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부할 때 필요한 건 딱 한 가지예요. ‘우리말도 아닌데 틀리면 어때?’ 하는 자신감이죠. 영어에 대한 두려움과 ‘무조건 잘해야 된다’는 욕심만 버리면 언제부턴가 술술 영어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거예요.”
지난 7월 말 KBS 라디오 영어교육 프로그램 ‘굿모닝 팝스’의 새 DJ를 맡아 매일 아침 전 국민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근철씨(41)는 “영어 잘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했다. 80년대 과외금지조치 아래서 중학교를 다녀 영어학원 한 번 가본 적 없고, 해외 어학연수도 다녀오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그는 “나는 그 덕에 훨씬 쉽고 재밌게 영어를 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게 영어는 틀려도 상관없는 대상이었던 거죠. 더 솔직히 말하면 뭐가 맞고 틀린 건 줄도 몰랐고요(웃음). 아마 어릴 때 학원에 다니며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들과 계속 비교당했다면 제가 얼마나 영어를 못하는지 알게 돼 위축됐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 아무 외국 사람이나 붙잡고 얘기를 나누고 재밌어했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영어 학원이나 교재가 대중화되기 전 외국인들과 만나 친구가 되며 자연스레 영어에 빠져든 그는 대학 졸업 뒤 지금까지 17년 동안 영어강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영어를 좋아하고 아이와 함께 공부하겠다는 자세만 있다면 부모도 얼마든지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영어를 잘 몰라도 상관없어요. 발음 좀 틀리면 어떤가요. 자전거를 배울 때 가장 어려운 건 맨 처음 굴러가는 추진력, 즉 ‘모멘텀(momentum)’을 얻는 거잖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일단 한번 굴리는 데 성공하면 그 뒤부터는 신나게 타기만 하면 되죠. 영어공부도 마찬가지예요. 가장 중요한 건 ‘모멘텀’이고, 그걸 엄마가 만들어주면 되는 거예요.”
이씨는 그래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건 영어를 즐거운 대상으로 여길 만한 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침마다 아이와 함께 ‘굿모닝 팝스’를 듣는 것도 아이에게는 신나는 사건이 될 수 있어요(웃음). 아주 사소한 것도 엄마가 어떻게 유도하느냐에 따라 대단한 경험이 될 수 있거든요. ‘오늘은 뭐 배웠니? 엄마한테 가르쳐주면 안 돼?’ 하고 물어보고 ‘와, 잘하는데~’ 칭찬하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는 거예요. 이런 대화와 칭찬이 아이들에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영어를 재밌게 느끼게 하죠.”
“영어에 재미 느끼게 하고 하루에 한 가지 표현은 꼭 익히게 하세요”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하루에 한 표현이라도 영어로 말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누다 아이에게 “오케이, 허니(Okay, Honey)” “허니, 리드(Honey, read)”와 같이 ‘허니’라는 말 한마디만 붙여줘도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한다.
“처음엔 하루에 하나씩만 영어로 표현하세요. 많이 하려고 하면 아이에게 부담을 줘서 오히려 흥미를 잃게 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하루 종일 ‘렛츠 고(Let’s go)’ 하나만 하는 거죠. 그걸 일주일 내내 해도 돼요. 누구나 똑같은 걸 백 번 말하면 습관이 되거든요. 그러면 머릿속에 ‘아, 영어는 그냥 말이구나. 틀리든 말든 그냥 하면 되는 거구나’ 하는 세포가 형성됩니다. 다음에는 ‘렛츠 잇(Let’s eat)’, ‘렛츠 리드(Let’s read)’ 하며 점점 표현을 늘려가는 거죠.”
이씨는 “과학적으로 볼 때 간단한 습관이 형성되는 데는 보통 2주가 걸리고, 복잡한 습관이 만들어지는 데는 3주가 걸린다고 하더라”며 “하루에 한마디씩 영어로 표현하는 습관을 들이려면 최소한 21일 동안은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다음 단계는 어휘력을 늘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씨는 “컵·체어·테이블 등 아주 쉬운 것부터 영화 제목, 노래 제목 등까지 영어 단어를 계속 들려주라”고 조언했다.
“엄마들이 간혹 착각하는 게 있어요. 아이들이 외국에 1년 정도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말을 좀 하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학원에 상담하러 온 부모들 대부분이 ‘우리 아이가 말은 잘하는데 문법은 도대체 몰라요’라고 합니다. 이건 옛날 할머니들이 말은 하는데 글은 못 쓰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사실 문장 패턴 1백 개, 기본 동사 3백 개만 알면 일상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거든요. 하지만 글을 쓰려면 생각을 종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알아야 해요. 체계적으로 문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영어를 잘한다고 볼 수 없죠.”
그래서 이씨는 일단 단어를 웬만한 수준에 올려놓은 뒤 즐겁게 문법을 배우도록 유도하라고 권했다. 문법을 쉽게 익히는 방법은 영어로 된 책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아이들은 무조건 그림이 특이하고 재미있는 책을 좋아해요. 어른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고 그림은 많고 어휘수가 적은 책을 골라 읽게 하세요. 영어공부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재미’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씨는 “아이가 영어로 된 게임을 좋아한다면 그걸 통해 공부하도록 해도 괜찮다”고 조언했다.
“아이가 좋아한다는 건 그만큼 자극이 크다는 얘기거든요. 자극은 바로 학습효과로 연결되고요. 한 연구 결과를 보면,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수학문제를 눈으로만 풀게 하고 다른 한쪽은 입으로 소리내 읽고 쓰면서 풀게 했더니 소리를 내며 풀게 한 쪽이 학습효과가 3배나 높게 나타났대요. 읽고 쓰며 재미있게 공부해야 학습능률이 오른다는 거죠. 그런 입장에서 볼 때 게임도 괜찮아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롤 플레잉 게임이나 ‘길드 워’ 등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와 친해지게 하세요.”
자녀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치려는 엄마에게 그가 하는 마지막 조언은 ‘절대 화내지 말라’는 것. 아이에게 영어를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다가도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영어와 관련된 꾸중을 하는 순간 아이는 영어를 놀이가 아닌 공부나 의무로 느끼게 될 거예요. 절대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게 엄마에겐 가장 어려운 일일 수 있지만 그 고비만 잘 넘기면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꾹 참아보세요(웃음). 언젠가 스스로 영어에 재미를 느끼고 공부에 매달리는 자녀를 보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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