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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송현옥 오주원 모녀의 예술 동행

김현미 기자

2023. 08. 30

송현옥 교수는 큰딸 오주원을 자신 ‘페르소나’라고 했다. 페르소나는 연출가에게 분신과도 같은 배우를 가리킨다. 두 사람은 어느새 엄마와 딸, 연출가와 배우의 관계를 넘어 공동 창작자이자 예술적 동반자로 나아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집안이 서서히 망하는 길은 ‘남편이 정치한다’ ‘부인이 늦게 공부한다’ ‘자식이 예술한다’라고 하죠. 우리 집은 이 세 가지를 다 하네요.”

남편은 오세훈(62) 서울시장, 아내는 송현옥(62)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 겸 극단 물결 대표, 큰딸은 무용을 전공하고 지금은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는 오주원(38) 배우다. 그러나 망하기는커녕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며 역대 최초 4선 광역자치단체장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송현옥 교수는 연출가로서 무대에 올리는 작품마다 실험성과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어느새 데뷔 10년을 넘긴 오주원 배우는 신체적 표현에서 독보적인 배우로 성장했다. 여기에 둘째 딸 승원과 2명의 사위, 2명의 손자까지 한자리에 모이면 서로 바라만 봐도 웃음꽃 피는 ‘흥 부자’ 가족이다.

요즘 송현옥 교수는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의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다. ‘의자 고치는 여인’은 19세기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로 꼽히는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연극 부문에 선정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고 CGV 영화로도 제작돼 호평을 받았다. 2023년에는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민간예술단체 우수공연프로그램 연극 부문에 선정돼 오는 9월 용인, 인천, 진주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주인공 ‘의자 고치는 여인’ 역에는 2020년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오주원 배우가 캐스팅됐다.

“오주원은 저의 페르소나예요.”

송 교수가 말하는 페르소나는 연출가에게 분신과도 같은 배우를 가리킨다. 젊은 시절 송현옥을 쏙 빼닮은, 심지어 키와 몸무게마저 비슷한 오주원의 외모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저의 연극에서 배우 오주원을 빼놓고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죠. 저는 고전의 현대화를 통한 관객과의 소통, 예술의 장르와 영역을 넘나드는 융복합 공연예술 형태를 지향합니다. 특히 몸의 이미지와 시적 언어를 결합한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연극을 선보이고 있는데,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작품을 소화해낼 배우가 드물었어요. 그때 주원이가 ‘엄마 내가 한번 해볼까’ 하는데,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어요.”

2012년 극단 물결은 ‘5분간의 청혼’ 재공연을 보름 앞두고 주연 배우가 부상당하는 긴급 사태가 벌어졌다. 안톤 체호프의 ‘벚꽃 동산’을 재해석한 ‘5분간의 청혼’은 주인공 로파힌이 바랴에게 청혼하려 한(끝내 하지 못한) 5분 동안 두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격정적인 감정과 의식의 흐름을 몸짓으로 표현해내는 신체융합극이다. 1시간 남짓 격렬한 무용 동작이 이어지다 보니 긴급 대체할 배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무용과 연기를 같이할 수 있는 배우를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어요. 관객과의 약속인데 공연을 취소할 수도 없고 마음고생을 하다 위장병까지 걸린 엄마가 안쓰러웠던지 주원이가 먼저 나서줬어요. 연기는 기대하지 않을 테니 춤동작만 맡아달라고 했는데 놀랍게도 보름 만에 대사와 몸짓 모든 장면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거예요. 가까이 보석이 있었는데 몰랐던 거죠.” - 송현옥

오주원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배우들의 몸 훈련을 돕거나 안무 일을 해왔어요.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감히 대사를 뱉을 용기는 없었죠. ‘5분간의 청혼’ 때는 극단 상황이 절박하기도 했지만 저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영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욕심이 좀 났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겠다고 했겠죠.” - 오주원

얼떨결에 나섰지만 결과는 대성공. 모스크바 ‘루나 극장’ 초청 공연까지 무사히 마치고 본격적인 두 사람의 예술 동행은 ‘돈데보이’(2013), ‘햄릿, 여자의 아들’(2014), ‘인형의 집’(2016), ‘밑바닥에서’(2018~2019), ‘Othello, Against the Storm’(2020) 그리고 ‘의자 고치는 여인’(2020)으로 이어졌다.

혹독한 연기 수업이 끝나고 예술적 동반자로

연출가 송현옥의 ‘페르소나가 된 오주원(왼쪽).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의 장면들.

연출가 송현옥의 ‘페르소나가 된 오주원(왼쪽).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의 장면들.

“저는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언어에 대한 맛과 어떻게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지 알지만 그걸 버릴 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변기 하나를 갖다 놓고 예술이라 할 만큼 ‘콘셉트’가 중요한 시대인데 우리 연극은 20세기도 아닌 19세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21세기 연극은 어때야 하는가. 드라마나 영화 같은 스타일의 연기를 해서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TV만 켜면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는데 누가 돈 주고 연극을 보러 올까. 새로운 스타일의 연극,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내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떻게 몸짓으로 표현할 것인가 고민할 때 무용을 전공한 큰애가 제 연극의 모르모트가 되어준 셈이에요.” - 송현옥

“무용은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잖아요. 무용하는 사람들은 입을 떼는 것을 쑥스러워할 만큼 말보다는 몸이 먼저 가죠.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려 하니 얼마나 어색하고 부끄럽던지. 연출가님이 정말 혹독하게 연습을 시켰어요.” - 오주원

연출가 송현옥의 연기 훈련은 혹독했다. 배우들은 그것을 ‘자판기 연기’라고 했다.

“갑자기 상황이 주어져요.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 부끄러워한다. 자, 바로!’ ‘기쁨의 춤을 춘다. 자, 바로!’ 상황은 확확 바뀌고 연출가의 지시가 떨어지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연기가 튀어나와야 하니까 자판기 연기라고 해요. 당연히 배우들은 괴롭죠.”- 오주원

오주원은 본격적인 연기 수업을 위해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연기예술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무용과 연극을 넘나들며 신체 언어와 시적 이미지의 결합을 강조하는 송현옥 연출가의 연극 미학을 가장 잘 소화해내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이번 ‘의자 고치는 여인’은 오주원이 3년 만에 무대에 복귀하며 출연한 작품이다. 2020년 초연 때만 해도 준우 엄마였는데 그사이 일곱 살 준우, 세 살 윤우 두 아들의 엄마가 됐다.

“‘의자 고치는 여인’의 재공연을 결정한 뒤 제일 먼저 한 걱정이 주연배우였어요. 1시간 30분을 격렬하게 움직여야 하는 작품인데 둘째를 낳은 주원이의 체력이 버텨줄까.”- 송현옥

“이번에 저를 안 불러주셨으면 제가 먼저 하겠다고 했을 거예요.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했어도 했을 거고요. 요즘 매일 윗몸일으키기를 200번씩 하면서 무용할 때처럼 몸을 만들고 있어요.”- 오주원

두 사람은 어느새 엄마와 딸, 연출가와 배우의 관계를 넘어 공동 창작자이자 예술적 동반자로 나아가고 있었다.

피 없는 돌에 생명을 준 아버지처럼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을 연습 중인 극단 물결 단원들. 예술적 DNA는 아버지 고 송영수 작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하는 송현옥 교수(왼쪽부터).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을 연습 중인 극단 물결 단원들. 예술적 DNA는 아버지 고 송영수 작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하는 송현옥 교수(왼쪽부터).

대를 잇는 모녀의 예술적 ‘끼’는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송현옥 교수의 아버지는 한국 추상 철조각의 선구자로 꼽히는 고 송영수(1930~1970) 조각가다. 1950년 서울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한 송영수 작가는 학부 3학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에 연속 특선(1952~1956)을 하며 1957년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최연소 국전 추천작가가 됐다. 당시 출품한 작품이 한국 최초의 ‘용접 철조각’이었다. 그러나 첫 개인전을 앞두고 마흔 살에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타계하면서 1970년 추풍령에 세워진 30m 높이의 경부고속도로준공기념탑이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송영수 작가의 작고 40주기를 기념하는 회고전이 열렸다. 그는 작품 외에도 수많은 드로잉과 메모가 담긴 노트 100여 권을 남겼다. 작가노트에는 이런 메모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선 스스로의 실존적 고뇌를 통하여 초월적인 것에 관계하고 현상의 배후에 근원적인 깊이를 탐구하고 존재에 대하여 영원적인 실재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처음 아버지의 작가노트를 읽고 밤새 울었어요.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한 아버지의 고민이 연출자로서 내가 고민하는 지점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반추상의 작품 경향도 제가 연극에서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하고요. 제가 하고자 하는 연극은 완전한 신체극도 아니고 무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실적인 연극도 아니죠. 저는 설명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대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에 집중합니다. 질문을 던져주고 관객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죠. 그런데 우리나라 관객들은 늘 정답을 받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헷갈리면 무조건 어렵다고 해요. 추상 조각에 정답이 있을까요? 그냥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정답인 거죠. 연극에서 이념이니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것을 넘어 관객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이 작가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흔 살의 아버지도 바로 그런 고민을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죠.”

돌이켜보면 아홉 살 소녀에게 아버지의 이른 죽음은 슬프기보다 창피한 것이었다.

“당시는 학교에서 아버지가 안 계신 사람, 어머니가 안 계신 사람 손을 들라 해서 조사를 했어요. 그 시간이 너무 싫어서 학교에 가기도 싫었죠. 그 정도로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게 제게는 트라우마이자 콤플렉스였죠. 하지만 이어령 선생님이 쓴 묘비명을 읽으며 비로소 아버지의 부재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어령 선생이 쓴 친구의 묘비명은 이랬다.

“피 없는 돌에 생명을 주고 거친 쇠부치에 아름다운 영혼을 깃들이게 한 사람. 마흔한 살의 자기 나이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살며 그는 이곳에 잠들어 있다.”
땡땡이와 범생이의 사랑

스물네 살에 결혼한 송현옥 교수와 오세훈 시장의 러브 스토리는 널리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룹 과외를 하면서 처음 만났다. 현옥의 오빠(송상호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가 병으로 휴학하는 바람에 한 살 아래인 동생과 같은 학년이 됐고, 오빠와 같은 반이던 세훈이 과외에 합류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서로의 첫인상은, 어떻게 하면 수업을 빼먹을까만 궁리하는 ‘땡땡이’(현옥)와 지각 한번 하지 않는 마마보이 ‘범생이’(세훈)였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나란히 고려대에 지원했으나 땡땡이는 합격하고 범생이는 낙방했다. 후기대학에 다니던 범생이는 땡땡이를 놓칠까 봐 노심초사하다 이듬해 고려대 법대에 편입했다. 캠퍼스 커플로 유명했던 두 사람은 1985년 오세훈이 사법시험에 붙자마자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초스피드로 결혼했다. 처음엔 외아들인 오세훈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송 교수의 어머니(사공정숙 고려대 수학과 명예교수)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놓고 전화로 딸을 깨우는 세훈의 성실성에 감동해 결혼을 허락했다고 한다. 성실성은 결혼에서도 통했다.

사실 ‘러브 스토리’의 진짜 주인공을 꼽으라면 송 교수의 어머니 사공정숙 교수만 한 예가 없다.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고려대 수학과에 진학한 사공 교수는 졸업 후 수도여고에서 수학교사를 하다 송영수 작가를 만났다. “예술을 모른다”는 사공 교수의 말에 송 작가가 “추상 수학과 추상 조각은 아주 잘 통하니 걱정 말라”고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새로운 구상이 떠오를 때마다 아내에게 보여주며 “좋지! 좋지!” 어린아이처럼 들떠 하던 송 작가가 황망히 세상을 떠나자 사공 교수(당시 고려대 최초 이과대 여자 교수)는 남편과 함께 지은 집에서 4남매를 키우며 남편의 작품들이 한 점도 흩어지지 않게 지켜냈다. 사공 교수는 홀로된 지 7년 만에 스위스로 연수를 갔다가 여섯 살 어린 노총각 교수(정복근 경희대학교 명예교수)로부터 청혼을 받았다. 망설이던 엄마에게 재혼을 적극 권한 것은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큰딸 현옥이었다.

“7년이나 혼자 사셨으니 이제 엄마의 삶을 찾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죠. 쉽지는 않았어요. 막상 권해놓고도 아버지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책상 위에 아버지 사진을 올려놓았으니까요. 엄마에겐 못되게 군 셈이죠.”

새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자상했다. 심지어 송영수 작가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다. 송현옥 교수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엄마와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저는 A부터 Z까지 다른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랑꾼 DNA’만큼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닐까 싶다. 오주원도 대학 1학년 때 미팅으로 만나 10년 연애하고 결혼했다. 이 가족은 사랑도 닮은꼴이다.

‘의자 고치는 여인’은 부모와 이 동네 저 동네 떠돌며 의자를 고쳐주고 살아가는 외로운 소녀가 어느 날 한 소년에게 반하고 그 남자를 위해 일생을 바친다는 이야기다. “55년간 쉬지 않고 계속된, 죽고 나서야 비로소 끝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남자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여자는 행복했을까? 헛된 사랑을 한 이 여인의 삶은 무엇일까? 사랑엔 정답이 없다.

#송현옥 #오주원 #연극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 극단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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