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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영화의 탄생, 이성한 감독

EDITOR 김명희 기자

입력 2019.12.08 10:00:01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는 우리의 부주의한 시선으로 놓쳐버린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보듬는 진짜 어른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했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긴 이성한 감독은 ‘재벌 2세 감독’이라는 독특한 타이틀을 갖고 있다.
괜찮은 영화의 탄생, 이성한 감독
깔깔거리며 재밌게 봤어도 극장을 나오는 순간 까맣게 잊게 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으나 여러 번 곱씹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꼭 봤으면 싶은 영화가 있다. 이성한(48) 감독의 신작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11월 21일 개봉)’는 후자다. 영화는 벼랑 끝에 놓인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실수, 실패까지도 보듬는 교사 민재(김재철)의 이야기다. 영화는 비행 청소년들을 선도하기 위해 13년간 거리를 헤맨 일본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님의 에세이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5명의 아이 지근(윤찬영), 용주(손상연), 수연(김민주), 현정(김진영), 성태(박건주)는 각자의 사정으로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돼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작품은 과거 자신의 실수로 제자를 잃은 아픔이 있기에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5명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보듬고 믿고 기다려주는 교사 민재를 통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의 메가폰을 잡은 이성한 감독은 우리나라 재계 16위 (주)부영 이중근 회장의 3남 1녀 중 막내다. 이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는데 7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걸 보면 그가 재벌 2세라 별 어려움 없이 영화를 만들었을 거라는 시선은 편견인 듯하다. 사춘기 소년 시절 홍콩 배우 성룡이 나오는 ‘쾌찬차’를 보고 영화에 빠져 30대 중반에 회사까지 그만두고 감독이 됐지만 어쩐지 그의 작품은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8년 데뷔작 ‘스페어’는 신선하다는 평에도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2009년 개봉한 정우 주연의 ‘바람’도 인생 영화란 극찬이 있었지만 흥행 바람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2011년 ‘히트’의 실패는 이 감독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고, 이 감독은 그 상처를 추스르는 과정에서 이 영화의 원작을 만났다. 그는 다음 브런치에 올린 글에서 당시 자신의 상황에 대해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게 거절하는데 나로서는 ‘꼴 좋다. 영화 만드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았어?’라며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때 내 마음의 상태가 그랬다.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고 적었다. 자책과 자괴감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그는 이 영화의 원작을 접하고 스크린으로 옮기는 동안 누군가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고 한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아이들과 그들을 따뜻하게 품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불안하고 위태로운 아이들과 그들을 따뜻하게 품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오랫동안 준비한 영화인데, 스크린에서 만난 소감은 어땠나요. 

어렵게 개봉했기 때문에 작품이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영화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작업인 것 같습니다. 특히 흥행작이 없는 감독에게는요. 시나리오 수정 작업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투자자와 배급사를 찾지 못해 기다린 시간도 길었거든요. 작품 자체는 지난해 봄에 완성됐기 때문에 올 겨울을 넘기면 영화가 상할 것 같아 걱정했는데 다행이죠.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반응이 갈리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아이들과 비슷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과 교육에 종사하는 분들은 많이 공감하시는 것 같고, 전혀 그런 환경을 접하지 못한 분들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짜증 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을 때 한 관객이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셔서 울컥했습니다.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들이 나이가 어린 데도 연기에 구멍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윤찬영 군은 오디션을 보고 바로 캐스팅을 했어요. 굉장히 겸손해서 신인이 연기를 잘하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구력이 꽤 된 배우더군요. 배우로서의 자세나 인성, 모든 면에서 배울 점이 많은 친구입니다. 찬영 군 외에 김민주, 김진영, 손상연, 박건주 등 모두가 원석 같은 친구들이기에 앞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우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아이즈원 소속 김민주 양은 무대에서와는 다른 매력이 있더군요. 

‘프로듀스 48’에 출연하기 전에 저희 작품을 촬영했는데, 천생 배우예요. ‘프로듀스 101’ 사태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거 같아 안타까운데, 영화를 보면 뿌듯해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재벌 2세 감독’이라는 세간의 수식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영화를 만드시는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저희 집안이 원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아버님이 열심히 일을 하셔서 대기업이 된 거고 중간에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영화도 사실은 굉장히 힘들게 하고 있어요. 정말 어려웠을 때 기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대기업에 묶여 있기 때문에 쉽지 않더군요. 영화를 시작하고 나서 한 순간도 (경제적인 면에서) 편하게 작업한 적이 없습니다. 늘 전전긍긍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월급을 계속 줄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들었어요. 

영화감독의 꿈을 버리지 못해 서른여섯 살에 회사를 나왔어요. 아버님은 반대하셨지만 더 나이가 들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할 수도 있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성룡의 액션물처럼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만들고 싶은 영화랑 만들게 되는 영화가 다르더군요. 무거운 이야기만 파고든다며 ‘진지충이냐’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에 꽂히면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집중하는데, 우연히 접한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님의 에세이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고 꼭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집안에선 지금도 영화 하는 걸 반대하나요. 

아버님은 제가 영화를 안 했으면 하셨지만 저는 온통 영화 생각뿐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서운한 마음이 컸는데, 시간이 지나고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버지로서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구나’라고 이해하게 된 면이 있어요.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사업을 일구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알았고요. 내 아버지를 포함해 이 땅에 모든 아버지로 살아가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영화가 ‘바람’입니다. 

영화를 보면 민재가 늘 따뜻하게 대하던 제자를 딱 한 번 차갑게 거절했다가 아이를 잃게 됩니다. 이를 통해 어설픈 선의는 베풀지 않느니만 못하지 않나, 그럼에도 계속 선의를 갖고 아이들을 대해야 하나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저는 그 일이 민재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는 계기가 됐을 거라고 봅니다. 내가 베푼 선의에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한순간 화를 냈던 게 아이가 힘들게 잡고 있는 끈을 놓아버리는 계기가 됐잖아요. 그 아이한테는 정말 나밖에 없었구나, 다시는 같은 실수로 아이를 잃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을 겁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영화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어릴 때는 영화에 나오는 멋지고 신기한 세계를 동경했습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영화에서 봤던 영웅이나 완벽한 세상은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라는 걸 깨닫게 됐죠. 그래서 더 영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현실에는 없지만 정말 있으면 좋을 것들, 누구에겐가 필요한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구현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요. 

지금으로선 계속 영화를 만들 수만 있어도 좋을 거 같아요. 앞서 제작한 저예산 영화 두 편이 있는데 개봉을 못 하고 있어요. 이번 영화가 잘되면 다음에 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부영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19년 1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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