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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이두식 교수의 어린이 미술교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마음껏 그리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구술정리·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ㆍ김성남 기자

2006. 01. 10

홍익대학교 미대 학장 이두식 교수는 2년 전부터 7세에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 어린이들의 미술을 지도해왔다. 아이의 창의력을 키워주기보다 테크닉 향상에 치중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는 이두식 교수가 이 달부터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미술 지도법을 들려준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마음껏 그리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흔히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동물원을 그려봐라” “소풍 간 것을 그려라” 하면서 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말 아이의 그림 실력을 키워주고 싶다면 “뭘 그려볼래?” 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좋다. 자신이 무엇을 그릴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벌써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다. 또한 아이가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그리게 한다. 엄마는 아이가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리게 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된다.
성급한 엄마들은 참지를 못한다. “동물원을 그린다고 하고서는 식물원 같이 그렸네?” “왜 동물원에 동물이 없니?”라고 핀잔을 준다. 이럴 때 상상력, 언어구사력이 풍부한 아이는 “동물들이 숲속에 숨었어요”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상상의 세계는 이렇게 기발하다.
이때 엄마가 “동물원을 그렸으면 동물이 있어야지”라고 말하면 아이의 상상의 날개는 꺾인다. 게다가 언니나 오빠가 “말 그림이 토끼같이 보인다”는 식으로 비평을 하고 개입하게 되면 아이는 더 이상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누가 뭐라 하지 않을까?’주위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상식에 어긋난 그림, 아무런 문제 되지 않아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마음껏 그리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어른들은 제한적으로 생각한다. 소풍 가는 그림이라면 시냇물, 나무, 숲, 바위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음료수병, 김밥, 과자 같은 것을 소풍 가는 그림이라고 그리기도 한다. 이것도 얼마든지 괜찮은 소풍 그림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의 눈에는 소풍 가서 먹는 음료수나 김밥이 더 흥미로울 수 있는 것이다.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야는 어린이의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는데도 뛰어난 화가로 평가받는다. 또한 화가들은 아이들의 정서, 아이들의 시선을 일부러 닮으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미적 감각을 어른의 관념의 틀 안에 가두면 상상력이 발휘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눈, 아이들의 상상력이 무엇보다 가치 있다는 전제하에 그림 지도를 해보자. 우선 초등학교 3~4학년생까지 아이들에게는 그림 그리기를 지도한다는 생각을 버리도록 한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칭찬을 해주는 것으로 족하다. 엄마는 아이가 마음껏 상상하여 세상을 표현하게 하고 “정말 잘 그렸구나!” 하고 칭찬만 하면 된다. 빈 말이 아니라 실제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어느 것 하나 못 그린 것이 없다.
어른들은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 등과 같이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잘 그렸다고 본다. 또 여러 사람이 공감할 수 있기를 원한다. 심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무지의 소치다. 어른들의 고정관념일 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생까지는 적어도 그림을 ‘이렇게 그려야 한다’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은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갖추면 된다. 여유가 있어서 아이에게 그림방을 마련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잠자는 방이나 거실을 그림 그리는 방으로 활용해도 괜찮다.
아이의 손이 닿는 선까지 벽면에 켄트지나 전지 등 그림 그릴 종이를 붙여놓는다. 엄마가 조금 더 뒤치다꺼리를 하면 된다. 그림 재료는 크레파스나 수채화 도구 정도만 생각하는데, 아이한테도 가능한 한 모든 재료를 다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마음껏 그리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아이들의 그림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어른들의 고정관념에 맞춰 그리도록 강요하면 아이들의 상상력은 꺾이게 된다.


종이에 그릴 수 있는 도구라면 연필, 목탄, 수채 물감, 아크릴 물감 등을 다 갖추어주는 것이 좋다. 또 손이나 옷에 물감을 묻히고, 방바닥에 흘려 지저분해졌다고 바로바로 닦거나 치우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기보다는 마음껏 그릴 수 있도록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놓거나 물감이 묻어도 신경 쓰이지 않는 옷을 입히는 것이 좋다.
아이가 해를 까맣게 칠하거나 바다를 빨갛게 칠하는 등 상식에 어긋난 그림을 그리면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도 저학년생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해는 그냥 큰 빛이다. 무슨 색을 쓰든 상관없다. 또 물감 칠하는 법, 연필 잡는 법, 크레파스 터치 등을 어른들의 식으로 교정해주려고 할 필요도 없다. 시행착오를 하고 스스로 고쳐나가는 것도 아주 중요한 그림 공부다. 낙서를 보고 화를 내는 엄마들이 많은데, 낙서나 글씨도 결국 공부가 된다. 글자는 조형미와 연관이 있다. 무한한 상상을 하다 보면 글씨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글씨가 되기도 한다.

사물을 묘사하는 훈련은 초등학교 5~6학년 때 시작하면 돼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마음껏 그리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어린이의 자유분방한 상상이 회화적 가치가 있다는 것은 바스키야는 물론이고 20세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평가받는 피카소, 마티스, 샤갈 같은 화가들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어른들의 편협한 관념으로는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마티스의 ‘붉은 색의 조화’ 같은 작품은 빨간 평면 위에서 뛰고 춤추고 작곡가가 화음을 내듯이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티스는 자신의 그림 속 여자의 팔이 너무 길게 그려지지 않았냐는 질문에 “내가 그린 것은 그림이지 진짜 여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그린 검은 해도 진짜 해가 아니라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다.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물론 사물을 묘사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초등학교 5~6학년 때 시작하면 된다. 묘사력 훈련에 돌입하기 전까지는 천진난만한 눈으로 세계를 보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피카소나 루오 같은 이는 어릴 때부터 묘사력이 뛰어났던 것이 사실이지만 회화 기법상 아이에게 너무 일찍 묘사력을 가르치면 상상력을 빈곤하게 할 수 있다.

이두식 교수는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마음껏 그리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홍익대 미대 학장. 1947년 경북 영주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화가를 꿈꾸는 아들 손을 잡고 해마다 기차로 8시간 거리인 서울로 국전을 보러 올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정성 덕분에 그는 과외 한번 받지 않고 서울예고에 합격했고 홍익대 등을 거치면서 추상미술 분야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 2000년 로마 플라미니오 지하철역에 아시아 화가로는 처음으로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아이에게 미술 지도를 하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mayhee@donga.com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성심껏 답변을 드리고 ‘이두식 교수의 어린이 미술교실’코너에서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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