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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BTS 지민의 수건에 담긴 사랑과 회한의 미학을 풀다 김지원 & 이찬주

김현미 기자

2023. 10. 27

최승희-전황에서 끊긴 한국 춤 계보를 이은 춤꾼 김지원과 글꾼 이찬주 이야기.

김지원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왼쪽)와 이찬주 무용평론가는 한양대에서 나란히 한국무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 춤판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지원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왼쪽)와 이찬주 무용평론가는 한양대에서 나란히 한국무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 춤판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 장면 1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춤사위가 마치 정지 동작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조지훈의 시 ‘승무’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실제 공연되는 승무를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승무는 무용수가 무대에 엎드린 상태로 시작한다. 대체로 장삼을 편 채로 엎드려 있다가 경건한 목탁 소리가 지나면 허리를 비틀어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막이 오르고 바닥에 바짝 엎드린 무용수를 본 객석에서 이런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흠, 저 동작은 술에 취해 쓰러진 것을 뜻하나?”

세상 번민과 연민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구와 염원을 표현하는 춤이 난데없이 취객의 막춤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 장면 2

흰옷을 입은 맨발의 지민(BTS)이 부드러운 흰 천을 어깨에 걸치고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천천히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1분 20여 초 동안 어깨와 팔을 휘감은 천을 공중으로 뿌리고 당기고 어루만지는 강렬한 동작을 이어간다. 2019년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지민이 ‘아이 니드 유(I Need U)’라는 제목으로 선보인 퍼포먼스다. 현대무용이라고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금방 ‘살풀이춤’을 재해석한 작품임을 눈치챌 수 있다. 지민은 2018년에도 같은 무대에서 독창적인 부채춤을 선보여 김백봉부채춤보존회(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부터 ‘부채춤의 위상과 미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드높이는 데 기여’했다며 감사패를 받은 바 있다. 지민의 ‘아이 니드 유’를 처음 접한 해외 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도대체 저 춤은 무엇이며 수건은 또 무슨 의미인가. 이 장면이 담긴 BTS의 뮤직비디오는 수억 뷰를 달성했다.



“이 춤을 추려면 사랑을 더 하고 오너라”

김지원의 살풀이춤.

김지원의 살풀이춤.

장면 1과 장면 2의 시차는 불과 10년. 10년 만에 한국 전통 춤에 대한 시선이 180°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BTS 뮤직비디오를 통해 살풀이춤, 부채춤, 탈춤, 사자춤, 상모돌리기, 삼고무 같은 한국 전통 춤을 처음 접한 이들이 어느새 조선시대 일무(佾舞·종묘제례악의 의식무로 가로세로 열을 지어 추는 것이 특징)에 대해 수준 높은 질문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실제로 지난 7월 뉴욕 링컨센터 내 2500석 규모의 공연장인 데이비드 H. 코크 시어터에서 열린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뉴욕의 셀럽들이 꼭 봐야 할 공연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전석 매진되기도 했다.

“BTS가 선보인 퍼포먼스는 전통 춤을 모티프로 하거나 재해석한 것이지만 그렇게 처음 한국 춤을 접한 사람들은 곧 오리지널 춤은 어떤 것인지, 소품으로 사용한 수건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고 싶어지게 마련이죠.”

김지원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10여 년 전 ‘승무’를 보고 “술에 취해 쓰러진 것이냐”고 하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날 다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다소 가라앉은 공연장 분위기를 고조시키고자 사회자가 “우리 춤은 관객과 함께하는 것이니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다’ 하고 추임새를 넣어달라”고 부탁하자 객석의 외국인이 “얼씨구가 무슨 뜻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춤을 전공한 자신조차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외국인은 결국 공연 도중 나가버렸다.

흥겨운 우리 가락이 흘러나오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덩실덩실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저 덩실덩실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국인이라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춤꾼인 김 교수가 ‘한국춤에 빠지다’를 쓰게 된 계기다. 이 책에서 김 교수는 살품이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살풀이춤을 자세히 보면 한 치도 수건을 떼어놓지 않는다. 잡았다 다시 놓고, 놓았다가 다시 감는 것이 어찌 보면 영락없는 ‘임’이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정을 나눴는데 정을 잃고 난 후 회한과 집착도 있을 것이고 눈물겨운 갈등도 있어 보인다. 그러니 수건에게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잃고 살아가야 하는 자신을 추스르기도 하면서 감았다 풀었다 다시 엉키기도 한다.”

BTS 지민이 2019년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살풀이춤을 재해석해 선보인 춤.

BTS 지민이 2019년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살풀이춤을 재해석해 선보인 춤.

이 설명을 듣고 지민의 퍼포먼스를 다시 보면 동작 하나하나가 새롭게 해석된다. 김 교수는 살풀이춤을 배울 때 스승께서 “너는 사랑도 안 해봤느냐. 사랑을 더 하고 오너라” 하신 말씀의 의미를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며 웃는다.

춤사위란 춤+사위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춤은 몸을 표현 매체로 사상·감정·감각·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출하는 행위이고, 사위는 사방의 둘레를 뜻하는 말로 짜임새·걸음새·박음새 등 춤의 모양이나 맵시, 동작 등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한국민속대백과사전)

낱낱의 동작을 일컫는 ‘사위’를 글에 붙이면 글사위가 된다. 뽀뽀인가 입맞춤인가 키스인가. 같은 행위라도 골라낸 단어에 따라 글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현란한 글, 담백한 글, 냉철한 글, 따뜻한 글처럼 글사위에는 작가의 개성이 묻어난다. 한국무용계에서 춤사위와 글사위를 동시에 구사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김지원 교수와 이찬주 평론가가 있다.

김지원 교수는 양태옥의 진도북춤, 김진홍의 승무, 임이조의 승무와 살풀이춤 등을 사사하고 ‘한국의 명인 명무전’ 등 수많은 무대에 오른 춤꾼이다. 그리고 한양대에서 ‘무용기호학’으로, 단국대에서 예술행정으로 2개의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 춤의 코드와 해석’(2007·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한국춤에 빠지다’(2009), ‘춤은 말한다-기호의 세계와 춤의 언어들’(2010) 등을 펴낸 춤 이론가다.

3차원 춤을 2차원에 기록하는 무보에 도전하다

특히 박사학위 논문에서 기호학을 이용해 만든 한국 전통 춤의 무보(舞譜·3차원의 연속동작을 2차원의 평면에 기호나 그림으로 기록한 것)는 춤동작뿐 아니라 그 동작에 담긴 의미와 정신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내 기록과 재현이라는 무보의 기능에 가장 충실한 독보적 연구로 꼽힌다.

다시 춤꾼 김지원으로 돌아오면 그는 덩실덩실 흥이 넘치는 이야기꾼이 된다. 2013년 작고한 김열규 전 서강대 명예교수는 김지원의 ‘한국춤에 빠지다’를 읽고 이렇게 감상 평을 전했다.

“춤사위가 글사위가 되고 글의 말투며 표현이 춤사위가 되어 있었다. 언젠가 어디서 감상한 김지원 님의 살풀이춤이 책장을 무대 삼아서 추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책장을 넘기며 나 자신도 모르게 내쏟은 말!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 그렇게 장단 맞추고 가락 갖추어서 나의 눈은 글줄을 따라갔다.”

춤꾼의 무대에서 내려와 글꾼의 세계로

이찬주의 발레 시현 동작. 흉골을 몸의 중심으로 느끼고 추는 동작에 대한 설명. 2012년 펴낸 ‘춤교육과 포스트모더니즘’에 실렸다.

이찬주의 발레 시현 동작. 흉골을 몸의 중심으로 느끼고 추는 동작에 대한 설명. 2012년 펴낸 ‘춤교육과 포스트모더니즘’에 실렸다.

“아버지의 반대로 예고에 가지 못하고 일반고를 다녔지만 춤에 빠져서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을 모두 배웠고 대학에서는 발레를 전공했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예술제에서 춘향 역을 맡았는데 만약 그 공연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한국무용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을까요.”

이찬주 평론가는 발레를 비롯해 여러 장르의 춤을 배운 경험이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1990년대 초 한양대 대학원에서 개설된 춤 비평코스를 이수하면서 글사위에 눈을 떴고 지속적으로 춤 이론 공부를 해서 ‘범부춤의 심층구조와 의미에 대한 화쟁기호학적 연구’로 한양대 한국무용 1호 박사가 됐다.

결혼하면서 무대 위 춤꾼의 삶은 접었지만 대신 지면 위에서 종횡무진하는 글꾼으로 변신했다. 30년 넘게 춤을 연구하고 글을 쓰면서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외에도 다양한 춤 관련 자료들을 모아 2013년 ‘이찬주춤자료관’(대전)을 시작으로 서울관(2016), 청주관(2016), 세종관(2019)을 설립했다.

이렇게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주제별로 분류하고 정리해서 ‘춤 예술과 미학’(2007·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춤교육과 포스트모더니즘’(2012·한양대출판부 공모전), 4년여에 걸쳐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무용인 29명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한 ‘세계를 누비는 춤예술가들’(2017), 두 권의 평론집 ‘우리 춤의 현장과 주변’(2016) 및 ‘춤, 사람 그 생동하는 기록’(2022) 등 총 19권의 책을 썼다.

특히 이찬주의 ‘세계를 누비는 춤예술가들’에 대해 김태원 평론가는 추천의 글에서 “저자 스스로 한 사람의 발레리나로 활동했던 덕분에 우리 춤 예술가들이 부딪히고 있는 현장에서의 여러 고민들, 문화적 차이에 따른 적응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예술가로서의 삶의 의지 등을 세밀히 집어냈다”고 했다.

최근 이찬주 평론가는 한국무용 100년의 계보를 완성했다. ‘춤 계보도’란 스승의 춤을 물려받아 이어온 연속성을 기록한 것이다. 전통예술 교육은 기본적으로 구전심수(口傳心授)다. ‘입으로 전해주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말 그대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일대일로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를 추적하는 것이 곧 한국무용사인 셈이다.

지금까지 한국무용의 계보는 1세대 무용학자인 정병호 중앙대 명예교수(2011년 작고)가 1996년에 정리해놓은 것이 유일했다. 정 교수는 전통 춤 46명, 창작 춤 63명의 예맥을 정리해 발표했으나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한국 춤의 인적 변화를 반영해 보완하고 재정비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한국무용의 계보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은 1960년대 후반 무용이 예능 분야 중요무형문화재(2016년 국가무형문화재로 개칭)로 지정된 것이다. 1969년 한영숙의 승무, 1971년 김천흥의 처용무와 한영숙의 학무(1995년 학연화대합설무로 개칭), 1987년 이매방의 승무, 1988년 강선영의 태평무, 1990년 이매방의 살풀이춤이 차례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한영숙이 타계하자 1996년 이애주가, 2000년 정재만이 추가로 승무 예능보유자가 됐다. 이매방 사후에는 2019년 채상묵이 승무 예능보유자가 됐다. 이렇게 ‘한영숙류 승무’ ‘이매방류 승무’가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들 예능보유자들마저 잇따라 타계하고 2019년 한꺼번에 8명의 새로운 예능보유자가 지정되면서 한국무용계에 대대적인 인적 변화가 일어났다.

열정과 집요함으로 20년간 쌓아 올린 한국 춤의 예맥

이찬주의 창작 발레 ‘바람을 느끼다’(2012). 특정 공간에서 영감을 얻어 추는 춤 ‘사이트 스페시픽 댄스’를 구현했다.

이찬주의 창작 발레 ‘바람을 느끼다’(2012). 특정 공간에서 영감을 얻어 추는 춤 ‘사이트 스페시픽 댄스’를 구현했다.

이찬주 평론가는 도토리를 모으듯 자료를 발굴하고 확인하고 분석해서 벽돌을 쌓아 올리듯 예맥의 빈칸을 채워나가는 한편, 지난 30년 사이에 활동이 거의 없는 인물은 지워나갔다. 그리하여 전통 춤 146명, 창작 춤 120명 등 총 266명(중복 32명)이 층층이 쌓인 한국무용의 계보도가 완성됐다.

“스승의 정통성을 지키려고 애쓰며 예맥을 이어나가는 제자들이 있기에 우리의 소중한 한국 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춤 계보도인 거죠.”

이찬주 평론가는 한국무용 계보를 전통 춤과 창작 춤이라는 2개의 줄기로 파악했다.

“전통 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승무, 살풀이춤(수건춤), 태평무인데 이 춤들을 무대예술로 만든 분이 한성준(1874~1942) 선생입니다. 창작 춤을 대표하는 인물은 한국 현대무용 1세대라고 하는 최승희(1911~1967)인데 그는 일본 이시이 바쿠에게 현대무용을 배웠지만 우리 춤을 알아야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 한성준 선생에게 승무, 태평무 같은 전통 춤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배운 태평무와 한량무를 토대로 만든 창작 춤이 ‘에헤라 노아라’로 도쿄 데뷔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이후 미국과 유럽 무대에서 ‘조선을 초월하는 세계적 무용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전수는 똑같이 따라 해서 보존하는 것이고 전승은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 춤은 시작 단계부터 전수와 전승이 동시에 진행됐다고 할 수 있죠.”

춤꾼 최승희는 6·25전쟁 기간 베이징에서 ‘조선민족무용기본’ 등을 직접 쓴 춤 이론가이기도 하다. 이찬주 평론가는 “무용인들은 한 스승으로부터 일체를 배우기도 하지만 춤에 대한 욕구에서 여러 스승을 사사하기도 한다”면서 “‘춤꾼 중에 이매방의 문지방을 넘지 않은 이가 없었다’는 말처럼 그의 춤을 배우려는 이가 많았다”고 했다. 박영구와 이창조 문하에서 춤을 시작한 이매방 계보에는 정명숙부터 김정녀, 김묘선, 임이조, 채상묵, 국수호, 오율자, 법우 스님, 송화영, 최은정, 진유림, 김명자, 이현주, 문희철, 박영애, 한순서, 김진홍까지 무려 18명이 올라 있다.

이찬주 평론가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에서 단절된 예맥을 복원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대표적 인물이 전황(1927~2015)이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전황은 나운규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자 권투선수였던 맏형 전두옥을 따라 처음엔 권투를 하다 최승희에게 발탁돼 무용에 입문했다. 권투를 해서 빠른 발놀림과 한번 보면 다 따라 하는 눈썰미를 갖춰 최승희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6·25전쟁이 터지자 전황은 누나 전옥(‘눈물의 여왕’으로 불렸던 영화배우)이 있는 남쪽을 택했다.

빨강, 파랑, 노랑의 삼색 띠를 어깨와 허리 부분에 묶고 소고춤을 추는 김지원.

빨강, 파랑, 노랑의 삼색 띠를 어깨와 허리 부분에 묶고 소고춤을 추는 김지원.

월남 후 전황은 안무가로 이름을 날렸다. 농악, 장고춤, 무당춤 등에 ‘전황류’를 만들어냈는데 특히 전국적으로 흩어진 농악의 무대화를 시도한 것은 그가 한국 춤에 남긴 최고의 업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좌도농악과 우도농악의 장점들만 뽑아 수십 명이 다양한 가락과 춤사위를 선보이는 무대 농악을 만든 것이다. 농악의 백미인 소고춤과 자반돌리기의 접목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전황은 일찍 무용가의 길을 접고 안무에 전념해온 터라 2015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전황류 춤은 맥이 끊긴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찬주 평론가는 전황류 춤이 김지원, 백선희 등에게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백선희는 무당춤을 이어받고 김지원은 쌍검무, 소고춤, 장고춤, ‘사랑가’를 모두 사사했다. 김지원 교수는 “쌍검무는 최승희와 그의 딸 안성희가 독무로 추던 춤을 전황 선생님이 좀 더 화려한 기교와 동적인 에너지로 전통검무와는 다르게 재구성한 작품”이라며 “쌍검무를 배울 때 1967년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무용극 ‘항우와 우미인’에서 선보였다고 들었다”고 했다. ‘전황류’ 예맥의 복원을 기념하여 12월 6일 창무포스트극장에서 이찬주 평론가의 사회로 김지원이 쌍검무, 무당춤, 소고춤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고전무용 하세요?” 한국 춤을 위한 변명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최승희를 직접 사사한 전황(앉은 이)과 제자들. 왼쪽부터 소고춤 김지원, 전황의 딸로 재즈 무용을 한 전미례, 무당춤 백선희. 전황은 월남 후 국립창극단 단장,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최승희를 직접 사사한 전황(앉은 이)과 제자들. 왼쪽부터 소고춤 김지원, 전황의 딸로 재즈 무용을 한 전미례, 무당춤 백선희. 전황은 월남 후 국립창극단 단장,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찬주 평론가는 일찍 작고해 활동 기간이 짧았거나 오랫동안 해외에 머물다 보니 국내 무용계에서 잊힌 인물에게 제자리를 찾아주는 작업도 하고 있다. 그 예로 ‘한국춤의 계보’에서 ‘화문석 춤판’을 처음 시도했던 한국무용가 송화영(1948~2006)과 국립발레단 최초의 여성 안무가였던 주리(1927~2019)를 재조명했다. 송화영을 추적하다 그가 이매방을 사사했을 뿐만 아니라 마산의 김애정, 진주의 김수악과 연결돼 있음을 알아내기도 했다.

이찬주 무용평론가가 최근 펴낸 ‘한국춤의 계보’ 표지. 1996년 정병호 중앙대 명예교수가 처음으로 한국 춤의 계보를 정리한 이래 27년 만에 수정 보완됐다.

이찬주 무용평론가가 최근 펴낸 ‘한국춤의 계보’ 표지. 1996년 정병호 중앙대 명예교수가 처음으로 한국 춤의 계보를 정리한 이래 27년 만에 수정 보완됐다.

“지난해 국립발레단과 국립무용단이 나란히 창단 60주년을 기념했는데, 1973년 장충동 국립극장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한국무용과 발레가 국립무용단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애초 국립무용단이 개설된 목적이 ‘한국의 춤 유산을 계승하고 춤 양식을 개발하여 춤을 진흥한다’였어요. 더욱이 1968년 멕시코 올림픽, 1972년 뮌헨 올림픽을 거치면서 무용인들은 우리 춤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세계 무대에서 각광받는 것은 서양 춤이 아니라 우리 춤이라는 것이죠.”(이찬주)

최승희에서 전황으로 이어지는 창작 춤 ‘쌍검무’를 추는 김지원. 2개의 장검, 뿔관자, 창, 창칼 등 다양한 소품이 활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최승희에서 전황으로 이어지는 창작 춤 ‘쌍검무’를 추는 김지원. 2개의 장검, 뿔관자, 창, 창칼 등 다양한 소품이 활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춤을 춘다고 하면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이 ‘고전무용 하세요?’였어요. 한복 입고 추는 춤은 고전무용이나 민속춤으로 불렸죠. 전통 춤을 낮게 보는 사람들은 배운 대로 똑같이 재현할 거라면 민속촌에서 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춤의 보존 가치만 얘기하는 것으로 재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창작이 이뤄지는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반대로 한국 춤 가운데 대중화에 성공한 부채춤을 놓고 한때 전통 춤이냐, 아니냐 논란이 있었죠. 우리가 많이 본 부채춤은 1900년경 최승희의 제자인 김백봉에 의해 재창작된 것인데, 실제 이 춤이 공연된 역사는 100년이 채 안 돼 과연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느냐는 논란이었습니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우리가 대표적 전통 춤으로 꼽는 승무, 살풀이춤조차 한성준에 의해 무대용으로 재구성된 것인 만큼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요. ‘김백봉부채춤’이 후손과 제자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이북5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듯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호평을 받았던 장고춤과 소고춤도 앞으로 문화재로 지정되기를 기대합니다. 전통의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 어떤 것을 가장 한국적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전통이란 오랜 세월 아주 자연스럽게 뿌리내려 자생력을 가진 생물체와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김지원)

#한국춤 #김지원 #이찬주 #전황 #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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