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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cene stealer

‘연기 9단’ 김희원

EDITOR 김지영 기자

입력 2019.12.05 16:00:01

김희원 하면 으레 악역을 떠올리지만 카메라 밖 모습은 반전의 연속이다. 그의 색다른 도전과 드라마틱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
‘연기 9단’ 김희원
스크린과 브라운관, 연극 무대를 넘나들며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배우 김희원(48)이 기존의 이미지와 결이 다른 캐릭터로 관객몰이에 나섰다. 지난 11월 7일 개봉된 영화 ‘신의 한수: 귀수 편’에서 입으로 먹고사는 관전바둑의 대가 ‘똥선생’ 역할을 맡은 것. 똥선생은 그가 영화 ‘아저씨’(2010)나 드라마 ‘앵그리맘’(2015)에서 맡았던 역할처럼 악랄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아무렇게나 버려진 채 끝까지 살아남는 바둑돌처럼 입으로 훈수를 두는 관전바둑을 통해 바둑 대국에서 누가 이기든 생명력을 이어가는 캐릭터이자 아슬아슬하고 긴박감 넘치는 영화 속에서 숨통을 터주는 역할”이다. 

매 작품에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김희원은 이번에도 툭툭 내뱉는 듯한 특유의 화법과 순발력 있는 애드리브로 실제인지 연기인지 헷갈릴 만큼 살아 숨 쉬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데뷔 후 처음으로 멜로 연기에 도전한 것도 화제다. 실제로는 거친 상남자보다 똥선생처럼 소심한 사랑꾼에 가까운 그를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고즈넉한 카페테리아에서 만났다. 


‘연기 9단’ 김희원
출연 동기가 ‘멜로에 꽂혀서’라면서요. 

(수줍게 웃으며) 맞습니다. 만약 감초 같은 역할에 한정돼 있었다면 호기심이 덜했을 텐데 멜로 신이 있어서 더욱 끌렸어요. 감초 역할이 멜로 연기를 하는 경우가 흔치 않잖아요. 

여배우와 멜로 연기를 한 건 처음 아닌가요. 

이 정도는 아직 멜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하하. 살짝 맛보기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키스 신도 원래 있었는데 편집됐어요. 멜로 신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이번에 연기한 똥선생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나요. 

영화가 판타지 액션 복수극이에요. 한마디로 현실성이 없는 만화 같은 영화죠. 바둑 두기 전에 작두날을 갈고, 기찻길에서 바둑 두다가 치이기 직전 피해서 살아남고…. 유일하게 현실성이 어느 정도는 있는 인물이 똥선생이에요. ‘가늘고 길게 살자’는 이 영화의 주제가 투영된 인물이기도 해요. 똥선생은 절대 승부를 안 하고 ‘가늘고 길게 살기’와 ‘돈 벌기’에만 집착하거든요. 하지만 큰돈을 벌려고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삶의 또 다른 재미를 찾아 결혼해서 행복하게 떠나죠. 



똥선생과 인생철학이 비슷한 편인가요.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하하하. 저도 옳은 소리도 하고 싶고, 용기도 내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큰 대가가 따르니까요. 저도 똥선생처럼 현실과 엄청나게 타협합니다. 매일 촬영장에서 타협하고, 모든 부분에서 타협을 안 할 수가 없죠. 

시행착오가 있었나요. 

어릴 때는 제 개성과 자존심을 앞세우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경험하기도 했죠. 그런데 나이를 먹다 보니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좀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원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나 봐요. 

어릴 때도 그러진 못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면 정말 힘이 세야 해요. 돈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위치에 가본 적이 없어서 제 의견을 주저 없이 얘기하며 살 기회가 없었어요. 

이번 영화에서 ‘부산잡초’라는 악역을 맡은 허성태 씨가 “처음에 캐릭터의 콘셉트를 잡을 때 김희원 씨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하더군요. 후배들에게 조언을 잘하는 편인가요. 

한참 후배인 성태가 첫 촬영 때 악랄함의 수위를 못 잡겠다며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연기 경험이 별로 없어서 리얼하게 해야 할지, 오버해야 할지 갈등하기에 지나가는 말로 몇 마디 한 게 다예요. “성태야, 이건 만화 같은 거야. ‘어벤져스’의 타노스처럼 해도 돼. 네가 뭘 해도 자유로워. 사과를 잘라서 칼로 핑핑핑 돌리면서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네가 인상 빡빡 쓰고 멋있게 해도 오버로 안 보일 테니 고민하지 말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 말 듣고 연기하기가 편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악역 전문 배우의 대명사가 됐어요. 평소 성격은 어떤가요. 

악역 하는 배우들 인상이 대체로 험악한데 실제로는 세상에서 제일 착해요. 성태도 그렇고, 장성무당 역을 맡은 (원)현준이도 마음도 굉장히 여려요. 나이는 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10대 아이돌보다 더 순하고 여려요. 저도 마찬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하하하. 

악역을 하면서 대리 만족을 할 때도 있나요. 

전혀요. 사실 악역을 악역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이춘재나 유영철 같은 연쇄살인범도 자기가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면 그 짓을 못할 거예요. ‘나 때문에 저 사람이 다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악한이 될 수 있겠어요. 오로지 자기 욕심만 생각하기에 가능한 거죠. 그래서 저는 소위 악역을 할 때는 이기주의, 교만, 욕심 그런 단어만 생각하면서 연기해요. 제가 살면서 그런 단어로 가득한 사람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연기할 때만큼은 나쁘다는 생각을 안 해요. ‘내가 돈을 벌려면 저 사람을 죽여야지. 그래야 돈이 생기니까’ 오로지 그 생각을 하는 게 훨씬 나빠 보이고 더 무섭게 보이겠다 싶어서요. 

남을 폭행하는 신을 찍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드나요. 

인상은 쓰지만 속마음은 ‘다치면 어쩌지?’ 하고 걱정해요. 그리고 때리는 신을 찍기 전 합을 맞추는데 제 힘 조절이 안 돼서 상대가 다치면 종일 찝찝해요. 얼굴에 상처가 나서 촬영이 취소되면 여러 사람에게 민폐잖아요 그래서 구둣발로 얼굴을 때리는 신이 있을 땐 미술팀이 구두의 날카로운 부분을 다 갈아주는데도 걱정돼 제가 더 갈고 잘 갈렸는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해요. 

정말 여리네요. 소년 김희원은 어떤 아이였나요. 

되게 엉뚱했어요. 별명이 ‘비몽사몽’이었어요. 너무 잠만 자가지고 애들이 그렇게 불렀어요. 수업 시간에도 공부하는 척하면서 잤어요. 공부를 너무 못했어요. 공부하는 게 너무 싫고 공부해도 성적이 안 오르는, 공부를 정말 못하는 애였어요. 그렇다고 해서 잘 놀았냐? 그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공부 못하는, 잠만 자는 엉뚱한 아이였죠. 

교우 관계는 좋았을 것 같은데요. 

애들하고는 두루두루 잘 지냈어요. 공부 잘하는 애들, 못하는 애들 가리지 않고 다 저를 좋아했어요. 소위 날라리인 친구들하고도 친하게 지냈는데 진짜 친구는 없었던 것 같아요. 웃기고 엉뚱한 면 때문에 호감을 가진 게 아닌가 싶어요.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연극할 때는 희극을 많이 했어요. 1990년대 중반까지는 정권을 비판하는 연극이 주를 이뤘지만 악역을 한 적은 거의 없어요. 근데 스크린에 데뷔해 ‘아저씨’라는 영화의 악역으로 유명해져서 악역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연기 9단’ 김희원
학창 시절부터 연극배우를 꿈꿨나요. 

우연히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학력고사를 보다가 중간에 나왔어요. 공부를 워낙 못했으니까 학력고사를 끝까지 봐도 떨어질 확률이 100%였거든요. 그날 2교시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밖에서 어떤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어요. 밥을 먹으려고 나갔다가 못 들어오고 있었어요. 부정행위로 보거든요. 그래서 제가 나가면서 문이 열릴 때 그 아이를 안으로 떠밀었어요. 근데 집에는 시험을 다 본 걸로 해야 하니까 저녁 6~7시까지 시간을 때우려고 수원행 지하철을 탔어요. 대학에 떨어졌으니 취직을 해야겠다 싶어 그 안에서 신문 구인란을 살펴봤는데 전부 전문대졸 이상만 뽑더라고요. 딱 하나 고졸 이상을 받는 데가 연극이더군요. 난 이걸 해야겠다 싶어 거기를 찾아간 게 연기를 시작한 계기죠. 

서울예대 연극과는 나중에 들어간 거군요. 

여러 극단을 거치며 연극을 7~8년 하다가 대학에 갔어요. 원래는 89학번이어야 하는데 97학번이거든요. 연극을 3~4년 하고 나서 처음으로 객석에 앉아 연극을 봤는데 재미가 없었어요. 연극이 이렇게 재미없으면 관객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때부터 방황하며 연기를 더 잘하려고 책도 많이 보고 고민 끝에 대학에 진학했죠. 

대학을 졸업하고 2007년 스크린 데뷔를 하기 전까지는 뭘 했나요. 

1999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호주에 갔어요. 2001년 겨울까지 약 2년 7개월 동안 거기서 지냈어요. 연극을 하면 너무 배고프니까 연극을 끊으려고요. 한국에선 알바를 하다가도 누가 연극하자고 하면 하게 되더라고요. 이천희, 박건형, 배성우가 대학 동기인데 제가 무대에서 연기를 오래 했어도 그 친구들보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다 때려치워야겠다 싶어 관광비자로 무작정 호주에 가서 접시 닦고 노가다 뛰고, 오늘은 타일 깔았다가 내일은 벽돌 날랐다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했죠. 그중에서도 페인트칠하는 일을 가장 오래 했어요. 영어가 전혀 안 되니까요. 

호주에서 왜 돌아왔나요. 

바닥에 페인트칠을 한참 하고 나서 높은 곳에 올라가 제가 칠한 바닥을 보니 삼성이라는 글씨였어요. 그 바닥이 무대였는데 글씨가 너무 넓어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어요. 삼성에서 후원하는 중앙디딤무용단이 문화 교류 차원으로 그곳에서 공연을 했어요. 한국에서 그 무용단과 공연을 많이 했는데 그때 인연을 맺은 후배들이 왔더군요. 공항으로 그들을 마중하러 가고 공연에 차질이 없도록 옆에서 도와주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1년 넘게 고민을 하다 다시 연기를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해 한국으로 돌아왔죠. 

귀국 이후 입지가 예전 같지는 않았을 텐데요.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은 인터넷이 엄청 발달해 연극배우들에게 팬클럽이 생긴 거였어요. 특정 배우를 지지하는 인터넷 동호회가 생겨 다들 연예인 같은 인기를 몰고 다니더라고요. 제작자들이 그런 친구들을 선호해 저처럼 팬클럽이 없는 사람은 오디션을 봐도 캐스팅이 안 되더라고요. 그 후 우울증이 와서 2004~2007년엔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2007년 ‘1번가의 기적’으로 스크린에 데뷔하고 나서도 힘든 시간이 계속됐나요. 

임창정 씨가 소개해줘서 그 영화에 출연했는데 이후에도 1년 6개월은 놀다시피 했어요. 간간이 단역을 한 게 전부였죠. 

‘아저씨’로 그 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큰 인기를 얻었어요. ‘방탄유리야’라는 대사는 최근 유튜브에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더군요. 여러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멘트를 남겼는데 이번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자신의 대사를 꼽는다면. 

제가 특정하긴 힘드네요. ‘방탄유리야’나 ‘재미없네’ 같은 말도 관객분들이 많이 기억해주셔서 회자된 대사잖아요. 이번 작품도 흥행이 돼 유튜브나 TV에서 패러디하는 대사가 나오면 좋겠어요. 

‘아저씨’ 이후 이름 앞에 붙어다니는 ‘명품 배우’보다 더 욕심나는 수식어가 있나요. 

그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요. 근데 ‘아저씨’가 개봉되기 전날과 개봉된 날의 김희원 연기력은 똑같아요. 작품이 흥행했다고 해서 명품 배우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더러 연기를 잘한다고들 하시는데 제가 보기엔 아직 부족해요. 대신 지금도 계속 연기가 늘고 있으니 언젠가는 정말 명품 배우가 될 거라 믿고 있고 그날을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해요. 

인생의 나침반 같은 키워드 혹은 좌우명은 뭔가요. 

그때그때 달라요. 제게는 오랜 습관이 있어요. 제 단점을 기억날 때마다 번호를 매겨서 메모장에 써놔요. ‘이런 점은 고쳐야 한다. 희원아’ 하면서요. (메모장을 꺼내 읽어주며) 1번은 ‘무리하지 마. 별거 아니잖아’고, 2번은 ‘감정이 변하는 순간이 재밌잖아’예요. 그런 변화를 많이 주는 연기를 하자는 의미죠. 3번은 ‘왜 나를 보면서 자꾸 웃지’인데요. 소심함을 고치려고 쓴 거예요. 4번은 ‘뭐가 그리 잘나서 말이 많니?’예요. 항상 겸손하라는 의미인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말을 많이 하면 집에 와서 후회하거든요. 이 메모들을 수시로 보면서 제 언행을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죠. 

촬영이 없을 때는 주로 뭘 하나요. 

전에는 당구를 쳤고 요즘은 인터넷 게임을 해요. 게임을 안 할 때는 사람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요. SNS나 댓글은 거의 안 봐요. 영화 홍보를 할 때 달리는 댓글만 봐요. 

마초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네요. 

조용해요. 저희 나이 대에는 술자리에 나오라는 전화가 주를 이루는데 원래 제가 술을 못 마시니까 그런 전화가 한 통도 안 와요. 촬영이 끝나고 뒤풀이를 할 때도 콜라만 마시다 오거든요. ‘형 커피 마시러 나와’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죠. 

연기를 한 지도 어느덧 30년이 됐어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나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감정의 디테일을 살려 기복이 있는 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사랑 연기를 하면 그게 가능할 것 같아요. 못다 한 멜로를 하고 싶어요. 평범한데 굉장히 진실한 멜로요. 요즘은 사랑이 아주 멀리 있는 단어 같아요. 진실한 사랑, 심각한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분위기라 아쉬워요.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19년 1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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