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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tech

첫 전셋집에 비스포크를 들였다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 2022.12.08 10:00:01

10년 월세살이를 벗어나 처음으로 전셋집을 계약했다. 옵션에 냉장고가 없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비스포크 얼마지?’.
이제 삼성전자 생활 가전의 대명사가 된 ‘비스포크’는 주문 제작을 뜻하는 영어 단어 ‘bespoke’에서 가져온 것이다. be(되다)와 speak(말하다)를 합쳐 직역하자면 ‘말하는 대로 되다’라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2019년 6월 비스포크 냉장고를 처음으로 시장에 내놨다. 이 냉장고는 소비자가 소재와 색깔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백색 가전이라는 단어가 있다. 미국 전자제품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이 유독 흰색이나 베이지색 가전제품을 많이 출시해 ‘white goods’로 불렸는데, 이를 직역해 한국에서 백색 가전으로 쓴 것. 냉장고뿐 아니라 세탁기, 에어컨 등 일반 가정에서 쓰는 생활 가전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비스포크 시리즈가 출시된 이후 백색 가전이라는 말은 무색해졌다. 고객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컬러를 선택할 수 있는 비스포크는 무채색 계열이 주도했던 가전제품 시장을 뒤흔들었다. 처음 비스포크 광고를 봤을 때, 2000년대 초반 LG전자가 액자형 에어컨에 몬드리안·고흐가 그린 명화를 채워 넣었을 당시의 신선함이 떠올랐다.

비스포크는 열렬한 소비자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출시 이후 6개월 만에 판매량 100만 대를 돌파했다. 이후 냉장고뿐 아니라 전자레인지, 인덕션, 식기세척기, 와인 냉장고 등으로 비스포크 세계관이 확장하고 있다. 삼성의 스마트폰 Z플립 역시 비스포크 에디션이 따로 출시될 정도다. 현재 판매되는 삼성전자 생활 가전의 80%에는 ‘비스포크’ 꼬리표가 달려 있다.

360가지 색의 냉장고

비스포크 컬러 선택 창.

비스포크 컬러 선택 창.

결국은 가격이다. 비스포크 냉장고 구매를 마음먹은 뒤, 온오프라인을 망라해 가격 비교를 시작했다. 집 근처 삼성 디지털 플라자도 방문하고, 온라인 가격 비교 사이트를 이러저리 둘러봤다. 그 결과, 상단 냉장고와 하단 냉동고로 구성된 330L 2도어 모델(RB33A3004AP)이 가장 저렴했다. 에너지 효율등급이 가장 낮은 옵션의 경우 본체 80만 원, 문짝 가격을 합쳐 100만 원에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최저 60만 원대로도 구입이 가능했다. 다만 색 조합은 한정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색상과 소재 선택지가 있다는 건 고민이 깊어진다는 뜻이다. 우선 냉장고의 소재는 3가지로 분류된다.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는 코타 메탈은 실제로 만져보면 조약돌 같은 촉감을 가지고 있다. 광택이 없는 매트한 재질이다. 여기에 더해 부드러운 광택을 갖고 있는 새틴 글라스, 거울처럼 반사되는 글램 글라스 등을 고를 수 있다. 색깔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각각의 도어 색상을 360개 중에 고를 수 있다. 일반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10여 종의 기본 색상으로 구매 대상이 한정된다.



하지만 기자는 비교적 저렴한 기본 색상 중 상단 흰색, 하단 그레이의 코타 메탈 소재 비스포크 2도어 냉장고를 일반 온라인 쇼핑몰에서 70만 원대에 구매했다. 온라인 쇼핑몰 특성상 특정 색상의 물건이 품절되거나, 가격이 변동되는 경우가 잦으므로 적극적으로 서칭할 것을 권한다.

비스포크와 오브제의 전쟁

비스포크 세계관은 계속 확장하고 있다. 10월 삼성전자는 멕시코 멕시코시티에 비스포크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위). 지난해 10월 출시된 갤럭시Z플립3 비스포크 에디션.

비스포크 세계관은 계속 확장하고 있다. 10월 삼성전자는 멕시코 멕시코시티에 비스포크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위). 지난해 10월 출시된 갤럭시Z플립3 비스포크 에디션.

“혼수 하려고 하는데 비스포크 vs 오브제, 뭐가 더 좋을까요?”

전자제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질문이다. 금성사로 출발한 LG전자는 1965년 눈표냉장고, 1969년 백조세탁기 등 한국 최초로 생활 가전을 생산한 업체다. 이 때문에 주부들 사이에서는 ‘가전은 LG’라는 말까지 생겼다. 최근 삼성전자가 비스포크 시리즈로 짭짤한 수익을 내자, LG전자 역시 2020년 6월 오브제컬렉션을 출시했다. 다양한 컬러와 소재를 고객이 직접 정할 수 있는 유사한 콘셉트의 가전제품 라인이다.

기자 역시 오브제컬렉션 구매도 고려하고 있었다. 다만 오브제컬렉션의 경우 유사한 기능을 가진 비스포크 제품 대비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각 업체 공식 홈페이지에서 300L대 1도어 김치냉장고 가격은 비스포크의 경우 최소 110만 원(319L)이지만, 오브제컬렉션 컨버터블 냉장고는 161만 원(324L)에 판매되는 식이다.

이는 두 회사가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방식 차이에서 기인한다. 삼성전자는 2021년 3월 ‘팀 비스포크’ 체제를 구축해 비스포크 생태계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 자체 공장에서 대부분의 제품을 자체 생산하는 LG와 달리, 삼성의 경우 국내 중소기업과 해외 업체 등을 통한 위탁 생산을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한다는 의미다. 기자가 구입한 모델(RB33A3004AP)은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라 비교적 저렴했다.

그래서 사, 말아?

그래서 사용해보니 어땠냐고? 냉장고는 냉장고다. 차로 따지면 옵션이 하나도 딸려 있지 않은 모델을 구입한 셈이기에,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한 냉장고라는 느낌이다. 온라인 쇼핑몰 사용 후기에 소음이 생각보다 크다는 글이 있어 걱정했지만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기나긴 대학가 자취 시절 옵션으로 딸려 있는 100L대의 초소형 냉장고만 사용했던 터라, 3배 크기의 냉장고에 음식 재료와 반찬, 냉동식품을 채워도 공간은 차고 넘쳤다. 아쉬운 것은 냉장고 크기에 맞지 않는 12구짜리 얼음 트레이와 6구짜리 달걀 트레이가 냉장고와 함께 도착했다는 점 정도.

“오 이거 비스포크야?”

약간의 단점을 상쇄하는 것은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사실 비스포크가 아닌 모델을 선택한다면 유사한 용량, 같은 삼성전자 제품이라 하더라도 절반 정도의 가격에 새 냉장고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퇴근 후 집에 들어올 때마다 푸른빛을 띠는 회색 벽지와 찰떡인 2가지 색 조합의 냉장고를 마주하면 일말의 죄책감은 사라진다.

#비스포크 #냉장고 #문테크 #여성동아


문(文)영훈. 
3년 차 잡지 기자. 기사를 쓰면서 이야깃거리를 얻고 일상 속에서 기삿거리를 찾는다. 요즘 꽂힌 건 테크. 처음엔 ‘이게 왜 필요한가’ 싶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기술에 매료된다.



사진제공 삼성전자



여성동아 2022년 12월 7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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