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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보름간 일기를 써봤다

문영훈 기자

2024. 03. 12

역사를 바꿀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좋다.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어도 괜찮다. 일기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는. 

굳이 일기를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감사 일기’가 유행할 때도 감사한 일이 없는데 감사할 일을 지어내는 게 자위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자기 계발의 첫 번째 수단으로 일기가 대두될 때도 시큰둥했다. 친구가 “하루를 정리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고 일기 쓰기를 추천했을 때 “돈 주지 않는 글은 안 쓴다”고 건방지게 대꾸했다.

일기를 떠올린 것은 망각에 대해 자주 생각하면서다. 연말에 지인이 2023년을 10문장으로 정리한 글이라며 토막글을 보내왔다. 나도 답으로 2023년을 정리하려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어딜 갔었는데…’ ‘누굴 만났는데…’ 같은 기억의 단편만 겨우 붙잡고 있었을 뿐이다. 두뇌는 더 우둔해질 테고, 곧 며칠 전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떠올리는 게 불가능할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모든 장면들은 사라질 것이다.”

자신의 삶을 문학의 소재로 삼아 노벨문학상의 성취를 이룬 아니 에르노는 ‘세월’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아마 그 장면들이 사라질까 (일기 같은) 소설을 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에르노 외에도 기록을 예찬한 이들은 많다.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던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을 치료하는 수단으로 일기를 이용했다. 아이유는 “일기가 자신의 창작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우습기 짝이 없다” “매우 해괴하였다” 등 원색적인 비난을 담아 400년 뒤 후손에게도 원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킨 이순신 장군도 빼놓을 수 없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도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일기를 쓰라고 수차례 강조한다.
우리 선조들은 음력을 따르며 2024년을 사는 게으름뱅이에게 새해 맞을 기회를 두 번 줬다. 진짜 갑진년이 시작되는 새해를 맞아 일기를 보름간 써보기로 했다.

10개월 만에 꺼낸 노트

아이유는 “창작의 원천이 일기”라고 말한다.

아이유는 “창작의 원천이 일기”라고 말한다.

헬스장에 등록하기 전 운동복과 운동화부터 장바구니에 담듯 아날로그 일기를 쓰려면 마음에 드는 노트와 펜이 필요하다. 다행히 무려 4만 원짜리 몰스킨 노트가 책꽂이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국내 1호 기록학자’ 김익한 명지대 교수를 인터뷰할 때 ‘기록형 인간’의 중요성에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다 집에 와서 주문한 것이었다. 노트를 펼치니 ‘디지털 회의’ ‘집에 도착하면 샤워부터 하기’ 등 2023년 4월 3일에 했던 일과 생각들이 아무렇게나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은 2023년 4월 4일에서 끝났다…. 그나마 칭찬해줄 만한 것은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무지 노트를 골랐다는 것.

노트 앞을 뜯어버릴까 잠시 고민하다 그간 빈 날짜는 게으름에 대한 기록이라고 믿기로 했다. 새 페이지에 2024년 2월 1일이라고 쓰고 멍때리기를 했다.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게 무색하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퇴근길에 봤던 인상적인 유튜브 채널 이름을 써놓자 그 유튜브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첫날은 침대 위에서 유튜브를 보며 잠들었다.



일기에 굳이 거창한 일을 쓸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나만 보는 것이므로(이걸로 기사를 써야 하긴 하지만). 매일매일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걸 쓰려고 하면 부담감만 갖게 된다. 그래서 일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됐다. 예상보다 훨씬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들어온 날엔 ‘내일 출근 개 망했네’라고만 적어두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필사히기도 했다. 2월 6일의 일기는 최은영 작가의 소설 ‘답신’에 나온 문장으로 대신했다.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또 내일과도 다를 거라는 근거를 적어두는 거지. 기록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같은 날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한꺼번에 사라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거든.”

기록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스쳐 지나갈 문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2월 14일 일기는 막국수로 시작한다. 퇴근하고 서촌의 막국수 집에 친구와 다녀왔다. 물막국수, 들기름막국수와 오징어순대를 시켜두고 언제 우리가 이 집에 마지막으로 왔는지를 떠올렸다. 그동안 계절이 두 번 바뀌었고,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며 우리는 도대체 그동안 뭘 했는가에 대해 떠들었다. 설 연휴인 2월 11일에는 부모님과의 기억을 적어두었다.

“언제나 명절이 오기 전 부모님과 보내는 며칠 동안 화를 참자고 마음먹는다. 당신이 나에게 했던 수많은 노고를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도 실패다. 3시간의 쇼핑 끝에 짐을 양손에 잔뜩 들고 쇼핑몰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엄마가 방금 구입한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색으로 교환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글쓰기와 심리학의 관계를 연구한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피실험자들이 글을 쓰고 나서 질병으로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었다고 주장한다. 신체 면역 기능까지 전반적으로 향상됐으며, 학교나 직장에서의 업무 수행 능력과 성적이 올랐다는 것. 거의 글쓰기가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서두에 일기에 대한 염세적인 마음을 늘어놓았지만, 막상 일기를 쓰기로 하자 이 행위로 뭔가를 얻어보겠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우선 실용적인 기능이 있었다. 평소 기사를 쓰면서 뇌는 머리가 아니라 손가락 끝에 달렸다고 자주 생각한다. 머리로 구상을 해봤자 글은 나오지 않는다. 키보드를 두들기며 손끝 모세혈관에 자극을 줘야 비로소 글자들이 제멋대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펜을 쥐고 쓰는 일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멍청한 상태로 허공을 바라보다 뭐라도 끄적거리면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갔다. 그러다 보면 할 일이 생각났다. 오늘 먹은 점심 식사에 대해 쓰다가 다 떨어진 키친타월을 새로 주문하거나, 오늘 방문했던 장소가 과거 친구와 함께 간 곳임을 떠올리며 안부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일상에도 작게나마 영향을 미쳤다. 소재를 발견하는 재미다.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오늘 글감은 이거’라고 조용히 생각하며 속으로 씩 웃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지극히 당연한 부탁에 화가 치밀었을 때 ‘일기에 써야겠다’ 생각하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쇼핑몰 안으로 다시 따라 들어갔다.

고작 일기를 쓰면서 만병통치약 얻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기사는 하나 썼다. 하나 더 있다. 올해는 아마 친구에게 2024년을 그럴듯하게 정리한 10문장을 써서 보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일기 쓰기를 망설이는 완벽주의자들에게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 문구를 전한다.

“쓰레기를 쓰겠어! 라고 결심하니 써지긴 써진다. 매일 다짐해야겠다. 쓰레기를 쓰겠어!”

#일기 #챌린지 #글쓰기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유튜브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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