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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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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로컬 그로서리 스토어 4

글 김민호 프리랜서 기자

2022. 03. 14

접근성이 좋은 유명 백화점 식품 코너, 당일 배송해주는 온라인 쇼핑몰을 뒤로하고 로컬 그로서리 스토어에 간다.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이야기를 맛보기 위해.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다. 보고 즐길 건 많은데 시간이 없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맛집과 레시피 정보가 넘쳐나지만 무엇 하나 선택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 눈이 가는 건 음식을 넘어서는 이야기.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롭고 풍부한 이야기까지 더해 내놓는 그로서리(식료품) 스토어는 식사의 질을 높여준다.

가게를 차린 이유, 식자재를 조달하는 방식, 단골이 즐겨 찾는 제품을 알게 되면 음식이 내 식탁으로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서로 다른 취향과 문화를 경험할 때 식사는 음식을 소비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백화점의 프리미엄 식자재 매출이 매년 30% 이상 성장하는 것도 음식 이면의 이야기와 경험까지 누리고 싶어 하는 소비자 욕구가 반영된 결과다. 대표가 ‘장인 정신’을 갖고 특별한 식자재를 소비자 식탁에 올리는 곳, 서울의 로컬 그로서리 스토어 네 곳을 소개한다.

큔(Qyun)
‘채소 맛’ 탐구하는 발효 연구실

‘큔’은 서울 삼청동 청와대 옆 고즈넉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다. 공유주택 ‘청운광산’ 1층에 있어 특색 있는 외관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볕 좋은 날 오후에 방문하면 햇살이 들어오는 직사각형 창문과 옅은 오렌지색 벽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청운광산을 지은 구보건축은 ‘생태, 연대, 느림, 인간’을 강조한다. 이에 걸맞게 큔은 노지에서 생산한 유기농 채소를 발효한 식자재를 선보인다. 그로서리 스토어이면서 동시에 전국 각지의 농부가 직송한 제철 재료로 만든 요리, 음료를 맛볼 수 있는 카페이기도 하다.

카페 메뉴는 제철 채소에 맞춰 수시로 바꾼다. 모든 요리에는 직접 만든 발효 조미료나 소스, 페스토가 들어간다. 방문한 날 맛본 양파수프는 일본 전통 누룩 소금인 ‘시오코우지’로 간을 해 뭉근한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같이 나온 ‘앤쵸비 샌드위치’에는 기장 멸치를 발효해 만든 안초비와 겨울 양배추를 발효시킨 사우어 크라우트가 들어갔다. 소이 요구르트로 만든 유자 아이스크림도 별미다.

카페 지하의 발효 작업실에서는 누룩 간장, 유즈코쇼, 미소 된장 등을 판매한다. 낯선 발효 조미료이지만, 자세한 설명을 같이 제공해 마음이 놓인다. 재료와 생산지, 요리할 때 사용법, 보관 방법 등이 연갈색 재생 용지에 빼곡히 적혀 있다. 큔은 모든 상품을 유리 밀폐 용기에 담아 판매하며, 다음에 방문할 때 용기를 가져오면 제품 값을 할인해준다.



큔에서 판매하는 식료품 대부분은 채소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좋은 채소만 있으면 고기 없이도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게 김수향 대표의 철학. 재일교포 3세인 그는 카페 식재료를 지역 농부로부터 직접 수급한다. 생산자가 눈에 보여야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책임 있는 소비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큔의 발효 식품은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다. 계절별로 다섯 개의 조미료를 레시피와 함께 묶어 60박스 한정 판매한다.

ADD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26길 17-2
OPEN 수~일요일 오전 11시~오후 4시(월~화요일 휴무)

아틀리에 크레타(Atelier Kreta)
‘맛잘알’ 사장님이 선보이는 미식 치트 키

아틀리에는 예술가의 작업실을 뜻한다. 예술가가 아틀리에에서 아름다움을 발굴해낸다면 ‘아틀리에 크레타’ 서향주 대표는 음식으로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서 대표의 비법은 수작업. 그래놀라, 쪽파크림치즈, 타르타르소스, 바닐라시럽 등을 매일 직접 만든다.

아틀리에 크레타는 2018년 봄, 그래놀라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며 문을 열었다. 퀵롤드 오트(quick-rolled oats)로 만든 이곳의 그래놀라는 유난히 바삭하고 고소하다. 메이플시럽 대신 유산균의 먹이가 되는 프락토올리고당을 사용하는 것도 특징. 아틀리에 크레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거 먹고 입이 고급이 돼 이제 다른 그래놀라는 못 먹겠다”는 댓글이 달려 있다.

아틀리에 크레타 그래놀라는 결혼식 답례품으로도 인기다. 선택지는 플레인, 카카오, 시나몬, 흑임자 네 가지 맛. 서 대표가 개발한 흑임자 그래놀라를 우유와 함께 먹으면 한끼 식사, 아이스크림과 먹으면 훌륭한 디저트가 된다. 서 대표는 “아침에 그릭 요구르트와 그래놀라를 함께 먹으면 장 활동이 폭발한다”는 ‘꿀팁’도 건넸다.

수제 타르타르소스는 아틀리에 크레타의 또 다른 시그니처 제품. 구운 빵에 발라 오이를 올리면 훌륭한 전채 요리, 크래커에 바르면 입안 가득 풍미가 느껴지는 간식이 된다. 매콤한 끝맛이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소스의 균형을 맞춰준다.

최근에는 내추럴 와인도 선보이고 있다. SNS 계정에 #크레타와인 해시태그를 달고 대표가 선별한 와인을 소개하며 페어링하기 좋은 음식도 추천한다. 이곳에서 무엇을 골라 담을지 망설여진다면 서 대표가 선정한 ‘사장 오마카세’를 구매하면 된다.

아틀리에 크레타는 계절마다 아이템을 바꾼다. 지난해 봄에는 피크닉에 들고 가기 좋은 와인과 함께 치즈 박스, 샐러드 키트를 판매했다. 이번 주말 한강 피크닉이 당긴다면 아틀리에 크레타의 SNS를 확인해보자. 운이 좋으면 두 손 가득 특별한 간식거리를 들고 망원 한강공원에서 낮술을 즐길 수도 있을 테니.

ADD 서울시 마포구 망원로2길 69
OPEN 수~일요일 낮 12시~오후 8시(월~화요일 휴무)

알리멘따리 꼰 떼(Alimentari Con Te)
부암동에서 경험하는 이탈리아 할머니의 손맛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 자락,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부암동 언덕길에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옮겨온 듯한 작은 식료품 상점이 있다. 토스카나 시에나에서 10년간 거주한 박만영 대표가 2020년 11월부터 운영해온 ‘알리멘따리 꼰 떼’다. 시에나 언덕 위에 고스란히 보존된 중세 도시의 모습에 반해 그곳에 정착했다는 박 대표는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암동에서 비슷한 끌림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서울 종로구 창의문 옆에 있는 다섯 평(16㎡) 남짓한 크기 수선집이 매물로 나온 걸 보고, 그곳에 자신만의 가게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엄선한 이탈리아 식자재와 직접 만든 저장 식품을 판매하는 작은 공간은 그렇게 탄생했다.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세 사람이 같이 서면 꽉 들어찰 정도 규모의 가게 한쪽에서 박 대표가 카포나타(caponata)에 들어갈 가지를 튀기고 있었다. 카포나타는 시칠리아 지방 채소 요리로, 튀긴 가지·셀러리·올리브 등을 토마토소스로 버무린 음식이다. 매대에는 박 대표가 직접 만든 무화과·양파·토마토잼과 버섯 절임, 각종 페스토가 놓여 있었다. 모두 만든 지 일주일 안에 ‘완판’되는 귀한 물건이다.

잼은 빵에 발라 먹으면 좋고, 치즈나 프로슈토에 곁들일 경우 훌륭한 와인 안주도 된다. 잼의 달콤함이 육류의 풍미를 살리고, 치즈의 고소하고 짠맛과도 궁합이 좋다. 버섯 절임은 구운 빵에 올려 브루스케타로 만들어 먹기 제격이다. 시칠리아 페스토는 리코타 치즈와 토마토가 듬뿍 들어가 로제 소스처럼 채도가 낮은 주황색을 띤다. 박 대표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록색 바질 페스토는 이탈리아 북서부 제노바식이다. 시칠리아 페스토는 로마 이남 지역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는 수제 저장 식품 외에도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탈리아 식재료가 가득하다. 산피에트로 트러플 오일, 안초비 트러플 오일 페스토, 치즈처럼 갈아 먹는 발사믹식초, 진한 풀 향과 매콤한 풍미를 맛볼 수 있는 올리브오일 등이 박 대표가 손으로 쓴 설명과 함께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박 대표가 처음부터 이탈리아 식료품점 창업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그는 “시에나에서 배운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고 싶어 국내 식료품점을 찾았는데 필요한 물건이 대부분 없거나 매우 비쌌다”고 말했다. 그때 문득 시에나에 살던 시절 자주 찾았던, 주인 할머니가 매일 만든 음식을 저울에 달아 판매하던 식료품 가게 ‘알리멘따리’가 떠올랐다고. 그것이 그로서리 스토어 오픈의 계기가 됐다.

박 대표에게 이탈리아 요리를 가르쳐준 사람도 시에나에서 10년 넘게 알고 지낸 할머니라고 한다. “너와 함께하는 음식”이라는 뜻의 가게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이탈리아 동네 식료품 가게의 정이 듬뿍 담겨 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다면 이번 주말 부암동을 찾아가 보자.

ADD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33
OPEN 수~일요일 오전 10시 30분~오후 7시 30분 (월~화요일 휴무)

생선씨
육즙 촉촉 생선구이를 우리 집 식탁에

‘생선씨’는 동네 생선 가게에 대한 상식을 뒤집는 곳이다. 회색 벽돌로 가게 앞을 감싸고, 유리로 된 여닫이문에는 흰색으로 간단한 설명만 써뒀다. 세로가 긴 초록색 타원 위에 한붓그리기로 생선 꾸러미를 표현한 로고도 인상적.

매장에 들어서면 알탕·백합탕·감바스 밀키트부터 모둠회·치즈·와인·게장·연어장· 명란젓·구이용 생선·초밥·올리브오일까지 각종 식자재가 가득하다. 은은한 주황빛 조명이 상품을 비추고, 직원들은 생선씨 로고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고 있다.

생선씨의 가장 큰 경쟁력은 신선함. 어선 두 대를 자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솜씨 좋은 어부들이 어획 즉시 선상에서 내장을 제거한 뒤 진공 포장하고, 뭍에 닿자마자 고속버스 편을 이용해 생선씨 매장으로 보낸다. 생선이 워낙 신선하니 구워도 비린내가 적고, 수분이 가득하다. 산지에서부터 중간 유통, 운송, 판매까지 모두 관리한다는 점에서 보면 생선씨는 그로서리 스토어라기보다 해산물 유통 스타트업에 가깝다.

전화로 구이용 생선을 예약하면 매장 내에서 추가 비용 없이 직접 구워주기도 한다. 유통 과정을 단순화해 안초비, 바질 페스토, 이베리코 통조림, 캐비아 대용 아브르가(청어알) 등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직장이나 집이 서울 이촌동과 가깝다면 퇴근길에 큰 수고 들이지 않고 특별한 저녁을 준비할 수 있다. 생선씨의 알탕 밀키트, 생선 구이, 연어회는 3~4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생선 구이 도시락도 준비 중이라고 하니 인근에 있다면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해보자. #여성동아

ADD 서울시 용산구 이촌로 264 삼익상가 1층 110호 
OPEN 매일 오전 10시 30분~오후 8시 30분

사진 김민호 프리랜서 기자 디자인 김석임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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