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말론 CBE가 한국을 방문,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에서 자신의 삶과 사업가로서의 성장 과정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난독증 앓던 가난한 소녀가 세계적인 기업가 되기까지
그녀가 운영하는 향수 브랜드 ‘조러브스‘.
“저는 모든 사람의 머리 뒤쪽에는 창의성을 저장해놓는 계좌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계좌는 당신이 ‘사용’할 때만 가치가 올라가죠. 오늘 저는 제가 가진 상상력과 창의력을 통해 어떻게 점점 더 부자가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보통 이렇지 않나요? 저는 어렸을 때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조 말론은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한 화가였고, 어머니는 피부관리사였다. 조 말론은 엄마를 도와 피부관리사로 일하면서 고객들에게 뭔가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그들이 관리받고 나갈 때 자신이 직접 만든 제품으로 팔 마사지를 해줬다. 생강과 너트멕(육두구) 성분을 함유한 그녀의 제품은 금방 입소문이 났고, 런던의 내로라하는 셀럽들이 단골이 됐다. 첼시 마켓에 나가 그림을 파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익힌 미적 재능과 비즈니스 감각 그리고 천부적인 후각이 사업을 꾸려 나가는데 큰 힘이 됐다. 2017년 영국의 한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조 말론의 후각은 래브라도리트리버와 비슷한 수준. 그녀는 공기의 냄새만으로 며칠 후 눈이 내릴 것을 알아차릴 정도로 후각이 예민하다.
피부 관리실의 대성공은 1994년 조말론런던 첫 매장 오픈으로 이어졌고 5년 후엔 세계적인 브랜드 에스티로더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는다. 그녀는 남편 그리고 당시 다섯 살이던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매각을 결정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조말론런던에서의 커리어도 이어갔다. 하지만 2003년 뜻밖의 불행이 찾아왔다.
“암 선고를 받았어요. 인생의 어떤 일은 갑자기 벌어지잖아요. 제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기대한 것도 아닌데 저한테도 그 일이 일어난 거죠.”
공격적인 성향의 유방암이었고, 의사는 시한부 인생 9개월을 선고했다.
“그 순간 머릿속엔 남편과 아직 어린 아들 생각뿐이었어요.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암이 제 삶을 앗아가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뉴욕으로 가 최고의 의료진에게 새로운 방식의 치료를 받았습니다. 수술도 하고 약도 먹었습니다. 다행히 치료는 성공적이었지만 머리카락이 빠지고, 인격도 성격도 변했어요. 원래의 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거죠.”
더 치명적인 건 항암 치료 과정에서 그녀의 아이덴티티와 같은 후각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당시엔 너무 부끄럽고 당황스러워서 아무에게도, 심지어 남편에게도 얘기하지 못했어요. 향수를 만든 것은 제 후각 덕분이었는데, 그 감각을 잃은 게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상태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죠. 그래서 크림색 박스(조말론런던)를 떠나기로 했어요.”
회사를 떠난 지 한 달 만에 기적적으로 후각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조말론런던과 이별하면서 5년간 동종 산업에 몸담을 수 없다는 계약서에 사인을 한 상태였다. 조말론런던을 떠나 있던 시간은 자신이 향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저에겐 향수가 친구 같아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지금 기분이 좋은지 슬픈지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이 아이들한테 말을 걸어야 할지 느껴져요. 가장 소중하고 제일 잘하는 것이 향수 만드는 일인데, 그걸 못 한다는 게 너무 괴로웠습니다. 삶을 살다 보면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 순간에는 그 결정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틀린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거예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과 내 삶에 기쁨을 주는 것, 내가 누구인지와 내가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그걸 제자리로 돌리는 거죠.”
그렇게 5년이 흘렀고, 그녀는 향수 사업을 통해 다시 사람들에게 자신의 창의성을 선보이고 싶었다. 이미 크게 성공한 경험 때문에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두려움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녀는 “시작하기 전에는 무엇을 이룰지 알 수 없으니 일단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하버드대에 다니는 멋진 청년으로 성장한 아들 조쉬는 엄마에게 새로운 브랜드명으로 ‘조러브스’를 제안했다. “엄마가 향수를 사랑하고, 향수가 엄마를 사랑하니까.” 조 말론은 런던 첼시 엘리자베스 42번가, 처음 자신이 피부 관리실을 운영했던 바로 그곳에 조러브스 매장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 열린 마음에 찾아온 영감
조 말론은 사업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지만 새로운 향에 대한 아이디어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작은 섬으로 여행을 떠나 아침마다 아름다운 해변을 산책하며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스스로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실망만이 계속되는 나날을 보냈다.“뭔가 만들고 싶은 생각은 가득했지만 머리가 움직이지 않았어요. 희망을 잃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바닷가를 산책하는데 작은 가오리가 제 옆에서 헤엄을 치더라고요. 제가 걷다 멈추면 가오리도 멈추고, 가면 헤엄쳤어요. 저를 보는 것 같았죠.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고 자연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날 그 바닷가에서 가오리가 제게 ‘창의성이라는 건 원래 내 안에 있었던 게 아니라 관계에서 찾아온다’고 알려주었죠. 무언가를 컨트롤하려 하지 말고, 그 물고기가 나를 따라 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하면서 영감을 얻자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그날 봤던 파란 하늘과 바다, 하얀 모래사장, 레몬이 뿌려진 피지 워터와 소금기를 품은 바닷바람, 인근의 멋진 레스토랑에서 풍기는 맛있는 음식 냄새를 향에 담았다. 조러브스의 첫 번째 향수 ‘포멜로’가 탄생한 순간이다.
그녀가 처음 론칭한 조말론런던이 시그니처인 크림색 박스와 블랙 리본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한 것처럼 조러브스 역시 차별화된 마케팅 포인트가 있다. 조러브스는 향수의 향을 맡을 때 시향지에 의존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향기 타파스 바’를 운영한다. 향기 타파스 바에선 시향지 대신 칵테일 셰이커로 향기 거품을 낸 뒤 칵테일을 마시듯 마티니 잔에 거품을 담아 향을 체험해볼 수 있다.
“첫 키스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시간이죠. 조러브스와 첫 키스를 하는 순간 절대 잊지 못할 경험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향기 타파스 바를 고안했죠. 혹시 자영업을 하고 있거나 꿈꾸는 분이라면 자신의 브랜드와 고객이 처음 만나는 순간, 어떻게 하면 강렬한 첫 키스의 느낌을 갖게 할지 고민해보시면 좋겠어요.”
그녀는 또 펜슬형 향수를 만들어 마치 몸에 그림을 그리듯 향기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우리 할머니와 엄마 세대는 스프레이 방식으로 향을 뿌렸잖아요. 그걸 바꿔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향수 붓을 만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듯 향수 붓으로 자기 몸을 터치하는 순간 모든 사람은 아티스트가 되는 겁니다. 붓 자체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향수를 즐기고 사용하는 방식을 새롭게 창조한 거죠.”
조러브스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곳은 한국이다. 조러브스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제안으로 2021년 서울 가로수길에 첫 글로벌 단독 매장을 열었다. 그녀의 경험이 더해진 스토리와 섬세한 향 덕분에 조러브스는 국내에서 인기를 끌며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17%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조러브스에서 이번에 새롭게 출시한 ‘에보니 앤 카시스’는 그녀의 꿈이 담긴 향수이다.
“제 옆에서 돌고래들이 수영하는 꿈을 바탕으로 창조한 향입니다. 꿈을 이루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그 꿈을 믿어야 해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상대방도 당신의 이야기에 설득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아라비아반도 동남쪽 오만의 아름다운 바다에 전통 배를 타고 나가 짙은 보라색 밤하늘을 바라볼 계획이에요. 그러면서 제 삶의 또 다른 여정을 이어나가려 합니다.”
#조말론 #조러브스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