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어떻게 사십니까?

예순둘 전유성 ‘헬렐레’ 인생법

청도에 코미디 전용극장 짓고 ‘개나 소나 콘서트’ 열고

글·정혜연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2011. 05. 17

‘개그맨’이란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 공개 코미디 ‘개그콘서트’를 창시한 사람, 추억을 파는 카페 ‘학교종이 땡땡땡’으로 대박을 친 사람… 특이 경력으로만 칠판 한가득 채우고도 남을 남자 전유성.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온 그가 5월, 경북 청도에 코미디 전용극장을 연다고 해 화제다. 외관도 중국집 철가방 모양이라 “역시 전유성!”이란 탄성을 지르게 만든다.

예순둘 전유성 ‘헬렐레’ 인생법

철가방 모양의 코미디 전용극장을 소개하는 전유성. 소주병 라벨이 없는 이유는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서인데 벌써 한 지역소주 회사에서 후원하기로 했다.



인터뷰하기 참 힘들다. 전화를 걸어도 거절, 수소문을 해서 강연장으로 찾아가도 거절이다. 손사래를 치며 싫다는 사람에게 간청했더니 곰곰이 생각하다가 “알았어. 그럼 청도로 와”라며 주소를 적어준다. 홀연히 방송계를 떠나 경북 청도에서 유유자적 살고 있는 개그맨 전유성(62). 4월 중순 햇살 좋은 봄날, 그를 만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전유성은 1969년 MBC 개그 콘테스트로 데뷔, 70·80년대 ‘유머1번지’ ‘폭소대작전’ ‘좋은 친구들’ 등 수많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90년대 최초로 공개 코미디 ‘개그콘서트’를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 TV에서 보이지 않더니 95년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를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날렸고, 그해 인사동에서 카페 ‘학교종이 땡땡땡’을 열어 대히트. 이후 97년엔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2007년엔 ‘전유성의 구라삼국지’ 시리즈 10권을 펴내 명실공히 작가로도 자리 잡았다. 10년 전부터는 전북 예원대 공연예술학부 코미디전공 전임강사로 일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열 사람이 일생 동안 해도 다 이루기 힘든 일을 전유성은 40년 동안 홀로 가뿐하게 해냈다.
이 괴짜 아저씨의 사는 모습은 어떨까. 궁금증을 안고 청도에 도착하니 그가 보낸 승용차가 역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용차는 청도 중심가를 빠져나왔고,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거대한 철가방 모양의 전용극장이었다. 건물 앞에는 초록 셔츠를 입어 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전유성이 서 있었다.

타의 80%로 시작한 일이 어느덧 모양새 갖춰
차에서 내리자 그는 어서 오라는 인사를 건네며 극장 안으로 안내했다. 무대 위에서는 ‘전유성의 코미디시장’이라 적힌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춤을 추는 데 여념이 없었다. 좌석은 40석. 밖에서 보기보다 아담한 사이즈에 놀라고, 뒷벽이 뻥 뚫려 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특이한 구조에 놀라고, 절개형 무대 바닥이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아이디어에 또 한 번 놀랐다. 하나에서 열까지 철저한 계산 아래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전유성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담긴 극장이다.
“예전에 ‘개그콘서트’를 만들고 나서 다음에는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 고민해보니 ‘찾아가는 코미디’의 개념이 떠오르더라고. 시골 사람들한테 코미디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면 다들 좋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거냐고 물어보면 그냥 뭐 TV프로그램 아니면 장터에서 음담패설 하는, 순 그런 거야. 그건 정말 아니잖아. 지방에서도 라이브로 코미디를 볼 수 있게 하려면 코미디를 배달해야 하는 거지. 그게 우리의 테마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철가방 모양의 코미디 극장을 만든 거야.”
그가 말하는 ‘우리’는 ‘전유성의 코미디시장’ 단원들이다. 10년 전 1기생을 뽑은 이후 지난해 2기생을 뽑았고 그중 대부분이 올 초 수료했다. 1기생 중에는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신봉선·박휘순·안상태·황현희·김대범 등이 있는데, 그때 수료한 20명 중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이가 방송 3사 공채 개그맨으로 발탁됐다. 한 명은 연극을 하겠다고 방향을 바꿨는데 당시 ‘이’에 캐스팅돼 연극배우로 성공했다고 하니 전원 잘 풀린 셈이다. 이 정도면 개그맨을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선 ‘전유성의 코미디시장’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 났을 법도 하다. 전국에서 몰려온 개그 지망생을 가려 뽑는 그의 기준을 무엇일까.
“방송사 공채 개그맨 시험 세 번 이상 떨어진 사람들 중에서 선착순으로 뽑았어. 공채 시험이란 게 보면 운이야 운. 천 명 넘는 아이들 중에 일곱 명 뽑히고 그래. 채점표 가려놓고 똑같은 사람 가지고 다시 뽑으라면 그 일곱 명 다시 뽑힐 거 같아? 아니거든. 점심 먹고 들어갔는지, 그날 채점자 배변 상태가 좋은지, 온갖 이유에 따라서 당락이 결정되는 거야. 나도 네 번 떨어졌다가 겨우 붙었어. 한 번은 질문 하나도 못 받았고, 세 번은 딱 하나, 키가 몇이냐고 묻더라고. 이런 엿 같은 제도권 시험이 싫어서 난 그냥 개그하고 싶은 사람 오라고 했지. 그렇게 뽑으면 아이들이 끝까지 버텨서 뭐라도 배우고 나가.”

예순둘 전유성 ‘헬렐레’ 인생법

개관 공연을 위해 ‘전유성의 코미디시장’ 2기 단원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렇게 선발한 단원들을 오로지 전유성 자비로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개그를 가르쳤다.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왜 2기생들을 10년 만에 뽑았을까. 그는 “애초에 뭘 할 생각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이러고 있더라”며 코미디 전용극장을 만든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난 원래 방송 관두고 편하게 유유자적 살려고 했던 사람이야. 어떻게 하다가 농촌 관광개발 경연대회가 열리는 걸 보고 심심해서 나가봤지. 등수 안에 들면 돈을 줬거든. 생각나는 대로 말했는데 ‘구라’가 먹혔는지 공무원들 서른 명이 얘기를 더 듣고 싶다면서 강의료 30만원을 들고 찾아왔더라고. 그렇게 해서 12억원 지원받아 코미디 전용극장이 세워진 거야. 자의 반 타의 반도 아니고 타의가 80%야. 이제 공연할 사람 필요하니까 단원들도 겸사겸사 뽑아서 같이 먹고 자며 준비하는 거지. 예전에 연극하는 선배들 나이 먹어서도 그거 하겠다고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거 보면 ‘왜 저러고 사나’ 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내가 그러고 있어(웃음).”
5월 개장하는 코미디 전용극장의 입장료는 자장면 한 그릇 값과 같은 4천5백원. 한 회 관객이 가득 차면 18만원, 한 달이면 5백40만원이다. 25명 단원들의 한 달 휴대전화비도 안 되는 돈이지만 모두 고생이라 생각지 않고 열심히 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 전유성은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거지 고생이라 생각되면 절대 못 해”라며 그들의 열정만큼은 자신 있게 보장해준다.



개나 소나 콘서트·잡담쑈… 기획하는 공연마다 대박
인터뷰를 잠시 멈추고 “밥이나 먹으러 가지” 하며 앞장서는 전유성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청도 명물 반시(씨 없는 감)를 키워내는 감나무가 빽빽이 서 있다. 감탄을 하자 그는 자신이 직접 작사한 청도 반시 주제가를 틀었다. 댄스풍 리듬에 ‘엉덩이가 납작해서 반시~ 씨 없는 감 반시~ 운문사·백사 볼 곳 많은 청도로 오세요~’라는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이어 2009년 첫 기획안 ‘개나 소나 콘서트’의 주제곡도 들려주며 “괜찮지?” 하고 뿌듯해한다.
‘개나 소나 콘서트’는 전유성이 연출가로서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공연이다. 기획 2년 만인 지난해 이 공연을 보러 관광객 7천 명이 청도를 찾았을 만큼 인기를 끌자 청도군서도 올해부터 지원을 하기로 약속했다. 애초에 기획은 방송인 최유라씨가 “우리 애가 아파서 병원 갔다 왔어”라고 말한 것에서 시작됐다.
“언제부터인지 애완견 키우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애완견의 ‘엄마 아빠’라고 하잖아. 개가 아프다고 하질 않고 ‘우리 애가 아프다’라고 하지. 애완견도 가족인 시대가 온 거야. 그러면 애완견도 문화생활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마침 청도에 사계절 텅텅 비어 있는 야외공연장이 있었고, 개들을 위한 콘서트를 한다고 하면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올 것 같아서 열었지. 사람들이 꼭 애완견을 데리고 와야만 하냐고 묻는데 대답은 ‘그렇다’야. 애완견이 없다면? 많이 데리고 오는 분들과 같이 오면 되지.”
이 밖에도 그는 크고 작은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3월 한 달 동안 대구메트로아트센터에서 ‘개그 오네요(On Air)’ 공연을 열었고, 같은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천원짜리 콘서트’를 하며, 매달 청도에 있는 디자이너 최복호의 패션연구소에서 신선한 클래식 공연 ‘잡담쑈’도 선보인다.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문화 행사가 부족한 지방 특성상 찾아온 사람들로 하나같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런 기발한 공연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남이 안 할 걸 끊임없이 하려는 의무감과 책임감 같은 게 있어. 누구나 차별화시키고 싶어하는데 난 내가 찾은 ‘맥’이 하나 있지. 동호회 개념으로 사람들을 불러야 한다는 거야. 이런 시골에서 7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을 한다고 하면 오는 사람이 있겠어? ‘애완견 키우는 사람들만 와라’ 그러면 온다고. 만약에 기자 시험 봤다가 떨어진 사람들을 위한 콘서트를 한다고 하면… 그건 창피해서 안 오겠구나(웃음). 뭐 담배를 끊은 지 3개월 됐는데 다시 피우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회를 한다 그러면 오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인터뷰를 하는데 그의 휴대전화 벨이 끊임없이 울렸다. 그날따라 전유성을 찾는 손님들이 줄줄이 들이닥쳤다. 오후 3시쯤 되자 예원대 공연예술학부 코미디전공 졸업생 5명이 찾아왔다. 그 시간까지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제자들에게 그는 기꺼이 밥을 샀다. 무슨 일로 청도까지 왔냐고 묻자 “저희는 전국 공연장을 돌며 개그 공연하는 개그팀인데 한 달 공연을 끝내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 선생님께 조언도 듣고 힘도 얻으려고 왔습니다” 하고 답한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개그맨 이병진이 SBS ‘강심장’에 출연해 “전유성을 만나 가르침을 얻은 것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된 터였다. 개그계를 떠난 지 10여 년이 지난 그를 후배들이 끊임없이 찾는 걸 보면 마음 씀씀이가 어떤지 짐작 가고도 남는다.

예순둘 전유성 ‘헬렐레’ 인생법

한적한 청도에서 쉴 틈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전유성. 노동이 주는 즐거움이 큰 까닭인지 건강도 다시 회복했다.



“선배가 후배들한테 ‘삥’ 치지만 않으면 존경해. 선배랍시고 불러서 부당하게 일시키고 돈 떼먹고 그러면 싫어하지. 난 청도 와서 콘서트하는 애들한테도 돈 다 줘. 대신 도시에서 받는 거보다 적게 ‘촌 출연료’를 받으라고 하지. 근데 또 다 놓고 가려고 해. 남궁옥분이는 ‘1년에 한 번 와서 노래하는 건데 뭘 받어’ 그러면서 놓고 갔어. 그리고 방송에 ‘이빨’로 출연한 것만 치면 아마 내가 최고일 거야. 나도 그 애들이 왜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지. 개그맨들이 전부 어린 나이에 방송국 가서 딱 그 안에서만 생활하는 애들이잖아. 외부에서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세상에 재미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애들이 그걸 모르고 살아. 오죽하면 내 이야기만 갖고도 그렇게 재미있어할까.”

“예순둘이라고 별거 있어? 그냥 자유롭게 사는 거야~”
세상에 재미난 자 많다지만 그렇게 말하는 전유성이야말로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피식피식 나는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오늘 트위터에서 히트 치고 있는 그림인데 웃기지?” 하고 보여주기도 하고, 지나가다 현수막을 보며 “‘산불조심’이 말이 돼? ‘산불 내는 일 조심’이라고 해야지” 하고 지적한다. 이렇게 대화하기 좋아하고 어떤 화제든 소화해내는 전유성이 요즘 푹 빠져 있는 것은 트위터다.
“시간 보내기도 좋고 사람 사귀기도 좋은데, 사실 트위터가 나한테 잘 맞지는 않아. 거의 대답은 잘 해주는 편인데 말도 안 되는 걸로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한번은 어떤 사람이 돈다발 사진을 보내주면서 ‘제 마음입니다. 받아주세요’라고 하기에 ‘이런 건 돈 많이 가진 사람들이나 쓰지 나같이 없는 사람은 줘도 못 쓴다’고 하니까 또 어떤 사람이 ‘그럼 저 주세요’ 그러더라고. 아니 내가 가진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하는 건 좀 아니잖아. 그래도 뭐 ‘드릴게요’ 해야지 어쩌겠어. 코드가 안 맞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게 단골일 경우 더 미치겠어(웃음).”
그는 트위터로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 대체적으로 간결한 답변을 남기는데, 딱 한 사람에게만 한없이 부드러운 어투로 응대한다. 프로필을 보니 그의 딸 전제비씨다. 3년 전 그의 품을 떠나 한 남자의 아내가 된 후 전제비씨는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 전유성은 일이 있어 서울로 갈 때마다 딸의 집에서 머문다고 했다. 이어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 딸 결혼한 지 3년 됐다고 하면 다들 애 없냐고 물어봐. 아직 없다고 하면 왜 그러냐고 또 물어. 아니 근데 내가 우리 딸 성생활까지 알아야 해?”라며 짜증 섞인 투로 줄줄 말한다.
인터뷰하는 내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무심하게 툭툭 말을 내던지는 그를 보고 있자니 1년 전 위출혈로 고생했던 사람이 맞나 싶다. 그는 한때 18kg이 빠졌다가 지금은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다. 겉으로 보면 180cm가 넘는 큰 키에 풍채도 좋아 예순을 넘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시골 공기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 그래도 예의상 건강상태가 어떠냐고 묻자 “왜 이래. 반주도 한 잔씩 하는 사람이야. 오늘 같이 술이나 한잔해야겠네” 하며 우회적으로 건강하다는 뜻을 내비친다.
어느덧 그의 나의 예순둘. 교과서대로 산 적이 없는 전유성에게는 앞으로의 시간도 마냥 즐거운 일들로 가득할 것만 같다.
“우리 나이에 빨간 남방을 입으면 ‘나이가 몇인데 빨간 남방이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매뉴얼대로 사는 사람들이 그러는데 난 그런 거 상관없이 자유롭잖아. 예순 넘으니 뭔가 보이는 게 있냐고? 그런 거 없어. 그냥 시간 참 빠르구나 싶지. 서른이 됐으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해? 그동안 살아온 대로 살면 되는 거지. 난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게 즐거워. 심심할 틈이 없어.”
인터뷰를 마치고 저수지를 끼고 도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처음 도착했던 철가방 모양의 코미디 전용극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찬찬히 둘러보니 사방이 봄꽃 가득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호수까지 끼고 앉아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다. 이렇게 평온하고 고요한 곳에 있으면 기분이 어떨까.
“몽롱하고 행복하지. 그게 바로 내가 요즘 트위터에서 써먹고 있는 ‘헬렐레’란 말의 뜻이야. 난 청도가 지겹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어찌 됐든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전용극장 개관하면 말복에 또 ‘개나 소나 콘서트’ 해야 하고, 더울 때 대구 나가서 ‘열대야 콘서트’ 할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바빠져. 그래서 난 매일이 ‘헬렐레’야.”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