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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농산물의 맛있는 반전 최현주 어글리어스 대표

글 이현준 기자

2021. 09. 07

맛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버려져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그저 ‘못생겼다’는 이유로 폐기되는 못난이 농산물의 운명이다. 못난이 농산물 정기구독 서비스로 소비자·농가·환경 모두를 살리는 최현주 어글리어스 대표를 만났다. 

전 세계 인구의 9분의 1이 기아에 허덕이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지구에 음식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건 아니다. 이는 결국 어딘가에선 음식물이 남아 버려진다는 것.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40억 톤의 음식물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3억 톤이 폐기되고 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한국에서 하루 발생한 생활 폐기물 5만8천 톤 가운데 약 28%인 1만6천 톤이 음식물 쓰레기다. 주목할 점은 음식물 쓰레기의 65%가 먹기도 전에, 생산·유통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크기, 상처 등 못생겼다는 이유로 판매되지 못하거나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버려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환경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식량의 생산부터 폐기까지의 과정에서 생산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1백37억 톤에 달하는데, 이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6%에 해당한다. 여기에 버려진 음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체 배출량의 8%에 달하는 온실가스가 추가로 발생한다.

단순히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폐기되는 못난이 농산물을 소비한다면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답이 나온다.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없는 건 아니다. 2월 한국소비자원이 소비자 2천 명을 대상으로 못난이 농산물 구매 실태 및 인식을 분석한 결과 응답자의 60.5%가 ‘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그중 95.5%가 ‘재구매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못난이 농산물은 일반적인 농산물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못난이 농산물은 대개 ‘벌크’ 형태로 판매되고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대용량으로 구매한 농산물은 먹다 남아 버려지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어글리어스’는 이러한 못난이 농산물의 문제를 인식, 지역 농가와 직접 연결을 통해 지난해 10월부터 동종 업계 최초로 못난이 농산물을 다품종 소량 포장해 1주 혹은 격주로 배송하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모든 농산물은 유기농이며, 7~8종을 매번 ‘랜덤 박스’ 형식으로 배송한다. 가격은 ‘스탠더드’ 박스가 회당 1만5천5백원, ‘점보’ 박스가 2만5천원이다. 시중의 친환경 농산물 대비 10~30% 저렴한 가격이다.

시판되는 상품 못지않은 품질, 저렴한 가격, 환경을 위할 수 있다는 가치에 소비자들의 호응이 높다. 특히 가치소비 성향이 강한 MZ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구독 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때 7명에 불과했던 회원은 올해 8월 기준 3천여 명으로 늘었다.



어글리어스를 이끄는 최현주(32) 대표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후 한 스타트업에서 IT 기획자로 일하다 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못난이 농산물을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다. 농업과는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았던 최 대표가 못난이 농산물과 사랑에 빠지게 된 사연은 뭘까.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편견은 그만

어글리어스의 정기구독 서비스로 제공되는 못난이 농산물.

어글리어스의 정기구독 서비스로 제공되는 못난이 농산물.

못난이 농산물 정기구독 서비스는 최초죠.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계기가 있나요. 평소에 농업이나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든가 하는.

농업에 관심이나 조예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먹는 걸 엄청 좋아해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있었죠(웃음). 먹는 것이 삶의 기반이기에 음식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환경에 대한 관심도 있는 편이었고요.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어요. 해외 기사를 보다가 그저 생김새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농산물이 많다는 걸 알게 됐는데, 우리나라 사정도 다르지 않더라고요. 해결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해 4월부터 사업을 준비해서 10월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어요. 기존엔 못난이 농산물을 팔더라도 대개 대용량이라 모두 소비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서 다품종 소용량으로 판매하게 됐어요.

못난이 농산물 수집부터 배송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전국의 농가와 네트워킹을 형성했어요. 뜻이 맞는 농가를 찾기 위해 1년간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죠(웃음). 고구마, 당근, 감자같이 주기적으로 못난이가 나올 수밖에 없는 농산물이 있는데 이런 것은 미리 계약을 맺어서 수집하고, 일시적으로 판로가 막혔거나 날씨 때문에 못난이가 나오거나 하는 것은 유동적으로 수집해요. 배송 전날까지 공장으로 모아 수작업으로 소포장해 발송하고요. 고객이 받는 농산물은 수확한 지 2~3일 내외의 신선한 것들이에요.

매주 그러한 과정을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몸이 힘든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에요. 가장 어려운 문제는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편견이에요. 농산물의 특성상 분류, 배송 과정에서 하자가 나올 수도 있거든요. 저희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미처 검수를 하지 못해 품질이 떨어지는 농산물이 배송될 수 있어요. 이런 경우엔 당연히 환불이나 교환 등 보상을 해드리죠. 하지만 하자가 발생하면 ‘못난이가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편견을 없애려고 더 철저히 품질 검사를 하죠.

‘편견’이라는 말은 못난이 농산물의 품질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인가요.

네. 저는 못난이 농산물이 곧 품질이 나쁜 농산물이라는 인식이 어서 깨졌으면 좋겠어요. 농산물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게 아니라 자연환경, 일조량, 강수량 등에 따라 다른 형태로 생겨나는 게 너무나 당연하거든요. 사람이 인위적으로 규격을 만들고 농산물을 거기에 맞추려다 보니 문제가 생겼을 뿐 농산물엔 문제가 없어요. 사실 못난이 농산물이 헐값에 팔려야 한다는 인식도 바꾸었으면 해요. 품질에선 차이가 전혀 없거든요. 사업을 시작했을 때 첫 상품이 사과였어요. 흠과가 많다는 소식에 농가를 찾아갔는데, 당시엔 저도 예쁜 과일에 익숙했을 때라 정말 팔아도 괜찮을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농부분도 “이런 거 정말 팔아도 되냐”며 걱정이 많으셨고요. 결국 팔았는데 고객들로부터 “지금까지 먹은 사과 중에 제일 맛있었다”며 좋은 후기가 많았어요. 농가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어서 정말 뿌듯했죠. 처음엔 가치소비를 위해 동참했던 고객들이 많았지만 이젠 품질이 좋다고 구독하는 고객들도 많아요. 못난이 농산물도 맛있게, 신선하게 먹을 수 있으니 편견 없이 바라봐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사업은 처음이라 시작할 때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많았죠(웃음). 우선 못난이 농산물을 팔아본 경험이 없는 농가가 많았어요. 보통 비정기적으로 관공서에서 장을 열면 팔거나, 가공식품 업체에 일반 농산물의 10% 정도 가격만 받고 파는 수준이었죠. 저희처럼 직접 포장해 소비자에게 파는 경우는 없었다 보니 거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기준도 없었어요. 기준을 정해가는 게 참 어려웠죠.

처음엔 농가에서도 반신반의했겠어요.

맞아요. 사업 초기엔 ‘맨땅에 헤딩’했었어요.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전화도 걸어보면서 못난이 농산물이 있는지 알아낸 다음 농가를 설득하기 위해 처음엔 농산물을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했다가, 못난이 농산물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라고도 하고(웃음). 오랜 소통 끝에 지금은 법인을 포함해 1백여 곳의 농가와 제휴된 상태예요. 법인에는 20~30 곳의 농가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실제 제휴 농가는 1백 곳을 훨씬 넘죠.

만약 못난이 농산물이 그대로 버려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개 땅에 묻히거나 거름으로 쓰이는데, 땅에서 썩다 보면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문제가 있죠. 물론 분명 상품성이 있는 건데 그대로 버려지니까 불필요한 낭비기도 하고요. 이를 생산하기 위해 투여한 물, 비료, 농약, 노동력이 고스란히 사라져버리는 거니까요.

농가로서는 그냥 버려지던 걸 팔 수 있으니 반갑겠네요.

저희와 “평생 가자”는 분들도 계세요(웃음). 저희는 유기농 농산물만을 취급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농산물은 생산하기 더 까다로워요. 농약을 뿌려야 충해와 잡초를 방지할 수 있거든요. 그래도 농가에선 유기농이 사람과 환경에 더 이로울 거란 믿음으로 재배하고 있는데, 농약을 치지 않다 보니 더 못난이가 많이 나오고 제값을 받지 못할 때가 허다해요. 농산물의 생김새를 ‘품위’라고 하는데, 유기농 농산물은 일반 관행 농산물(농약을 써서 재배한 농산물)에 비하면 품위가 다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요. 비용은 더 드는데 수입은 적은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죠. 그래서 농사를 그만두려다가도 저희와 제휴하면서 ‘조금만 더 해보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농가를 보면 참 좋아요.

못난이 농산물 중에서도 유기농 농산물만을 취급하게 된 까닭이 있나요.

사업의 A부터 Z까지 환경을 생각하고 싶었어요(웃음).


처음엔 반신반의 하던 농가, 이젠 “평생 같이 가자”

배송 및 수령 과정에서 발생하는 포장재 폐기물은 어떻게 하나요.

포장 문제가 정말 힘들었어요. 주변 마트에 가면 얼마나 많은 농산물이 플라스틱으로 싸여 있는지 볼 수 있을 거예요. 방울토마토는 물론이고 사과, 파프리카 한두 개씩도 모두 플라스틱이나 비닐에 싸여 있어요. 꼭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죠. 처음엔 아예 포장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방울토마토가 모두 파손된 상태로 배송되는 바람에 전부 리콜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어요. ‘제로 웨이스트’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친환경적인 포장을 고민해야 했고 타협점을 찾았죠. 이젠 파손 방지나 신선도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포장만 해요. 포장은 생분해 비닐과 종이봉투로 하고 있고요.

사업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현재 직원은 몇 명인가요.

시작할 때는 저 혼자였는데 지금은 20명 정도 돼요.

농산물을 구독하는 회원 수도 많이 늘었다고요.

지난해 10월 서비스를 시작할 땐 7명이었어요. 고객의 집까지 ‘소중한 내 새끼들’이 잘 갈지 불안해서 제가 직접 차를 몰고 배송했어요. 그땐 ‘송장이 안 붙어 있는데 어떻게 배송된 거죠? 신기하네요’라는 후기가 올라오기도 했죠(웃음). 이젠 회원 수는 5천여 명, 평균 구독자 수는 2천여 명 정도예요.

구독 회원 수를 들으니 구독료를 떠올리며 월 매출이 어느 정도인지 어림잡아보게 됐다.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며 셈을 하고 있는 기자에게 최 대표는 “계산하는 것은 좋지만 수치를 쓰지는 말아달라”고 했다.

구체적인 매출을 밝히는 데 조심스러운 이유가 있나요.

사실 벌써 카피캣(모방 제품)이 나왔어요. 어글리어스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 사업 아이템이 상업적인 주제로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하지만 단순히 ‘대박 사업 아이템’으로만 생각하고 뛰어든다면 큰코다칠 수 있어요. 진심이 없다면 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 강도가 높고,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 마진율도 낮아요. 그래서 저희는 “우리가 얼마를 법니다”가 아니라 “우리는 이러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를 얘기하려 노력하고 있고요. 저는 섣불리 이 일에 뛰어든 사람들로 인해 못난이 농산물 사업에 안 좋은 선례가 남을까 봐 겁나요. 얼마 전 충주시에서 초당옥수수 대량 리콜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는데, 판매자가 악의적으로 그랬다기보다는 관리 미숙 때문인 것 같아요. 초당옥수수는 정말 예민한 작물이라 유통과정에서 썩어버리기 쉽거든요. 이런 일들이 벌어져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편견이 더해질까 걱정이에요.

못난이 농산물을 걱정하는 최 대표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최 대표는 차후 사업을 성장시켜 모든 못난이 농산물이 버려지지 않고, 더 이상 농촌에서 밭을 갈아엎는 풍경이 벌어지지 않길 소망한다며 눈을 반짝였다.

사업 규모가 커지다 보면 문제가 생기기도 하잖아요. 처음 생각했던 사업 목적을 지키기 어려워지기도 하고요.

저도 그게 걱정이에요.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의 비전이 있는데 이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거든요. 지난해 12월에 크게 입소문이 났고 주문량이 너무 많아서 아예 신규 주문을 막았던 적이 있어요. 갑자기 사업이 커지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라는 걸 느꼈죠. 하지만 비즈니스의 본질을 무시할 수도 없기에 균형을 이루려고 직원들과 소통하며 방향을 잡아가고 있어요. 우선 유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적 개선을 이뤄내는 게 급선무예요. 공장에도 자동화 시스템을 일부 도입하려 해요.

앞으로 많은 변화가 기대되는데, 그럼에도 ‘이것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원칙을 꼽자면.

기업의 존속을 위한 ‘지속 가능성’은 절대 변하지 않겠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선 끝없는 탐구가 필요할 것이고요. 그리고 생산·유통·소비 과정에서 버려지는 것이 없게 하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에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어요. 현재 친환경 농산물만 다루고 있지만 일반 관행 농산물도 못난이가 무척 많은데, 그것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도 있고요. 배송 부문에서도 다시 수거할 수 있는 꾸러미를 이용해 박스를 쓰지 않는 방법을 연구 중이에요. 저는 사실 사회적 기업을 꿈꿨던 것도 아니고, 자선사업가도 아니에요. 개인적 궁금증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고 이것이 사회에 필요한,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계속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왕 일을 시작한 김에 못난이 농산물 1개 줄일 것을 1백 개 줄이고, 쓰레기 1백 개 줄일 것을 1백만 개 줄이고 싶어요. 그게 사업을 키우는 길이기도 하니까요(웃음).

환경 플랫폼 ‘우그그(UGG)’는 ‘우리가 그린 그린’의 줄임말로,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입니다.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어글리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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