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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진정한 소통을 꿈꿨던 지적 거인, 한나 아렌트

성지연 에세이스트, 국문학 박사

2023. 06. 12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일생을 걸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인간은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지난 20세기 대서양 이편과 저편을 넘나들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여성 지식인이자 학자가 있다. 한나 아렌트다. 그가 겪었던 나치 전범 재판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012년 토론토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한나 아렌트’다. 독일의 1세대 페미니즘 감독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가 연출을, 바르바라 주코바가 아렌트 역을 맡았다. 서양인들에게 홀로코스트(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는 20세기의 가장 끔찍한 비극이었다. 아렌트는 이 나치즘으로 고난을 겪었다. 그리고 나치즘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을 내놓는다.

아렌트는 지적, 대중적 명성을 누릴 삶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들도 있지만 운명적으로 주어진 것들도 있다. 아렌트는 독일 출신의 유대인이다. 1933년 나치의 탄압으로 독일을 탈출해 1951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할 때까지 18년간 무국적자로 살았다. 그리고 20세기 전반 세계 사상계를 주도했던 실존주의의 두 거목인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야스퍼스의 대표적인 제자다. 무엇보다 그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인 지식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 여성 학자이기도 하다.

무국적자로의 삶

20세기에 널리 알려진 여성 사상가는 참 드물다. 여성들은 오랜 세월 공적 영역에서 독자적인 생각을 펼치는 활동에서 소외됐다. 여성 학자가 남성 중심의 학계에 진입하는 데 크고 작은 어려움이 존재했다. 아렌트의 성취는 학문에 뜻을 둔 다음 세대 여성들에게는 든든한 디딤돌을 놓아준 셈이다.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살펴보는 데 유용한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그의 제자 엘리자베스 영-브륄의 ‘한나 아렌트 철학 전기’이고, 다른 하나는 아렌트 연구자인 나카마사 마사키의 ‘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다. 특히 나카마사의 책은 아렌트가 전달하려 했던 인간 사유의 힘과 통찰을 잘 보여준다.
아렌트는 1906년 독일 린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회민주주의자였다. 11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어머니가 아렌트의 성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아렌트는 1923년 교사와의 마찰로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1924년 가정교사의 지도와 독학으로 대학 입학 자격을 얻고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마르틴 하이데거 강의에 참여했다. 아렌트를 늘 따라다니는 하이데거의 연인이었다는 이야기는 이 만남에서 시작된다. 하이데거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으니 불륜의 사랑이었다.

아렌트는 하이데거와 헤어진 뒤 하이데거의 사상적 동료인 카를 야스퍼스에게 박사학위 지도를 받았다. 1929년 ‘아우구스티누스에 나타난 사랑의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획득했고, 그해 유대인 철학자 귄터 슈테른과 결혼했다. 슈테른도 하이데거의 제자였다.



아렌트의 삶은 나치즘의 등장으로 격동을 맞이한다. 1933년 히틀러가 총리로 취임했고, 독일에서 반유대주의가 거세졌다. 아렌트는 학문과 저항 활동을 병행했다. 특히 히틀러 정권에 맞선 좌파 인사들을 돕는 활동을 했는데, 그 거점으로 자신의 아파트를 사용했다. 아렌트는 시온주의 단체에서 위험한 요청을 받았다. 비정부 단체, 개인적인 모임, 경영 단체, 교수 사회의 반유대적 행동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아렌트는 체포됐다.

아렌트는 8일 만에 풀려났지만 독일을 탈출해 남편 슈테른이 망명해 있던 파리로 향했다. 그리고 1934년 유대 난민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돕는 시온주의 단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1937년 아렌트는 슈테른과 이혼했고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1940년 아렌트는 사회운동가 하인리히 블뤼허와 두 번째 결혼을 했지만, 두 사람은 프랑스 당국에 의해 독일 난민수용소로 보내졌다. 수용소에서 석방된 아렌트는 1941년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1943년 이후 나치의 유대인 인종 청소를 알게 됐고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책을 구상했다.

홀로코스트의 뿌리를 파헤치다

1945년 독일 튀링겐주의 나치 수용소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최고사령관을 비롯한 연합군이 처형된 수감자들을 보고 있다.

1945년 독일 튀링겐주의 나치 수용소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최고사령관을 비롯한 연합군이 처형된 수감자들을 보고 있다.

20세기 서구 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유대인의 정체성은 아렌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체포, 탈출, 난민수용소 수용 그리고 18년간 무국적의 삶이라는 고난이 이 영향을 압축한다. 아렌트의 이름을 서구 지식사회에 널리 알린 ‘전체주의의 기원’(1951)은 바로 이 유대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아렌트가 탐구하는 유대인 문제와 반유대주의는 바로 자신의 문제였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반유대주의, 제국주의, 전체주의를 망라하는 방대한 저작이다. 반유대주의가 제국주의를 거쳐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먼저 아렌트는 반유대주의의 기원을 추적한다. 19세기 유럽 근대 국민국가가 생겨나던 당시 유대인은 유럽 대륙에 상당히 동화돼가는 중이었다. 이렇게 점차 눈에 띄지 않게 된 유대인을 새삼스레 국가 차원에서 적으로 삼기 시작했다. 동질성을 추구하는 국민 집단이 자기 주변에서 이질적인 존재를 찾아내 그들을 적으로 만듦으로써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에서 좌파와 우파의 구별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전체주의 관점에서 독일의 히틀러나 소련의 스탈린은 동일한 독재다. 이러한 아렌트의 시각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체제 경쟁을 벌여온 냉전시대에 이채롭고 선구적인 통찰이었다.

전체주의의 가장 무서운 점은 대중의 공허함을 파고들어 리더에 대한 복종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전체주의는 반유대주의와 같은 일관된 거짓말의 세계를 꾸며낸다. 뿌리 뽑힌 대중은 이 거짓말의 세계 속에서 고향과 같은 정신적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대중은 현실에서의 삶이 주는 끊임없는 충격을 피할 곳을 찾게 된다.

전체주의가 겨냥하는 것이 인간을 고립시켜 정치적 능력을 파괴하려는 데 있다는 아렌트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정치적 능력이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영역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삶이 개인적인 것이자 사회적인 것이라는 견해는 인간에 대한 아렌트 철학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우리 인간에게 최고의 활동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 사유를 제외하면 어떤 것이 인간에게 중요한 걸까. 이에 대한 답을 그의 또 다른 주요 저작인 ‘인간의 조건’(1958)에서 다룬다. 아렌트에 따르면 ‘활동적 삶(vita activa)’을 이루는 인간의 3가지 근본 활동은 노동, 작업, 행위다. 노동은 개인으로서의, 종으로서의 인간을 생존하게 한다. 작업은 덧없는 삶에 지속성과 영속성을 부여할 수 있는 수단이다. 행위는 타인과 소통하며 의미를 추구하는 활동이다.

아렌트가 우려한 것은 근대사회가 도래하면서 이 3요소의 관계가 변화했다는 점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노동이 다른 활동을 압도하고,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작업과 행위는 위축되었다. 영-브륄에 따르면,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 제목을 ‘세계 사랑’으로 붙이고 싶어 했다. 세계 사랑이란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그 안에 존재하는 공동선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고 말한 이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다. 아렌트에게 인간이 진정 사랑해야 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다. 이 세계는 나와 사회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과도한 자아에 대한 집착과 세계로부터 도피하려는 세계 소외는 모두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를 사랑하라(Amor Mundi)”는 이러한 집착과 소외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라 할 만하다. 이처럼 아렌트는 우리의 삶과 사유의 복합성을 넓고 깊게 이해하려고 했던 사상가다.

사유하지 않을 때 등장하는 악

앞서 말했듯 아렌트는 18년간 국적 없는 채로 살았다. 개인적인 잘못은 없다. 태어나 보니 유대인이었는데 이 때문에 혐오와 배척을 경험했다. 나치는 수용소를 만들어 감금하고 체계적으로 유대인 집단 대학살을 자행했다. 미증유의 폭력과 폭력을 행사한 이에게 분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아렌트는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 뭔가 잘못돼서 이런 상황이 펼쳐졌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아렌트를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린 책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일 것이다.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친위대 중령으로 유대인 수용소에서 이송 책임자 역할을 했다. 전후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살다 1960년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잡혀 예루살렘에서 재판에 회부됐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리자 잡지 ‘뉴요커’의 특파원을 자원해 이스라엘로 떠났다.

아이히만은 분명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에 책임이 있는 잔혹한 악마다. 그런데, 아렌트가 보는 아이히만은 따분한 인간이었다. 아렌트의 지적은 아이히만에겐 양심 결여나 정치 성향을 넘어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결정적인 성격 결함은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서 무능력이 나타났고, 따라서 그와는 어떤 소통도 불가능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다고 아렌트는 지적한다.

이러한 관찰에서 아렌트가 이끌어낸 개념이 ‘악의 평범성’과 ‘사유의 불능성’이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평범하게 행동하는 일이 때로는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악의 평범성이다. 생각하는 능력의 부재가 사유의 불능성이다. 악은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의 행동을 평범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유 능력이 부재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러한 아렌트의 주장은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오늘날 광신자나 독재자뿐 아니라 평범한 이들이 저지른 악을 놓고 설명할 때 그의 논거는 거듭해 인용된다.

21세기의 한나 아렌트

아렌트는 전체주의와 인간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1960년대 이후 서구 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 반열에 올랐다. 그 영향력 면에서 존 롤스, 미셸 푸코, 위르겐 하버마스에 필적하는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아렌트는 1975년 미국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철학적 사유는 21세기 현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세계에서 살고 움직이며 행위를 하는 복수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인간의 조건’ 서론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어떤 이는 이익을 모색하는 ‘경제적인 존재’로, 또 어떤 이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놀이하는 존재’로, 다른 이는 지배를 희구하는 ‘권력적인 존재’로 인간을 바라본다. 아렌트는 우리 인간이 자신과 타인에게 말을 걸어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소통하는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위의 인용은 이러한 아렌트의 인간관을 잘 보여준다.

21세기란 어떤 시대일까. 불평등과 기후위기, 인공지능과 플랫폼이 이끌어가는 시대다. 이러한 대전환 속에서도 우리 인간은 소통을 시도하는 존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끝없이 이야기를 남기는 까닭도 기실 외로워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일 거다. 아렌트가 꿈꾸었던 건 진정한 소통이 있는 삶이다. 소통을 통해 의미를 나누는 삶이다. 바로 이 점에서 아렌트는 20세기의 사상가인 동시에 21세기의 사상가다. 가지 않은 길을 당당하게 걸어갔던 아렌트를 따라, 더 많은 여성 사상가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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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연의 다시 만난 그녀들
1970년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어른의 인생 수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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