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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대한민국 트렌드 1타 강사, 전미영이 알려주는 ‘트렌드 코리아 2024’

문영훈 기자

2023. 11. 29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출간되면 연말이 가까워졌다는 걸 직감한다. 14년간 김난도 서울대 교수와 함께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제시해온 전미영 공저자를 만나 갑진년 트렌드를 물었다. 

”평균으로 표현될 수 있는 무난한 상품, 평범한 삶, 보통의 의견, 정상의 기준이 변화하는 현상.“

2024년을 앞두고 지난해 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23’을 펼쳤다. ‘평균실종’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트렌드 서적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10가지 키워드 중 가장 핵심적인 단어를 처음으로 내세운다. 총선을 앞두고 갈등이 극에 달하는 정치권 풍경, 허리띠를 졸라매는 사람들이 모인 ‘거지방’과 10만 원을 훌쩍 넘는 ‘오마카세’의 공존, 메가트렌드 대신 마이크로트렌드가 주를 이뤘던 2023년이 한 단어로 정리됐다.

연말 베스트셀러 순위권을 차지하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올해로 15년을 맞았다. 매해 10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며 숱한 조어들도 일상 속에 남겼다. ‘소확행’ ‘워라밸’ ‘언택트’부터 최근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으로 변형돼 사용되고 있는 ‘오하운’(오늘 하루 운동)까지.

갑진년을 앞두고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에 14년째 참여해온 전미영(42) 공저자를 만났다. ‘트렌드 코리아 2024’가 제시한 10가지 키워드 중 MZ세대를 설명하는 키워드 셋(분초사회, 육각형 인간, 도파밍)과 미래 비전을 담은 2개의 키워드(호모 프롬프트, 돌봄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매해 트렌드를 쓰는 사람이 어떻게 트렌드를 파악하는지도 궁금했다.

완벽한 인간을 선망하며 시간을 쪼갠다

‘트렌드 코리아 2024’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키워드로 돌봄 경제와 호모 프롬프트를 꼽았다.

‘트렌드 코리아 2024’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키워드로 돌봄 경제와 호모 프롬프트를 꼽았다.

올해의 첫 번째 키워드는 ‘분초사회’입니다. 극도로 효율이 중시되는 사회를 뜻하나요.

때로는 사람들이 돈보다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분초를 다투며 살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성격이 급해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변화 때문입니다. 우선 코로나19로 줌 미팅이 늘어나면서 아날로그 시계 대신 디지털 시계 사용이 중요해졌죠. 나의 1분과 저 사람의 1분이 차이가 나면 미팅에 차질을 주기 때문입니다. 과거 농업 시대엔 12간지로 된 시간을 사용해도 괜찮았죠. 2시간 늦게 씨를 뿌린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이제는 버스가 몇 분 후에 도착하는지도 스마트폰으로 알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일분일초까지 잘 맞춰야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시대가 된 거죠.



분초사회의 또 다른 특징이 있나요.

중첩하기입니다. 우리는 이메일을 쓰면서 ‘카톡’을 하고 유튜브를 보기도 하죠. 화장실에서 볼일 보며 온라인 쇼핑을 하기도 하고요. 결국 스마트폰 사용 증가라는 기술의 변화와 코로나19가 만들어낸 구조의 변화가 우리의 사고를 변화시켰습니다.

현대인은 많은 ‘중첩’으로 집중력 저하를 호소합니다.

이를 지적한 책 ‘도둑맞은 집중력’은 올해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그걸 저희는 카운터 트렌드(counter-trend), 반(反)트렌드라고 부르는데요. 트렌드와 카운터 트렌드는 항상 공존합니다. 과거엔 카운터 트렌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요즘은 카운터 트렌드도 SNS를 통해 사람들의 동조를 얻고 메인 트렌드로 함께 떠오르기도 합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쪼개 쓰는 분초사회 트렌드가 있으면 반대로 시간을 느리게 보내고 싶어라는 욕구도 함께 올라가는 거죠. 명상이나 디지털 디톡스가 유행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봅니다.

젊은 세대가 외모·학력·자산·직업·집안·성격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육각형 인간’을 선망한다는 대목에선 좀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SNS가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늘어난 정보의 양이 상대적인 결핍을 강화하는 거죠. 인간은 본능적으로 비교하는 존재입니다. 과거엔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기껏해야 반 1등, 엄마 친구의 자녀 중에 잘난 애 정도였다면 이제는 SNS로 재벌 3세의 일상을 볼 수 있게 된 거죠. 사회적인 배경도 영향을 줬습니다.

어떤 건가요.

우리 사회가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이 옅어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육각형 인간에 대한 선망은 냉소가 담겨 있는 거죠. 기준 자체를 높여 설정하면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게 자기 탓이 아니게 되니까요. 나는 육각형 인간을 선망하지만, 내가 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는 거죠.

이 키워드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고요.

세대별로 육각형 인간에 대한 반응이 달랐어요. 10~20대 자녀가 있는 연구 위원들은 굉장히 자극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반면 2030 세대는 ‘이게 우리 일상인데 몰랐냐’는 반응이었고요. 그래도 10가지 키워드에 포함한 이유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어요.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이 뭐가 힘드냐“고 하는데, 젊은 세대는 그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반대로 젊은 세대에게는 육각형 인간에 대한 갈망이 생긴 이유가 스스로가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개인 탓이 아니라 계층 고착화와 같은 사회적 흐름 속에서 탄생한 욕망이니까요. 사실 삼각형 인간이어도, 사각형 인간이어도 괜찮거든요.

이른바 MZ세대와 관련된 키워드가 또 있다고요.

‘도파밍’이라는 키워드도 젊은 세대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도파민을 파밍(farming)하듯 모으는 걸 말하죠. 특히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라면 결과를 알지 못하는 랜덤 상황에 뛰어든다든가, 무모한 도전을 한다든가 하는 도파밍의 양상은 특히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로 불리는 이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분초사회와는 정반대의 트렌드 아닌가요.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고 그 나머지 시간에 도파밍에 집중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재밌는 걸 끊임없이 찾다 보니 나머지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탄생한 트렌드라기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트렌드가 아닐까 해요.

생성형 AI와 돌봄의 시대

11월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트렌드 코리아 2024’ 미디어 데이 행사.

11월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트렌드 코리아 2024’ 미디어 데이 행사.

기술 측면에서 지난해 11월 등장한 챗GPT 이야기를 빼놓기 힘듭니다. 인공지능(AI)과 소통하는 법, 즉 AI 리터러시를 갖춘 ‘호모 프롬프트’가 중요해질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AI 전문가분들도 책을 보실 텐데 생성형 AI를 트렌드와 어떻게 접목할지 생각했죠. 하지만 결국 AI도 사람이 쓰는 거잖아요. 새롭게 등장한 기술을 잘 쓰려면 우리는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기본적으로 AI는 사람이 시키는 걸 합니다. 무엇을 지시하는가는 인간의 영역이죠. 또 인간처럼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돌아보는 메타인지 능력은 AI에겐 없습니다. 결국 그 평가도 인간 스스로가 해야 하는 거죠.

호모 프롬프트는 인간이 AI의 유능한 관리자가 돼야 한다는 거네요.

그래서 자신의 일에 대한 공부가 우선돼야 합니다. AI라는 유능한 도구가 있는데 내 일에 이걸 어떻게 써먹을지를 알아야 하죠.

돌봄이 중요해졌다는 인식은 이미 퍼져 있습니다. ‘돌봄경제’를 ‘트렌드 코리아 2024’ 마지막 키워드로 꼽은 이유가 있나요.

돌봄 뒤에 어떤 단어를 붙일지를 놓고 오래 공저자들과 이야기를 했어요. 돌봄 사회나 돌봄 프로젝트 같은 아이디어가 나왔죠. 결국 경제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분명해지면서 자동차나 집 같은 재화에 대한 소비는 줄어들 거라고 봤어요. 그러면서 줄어든 소비가 돌봄으로 향할 거라고 본 거죠. 재화가 아닌 사람에 대한 소비입니다. 정신 건강에 대한 돌봄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돌봄, 지역사회에 대한 돌봄 같은 거죠. 또 ‘트렌드 코리아’를 10년 넘게 써오면서 돌봄이라는 키워드가 처음 들어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고 봅니다.

”개인의 경험에 깊이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경제 전망, 부동산 트렌드, 라이프 트렌드 등 연말이 되면 이듬해를 예측하는 트렌드 도서가 쏟아진다. 수많은 단행본 중 단연 베스트셀러 맨 상단을 차지하는 책이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다. ‘트렌드 코리아 2010’부터 ‘트렌드 코리아 2024’에 이르기까지 14년을 함께한 전미영 공저자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매해 트렌드를 어떻게 찾아내나요.

저희는 기본적으로 스몰 데이터에서 트렌드를 뽑아내요. 그 과정에서 신용카드 정보나 앱 분석 정보, 온라인상 텍스트를 추출해 분석하기도 하지만 개인의 경험에서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는 데 사용하죠. 빅데이터만 놓고 뭔가를 찾으려고 하면 진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과 같거든요.

개개인의 경험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나요.

저뿐만 아니라 ‘트렌드 코리아’ 공저자들은 기본적으로 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많고요. 하지만 모든 기업과 일하는 건 아니다 보니 별도의 200명 정도 되는 트렌드 헌터가 활동하고 있어요. 저희는 ‘트렌더스 날’이라고 부르는데요. 3월부터 7월까지 매달 트렌드 보고서를 씁니다. 이때 일상에서의 경험을 많이 써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소비자 집단 토론회를 열어 경험을 듣기도 하고요. 다양한 루트를 통해 수집된 정보가 인사이트를 줍니다. 그렇게 모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8월 초 키워드를 확정합니다.

10가지 키워드는 투표를 거치나요.

투표 형태는 아니고 한 명이 주장하더라도 저희가 들었을 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키워드는 선정됩니다. 그때는 계급장과 경력을 떼고 토론합니다. 기업에서 하는 아이데이션 과정 같은 거죠. 그래서 토론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트렌드를 연구하는 사람의 하루가 궁금합니다.

트렌드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한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니에요. 보통 핫 플레이스에 가서 인스타그램 업로드하는 걸 많이 떠올리시는데, 사실 책이나 신문을 통해 간접 경험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저희는 일상을 흘려보내지 않는 거죠. 길에서 간판을 본다든지,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커피 컵을 유심히 관찰한다든지요. 그걸 기록해두고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죠.

작은 일도 곱씹어 보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트렌드라는 말로 포장돼 있지만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무조건 좋은 이야기를 해주라는 의미는 아니고요. 모든 사람은 살면서 변화를 느끼고 있어요. 그걸 한 단어로, 키워드로 정리하는 게 핵심입니다. 프레이밍, 이름 붙이기죠.

어떤 분들에게 ‘트렌드 코리아’를 권하나요.

저는 사실 “너 이거 모르면 큰일 나”라고 말하는 책을 좋아하지는 않아요(웃음). 다만 가끔 내가 살고 있는 사회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왜 주변 사람들은 저렇게 행동할까?’ 같은 거요. 그걸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책을 권해드립니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속도에 대한 강박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꼭 내년에 대한 트렌드 책을 지금 읽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기업과 프로젝트를 해보면 뒤처져서 실패하는 경우보다 앞서가서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오히려 당장 나온 트렌드 도서가 아니라 예전에 나온 트렌드 도서를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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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태식 게티이미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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