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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who wear what

치마 입은 브래드 피트, 진주 목걸이 한 이정재

김명희 기자

입력 2022.08.17 10:00:01

옷에 대한 편견을 깬 연기 장인들의 유쾌한 파격에 관하여.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59)와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오른 뒤 감독이라는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연 이정재(50). 미남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한 데 이어 ‘꽃중년’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던 이들이 패션 장르에서의 새로운 도전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무려 스커트와 진주 목걸이라는 파격적인 아이템을 장착하고 공식 석상에 선 것.

브래드 피트는 7월 말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영화 ‘불릿 트레인’ 시사회에 디자이너 한스 니콜라스 모트가 제작한 갈색 리넨 재킷과 비대칭 스커트를 입고 등장했다. 무릎에도 못 미치는 짧은 치마를 입어 큼직한 종아리 타투를 드러냈으며, 여기에 발목 위로 올라오는 양말과 워커를 매치했다. 재킷 안에는 핑크색 리넨 셔츠를 받쳐 입었는데, 단추를 과감하게 풀고 빈티지한 목걸이를 착용해 스타일을 완성했다. 내추럴 소재와 차분한 컬러 의상, 자연스러운 금발이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멋스러운 분위기였다.

영화 ‘헌트’ 홍보차 8월 초 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이정재는 핑크색 블레이저에 알이 굵은 진주 목걸이를 매치해 눈길을 끌었다. 제작진이 함께 출연한 정우성에게 이정재의 드레스 코드에 대해 묻자, 그는 “(핑크는) 늘 보던 컬러”라면서 “(진주) 목걸이는 좀, 오늘 작정한 것 같은데?”라고 말해 웃음을 선사했다. ‘집사부일체’ 멤버 양세형 역시 “내가 본 진주 목걸이 중에 가장 크다. 부의 상징”이라고 반응해 웃음을 안겼다.

브래드 피트의 스커트와 이정재의 진주 목걸이 모두 남성들이 일상적으로 선택하는 익숙한 비주얼이 아닌 탓에 수많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부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았다. 버버리를 비롯한 몇몇 브랜드가 수 년 전부터 남성용 스커트를 선보이고 있지만 대중에겐 런웨이 위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이었다. 금목걸이, 금팔찌를 주렁주렁 차는 남성들에게도 진주는 아직 ‘넘사벽’의 영역이다. 이 때문에 브래드 피트의 스타일엔 “괴상한 아줌마 같다”거나 “이제 피트 누나라 불러야 하나” “해변의 부랑자 같다” “슈트를 입으면 멋졌을 텐데 왜 저런 옷을 입었을까” 등의 악평이 쏟아졌다. 심지어 미국 언론은 남자 유명인의 스커트 패션이 청소년들의 성정체성에 미칠 영향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다. 이정재의 진주 패션에 대해서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벌칙으로 단 목걸이인 줄 알았다” “정우성 부인이라는 의미인가” “청담동 사모님 패션 같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각각 데뷔 35년 차, 29년 차로 연예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톱스타들이 이런 악평을 무릅쓰고 파격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진이 치마를 입은 이유를 묻자 브래드 피트는 “바람(the breeze)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의 말처럼 통기성 좋은 마 스커트는 폭염을 피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다. 브래드 피트는 또 다른 인터뷰에선 “모르겠다. 우린 모두 죽지 않나. 그러니 망가져보자(I don’t know! We’re all going to die, so let’s mess it up)”라고 말했다.



새로운 것에 즐겁게 도전하는 열린 마인드

브래드 피트는 영화 ‘블릿 트레인’ 글로벌 투어에서 스커트를 비롯한 다양한 린넨 소재의 의상을 입었다.

브래드 피트는 영화 ‘블릿 트레인’ 글로벌 투어에서 스커트를 비롯한 다양한 린넨 소재의 의상을 입었다.

사실 리넨 소재, 파스텔컬러, 여유로운 핏은 브래드 피트의 ‘불릿 트레인’ 글로벌 투어 의상을 담당하고 있는 디자이너 한스 니콜라스 모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다. 베를린에서 열린 또 다른 행사에선 핑크색 리넨 점퍼와 바지를 매치했고, 8월 1일 미국 LA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상큼한 그린 컬러의 리넨 셋업을 했다. 물론 디자이너가 스커트를 제안했을 때 그가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스커트는 여성의 전유물이란 고정관념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덕분이기도 하다. 브래드 피트는 1999년 영화 ‘파이트 클럽’ 개봉 당시 홍보를 위해 미니드레스를 입고 매거진 ‘롤링 스톤’ 화보를 촬영한 적이 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연출하고 브래드 피트, 에드워드 노튼, 헬레나 본햄 카터가 주연을 맡은 ‘파이트 클럽’은 전통적인 남성성과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영화. 브래드 피트의 ‘롤링 스톤’ 화보는 ‘남녀의 복장이 유별(有別)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한 의미 있는 작업으로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집사부일체’에 핑크색 재킷,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고 등장한 이정재는 평소에도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한다.

‘집사부일체’에 핑크색 재킷,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고 등장한 이정재는 평소에도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한다.

이정재의 진주 목걸이 역시 배우와 스타일리스트의 협의에 의해 탄생한 결과물이다. 그의 소속사는 “이정재의 고급스러운 느낌을 고려해 스타일리스트가 진주 목걸이를 제안했고, 이정재가 흔쾌히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씨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정재를 베스트 드레서로 꼽으며 “쉽게 자기 스타일을 포기 못 하는 사람(스타)들이 있는데 그러면 발전이 더디다. 이정재는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그래서 옷을 잘 입는다”고 말한 바 있다. 돌계단도 런웨이로 만들고(영화 ‘관상’), 후줄근한 초록색 트레이닝복도 명품처럼 소화하는(드라마 ‘오징어 게임’) 이정재의 패션 감각 원천은 새로운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오픈 마인드인 것이다.

이정재에 앞서 지드래곤도 지난 5월 2022/23 샤넬 크루즈 쇼에 진주목걸이를 착용하고 참석했다.

이정재에 앞서 지드래곤도 지난 5월 2022/23 샤넬 크루즈 쇼에 진주목걸이를 착용하고 참석했다.

패션은 돌고 돌며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양식이다. 카디건은 남성복에서 유래했지만 이젠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드물 정도로 여성들이 즐겨 입는 아이템이 됐고, 메이크업을 하는 남자들도 많다. 패션에서 성의 경계가 무너지고 낯선 아이템이 일상에 스며들기까지 무수히 많은 신선한 시도들이 있었을 것이다.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이든, 브래드 피트의 “시원해서”와 같은 아주 현실적인 이유에서건. ‘치마가 남자답지 못하다’거나, ‘진주는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깨고 패션의 세계를 확장한 브래드 피트와 이정재. 두 사람에겐 이제 ‘세기의 미남’이라는 수식어 위에 ‘진정한 패셔니스타’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하나 더 얹어주어도 좋을 듯하다.

#이정재 #브래드피트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SBS 뉴시스



여성동아 2022년 9월 7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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