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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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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의 이혼’ 미끼를 삼킨 쪽은 누구일까

삼성전기 임우재 고문 기자들 상대로 ‘심경 토로’ 보도 파문

글 · 정희순 | 사진 · 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 디자인 · 김영화

2016. 06. 28

삼성의 맏사위이자, 현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 소송 중인 임우재 삼성전기 고문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결혼 생활 중 겪은 ‘설움과 울분을 토로’(6월 17일 자, 〈한겨레〉 ‘임우재 고백, 먼저 터뜨리지 않은 까닭’)한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파문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퍼지고 있다. 결혼과 관련해 그동안 삼성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들이 확인됐고, ‘비보도’를 전제로 했으나 기자들에게 민감한 가정사를 털어놓은 의도에 대해서 ‘기획설’과 ‘음모설’까지 제기됐다. 모두가 주시하고 있던 삼성가의 이혼 소송에서 특종 보도라는 탐나는 미끼를 물어버린 기자와 ‘낙종’ 기자들의 주장. 인터뷰인 듯 아닌 듯, 결국 소송 중 ‘정식’ 인터뷰를 해버리고 만 임우재 고문의 상황을 알아봤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맏사위인 임우재(48) 삼성전기 고문의 ‘인터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임 고문은 현재 이 회장의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 소송 중이다.

〈조선일보〉는 6월 15일자 지면에 하루 전날 있었던 임 고문과 〈월간조선〉 기자의 인터뷰 내용 요약본을 게재했다. 기사에는 “이부진 사장의 경호원을 하다가 결혼했다” “결혼 생활이 괴로워 자살을 기도했다” “삼성의 고위 임원으로부터 모욕을 당했다” “이건희 회장의 손자라 내 아들도 어려웠다” 등 대한민국 최고 재벌가의 사위와 나눈 대화 내용이 드러나 있다.

후폭풍은 거셌다. 가사 소송 내용을 보도해 가사소송법(10조)을 어겼고, 개인의 건강 문제를 포함, 민감한 가정사를 폭로했다는 비난이 일었던 것. 임 고문과 기자의 만남을 주선한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해당 기사가 보도된 당일 자신의 블로그에 ‘여러 명의 기자가 동석한 사적인 자리였을 뿐 임 고문은 〈월간조선〉의 인터뷰에 응한 적 없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당시 동석했던 〈한겨레〉의 기자 역시 “비보도를 전제로 만난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윤리강령을 위반하는 일”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사실 관계를 바로잡겠다며 임 고문과 추가로 ‘정식’ 진행한 인터뷰(6월 16일자, 〈한겨레〉 ‘이건희 회장이 결혼하라고 해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를 게재함으로써 다시 한번 ‘민감한 가정사’를 공개했다.

그리고 지난 17일, 문제의 기사가 실린 〈월간조선〉이 발행됐다. 임 고문의 인터뷰 기사를 처음 보도한 기자는 기사 하단에 “정황상 인터뷰가 맞다고 판단했다”며 취재 경위를 상세히 밝혔다. 같은 날 발행된 〈한겨레〉의 ‘임우재 고백, 먼저 터뜨리지 않은 까닭’에 대한 반박인 셈이었다. 그가 밝힌 보도의 당위는 이렇다. 당초 혜문이 “임 고문이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하고 해서 싶어한다”고 자리를 마련했으며, 만남을 회사에 알리지 않겠다고 하자 오히려 “보고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사전 양해도 없이’ 그 자리에 해외 매체인 월간 〈문예춘추〉와 종합 일간지 〈한겨레〉, 시사 주간지 〈시사IN〉 기자가 동석해 ‘기자회견 상황이다’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번 보도를 언론의 윤리강령 위반으로 봐야할까, 혹은 어떤 식으로든 언론에 자신의 입장과 심경을 알리길 원한 임우재 고문의 속마음이 빚은 해프닝으로 봐야할까.


표면적으로 봤을 때 이번 보도로 인해 불리해진 사람은 임 고문이다. 인터뷰 기사가 보도된 직후 임 고문의 변호인단 8명 전원이 사임계를 제출해 오는 6월 29일로 잡힌 변론 기일 준비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변호인단이 돌연 사임 의사를 밝힌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사소송법 위반의 소지가 있는 ‘돌발적’ 인터뷰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판부에서 임 고문이 의도적인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오히려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조선일보〉 6월 15일자에 실린, “원래는 결혼을 하지 않고 때가 되면 물러나려 했으나 동생(이서현 씨)이 결혼을 서두르자, 이건희 회장이 ‘언니(이부진)가 먼저 결혼하지 않으면 허락하지 않겠다’고 해 결혼에 이르게 된 것” “결혼 생활이 너무 괴로워 두 번이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내용이나 “이건희 회장님의 손자이기에 (나에게) 아들이 어려웠다”는 고백은 ‘가정을 지키겠다’며 현재 양육권 분쟁을 벌이는 임 고문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인터뷰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도 “고충이 심했을 것”이라는 동정 여론에서 점차 “민감한 사안을 폭로했다”는 비난 의견이 많아지는 추세다. 여러모로 난처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애초에 인간적으로 직접 신뢰 관계도 없는 기자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놓으려 했던 임 고문의 의도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사실 임 고문 입장에선 정식으로 인터뷰를 해서는 안 되는 상태지만, 잘못 알려진 사실을 언론을 통해 바로잡아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성할 필요가 있다.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여유가 없었어요”(〈월간조선〉 7월호)라는 말은 오히려 이혼 소송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하게 한다. “기자들과의 가벼운 점심 식사 자리”였다는 임 고문 측의 한결같은 주장에도 꾸준히 기획설과 음모설이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로 이혼 소송이 시작된 이후 ‘조만간 임 고문이 직접 언론에 나설 것 같다’는 것이 기자들 사이의 중론이었다. 그가 언론에 직접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싶어하고 있으며, 적절한 타이밍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동아〉 역시 임 고문 측 변호인을 꾸준히 접촉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지난해 8월 가사 조사를 받기 위해 직접 법원에 출석한 임 고문은 “아내와 이혼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가정을 지키고 싶다”고 자신의 의사를 밝혔고, 올 2월에는 변호인을 통해 직접 작성한 A4 용지 두 장 분량의 호소문을 공개하며 “아들이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친가 쪽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이번에 가진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는 어쩌면 ‘삼성가 맏사위의 속사정’이라는 대형 떡밥을 던져 놓고 기자들이 덥석 물길 바랐던 임 고문의 속내가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기자들 사이에선 ‘절대 현혹되지 마라’고 했던 영화 〈곡성〉의 대사가 이번 사건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현혹한 자와 현혹된 자는 과연 누구일까. 

임 고문과의 자리를 마련했던 혜문은 누구?
조계종 승려로 법명은 ‘혜문’이었으나 결혼해 아이를 낳고 환속해 현재는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로 활동 중이다. 2010년부터 일본 오쿠라호텔에 있는 고려 석탑 2기의 반환 운동을 해오며 이를 오쿠라호텔과 자매결연을 맺은 신라호텔 측에 제안하는 과정에서 임 고문과 연이 닿게 됐다. 혜문 대표는 ‘수세에 몰린 임 고문의 사정이 딱해 기자들에게 조언을 구해보자며 임 고문을 설득했다’고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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