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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열이 치솟는 이유

글 한의사 이근희

2022. 04. 14

나는 등산을 싫어했다. 어릴 적 친구들이 부모님과 함께 놀이동산이나 동물원을 다닐 때, 필자는 등산이 취미인 부모님 손에 이끌려 주말마다 전국 산을 오르내려야 했다. 그나마 올라갈 때는 정상에 도달하겠다는 목표가 있으니 괜찮았다. 하산할 때는 더욱 싫었다. 내리막길을 걸으면 발이 아프고 땀이 식어 춥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 “어차피 내려올 거 왜 올라가는 거야?”라고 부모님께 여쭤본 일도 있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숨차게 올라갈 때 못 본 것을 천천히 보면서 내려오렴”이라는 동문서답을 하셨다.

산을 오르면 내려와야 하듯, 사람 신체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언제까지고 건강과 활력이 넘칠 것 같지만,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 인체는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들게 된다.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건 성호르몬이다. 여성의 경우 달마다 이어지던 월경량이 줄며 완경이 다가온다. 남성은 성기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 시기를 갱년기(更年期)라고 한다.

성호르몬의 변화는 생식기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감소는 혈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갱년기 여성들에게는 얼굴에 열이 오르며 낯빛도 붉어지는 안면홍조가 생기곤 한다. 또 가슴이 답답하고 수시로 땀이 흐르지만, 몸은 차가워지면서 오한이 드는 증상도 나타난다. 비뇨기계가 약해져 소변을 볼 때 통증(배뇨통)을 느끼기도 한다. 소변이 자주 마렵고 참기 어려워져 찔끔 실례를 하는 요실금이 생길 수도 있다. 또 근육량이 줄고 지방이 늘어 체중이 증가한다. 뼈가 약해지면서 근육과 관절이 굳어 근육통과 관절통이 수시로 발생하고 감정 기복도 심해질 수 있다.

갱년기 남성은 여성만큼 급격한 변화를 겪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서서히 감소하면서 성욕이 떨어지고, 발기가 잘되지 않으며, 우울감 및 만성적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한의학에서는 갱년기를 신체 균형이 깨진 상태로 본다. 우리 몸은 가만히 멈춰 있지 않는다. 체내에서는 균형을 맞추려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태극기를 떠올려 보자. 중앙의 원을 보면 청색이 올라가고 적색이 내려가며 동적 균형을 맞추는 수승화강(水升火降)의 원리가 보인다. 우리 몸도 그처럼 음과 양이 동적인 균형을 이뤄야 건강하다.



갱년기 여성들은 오랫동안 생리를 통해 혈과 진액을 배출한 영향으로 물이 부족한 음허(陰虛) 증상을 겪는다. 그로 인해 열이 위로 오르면서 안면홍조, 상열감, 발한 과다, 감정 항진 등이 발생한다. 갱년기 남성의 경우 성적 에너지가 감퇴하는 양허(陽虛) 증상을 보인다. 주전자의 물을 끓이던 불이 약해지면서 몸이 차가워지고, 활동력이 떨어지며, 쉽게 피로해지는 것이다.

최신 기술로 만든 전자기기도 몇 년 쓰면 기능이 떨어지는데, 50년 가까이 사용한 몸이 기능적으로, 구조적으로 완벽할 수는 없다. 하나둘씩 틀어지는 것이 생긴다.

기계와 달리 우리 몸은 교환 혹은 반품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기름칠을 하고, 수리를 해 오래 사용해야 한다. 이때 여성은 끓어오르는 열을 가라앉히고 부족한 혈과 진액을 보충하는 방법, 남성은 신체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방법을 각각 선택해야 한다.

갱년기 때는 신체 기능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성인이 된 자식들이 독립을 위해 떠나고, 직장에서는 은퇴가 다가온다. 가까운 지인이 아프거나 세상을 떠나는 일이 닥치기도 한다. 이러한 일에서 느끼는 충격이 신체 변화와 맞물리면서 심리적 고통까지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이 시기에 이른 분들이 상승을 위한 끝없는 질주를 계속하기보다, 인생의 클라이맥스에서 무심코 넘어갔던 몸과 마음, 인연을 되돌아보며 더 행복한 삶을 준비해나가기를 바란다.

#갱년기건강 #한방치료 #여성동아

한의사 이근희의 건강 체질 만들기


이근희
MZ세대 한의사. 원광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경희대 한의학대학원에서 안이비인후피부과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수서 갑산한의원 진료원장을 거쳐 현재 경북 경주 안강 갑산한의원에서 환자를 만나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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