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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study

“생각하는 힘 길러줘야 성공하는 아이로 자라요”

영재들의 멘토 노규식 원장

EDITOR 정보라 기자

2019. 07. 08

어릴 때부터 똑똑한 우리 아이 과연 영재일까. 아이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SBS ‘영재발굴단’ 자문위원이자 ‘대치동 학습 멘토’로 수많은 영재들을 만나온 노규식 연세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이 질문에 답했다.

2015년부터 SBS ‘영재발굴단’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신데, 영재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인가요. 

평범한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동일한 노력을 들여서 더 우수한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아이를 의미합니다. 영재들에겐 2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생각하는 걸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 열정이 넘치고 끈기 있게 해내죠. 영재라고 해서 처음부터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건 아니거든요. 작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 영재들은 며칠이고 그 일에만 매달리죠. 

자신의 아이가 영재인지 아닌지 궁금해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영재를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만 3~4세 아이가 다음의 7가지 특징을 보인다면 영재일 가능성이 있어요. 어휘력이 뛰어나거나, 다른 사람 흉내를 잘 내거나, 그림 또는 숫자로 된 퍼즐을 좋아하거나, 직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한 가지 일에 몰두하거나,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거나, 공상을 많이 하는 경우예요. 부모님들은 자녀가 공상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아닐까 걱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ADHD를 두뇌가 좋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어요. 아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만 도와주면 창의성과 독창성을 발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거든요. 중요한 점은 영재를 판별하는 기준에 한글을 빨리 뗐다, 계산을 빨리 한다 같은 건 들어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한글이나 산수는 일찍 배우면 일찍 늘 수 있거든요. IQ 테스트도 영재 판별에 도움은 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에요. IQ 테스트는 주로 언어나 수 · 과학적인 지능만 판단할 수 있거든요. 

머리 좋은 아이가 꼭 영재는 아닌 거네요.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영재가 될 수 있는 자질이 풍부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앞서 말한 7가지 특징이 더 중요해요. 지능이 높은 아이들이 영재가 되기 위해서는 일찍 사람들의 평가와 경쟁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사람의 창의성을 가장 많이 손상시키는 2가지가 평가와 경쟁이거든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재미를 깨우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평범한 아이를 똑똑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영재 관련 학회에 참석했는데 영재들이 가진 재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전두엽의 6가지 능력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이 능력은 평범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도 필요해요. 영재와 평범한 아이들을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영재는 3000cc, 평범한 아이는 2000cc로 배기량의 차이예요. 운전자의 능력에 따라 때로는 2000cc 자동차가 더 잘 달리기도 하잖아요. 즉, 타고난 재능보다 어떻게 공부를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전두엽의 6가지 능력은 어떤 건가요. 

계획하는 능력, 조직화하는 능력, 우선순위를 정하는 능력, 계획을 점검하는 능력, 계획이 틀어졌을 때 사고를 전환하는 능력, 단기기억 능력이에요. 단기기억 능력은 단어를 외우는 기억력과는 달라요. 수학 문제를 풀 때 ‘a는 0보다 크다’와 같이 조건이 주어지면, 이 조건을 문제를 푸는 내내 기억해야 하잖아요. 단기기억 능력은 문제의 조건을 기억해서 적용하는 데 필요한 기억력을 이야기합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6가지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나요. 

만 10세부터 본격적으로 앞서 말씀드린 6가지 능력이 개발되기 시작해요. 초등학교 숙제는 이런 능력을 키우기 적합하도록 설계돼 있죠.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자서전 써오기, 우리 동네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릴 것 같은 물건 3개를 찾아서 왜 그런지 써보기, 실험해서 리포트 쓰기 같은 것들요. 그런데 요즘 부모님들은 이런 학교 숙제보다 학원 숙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학원 숙제는 단순 반복이에요. 단순 반복은 문제를 푸는 스킬은 늘려줄 수 있지만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진 못해요. “아이가 초등학교 때는 성적도 잘 나오고, 중학교 과정 선행도 했는데 중학교 와서 성적이 떨어졌다”고 속상해하는 부모님들이 많은데 그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지 못해서 그래요. 저는 적어도 아이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시험 점수보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슬하에 1남 1녀(대학생 아들, 중학생 딸)를 두고 계신데, 자녀 교육에도 남다른 노하우가 있으실 듯해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지만 그렇진 않아요(웃음). 대한민국에서 제 이야기를 가장 안 듣는 아이들이 저희 집 아이들이거든요. 밖에서는 정신과 의사지만 집에서는 평범한 아빠예요.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특히 힘들어하는데 원장님은 어땠나요. 

사춘기를 잘 보낼 수 있는 왕도는 없어요. 큰아이의 사춘기를 같이 지내고 나서 깨달았죠. 하지만 사춘기를 덜 나쁘게 보내는 방법은 있어요.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 아이와 정서적 유대감을 많이 쌓아놓는 거예요. 저도 큰아이를 키울 때는 서툴러서 힘들었지만 둘째 때는 그런 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딸은 저를 친근하게 생각하는데 아들은 아닌 거 같아요. 

두 아이가 아버지에 대해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시네요. 

네. 처음에는 힘들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제가 정신과 전문의인데 이로 인해 제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죠. 그런데 그냥 그것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것도 큰아이의 사춘기를 지나면서 얻은 지혜예요. 

어떻게 하면 아이와 유대감을 쌓을 수 있을까요.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는 것을 추천해요. 음악은 정서적인 자극이잖아요. 정서적인 자극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유대감이 정말 크거든요. 남자아이라면 게임을 같이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제 지인의 경우는 아들이 하는 게임을 배워서 아들, 아들 친구들과 함께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아들의 친구들이 “너희 어머니 뭐 하시니? 시간 되면 같이 게임 한판 하시자고 해”라면서 먼저 찾기 시작하더래요. 아들 입장에서 엄마가 얼마나 가깝게 느껴지겠어요. 자녀들이 좋아하는 게임이나 음악을 평가하기 이전에, 왜 아이들은 이걸 매력적으로 느끼는지 알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판단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요. 

원장님도 자녀들과 자주 음악을 듣나요. 

그럼요. 저는 방탄소년단 트위터도 팔로해요. 저희 딸이 좋아하는 몬스터엑스 멤버도 다 알고, 활동도 지켜봐요. 방탄소년단이나 몬스터엑스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이가 말이 많아지면서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속마음도 털어놓곤 해요. 

학습법 강연에서 “공부는 감정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감정 조절 능력이 뛰어나요. 우리의 뇌는 튼튼한 2개의 기둥 위에 탑이 높이 세워진 구조로 돼 있는데, 2개의 기둥 중 1개가 감정 조절 능력이에요. 여기서 기둥 하나가 부서지면 탑이 와르르 무너지죠.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지면 공부를 잘하는 뇌가 되기 어려운 거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화내지 않고 아이를 기르는 법’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감정만 상하지 않게 해도 아이가 공부를 하고 성적이 올라가거든요. 감정이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인 근거도 있어요. 사람이 우울하다고 느끼면 뇌가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뇌의 포도당 섭취량이 뚝 떨어져요. 우울한 학생이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이유죠. 반대로 기분이 좋으면 뇌의 포도당 섭취량이 늘어요. 그만큼 공부하는 데 있어 감정이 중요합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이마다 맞는 공부 방법이 다른데 그걸 찾아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포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학습 동기를 높이기 위해 성취 경험을 만들어주세요. 공부는 하고 싶을 때 해야 늘거든요. 아이들은 공부가 잘된다는 생각이 들 때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껴요. 공부가 잘된다는 느낌을 아이가 가질 수 있도록 작은 성취에도 크게 격려해주세요. 그리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꼭 알려주세요. 상담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은 결과가 나쁘면 과정이 소용없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해요. 이런 아이들은 공부를 하다 안 될 것 같으면 미리 포기하고, 시험을 치를 때 극심한 불안감을 호소해서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려워요. 

원장님의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다들 자녀를 사랑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게 항상 즐겁지만은 않잖아요. 저는 부모-자식 간의 갈등을 줄여주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영재발굴단’에 출연하며 느낀 건데 우리나라에는 영재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줄 만한 기관이 너무 적어요. 물론 교육청의 영재 학급도 있고 대학 부설의 영재교육기관도 있지만, 그런 시설보다 학부모들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재들을 위한 교육 시설을 세우고 싶어요. 저 혼자는 어렵고 여러 뜻 있는 분들과 함께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거나 일하느라 바빠, 상담이 필요하지만 저를 찾아오지 못하시는 학부모님들을 도와드리고 싶어요.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방법을 고민하다 최근에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고 있어요.

노규식 박사는 …

연세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연세대 의대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 청소년센터 소장, 서울대 임상의학연구소 신경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역임. 
2015년부터 현재까지 SBS ‘영재발굴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사교육 1번지’ 서울 대치동에서 소아 · 청소년 클리닉을 운영하며 아이들의 정신 건강 및 학습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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