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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최신 교육 트렌드

‘스피치 킹’으로 키우려면…

열심히 듣고 정확히 말하고 자신감 넘치는

글·정혜연 기자 사진·현일수 기자

2011. 05. 09

서양인들은 거리 인터뷰를 하면 대부분 자신의 의견을 막힘없이 표현하지만, 한국인들은 쑥스러워서 거절하거나 한다 해도 조리 있게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말보다 글 위주의 한국 교육 시스템이 낳은 결과다. 그러나 막상 사회에 나와보면 글보다 말할 일이 더 많다. 각종 회의, 토론, 프레젠테이션, 강연 등에서 말로 의사를 전달하고 말로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스피치 킹’으로 키우려면…


1925년 영국의 조지 5세는 대영제국박람회 폐막 연설을 둘째 아들 요크 공작(조지 6세)에게 맡긴다. 수많은 대중 앞에서 긴장한 요크 공작은 말을 더듬기 시작하고 연설은 엉망진창이 된다. 더는 듣고 있는 것조차 괴롭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리는 청중들. 이후 요크 공작은 말 더듬는 것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1939년 왕위를 포기한 형에 이어 조지 6세가 된다. 왕이 된 그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은 정적(政敵)도 총칼도 아닌 마이크였다.
올해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영화 ‘킹스 스피치’는 아무리 왕이라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존경을 받기 어렵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그런 사실을 실감한다. 집에서 부모와 1:1로 대화를 할 때는 대충 말해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지만, 학교에서는 여러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성향은 다수와의 대화, 즉 ‘퍼블릭 스피킹’을 주도하는 쪽과 아예 못하는 쪽으로 확연히 갈린다. 이는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말을 잘하는 아이는 자신감을 얻어 적극적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퍼블릭 스피킹’의 기회도 늘어나 더욱 세련된 화법을 구사하게 된다. 실제로 국내외 CEO들 가운데 초·중·고등학교 시절 학급 리더를 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자녀들에게 ‘퍼블릭 스피킹’을 가르치려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달라진 대입 제도와 시대 변화를 느낀 부모세대가 스피치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나운서(주) 맛있는 스피치’의 김민석 대표(42)는 “요즘은 자녀의 말하기 교육에 관심을 갖는 아빠들이 많다”고 말한다.

‘스피치 킹’으로 키우려면…


“과거에는 사무실에 앉아서 보고서만 잘 써도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죠. 하지만 요즘은 거래처나 바이어들 앞에서 상품을 소개하거나 프로젝트를 보고해야 하는 상황도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상대를 설득해야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요. 말 잘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사실을 밖에서 일하는 아빠들이 먼저 안 거죠. 게다가 최근 입학사정관제 실시로 확실히 말의 중요성이 커졌어요.”
입학사정관제에서 면접과 토론은 당락을 가를 만큼 중요하다. 각종 서류와 상장을 한 묶음 준비해가도 입학사정관들은 수험생과 1:1 면접을 통해 서류의 내용이 얼마나 진실한지 또는 과장된 것인지 구별해낸다. 또한 ‘집단토론 면접’에서 상대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할 말만 외워 와 쏟아내는지, 아니면 상대 의견을 경청하고 자기 머릿속에서 떠오른 이야기를 하는지 판단해낸다. 이처럼 말하는 태도에서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질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김민석 대표는 “이제는 소통과 공감을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에서도 발표와 토론을 해야 하는 수업이 늘고 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까지 주입식 교육만 받아온 아이들은 준비한 내용을 읽기만 합니다. 취업시장에 나가도 마찬가지예요. 짧은 시간 동안 면접관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진심을 담아 자신의 포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등 4학년 말하기 습관이 평생 간다



‘스피치 킹’으로 키우려면…

‘맛있는 스피치’의 김민석 대표



김민석 대표는 스피치를 잘하려면 연령별로 준비를 차근히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는 집에서부터 아이가 또박또박 소리 내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학부모 중에서 ‘우리 아이는 왜 말을 제대로 뱉지 못하고 웅얼거리는 걸까요’라고 묻는 분들이 꽤 있어요. 아이들이 집에서 바르게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거실을 서재로 꾸미고 책만 보게 하는 가정이 많은데 읽는 만큼 말하는 교육도 해야죠. 유아기 때부터 발음을 똑똑히 하고 발성도 분명히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먼저 시범을 보이고 따라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이처럼 발음과 발성 훈련을 기본으로, 짧은 문장이라도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표현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다 보면 자연히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에도 자신감이 생긴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 되면 말하는 방법보다는 말하는 태도를 바로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김 대표는 “이 시기 몸에 밴 말하기 습관이 평생을 간다”고 말한다.
“특목고 입시에서 면접관들은 학생이 ‘얼마나 말을 잘하느냐’보다 말하는 태도와 그 속에 담긴 인성을 주의 깊게 봐요. 면접 장소에 들어와 면접관에게 바르게 인사하고 앉아 또렷하게 면접관을 주시하고 그들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하는 아이라면 벌써 점수의 절반은 딴 셈이죠. 이런 식의 말하기 태도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형성됩니다. 이 시기에 재미 삼아 욕설을 배운 아이들은 어른이 돼도 습관적으로 욕을 내뱉게 됩니다. 욕설은 절대 입에 담지 못하게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습관을 키워줘야 합니다.”
중학교는 토론력을 키우는 시기다. 토론을 잘하려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논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이가 직접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스스로 준비하고 정리한 내용들은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기 때문에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공부가 된다. 이것이 바로 자기주도학습이다. 김 대표는 “토론이 가장 마지막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단계별로 말하기 교육을 시키세요~

STEP 1 발음·발성·호흡 훈련

또박또박 말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의 말하기 습관도 중요하다. 아이 앞에서 어휘를 정확히 구사하고 아이가 발음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쳐줘야 한다. 이 밖에 책을 읽을 때, 대화를 할 때에도 또박또박 발음하게 한다. 또 평소 복식호흡을 통해 배에 힘을 준 상태에서 발성 훈련을 하는 것도 좋다. 이런 식으로 힘 있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면 아이들은 자연히 말하기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STEP 2 논리적으로 말하는 훈련
아이가 요구사항을 말하거나 어떤 주장을 할 때 ‘왜?’라는 질문에 답하도록 훈련시킨다. 예를 들어 아이가 스마트폰을 갖고 싶다고 조를 때 그냥 사주지 말고 “그게 너한테 왜 필요하니?”라고 물은 뒤 아이가 “공부를 할 때 사전을 찾아보고, 인터넷으로 강의도 들으려고요”라는 등 설득력 있게 논거를 갖춰 답하면 사주든지 해야 한다. 또 아이들의 경우 어휘력이 부족해 정형화된 답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표현을 쓰도록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남들과는 다르게 창의적으로 말하도록 책·신문 등을 읽힌 뒤 요약해서 말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STEP 3 가정된 상황 하에 말하는 훈련
어느 정도 말하기 실력을 갖추면 특정 상황에 맞춰 말을 할 수 있도록 연습시켜야 한다. 대통령 후보가 돼서 연설을 하고, 영화 소개 프로그램의 MC가 돼서 진행을 하는 등 전략적 말하기 훈련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퍼블릭 스피킹’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부모는 특정 상황을 제시할 뿐 자료 준비는 스스로 하게끔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준비 과정 또한 공부의 일부이기 때 문이다. 아이가 준비한 내용을 말할 때 가족 모두가 경청하고 자세나 말하는 습관에 대해 조언을 한 뒤 칭찬을 해주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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