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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critique

관종 vs 행위예술가, 이찬혁은 왜 그럴까

정라리 대중음악평론가

입력 2022.11.28 08:19:36

회사원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여의도 한복판에 앉아 신문을 보는 이찬혁. 공개 음악방송에서 난데없이 머리를 밀더니 자신의 머리카락을 팬들에게 나눠준다. 원래 독특한 건 알았는데, 이 아티스트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열애 스캔들이 터지자 공개 음악방송에서 ‘ERROR’가 쓰인 마스크를 쓰고 발언을 거부한 이찬혁. 여의도에서 차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이찬혁. 유리관에 들어가 ‘파노라마’를 열창한 이찬혁(왼쪽부터).

열애 스캔들이 터지자 공개 음악방송에서 ‘ERROR’가 쓰인 마스크를 쓰고 발언을 거부한 이찬혁. 여의도에서 차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이찬혁. 유리관에 들어가 ‘파노라마’를 열창한 이찬혁(왼쪽부터).

“내일 있을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그것은 곧 잠시 나타났다가 그 뒤에 사라져버리는 수증기니라.”(야고보서 4:14)

죽음은 대부분 예고 없이 오기에 더욱 비극적이다. 끝이라는 걸 자각하기도 전에 끝은 와버린다. 오늘이 마지막인 걸 미리 알 수 있었더라면, 소중한 사람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나의 진짜 꿈에 솔직해질 수 있었다면. 시퍼런 후회들이 회색빛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고 기억들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점멸한다. 신이시여, 내게 단 하루만 더 허락해주소서. 간절한 바람은 절박한 기도가 되고 섬광 속에 영혼은 둥실 떠오른다.

죽음을 소재로 펼치는 설명 없는 퍼포먼스

이찬혁의 첫 번째 정규앨범, ‘ERROR’의 이야기다. ‘ERROR’는 아마도 앨범 단위로 ‘죽음’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개인에 대해 다룬 최초의 케이팝 앨범일 것이다. 앞서 가인이나 레이디스 코드가 미니앨범 혹은 싱글 형식으로 유사한 주제를 다룬 바 있지만, 케이팝의 영역 내에서 죽음의 모티프를 이처럼 긴 호흡으로 풀어낸 시도는 전무했다.

이렇듯 파격적인 주제 선정에 더해, 서울 시내 도로변에 대뜸 앉아 차를 마시고 공개 음악방송 무대에서 삭발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누리꾼들을 연일 경악시킨 그의 기행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본작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한껏 그러모았다. 특히 초반에는 퍼포먼스들을 대부분 신선하게 바라보던 대중이 점차 눈살을 찌푸리며 ‘과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논란의 중심에 선 이찬혁 본인은 정작 어떠한 의도도 밝히지 않고 굳건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묘한 미소를 띠고 이 사회가 어디까지 자신을 용인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듯한 그의 관망적 태도에 대중의 혼란은 배가된다.

이찬혁의 행동은 심오한 의도가 담긴 행위예술인가, 아니면 단순히 노이즈 마케팅을 위한 기행일 뿐인가. 본인이 직접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껏 그가 선보여온 확고한 철학을 고려하면 그 의도를 마냥 가벼이 여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이찬혁의 음악 안에 숨겨진 다양한 실마리들을 되짚어가며 그의 행보와 세계관을 연결시켜 풀이해보고자 한다.



이번 정규앨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찬혁이 다루고 있는 주제 의식이 그동안의 스탠스와는 다소 반대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앨범 ‘NEXT EPISODE’의 수록곡 ‘BENCH’의 가사는 다분히 보헤미안적인 가치관을 드러낸다. “천장 없는 내 집을 누비며 / 나무와 꽃이 내 친구 중 전부라면 / 난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거야”라고 노래하는 화자는 세속적인 가치와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소망한다. Mnet의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10’에서 피처링으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불협화음’의 가사 역시 마찬가지로 동일한 신념을 표방한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 앞에서 그가 마주한 자신의 내면은 달랐다. “늘 겸손하라 했지만 / 난 왕이 되고팠던 거야 / 욕심이 없다 했지만 / 난 정복을 원했던 거야” 이번 앨범의 수록곡 ‘내 꿈의 성’ 가사다. 돈보다 사랑을, 트로피보다 철학을 좇으며 넓은 하늘을 집 삼아 떠돌던 그도 마음 한편으로는 견고하고 거대한 성의 주인이 되기를 원해왔던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명예와 승리, 소유에 대한 근원적 욕망. 이 욕망은 사회적 규율 속에 억압된 채 표면 아래로 숨겨진다. 그리고 도덕은 사적인 욕망을 통제하고 감추는 데 능숙한 사람을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인간상이라 말한다. 그러나 무작정 욕망을 억누르고 기피하기보다는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진솔하게 마주하는 것 역시 건강한 자아 형성과 정신적 성숙에 이르는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때문에 이찬혁의 앨범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진짜 주제’는 죽음이 아니다. 죽음이라는 소재는 자신의 본심으로부터 눈을 돌려왔던 그를 각성시키는 서사적 도구로 차용되었을 뿐이다. ‘ERROR’는 한 소년이 비로소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까지 필요했던 기나긴 성장통의 기록이다. 망설임과 두려움이 남긴 짙은 후회와 회한은 마지막 순간 그가 끝내 자아를 받아들인 이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화된다. “평생을 길바닥에서 살아도 좋겠다 했던 / 그때 내 말은 참 재수가 없었겠다”라고 부끄럽게 웃으며, 소년은 이제야 삼켜놓은 사랑의 문장을 전하고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린다.

이 주제 의식은 이찬혁이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는 파격적인 행보와 밀접히 연관된다. 아니, 오히려 그 기행으로 인해 앨범의 제작 의도가 비로소 완성된다. 첫째로, 길거리에서 의자를 놓고 차를 마시거나 투명한 유리 상자 속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는 퍼포먼스. 이는 ‘파노라마’ 내 교통사고 이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기묘한 존재가 된 이찬혁의 모습을 구상화하는 작업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본질적으로는 ‘타인과 다른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시각화한 것이다.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회사원들과 여유롭게 앉아 티타임을 가지는 이찬혁. 두 객체는 같은 공간 내에서 완벽히 반대되는 행동 양식을 가지고 동시에 병존한다. 이찬혁은 유리 상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구분 선을 통해 자신을 군중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분리하기도 한다. 강렬한 시각적 이질감을 선사하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의도적으로 구현하고, 그 안에서 너무나도 당당하게 자신의 ‘다름’을 관철한다.

죽음을 통해 마주친 남들과 다르고자 하는 욕구

공개방송에서 삭발을 하는 퍼포먼스를 펼친 이찬혁. 이후 잘린 머리카락은 팬들에게 나눠줬다.

공개방송에서 삭발을 하는 퍼포먼스를 펼친 이찬혁. 이후 잘린 머리카락은 팬들에게 나눠줬다.

한층 더 파격적이었던 공개 음악방송에서의 기행 역시 그 연장선에 위치해 있다. 카메라로부터 등을 돌린 채 노래를 부르고, 화면에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만이 담긴다. 인터뷰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모든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한다. 얼굴을 보일 수도 없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련한 유령의 운명을 표현한 이 퍼포먼스들은 길거리에서 선보였던 행동들보다 더욱 강도 높은 당혹감을 안긴다. 한 술 더 떠 무대에서 돌연 삭발을 감행하고 그 잘린 머리카락을 팬들에게 선물하며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마지막 흔적을 남긴 채 떠나기까지. 일반적인 음악방송의 문법에 전혀 구애되지 않으며 온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대를 꾸리고 화면을 구성하는 이찬혁의 시도는 강렬한 충격요법을 통해 ‘자신의 개별성을 전시하는 행위’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를 촉구한다.

일부는 ‘굳이 공중파 방송에서까지 저런 행동을 해야 하느냐’고 묻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라. ‘방송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전 세계로 송출되어 더 많은 사람이 접하는 무대. 불문율의 무게와 금기 위반의 리스크가 가장 큰 자리. 그런 자리에서조차 자신의 표현 방식을 끝까지 고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이찬혁의 신념은 더욱 원심력을 얻는다.

동생(악동뮤지션 이수현) 없이는 단 한 번도 방송에 출연하지 않고 음악에 매진하던 그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활용하게 된 데에는 이러한 목적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찬혁의 행동이 정당한지 혹은 틀린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 자체가 그가 바란 것이며, 그가 촉발시킨 담론을 바탕으로 개인의 개성에 대한 보다 풍부한 논의가 생산되는 것이 궁극적 목표일 것이다.

죽음 앞에서의 치열한 사유로 비로소 스스로를 오롯이 받아들인 소년은 곧 유리 상자를 깨고 나와 따분한 세상을 도발한다. 이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토로할 수도 있으며,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개성을 표현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단순한 기행적 해프닝으로 휘발될지, 혹은 누군가에게 용기의 연원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 끝에 홀로 세상 앞에 나선 소년은 이제 그 세상을 바꾸려 한다. 현대사회에 잔존하는 경직성을 해소하여 새로운 시대성을 불러오고자 하는 이찬혁의 과감한 실험에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친다.

#이찬혁 #퍼포먼스 #악동뮤지션 #여성동아

사진제공 Mnet SBS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여성동아 2022년 12월 7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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