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글 한 줄 제대로 쓸 수 없을 때 늘 도시의 거리와 자연이 낸 길을 걷곤 했다. 잡념이 가라앉으면 몰랐던 많은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늘 마음만 먹으면 닿으리라 했던 강화도도 걸으면 달리 보인다. 더 풍성한 이야기가 자꾸만 말을 건네 미소로 반가움을 대신한다.
바다와 역사가 바람결을 빌려 다시 보이는 그 길에 멕시코 청년 크리스티안 부르고스와 동행했다. ‘비정상회담’을 통해 알게 된 그는 모처럼 내게 에스파냐어로 실컷 수다를 떨었다. 길과 여행과 집에 대한 이야기. 오늘, 강화도는 그에게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싶어 발끝에 설렘이 내려앉았다.
이제는 다리로 연결된 강화도의 이웃 섬 석모도에 아침 일찍 도착하는 여정이다. 바다와 바람이 가장 아름다워 따로 ‘바람길’이라는 이름을 얻은 강화나들길 11코스 제방길을 함께 걸었다. 사계절 사진이 아름답게 나오는 걷기길로 SNS에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먼 바다에서 닿은 바람이 제법 뭉근하게 갈대를 건드리고 지나는 길이다. 봄을 미리 기대해보는 이 길에서 크리스티안도 살짝 들떴는지 기분 좋은 웃음이 더 환하다.
지난해 여름, 석모대교가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기 전까지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가며 갈매기의 영접을 받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더 이상 승객도 갈매기도 오가지 않지만 부두는 조금 쓸쓸하게, 여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밤을 기다려 석모도 미네랄 온천을 찾았다. 아토피, 근육통 등에 효과가 있다는데, 노천탕에서 석양을 바라보면 마음도 가벼워질 것 같아서다. 최근 ‘무한도전’에 나와 사람들로 붐비니, 이 또한 신나는 풍경이다.
강화도가 숨겨놓은 보석을 발견한 반가움에 잠시 말을 잊었다. 석모도 선착장에서 조금 걷다 보면 나타나는 석포리 마을 들머리에서 노란 지붕과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19세기 말 영국 해군이 주둔하며 강화도와 석모도에 무려 12개의 성공회 성당이 들어섰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성모마리아성당이다. 교인 2명과 여사제가 올리는 미사가 일요일 아침 조용히 집전되고 있었다. 백 년이 되었다는 이 작은 성당에 그간 얼마나 많은 기도가 이어졌던 걸까? 미사 후 성당의 풍금으로 크리스티안의 연주를 듣는 행운도 얻었다. 어디서나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참 우리랑 비슷하다.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아 세상은 더욱 풍성해지고 우리의 걸음은 더 가벼워졌다.
강화도의 근대사는 섬 곳곳에서 시간의 이야기를 무시로 건넨다. 강화읍내의 소창박물관은 기저귀 감으로 많이 쓰이는 전통 면직물 소창과 더불어 전국적인 인기를 모았던 화려한 문양의 인견을 생산하던 옛 평화직물 자리에 문을 연 독특한 분위기의 체험관이다. 1939년 만들어져 일본풍이 더해진 근대 한옥에서 여행자들은 베틀에 앉아 자신만의 무늬를 짜 본다.
나도 크리스티안도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강화 화문석까지 짜 보겠다고 나섰다.
“보세요! 오백 불상들이 저마다 표정이 다 달라요. 저마다 기도와 이야기, 의미를 다 달리하고 있는 듯해요!”
강화도는 우아한 낙조로 유명해 매일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비지만, 동서를 마음껏 넘나드는 다이내믹한 해안선 덕분에 일출(사진 위)과 일몰(사진 아래)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8코스에서 한 걸음 비켜서 있는 작은 섬 동검도의 동검북돈대에서 아침에 맞이한 해를 7코스 최고의 낙조 조망지인 장화리에서 보내주는 것이다. 그러니 하룻밤 머무는 걷기 여행이 딱 좋다. 강화도는 길을 부지런히 걷는 자에게 하루를 꽉 채운 감동을 선물하는 땅이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피해 온 임금에게 진상한 유래 때문인지 강화도 음식은 간이 세지 않고 재료의 맛을 살리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새우젓과 돼지갈비를 맑은 전골로 끓인 젓국갈비, 가을의 꽃게탕, 게장백반이 유명하고, 봄에 꽃구경한 여행객은 밴댕이회무침을 꼭 먹고 간다. 갯벌장어는 일부러 찾아와 먹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인기 있다. 강화도의 맛에 지역적 특징이 잘 간직된 이유를, 이 섬을 천천히 여행해보면 깨닫게 된다.
석포여객터미널-성모마리아성당-어류정항-민머루해변-제방길-보문사
제9코스(교동도 다을새길 16km, 도보 5시간)
월선포선착장-교동읍성-대룡시장-교동향교-월선포선착장
제7코스(낙조 보러 가는 길 20.8km, 도보 6시간 40분)
화도공영주차장-내리성당-일몰조망지-북일곶돈대-갯벌센터-마니산수련원-화도공영주차장
*화도공영주차장에서 갯벌센터까지 걷고 제20코스-제8코스로 이어 걸어도 좋다. 일출은 제8코스에서 가까운 동검북돈대에서 볼 수 있다.
손미나 작가와 크리스티안은 강화나들길 걷기에 두루누비(durunubi.kr) 사이트를 활용했습니다.
director 김민경 기자 writer 남기환 photographer 김성남 조영철 기자 동영상 연출_김현우 PD 조연출_강지원 PD designer 김영화 제작지원 한국관광공사 취재협조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매니지먼트 곽상호 스타일리스트 김기만 어시스트 이연성
늘 마음만 먹으면 닿으리라 했던 강화도도 걸으면 달리 보인다. 더 풍성한 이야기가 자꾸만 말을 건네 미소로 반가움을 대신한다.
바다와 역사가 바람결을 빌려 다시 보이는 그 길에 멕시코 청년 크리스티안 부르고스와 동행했다. ‘비정상회담’을 통해 알게 된 그는 모처럼 내게 에스파냐어로 실컷 수다를 떨었다. 길과 여행과 집에 대한 이야기. 오늘, 강화도는 그에게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싶어 발끝에 설렘이 내려앉았다.
이제는 다리로 연결된 강화도의 이웃 섬 석모도에 아침 일찍 도착하는 여정이다. 바다와 바람이 가장 아름다워 따로 ‘바람길’이라는 이름을 얻은 강화나들길 11코스 제방길을 함께 걸었다. 사계절 사진이 아름답게 나오는 걷기길로 SNS에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먼 바다에서 닿은 바람이 제법 뭉근하게 갈대를 건드리고 지나는 길이다. 봄을 미리 기대해보는 이 길에서 크리스티안도 살짝 들떴는지 기분 좋은 웃음이 더 환하다.
지난해 여름, 석모대교가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기 전까지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가며 갈매기의 영접을 받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더 이상 승객도 갈매기도 오가지 않지만 부두는 조금 쓸쓸하게, 여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어부와 캠핑족, 조용한 순례자가 모이는 어류정항과 ‘무한도전’ 나온 미네랄온천
봄이 완연해지기 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석모도 어류정항에서 함께 바다를 바라보았다. 겨울 바다에 정박한 배와 조업을 끝낸 어부들이 그물을 널고 그 옆으로 캠핑카가 즐비한 풍경. 여느 작은 항구들과는 또 다른 광경이 이곳에 펼쳐진다. 크리스티안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과 생기를 지닌 한국의 작은 항구가 뜨거운 햇살 아래 활기 가득한 고향의 항구들과 얼마나 다른 느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봄이 깊어지면 어류정항은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며, 먼 방파제를 건너온 바람을 마다 않고 한참 서 있었다.밤을 기다려 석모도 미네랄 온천을 찾았다. 아토피, 근육통 등에 효과가 있다는데, 노천탕에서 석양을 바라보면 마음도 가벼워질 것 같아서다. 최근 ‘무한도전’에 나와 사람들로 붐비니, 이 또한 신나는 풍경이다.
가족이 함께 걸어봐야 할 강화갯벌
강화도가 들려주는 바다의 이야기에 갯벌은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덧입혀 더 풍성해진다. 시간이 난다면 강화나들길 7번 코스에서도 세계 5대 갯벌 가운데 하나가 펼쳐지는 화도면의 강화갯벌센터를 들러보길 권한다. 밀물과 썰물이 오가며 만든 갯벌의 무늬와 아름다운 질감이 햇살을 반사시키며 아찔하고 장엄하다.강화도의 시간을 따라 걷는 길
강화 문화 체험이 가능한 소창박물관.
강화도의 근대사는 섬 곳곳에서 시간의 이야기를 무시로 건넨다. 강화읍내의 소창박물관은 기저귀 감으로 많이 쓰이는 전통 면직물 소창과 더불어 전국적인 인기를 모았던 화려한 문양의 인견을 생산하던 옛 평화직물 자리에 문을 연 독특한 분위기의 체험관이다. 1939년 만들어져 일본풍이 더해진 근대 한옥에서 여행자들은 베틀에 앉아 자신만의 무늬를 짜 본다.
나도 크리스티안도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강화 화문석까지 짜 보겠다고 나섰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SNS스타가 된 섬 교동도
교동도는 뱃길로 드나들던 때부터 강화도에서 만나는 가장 이색적인 여행지로 유명했다. 북녘과 지척이어서 오랫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던 교동도는, 되레 그렇게 정지된 수십 년 전의 모습이 반가워 여행자들을 불러 모았다. 잊었던 소읍의 풍경과 나무 문틀의 점포가 이어진 시장, 그 공간을 살아가는 교동도 사람들을 읍성 성벽을 지나 만나러 간다.올라갈 만한 이유가 있는 오르막길의 끝, 보문사
바람길 11코스의 종점인 석모도 보문사는 낙가산 자락에 온갖 영험한 시간을 가득 남겨두었다. 이 길을 따라 일주문을 지나니, 먼 바다를 향해 무사와 풍어를 기원했던 이곳 사람들의 바람으로 천년을 지나며 완성한 오백나한상과 석굴사원, 와불과 눈썹바위 마애관세음보살이 어느 것 하나 지나칠 수 없는 장관으로 어우러진다. 33명의 관음보살이 아로새겨진 탑신 주위, 바다를 바라보는 오백나한에게서 크리스티안은 눈을 쉬 떼지 못한다.“보세요! 오백 불상들이 저마다 표정이 다 달라요. 저마다 기도와 이야기, 의미를 다 달리하고 있는 듯해요!”
강화도는 우아한 낙조로 유명해 매일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비지만, 동서를 마음껏 넘나드는 다이내믹한 해안선 덕분에 일출(사진 위)과 일몰(사진 아래)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8코스에서 한 걸음 비켜서 있는 작은 섬 동검도의 동검북돈대에서 아침에 맞이한 해를 7코스 최고의 낙조 조망지인 장화리에서 보내주는 것이다. 그러니 하룻밤 머무는 걷기 여행이 딱 좋다. 강화도는 길을 부지런히 걷는 자에게 하루를 꽉 채운 감동을 선물하는 땅이다.
강화도의 맛
강화도엔 시장이 많고 규모도 크다. 특히 매월 2일과 7일 열리는 강화읍 풍물시장에서는 강화에서 나는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데, 순무 김치를 담가 파는 가게가 많다. 매운 음식을 한국인보다 잘 먹는 크리스티안은 아주머니들이 내미는 순무 김치를 주는 대로 먹었다.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피해 온 임금에게 진상한 유래 때문인지 강화도 음식은 간이 세지 않고 재료의 맛을 살리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새우젓과 돼지갈비를 맑은 전골로 끓인 젓국갈비, 가을의 꽃게탕, 게장백반이 유명하고, 봄에 꽃구경한 여행객은 밴댕이회무침을 꼭 먹고 간다. 갯벌장어는 일부러 찾아와 먹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인기 있다. 강화도의 맛에 지역적 특징이 잘 간직된 이유를, 이 섬을 천천히 여행해보면 깨닫게 된다.
일출과 일몰, 육지와 바다가 바닷바람으로 이어지는 섬, 강화
손미나와 크리스티안이 추천하는 강화나들길
제11코스(석모도 바람길 16km, 도보 5시간)석포여객터미널-성모마리아성당-어류정항-민머루해변-제방길-보문사
제9코스(교동도 다을새길 16km, 도보 5시간)
월선포선착장-교동읍성-대룡시장-교동향교-월선포선착장
제7코스(낙조 보러 가는 길 20.8km, 도보 6시간 40분)
화도공영주차장-내리성당-일몰조망지-북일곶돈대-갯벌센터-마니산수련원-화도공영주차장
*화도공영주차장에서 갯벌센터까지 걷고 제20코스-제8코스로 이어 걸어도 좋다. 일출은 제8코스에서 가까운 동검북돈대에서 볼 수 있다.
손미나 작가와 크리스티안은 강화나들길 걷기에 두루누비(durunubi.kr) 사이트를 활용했습니다.
director 김민경 기자 writer 남기환 photographer 김성남 조영철 기자 동영상 연출_김현우 PD 조연출_강지원 PD designer 김영화 제작지원 한국관광공사 취재협조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매니지먼트 곽상호 스타일리스트 김기만 어시스트 이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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