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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BBC 선정 여성 100인 케이팝포플래닛, 이다연 활동가

“처치 곤란 앨범 쓰레기를 왜 팬들이 떠안아야 하나요?”

문영훈 기자

2024. 03. 06

초동 앨범이 500만 장 이상 팔리는 펜타 밀리언셀러 시대가 열렸다. 스트리밍 시대에도 한 해 1억 장 가까이 팔리는 CD. 그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가게 될까. K-팝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팬들은 ‘케이팝포플래닛’으로 모이고 있다. 

BBC 선정 여성 100인 케이팝포플래닛 이다연

BBC 선정 여성 100인 케이팝포플래닛 이다연

K-팝은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다. 주요 엔터 4사(하이브·JYP·SM·YG)는 2023년 3분기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이를 견인하는 것은 매해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음반 판매량이다. 2023년 판매된 음반은 사상 처음으로 1억 장을 넘어섰다. 플라스틱 CD로 쌓아 올린 K-팝 성전의 그림자도 짙다. 환경 폐기물 양산에 대한 비판이다. 랜덤 포토 카드를 모으고, 팬 사인회에 가기 위해 팬들은 수십, 수백 장의 앨범을 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엔터사가 앨범 제작에 사용한 플라스틱은 2017년 55.8t에서 2022년 801.5t으로 6년 사이 14배 넘게 증가했다.

기후 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Z세대 팬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케이팝포플래닛’에서 캠페인을 기획하고 직접 행동에 나서는 이다연(22) 활동가 역시 그중 하나다. 그는 인도네시아 누룰 살리파 활동가와 함께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는 기조로 케이팝포플래닛을 출범시키고 지금까지 유지해왔다. 이 같은 공로로 이 활동가는 지난해 BBC가 선정한 ‘2023년의 여성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그간 해당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2022),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대책위원장(2022),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2020) 등이다.

도쿄외국어대학에 재학 중인 그는 2월 한국에 돌아와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들과 함께 서울에서 케이팝포플래닛 활동을 하고 있다. ‘BBC 리스트’에 오른 소감을 묻자 “저 혼자 한 일이 아닌데 명단에 홀로 기재돼 미안하다”며 “단체가 선정될 수 없냐고 BBC 측에 물었는데 인물만 명단에 올라갈 수 있어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고등학생 시절 점심시간이면 K-팝을 틀어놓고 친구와 함께 춤추며 놀았다”고 말하는 평범한 학생이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1만 명 K-팝 팬들의 목소리가 모여

이다연 활동가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BBC 2023 여성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다연 활동가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BBC 2023 여성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언제부터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졌나요.

고등학교 때 신문을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를 붙였어요. 매일 읽다 보니 기후 위기에 대한 기사가 많이 보였죠. ‘지구를 지키기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기후 위기 문제가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도 힘을 보태고 싶었지만 당시엔 학생이었으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알게 돼서 들어가게 됐어요.

케이팝포플래닛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청소년기후행동에서 활동하다 누룰의 글을 보게 됐어요. K-팝 팬들이 기후 행동을 한다면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내용이었어요. 저도 청소년기후행동에서 활동하는 K-팝 팬으로서, 수능을 보고 나서 누룰 등 K-팝 팬들이 모여 줌 회의를 시작했죠. 사실 기후 위기는 너무 포괄적이잖아요. 처음엔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문제는 무엇일까, 팬들이 가장 염려하고 있는 기후 문제는 뭘까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량은 다른 산업과 비교하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바꿔보자는 생각이 강했어요. K-팝과 전 세계 음악 산업은 커지고 있고요. 그만큼 탄소 배출량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죠. 팬으로서 오래 K-팝을 좋아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방향을 제시해보자는 취지였어요. K-팝 팬들은 이미 엔터사에 불만이 쌓여 있었어요. 제일 심각했던 건 앨범 문제죠. K-팝 문화에서는 팬들이 앨범을 다량 구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어요. 포토 카드를 모으거나 팬 사인회에 가기 위해서죠.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마음도 있고요. 그러면 앨범 폐기물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왜 생산자가 아니라 구매자가 이를 다 떠안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어떤 방식으로 팬들의 의사를 전달했나요.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팬들의 서명을 모았어요. 앨범 패키징에 친환경 선택지를 도입하거나 플랫폼 앨범을 발매하라는 거였죠. 전 세계 팬들의 목소리를 기획사에 전달하려고 했죠. 청원을 모으기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90여 개국에서 1만 명의 서명을 받았어요. 2021년 말엔 국회에서 ‘지속 가능한 엔터 산업’을 주제로 간담회도 열고 메이저 기획사에 의견을 전달했는데 그때까진 아무 답변도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직접 찾아간 건가요.

우선 팬들이 집에 쌓아둔 실물 앨범을 모았어요. 3주 만에 8000장이 도착했습니다. 앨범을 기획사별로 분류하고 롤링 페이퍼를 만들어서 직접 찾아갔죠. 하이브 앞에서는 댄스 퍼포먼스도 하고, 트럭을 빌려서 엔터사를 돌며 앨범을 다시 돌려주는 일을 했습니다. 생산자가 폐기물에 대한 재활용과 처리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에서요.

반응은 어땠나요.

한 엔터사에 갔을 때는 “당장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이건 팬들의 목소리고 당연히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도요. 그래서 전달하지 못한 곳도 있었어요. 그러면 택배로 다시 보냈죠. 사실 팬들이 있기에 엔터사의 위상도 높아질 수 있는 거잖아요.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폐기물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선택지를 팬들에게 줘야 하고요.

K-팝 팬들의 목소리를 냉대하던 기획사들은 점차 ESG 경영의 중요성을 깨닫고 변화에 나서고 있다. 2022년 5월 JYP엔터테인먼트는 업계 최초로 한국형 RE100(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이행하기로 했다. 같은 달 하이브는 BTS 제이홉의 솔로 앨범을 실물 CD 없이 QR 코드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플랫폼 앨범 형태로 발행했다. 엔터 4사는 ‘지속가능 보고서’를 발간해 탄소 배출량과 ESG 활동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이 활동가는 이와 같은 노력도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앨범 관련 캠페인을 하면서 메인으로 요구했던 게 그린 앨범 옵션이었어요. 팬들이 수십, 수백 장의 앨범을 구매하더라도 실물은 2〜3장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옵션을 만들라는 거죠. 아직 이를 시도한 기획사는 없거든요. 플랫폼 앨범도 아직은 실험 단계라고 봐요. 보다 환경을 생각한 적극적인 시도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팬들의 응원이 활동의 원동력

케이팝포플래닛은 실물 앨범으로 발생하는 쓰레기 문제 외에도 K-팝과 기후 문제를 결합한 다양한 활동을 주도해왔다. BTS가 ‘Butter’ 앨범 재킷을 촬영한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에 삼척석탄화력발전소가 건립되는 것을 반대하는 ‘SAVE THE BUTTER BEACH’ 캠페인이나, 기념일에 아티스트 이름을 딴 숲을 조성하는 문화를 넘어 숲을 입양해 기존 숲을 관리하자는 취지의 ‘Fandom for Forest’ 캠페인 등이다.

최근에는 K-팝 아티스트를 홍보 모델로 두고 있는 기업에 대한 환경 운동으로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BTS와 계약을 맺은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에 새 석탄화력발전소를 세우려는 기업, 아다로미네랄 알루미늄 제련소와 공급 협약을 맺었어요. 지난해 이를 철회해달라는 캠페인을 시작했죠. 1년간 캠페인을 벌였는데, 계속 기다려달라는 입장을 들었어요. 최근에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급망을 개선하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현대자동차는 BTS를 모델로 쓸 뿐입니다.

BTS가 앰배서더 역할을 맡으면서 전 세계 아미가 현대차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게 됐잖아요. BTS를 통해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했고요. 그런 만큼 K-팝 팬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명품 브랜드에서도 K-팝 아티스트를 모델로 쓰면서 젊은 세대를 고객으로 모으고 있는데, 탄소 배출에 대한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실물 앨범 문제를 비롯해 K-팝과 관련된 다양한 산업에 목소리를 낼 예정입니다.

3년간의 활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케이팝포플래닛은 항상 대기업을 타깃으로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막막하고 답답하기도 했죠. 우리가 정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목소리를 내다 보니 점차 반응이 오기 시작하고,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걸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어요. 전 세계 팬들이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으로 응원의 DM을 많이 보내줘요. 그런 메시지를 보며 원동력을 얻기도 합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시나요.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에 다들 관심이 없었어요. 이제는 메이저 엔터사가 ESG 리포트를 발간하고 팬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죠. 또 스트리밍 업체 멜론도 2030년까지 친환경 클라우드로 이전해 스트리밍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했거든요. 점점 팬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K-팝에 대한 사랑을 지구에 대한 사랑으로

2022년 하이브 사옥 앞에서의 앨범 쓰레기 문제 해결 촉구 캠페인(왼쪽).  2021년 강원도 삼척 맹방해수욕장 에서 벌인 ‘버터 비치 보호’ 캠페인.

2022년 하이브 사옥 앞에서의 앨범 쓰레기 문제 해결 촉구 캠페인(왼쪽). 2021년 강원도 삼척 맹방해수욕장 에서 벌인 ‘버터 비치 보호’ 캠페인.

현재 케이팝포플래닛은 K-팝을 사랑하는 팬들의 자발적인 도움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이 활동가를 포함한 공식 활동가는 인도네시아인 2명, 한국인 2명으로 이들은 매일 줌으로 만나 K-팝과 기후 문제 관련 뉴스를 공유한다. 일본 도쿄외국어대학에 재학 중인 이 활동가는 본격적으로 기후 문제 캠페인을 하기 위해 2022년, 1년간 대학을 휴학하기도 했다.

부모님이 반대는 없었나요.

한번은 앨범에 파묻혀 있는 제 사진을 부모님께 보낸 적이 있어요. 그때 “너 거기서 뭐 하고 있냐”는 반응을 듣긴 했습니다. 사실 부모님 세대는 환경 이슈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기도 하잖아요. 더구나 그게 엔터사와 관련된 이슈면 더 잘 모르시고요. 처음엔 제가 뭘 하고 다니는지 정확하게 모르다가 캠페인 이후에 변화가 생기고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니까 알게 되셨던 거 것 같아요.

활동가 4명이 기획부터 홈페이지 디자인까지 전부 하는 건가요.

저희 4명 중에 디자인을 잘하는 인도네시아 활동가가 있어요. 홈페이지 개설 같은 기술적인 부분이나 비용 처리 등을 도와주는 매니저가 3명 있고요. 고정 멤버 7명 말고도 유동적으로 함께하고 싶은 분들이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죠. K-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Z세대가 유독 환경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있나요.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실하게 자기 문제로 느끼는 것 같아요. 소셜 미디어의 힘도 크죠. 그러면서 기후 위기에 대한 의식이 크게 증가했고요. 평소엔 관심이 없더라도 SNS를 통해 기후 뉴스를 접하면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후원을 받으면 보다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 싫었어요. 저를 포함한 활동가들은 정말 K-팝과 기후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거거든요. K-팝 팬으로 오래 활동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 만큼 많은 팬이 캠페인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일회용품 규제 완화를 발표했습니다. 환경 운동가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씁쓸하게 느꼈어요. 규제 완화가 사람들에게 다시 일회용품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시그널을 주지 않을까 걱정됐고요. 기후 위기는 전 세계가 힘을 합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거든요. 일회용품 사용이 작은 부분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사회의 작은 약속조차 깨지면 어떻게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기후 문제 해결이 요원한 데에 무력감을 느끼는 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기후 위기 자체가 거대하고 막막한 문제잖아요. 저도 무력감이 들 때가 많아요. 그래도 포기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부터 한 단계씩 밟아가는 게 어떠냐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또 케이팝포플래닛은 다른 환경 단체와 달리 좋아하는 문화를 공유하고 같은 취미와 관심사를 가진 분들이 모인 곳이거든요. 그 사랑과 지지를 바탕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계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다연 #케이팝포플래닛 #파워우먼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케이팝포플래닛 
사진출처 BBC홈페이지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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