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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공정위가 추진한 주류 열량 표시 의무화, 식약처가 제동

글 오홍석 기자

2022. 01. 26

이르면 2월로 예정됐던 주류 영양성분 표시 의무화가 정부 부처 간 이견으로 보류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술병 칼로리 표시제의 운명은.

1월 10일 국내 여러 언론은 “조만간 술병에 칼로리 등 영양성분 표시가 의무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생각해보면 마트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식품 포장에 영양성분이 쓰여 있다. 술은 예외다. 그래서 “소주 칼로리는 대체 얼마냐” “그나마 열량이 낮은 소주를 마시려면 어느 브랜드 제품을 골라야 하느냐” 같은 설왕설래가 있곤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이 문제를 개선하고자 이르면 2월부터 주류에도 열량 등 영양성분 표시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관련 고시 개정을 행정예고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이 정책에 제동을 건 것으로 여성동아 취재 결과 확인됐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일단 식품 포장에 영양성분을 표시하도록 하는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관련 업무는 공정위 소관이다. 반면 ‘식품’ 관리는 식약처 담당 업무다. 식약처는 식품에 영양성분을 표시할 때는 소비자의 알 권리뿐 아니라 통상(通商) 절차와 제품 성분 검사에 들어가는 비용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며 공정위에 정책 협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가 주류 영양성분 표시 의무화 추진에 난색을 표한 건 통상 절차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 설명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국가기관이 나서 술에 영양성분을 표시하도록 강제하는 나라가 별로 없다. 우리나라만 이것을 의무화할 경우 주류 수입 과정에서 세계무역기구(WTO)나 미국 주류과세담배무역청(TTB) 등과 마찰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미국 규제당국은 주류에 영양성분 표기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 또한 알코올 도수 1.2% 미만 주류의 경우에만 영양성분을 표시하도록 한다. EU가 2017년 주류 전체를 대상으로 영양성분 표시 의무화를 추진한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듬해 주류업계가 자율규제안을 마련하면서 법제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맥주업계는 2022년까지 모든 제품에 열량을 비롯한 영양성분을 표시하기로 약속했다. EU 내 와인 및 스피릿(증류주) 업계도 올해부터 제품 포장에 세부 영양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QR코드를 부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식약처가 2017년 주류업계에 영양성분 표시를 권고하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한 일이 있다. 그러나 한국소비자원이 2019년 시중에 판매되는 주류 20개를 분석한 결과 영양성분을 포장에 공개한 제품은 수입 맥주 1종에 불과했다. 한국소비자원은 해당 결과를 바탕으로 주류업계에 영양성분 표시를 권고하고 식약처에는 주류 영양성분 표시 의무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여전히 관련 법안도, 자율규제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공정위와의 논의가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에 공정위 관계자는 “예정대로 행정예고는 진행하고 추후 논의 과정에서 식약처의 입장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2019년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주종 1병(캔)당 평균 열량은 맥주(500ml 기준) 236kcal, 소주(360ml 기준) 408kcal, 탁주(750ml 기준) 372kcal다. 소주, 탁주의 경우 쌀밥 한 공기(200g) 열량인 272kcal를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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