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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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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뿐인 인생, 공유로 산다는 것

글 윤혜진

2021. 04. 19

낚시 좋아하는 40대 꽃미남, 한번 인연을 맺으면 10년은 이어지는 의리남, 어려운 걸 일부러 택하는 도전 마니아.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배우 공유의 이야기다. 그가 오랜만에 영화 ‘서복’으로 돌아왔다.

‘꽃구경 필요 없는 봄 같은 조합’

공유(42)와 박보검(28)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영화 ‘서복’의 홍보 영상 카피다. ‘봄 같은 조합’에서 박보검이 해사한 봄 햇살이 내려앉은 핑크빛 벚꽃이라면, 공유의 봄은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올해도 어김없이 얼굴을 비친 민들레 같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두 비주얼의 만남으로 영화는 개봉 전부터 기대를 한껏 받았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도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이다. ‘서복’은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박보검)과 그를 극비리에 옮기는 임무를 맡게 된 전직 정보국 요원 민기헌(공유)의 특별한 동행을 그린 로드 무비.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액션 판타지물이기도 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민기헌은 서복을 옮기는 임무를 완수하면 병을 치료해주겠다는 정보국의 제안을 받는다.

공유는 지난해 8월 군 입대한 박보검의 몫까지 대신하며 홍보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데뷔 20년 차 배우가 주는 무게감 때문일까. 박보검의 빈자리가 아쉬울 새도 없이 오롯이 두 사람 몫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01년 ‘학교 4’로 연기를 시작한 이래 늘 대중 곁에 있었다. 2007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고, 2009년 군 제대 후 영화 ‘도가니’(2011)를 통해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2016년 영화 ‘부산행’ ‘밀정’, 2019년 ‘82년생 김지영’ 등 매 작품에서 인생 캐릭터를 경신해왔다. 특히 2016~2017년에 방영된 tvN 드라마 ‘도깨비’는 아시아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역시 공유’라는 극찬을 들었다.



철학적 질문에 이끌렸던 작품

지난 연말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개봉을 한 차례 연기한 바 있는 ‘서복’은 우여곡절 끝에 4월 15일 개봉을 결정했다. 국내 개봉작 중 최초로 극장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으로 동시에 공개하는 모험도 택했다. 20년 경력의 배우이지만 공유로선 극장과 온라인 동시 개봉도,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영화 홍보 활동도 처음이다. 영화 개봉 이틀 전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는 “얼떨떨하다. 지금도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질문 하나 허투루 넘기는 법 없이 곱씹어 대답한 뒤 “충분했느냐”고 되물었다.

‘서복’ 출연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왜 살고 싶은데?’라며 툭 하고 저한테 질문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쉬운 질문 같은데 막상 그 질문에 대답을 하려니 당황스러웠고, ‘왜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게 만든 시나리오였어요. 겁도 나고 해서 한 번 거절도 했죠. 결국은 ‘내가 왜 이렇게 당황하고 대답을 못 할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했어요.

원래 SF물에 관심이 많나요.

평소 SF 장르물을 고집하거나 선호하진 않아요. 다만 요즘 들어 흥미롭게 봤던 작품들을 모아보니 제가 과거나 현재보다 근미래에 관심이 있더라고요.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서복’은 근미래적인 소재를 다루는 SF물이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삶에 대한 것이에요. 두 소재를 섞어서 ‘매시업’하는 게 신선하고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어려운 이야기에 손이 많이 간다니 도전 정신이 강한 편인가 봐요.

도전 정신이 강하다기보다 시나리오에서 고민이 안 느껴지고, 캐릭터와 이야기의 구성이 단순하면 손이 안 가더라고요. 그런 성향이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기헌 역을 위해 식단 조절을 했다고 들었는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보통 어떤 배역을 준비할 때 힘든 부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힘든 걸 모르고 그 순간을 즐기는 편이에요. 공유가 아닌 다른 인물이 된다는 게 재미있어서 계속 작품을 하는 거고요. 다소 예민해지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제가 살아 있음을 느끼거든요. 이번 기헌 역을 위해서는 4개월 정도 식단 조절을 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식단 조절은 제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더 혹독하게 관리하면서 운동으로 몸을 키워야 했던 적도 있거든요. 이번엔 기헌이 어떻게 고통스럽게 살았는지 첫 등장신에서 이미지로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사실 이거보다 더 나아가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말렸어요. 영화 전체가 마라톤과 같아서 지칠까 봐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얘기한 첫 장면에서 변기를 붙잡고 구토하는 신이 편집되어 많이 아쉬운가요(인터뷰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공유는 목에 담이 오도록 힘들게 촬영한 장면이 편집됐다고 아쉬워한 바 있다).

하하하. 완성된 영화는 저도 시사회에서 처음 봤어요. 제가 편집에 관여하거나 이렇게 해달라 부탁하는 타입은 아닌데 이 부분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이어서 그 신을 왜 편집했냐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과음을 해서 속이 안 좋은 것처럼 보였다고 하시는 거예요. 핏대가 서고 담이 결릴 만큼 고통스럽게 촬영했는데 말이에요. 어쨌든 기헌이란 인물에 대해 설명은 되니까 많이 아쉽진 않지만 좀 더 나왔으면 했던 장면이에요(웃음).

이용주 감독과 기헌 캐릭터에 대해 가장 많이 나눴던 대화는 무엇인가요.

감독님은 기헌이 시한부 캐릭터라고 해서 마냥 다크하고 말수도 없고 전형적인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원래는 장난도 잘 치고 동료들과 농담도 하는, 위트 있는 인물이 어떤 사건을 겪고 벌과 같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인간미가 보일 수 있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고 봤어요.

영화 속에서 기헌의 위트 있는 모습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어요. 애드리브인가 싶은 대사도 있었고요. 예를 들어 “실내에서 왜 담배를 피워” “이래서 애한텐 아무거나 먹이면 안 돼” 같은 대사는 공유 씨가 한 애드리브같이 느껴졌는데, 맞나요.

우와! 알아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어제 극장에서 많이 웃진 않으시더라고요.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웃는다고 관객들이 웃는 건 아니구나’라는 걸 이번에 느꼈어요. 사실 저는 애드리브를 많이 해요. 철저히 대본 위주로 연기하는 편은 아니에요. 감독님도 평소 저의 말투를 많이 반영해 수정해주셨어요. 다만 모든 애드리브가 통하는 건 아니니까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 선을 지키려고 해요.

그런 노력 덕분에 기헌이란 인물에 몰입이 잘됐어요. 그런데 기헌은 왜 그토록 살고 싶어 했을까요.

죽음 앞에서 해탈하고 초월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약함이고 본능이죠.

그럼 공유라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나요.

‘서복’이 저에게 던진 질문이 바로 ‘무엇을 위해 사느냐’예요.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했어요. 아마 죽을 때까지 고민해야 하는 문제겠죠. 죽기 전에 어느 정도라도 답을 깨우친다면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모두가 힘겨워하면서 지나고 있잖아요. 이런 시국이라 더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원래는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고 과거에도 허우적대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내일 일어날 일보다 당장 오늘 하루에 충실하자고 생각해요. 인생은 한 번밖에 없으니까요.

실제로 극 중에서 서복으로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죠. 어떤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바닷가에서 서복이 “민기헌 씨는 살릴 만한 그런 가치가 있는 사람이냐”고 한 부분이요. 소름 돋았어요. 그 질문을 들었을 때 신이 유약한 인간에게 “내가 너를 살릴 가치가 있느냐” 묻는 느낌이었어요.

군 생활 중인 박보검 배우와 최근 연락한 적이 있나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시사회 당일 연락이 왔어요.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 떨린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어제 현장에 보검이가 없어서 더 외롭고 떨렸던 게 있었어요. 그런데 축하하고 파이팅하라는 연락이 와서 엄청 반가웠어요. 군대 안에서도 ‘서복’ 소식을 기다리고 있구나 싶었어요.

두 사람 연기 호흡은 어땠어요.

작품 속에서 남자 후배와 단둘이 영화를 끌어가는 건 처음이었어요. 여성 팬들이 우리 둘의 조합을 귀엽게 봐주는 것 같아요. 실제로 보검이는 선배들이 안 예뻐할 수가 없는 후배예요. 애교도 많고요. 우리 모두 촬영장에서 보검이를 ‘므흣하게’ 바라봤었어요.

서복을 연기하는 박보검의 눈빛이 굉장히 설득력 있는데, 같이 연기하며 그렇게 느꼈던 적이 있나요.

보검이는 워낙 인성적으로 바른 친구예요. 너무 바른 친구라 작품을 함께하기 전에는 재미없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촬영하면서 기존의 선한 눈빛과 다른, 안 보여준 눈빛이 보였어요. 무표정인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차갑고 매서운 순간이 있었는데 저는 그 모습이 무척 좋더라고요. 보검 씨가 군대에 다녀온 뒤 그 눈빛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면 더 멋져질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박보검이 “형 연기하는 거 보면서 많이 배웠다. 진짜 멋있다”고 칭찬하는 영상을 봤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요. 후배들에게 조언도 해주는 편인가요.

그렇게 얘기해줘서 고맙지만, 민망해요. 더더욱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도 들고요. 그런 얘기를 잘 듣고 있지 못해서 자리를 피해버려요(웃음). 저는 후배들이 뭔가 콕 집어서 물어보면 진심으로 대답해주긴 하지만 먼저 나서서 충고하진 않아요. 연기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프레임 안에 갇히는 걸 싫어해서 본인이 자유롭게 하도록 밀어주는 편이에요. 대신 내가 지나왔던 길이기도 하고 같은 남자 배우 입장에서 연기 외적으로 조언해주기는 해요. 혼자 꽁꽁 싸매고 감당할 필요가 없다고요. 보검이도 워낙 티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서 노파심에 “너무 속으로 혼자 생각하지 말고, 답답한 게 있거나 투정 부리고 싶은 게 있으면 표현하고 분출해라” 그런 얘기를 해줬어요.

올해로 데뷔한 지 20년이 됐어요. 시간이 흐른 걸 느끼나요.

한 해 한 해 제가 얼마나 일했나 카운트를 하지는 않아요. 팬분들이나 관계자분들이 알려주셔서 보니 올해가 데뷔 20주년이더라고요. 며칠 전에는 한 광고를 10년 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광고주분들이 축하한다고 꽃다발에 케이크, 제작한 피규어를 주시는데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보다 기분이 더 몽글몽글했어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싶어서요. 체력적으로는 당연히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느끼죠. 특히 주변에서 레이저로 미리미리 피부 관리하라고 그렇게 잔소리들을 하는데 저는 안 해요. 아마 이러다 한순간에 ‘훅’ 갈까 봐 우려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관절이 허락하는 한 땀 흘리면서 건강하게 체력 관리를 잘하려 합니다.

‘서복’이 국내 상영작 최초로 극장과 티빙에서 동시에 공개되잖아요. 배우로서 낯선 경험일 텐데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약간 당황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극장과 집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게 메리트 같아요. 앞으로는 더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까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흐름 같아요.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에서 성취감과 의미를 찾는 공유 씨에게 ‘서복’은 여러모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네요.

하하하. 인정합니다. ‘서복’은 뿌리칠 수 없었어요. 작품의 흥망을 점치기는 힘들지만 ‘1도’ 후회 없이 좋은 시간이었어요. 배우로서도, 한 명의 사람으로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죠. 여전히 앞으로 제 고민과 두려움은 계속되겠지만 한 번쯤 제 인생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었던 시기에 접한 작품이었어요.

앞으로 어떤 또 다른 변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사실 변신을 생각하고 연기를 하지 않아요. 변신이란 말에서는 부담이 느껴져서요. 한 번도 이번엔 이렇게 변신해야지, 마음먹고 택한 적이 없어요. 전에 했던 캐릭터와 다소 겹치더라도 제가 끌리는 이야기이면 해요. ‘서복’은 화면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고 나라는 사람을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시나리오였어요. 저는 살아가는 것에 대한 잡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나이가 들면 드는 대로, 그 나이에 맞게 어떻게 살아가야 좋은지 고민을 많이 해요.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요.

스물여덟 살의 공유를 만난 적이 있다. 아이돌급의 인기를 누리던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촬영 현장에서였다. 밤이 늦도록 촬영이 이어져도 유쾌한 에너지가 넘쳤고 ‘슛’ 소리가 나면 내달리는 경주마처럼 연기를 했다. 10여 년 만에 다시 본 공유는 여전히 유머러스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속도랄까. 중간 중간 숨을 고르고 고민했다.

매번 일부러 변신을 꾀하는 건 아니라지만 다음 작품의 배경은 우주다. 배우 정우성이 제작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를 통해 달에서 목숨을 건 임무를 수행하는 탐사 대장 한윤재로 돌아올 예정. “정우성 선배를 보면서 반성 많이 했다”는 공유는 “팀을 꾸리고 기획을 해서 원석을 작품화해보는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매니지먼트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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