브라보 라디오, 구창모입니다’를 맡아 4월4일부터 평일 저녁 오후 6시부터 2시간을 책임지고 있다.
첫 방송 이후 홈페이지 게시판은 그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의 감동 어린 글로 가득했다. 그는 “팬들의 복귀 축하 메시지와 방송 후기에 용기를 얻었다”며 “라디오 DJ로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예전에 가수로 활동했을 때도 MC는 맡아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사업가로 살다 오랜만에 방송에 복귀해 난생처음 DJ가 돼보니 어려운 점이 많더라고요. 대본에 음악 큐시트, 컴퓨터 모니터 화면까지 봐야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벌써 어제도 결정적인 실수 하나를 했어요. 노래 제목을 잘못 말한 거 있죠(웃음).”
다행히 일주일 정도 방송한 후 그는 감을 잡았다. 작가와 상의해 대본의 절반 이상을 없애고 애드리브 위주로 가다 보니 “실수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아직 완벽할 순 없죠. 첫 방송 하고 나서 며칠 뒤 클로징 멘트 때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하고, 실수하기 때문에 인간’이라고요. ‘전 신이 아니라 인간이니까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실수는 있을 거다. 너무 정형적인 방송보다 이런 게 더 재미있을 테니 양해 바란다’고 부탁드렸죠.”
복귀한 그의 모습에 대해 ‘아직 그대로다’ ‘오히려 더 젊어진 것 같다’는 팬들의 반응을 전하자 그는 소탈하게 웃었다.
“내일모레가 환갑이에요. 요즘 변장술이 얼마나 좋은지 아세요? 없는 머리카락은 흑채로 감추고 주름진 피부는 화장으로 가려요. 다 노력하고 있는 거죠. 워낙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다른 사람들보다 노화가 조금 늦게 오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웃음).”
구창모가 방송활동을 재개하기까지 2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늘 노래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사업가로 전향한 뒤 하던 일을 놓기가 쉽지 않았다. 사업가로의 성공이냐 가수로의 복귀냐, 전혀 다른 두 가지 길을 놓고 저울질하던 그에게 뜻밖의 계기가 찾아왔다. ‘절친’ 배철수(58)의 연락이었다.

“나를 방송으로 다시 이끈 이는 절친 배철수”
“지난해 12월쯤 배철수한테 전화가 왔어요. KBS에서 자기가 진행하는 ‘콘서트 7080’이 300회 특집을 하는데 제가 꼭 나왔으면 좋겠다고요. 이 친구가 누구한테 연락해서 부탁하고 그러질 않거든요. 그래서 지난 1월 초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녹화하면서 죽을 맛이었죠.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제 생각대로 나오지 않는 거예요. 음정도 안 맞고…. 정말 충격이었어요.”
녹화를 마치자마자 성대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 그는 목소리 전문병원을 찾았다. 정밀 검진 결과 의사가 말해준 병명은 만성 후두염. 근육으로 된 성대가 퉁퉁 부어 있다고 했다. 이대로 놔두면 다시는 예전처럼 노래 부를 수 없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사업하면서 담배를 많이 피웠던 탓이었다. 그날 이후 금연을 시작했다.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목 관리를 하게 됐고, 이젠 예전만큼 깨끗한 음색을 되찾았다.
“며칠 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노래를 불렀는데 진행을 맡은 탁재훈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형님, 어떻게 목소리가 옛날보다 더 맑아지셨어요? 진짜 감동이에요’라고요. 노래 부르는 사람은 이런 칭찬 들을 때 가장 기분 좋죠. 혹자는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에 비유해 80년대 ‘빅뱅’이나 ‘동방신기’라고도 하는데 그 얘기보단 ‘아직도 노래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게 훨씬 좋아요.”
이렇게 목소리를 회복하던 중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왔다. 배철수가 그의 동생 배철호 SBS 라디오제작본부장과 함께 “라디오 DJ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었다.
“처음엔 망설였어요. 아직까지 하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했고, 오랫동안 방송활동을 하지 않아서 부담스러웠거든요. 하지만 지금이 기회인 것 같고, 막상 하겠다고 마음먹으니까 처음 가수로 섰을 때 같은 설렘과 떨림이 느껴지더라고요. 좋은 기회를 준 배씨 형제들에게 고맙죠.”

‘21년 만에 마주친 그대’ 구창모와의 추억 토크


구창모. 그 이름은 7080세대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열쇠와 같다. 홍익대 그룹 ‘블랙 테트라’ 멤버로 78년 TBC 해변가요제에서 ‘구름과 나’로 우수상을 받으며 데뷔, 81년 당시 최고 인기 록밴드였던 송골매의 메인 보컬로 합류했다. 취업을 준비하던 구창모를 배철수가 설득해 멤버로 이끌었다고 한다. 송골매는 그를 영입한 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러다 구창모는 85년 전격 솔로가수로 데뷔해 ‘희나리’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등을 히트시키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렇듯 가수로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건 90년 1월. 당시 방송사 쇼오락 프로그램 PD들이 가수를 출연시키거나 노래를 들려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일명 ‘PD 촌지사건’이 터졌다. PD 19명, 가수 1백여 명이 연루된 이 사건으로 그 역시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가수 인생이 뿌리째 흔들릴 만큼 심한 모욕을 당했다.



외국생활 견디기 어려울 땐 노래방 찾아
이 사건의 충격으로 그는 가수활동을 중단했고 이듬해 12월 사업가로 변신했다. 91년 7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음악 축제에 초청받았다가 당시 현대종합상사의 자동차본부장을 만나 그의 권유로 카자흐스탄 제1호 외제차 딜러가 된 것이었다.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95년까지 줄잡아 40억원을 벌었다. 그러나 호사다마였던가. 녹용 사업에 뛰어들면서 6개월 만에 번 돈을 몽땅 날렸다.
빈털터리가 됐지만 잃은 만큼 얻은 것도 있었다. 녹용 사업차 홍콩을 오가다 열 살 연하의 아내를 만나 97년 결혼식을 올렸다. 다시 자동차 판매를 시작해 돈을 모았지만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TV 프로그램 수출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다시금 실패를 맛봤다.
2005년 그는 다시 중앙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이번엔 키르기스스탄이었다. 경기가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건설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그쪽 분야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지만 철저히 조사하면서 한번 시작해보자고 결심했어요. 어차피 제가 사업가로 수완이 뛰어나거나 이윤에 밝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겠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그렇게 일임해놓은 상태예요.”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나니 ‘롤러코스터’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 역시 동의했다. 가수 대신 사업가로 살면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는 출근시간이 어색했고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다.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타향살이를 할 때 그는 매일 노래방을 찾았다.
“93년 처음 알마티에 노래방이 생겼어요. 매일 혼자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했죠. 하루 서너 시간씩 노래방 책자 목차 ㄱ부터 ㅎ까지 부르면서 노래에 대한 갈증을 풀었어요.”

“김범수는 ‘자뻑’ 스타일, 나와 비슷해”
방송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그가 가장 먼저 결심한 것은 앨범을 내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그를 기다려준 팬들을 위해, 또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새 앨범은 애창곡과 신곡으로 2장의 CD에 담아 올가을 발매할 계획이다.
“저를 출세시켜준 노래가 ‘어쩌다 마주친 그대’예요. 그래서 이 노래를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데 사실 옛날에 30분 만에 작곡한 곡이거든요. 새 앨범에도 제가 만든 노래가 있으면 좋겠지만 글쎄요, 하도 팍팍한 생활만 하다 보니 예전처럼 순전히 감만 가지고 좋은 노래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작곡보다 목소리를 잘 다듬고 싶어요. 제가 요즘 노래 부르는 게 걱정된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웃어요. 하지만 선동렬 선수가 21년 동안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가 갑자기 선발투수로 설 수 있겠어요? 그 시간을 뛰어넘으려면 몇 배로 노력해야죠.”

‘21년 만에 마주친 그대’ 구창모와의 추억 토크


그런 그의 마음을 다잡는 좋은 친구는 배철수다. 인간 구창모에 대해 가장 정확히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다.
“언젠가 배철수가 제 모습을 보고 두 가지로 표현했어요. 굉장히 무모하면서 학습효과도 뛰어난 인간이라고요. 무모하다는 건 도전정신이 뛰어나다는 칭찬이지만 반대로 학습효과가 좋다는 건 남 이야길 잘 믿는 ‘팔랑귀’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비정과 냉정을 잘 구분해야 한다고 충고했어요. 비정은 갖추지 말아야 하지만 냉정은 뭐든 선택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요.”
함께 쌓아온 우정은 동시간대 라디오 방송 DJ 대격돌이란 타이틀로 맞붙게 됐다. 하지만 그는 “서로 경쟁하기보단 응원하고 싶다”고 말을 이어갔다.
“베테랑 DJ인 배철수가 이미 좋은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당분간 혼자 방송하겠지만 만약 게스트를 부른다면 첫 번째로 배철수를 부르고 싶네요. 같은 시간대여서 가능할진 모르겠지만요(웃음).”
그는 요즘 유행으로만 쏠리는 가요계가 안타깝다. MBC ‘놀러와’에서 방영된 세시봉 특집으로 7080세대의 노래가 다시 사랑받고 있지만 “이 역시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며칠 전 신문을 읽으니까 아이돌 음악이 TV에서 줄어들고 7080세대 음악이 뜬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이 꼭 좋지만은 않아요. 한국 대중음악이 발전하려면 모든 음악이 함께 성장하며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구창모는 MBC ‘우리들의 일밤’ 속 ‘나는 가수다’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프로 가수들을 상대로 등수를 매긴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얘기였다. 그는 “김범수나 박정현처럼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도 있지만 정엽처럼 자신만의 개성 있는 창법으로 노래하는 가수도 있다”며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아져 좋은 신인을 발굴하는 건 좋지만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아닌 것 같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김범수는 정말 노래를 잘 부르더라고요. 가수가 노래 부를 때 여러 표현 방식이 있는데, 제 생각엔 이 친구도 저랑 비슷할 거 같아요. 자기 노래에 먼저 감동을 받아야 노래가 잘 되는 스타일인 거죠. 소위 ‘자뻑’이라 해도 될까요(웃음).”
그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는 타고났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어머니와 외삼촌 등 외가가 특히 노래를 잘 불렀는데 그 끼를 이어받은 것 같다고 했다.
“예닐곱 살쯤 됐을 거예요. 누구네 집 마당에 라디오가 있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노래만 듣고도 음정과 가사를 단숨에 외워 매일 밤 식구들에게 들려줬죠. 그때부터 타고났다는 얘길 많이 들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된 아들 녀석도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합창단을 하고 있어요.”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가수의 길만 걷고 싶다는 구창모. “오랜 세월을 돌아온 만큼 더욱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옛날 인기에만 힘입어 활동하고 싶지 않아요. 전성기 때처럼은 어렵겠지만 꾸준히 무대에 서면서 팬들과 함께 늙어가고 싶어요. 2002년 월드컵 때 나온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문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에요. 그 문구처럼 키르기스스탄의 사업이 결실을 맺고, 오랜만에 가수로서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21년 만에 마주친 그대’ 구창모와의 추억 토크

1 구창모와 배철수는 ‘송골매’에서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지난 4월19일 KBS ‘7080콘서트’ 녹화 현장 모습. 2 구창모는 85년 솔로가수로 전향한 뒤 ‘희나리’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3 그해 정수라와 함께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가요제에 참가해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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