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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ory

그림에 진심인 ‘미대 오빠’ 박기웅

글 이현준 기자

입력 2021.05.07 10:30:01

또렷한 이목구비에 고뇌하는 듯한 배우 박기웅의 얼굴에서 어느 화가의 자화상을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니었다. ‘원조 미대 오빠’ 박기웅이 전시회를 열고 화가로 데뷔했다.


“연기가 아니라 그림을 주제로 인터뷰하는 날이 오다니… 기분이 묘해요.”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건 알았지만 그림 실력까지 숨기고 있을 줄이야. 배우 박기웅(36) 이야기다. 박기웅은 2005년 영화 ‘괴담’으로 데뷔 후 영화 ‘싸움의 기술’(2006), ‘최종병기 활’(2011),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와 드라마 ‘추노’(2010), ‘각시탈’(2012), ‘리턴’(2018), ‘신입사관 구해령’ (2019) 등의 작품을 통해 출중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간 선한 역과 악역을 오가며 ‘반전’의 이미지를 드러내곤 했지만 이번엔 연기를 통한 것이 아니라 더 신선하다.

박기웅은 3월 24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제21회 ‘한국 회화의 위상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며 화가로 데뷔했다. 또 출품작 ‘에고(Ego)’로 특별상인 K아트상을 거머쥐며 화가 등단 최단 기간 내 수상이라는 독특한 기록도 갖게 됐다. 배우가 아닌 화가로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것. 최근 하정우, 이혜영, 솔비 등 연예계 생활과 미술을 겸업하는 ‘아트테이너(Art + Entertainer)’들이 늘고 있지만 박기웅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대진대 시각디자인학과)한 ‘진짜 미대 오빠’다.

그는 지난해 인스타그램을 통해 온라인으로 작품을 공개해오다 올해 3월 서울 강남구 라마다호텔 별관에 위치한 명품 숍 ‘럭셔리판다’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곳 한가운데서 만난 그의 그림은 에르메스, 구찌, 보테가 베네타, 프라다 등 명품과 근사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박기웅은 자신의 작품을 ‘아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에게선 조금의 장난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림에 있어 박기웅은 ‘진심’이었다.




박기웅의 작품들
1 After Basquiat. 2 Concrete Rose. 3 Show me what U got. 4 EgoⅡ.

박기웅의 작품들 1 After Basquiat. 2 Concrete Rose. 3 Show me what U got. 4 EgoⅡ.

요즘 근황이 궁금했는데, 화가로 만나니 신선해요.

근황을 말씀드리자면 배우 박해진 씨와 오디오클립 ‘투팍토크여행’을 진행 중이에요. 또 아직 많이 알려진 건 아니지만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있고요. 나머지 시간은 모두 그림 작업에 할애하고 있어요.

데뷔 16년을 맞이한 배우이지만 화가로는 신인이잖아요. 감회가 어떠신가요.

사실 저는 연기보다 그림을 먼저 시작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작품을 공개하고 화가가 됐는데, 그림과 저는 인연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인터뷰는 많이 해봤지만 화가로서의 인터뷰는 처음이라 기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고… 참 묘해요(웃음).

전시회를 열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박해진 씨 소속사(마운틴무브먼트) 황지선 대표님이 제안을 주셨어요. 황 대표님은 럭셔리판다의 공동 대표이기도 한데, 제안을 받고 보니 갤러리보단 일상 공간에 그림을 비치하는 게 훨씬 친근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흔히 그림은 마니아가 아니면 즐기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지만 전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갤러리 카페 같은 곳이 많이 생기는 건 고무적이고요. 사실 지금 앉아 있는 의자에도 디자인이라는 미술적 요소가 들어가 있죠. 럭셔리판다의 두 대표(황지선, 나수민)가 저만큼이나 제 그림을 아껴주셔서,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 마음이 움직이기도 했어요.

화가로 데뷔하자마자 상을 받았어요. 화가 등단 최단 기간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예상했나요.

전혀 예상 못 했어요. 경험 삼아 공모전에 작품을 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한국 회화의 위상전’은 20년 넘는 역사가 있는 공모전이기도 하니까요. 제 자신을 많이 투영한 작품을 내야겠다는 마음으로 고민하다 ‘에고’로 정했는데, 그 고민이 심사위원들에게도 전달된 거 아닐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요. 운도 따라줬던 것 같고요.

‘에고’는 어떤 작품인가요.

우선 ‘에고’는 참고로 한 자료나 염두에 둔 모델이 없어요. 오직 제 머릿속으로만 상상해 그려낸 작품이죠. 제가 주로 연습한 기술 중 ‘흔들림’을 표현하는 패턴이 있는데, 그걸 사용했어요. 모든 사람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흔들리기 마련이잖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소위 얘기하듯 ‘정신줄’을 꽉 붙잡고, 놓치지 않으며 나아가야 한다 생각하죠. 이를 외곽선으로 나타냈어요. 첫 외곽선은 얕고 끊어지게 했고 바깥쪽으로 갈수록 두꺼워지는 파장처럼 표현했죠. 작품 가운데 그려진 인물도 흔들림을 표현하기 위해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하고, 거친 돼지털 붓으로 덧칠한 뒤 부드러운 족제비털 붓으로 ‘때리듯’ 그려냈어요. 이 작업은 꽤 섬세함이 필요했고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형태가 쉽게 일그러지더라고요. 마음에 안 들어서 버린 게 꽤 돼요.

작품이 대개 인물화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인물화가 아닌 작품도 집에 있긴 한데(웃음), 제가 배우라 그런지 인물화가 더 끌리는 게 사실이에요. 인물화를 그리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감정 전달’이에요. 요즘은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한 안료들이 많이 나왔어요. 흔히 감정을 눈이나 표정으로 전달한다고 얘기하는데, 전 그것도 좋지만 색으로 전달하는 것도 괜찮다 생각해 이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고 있죠. 언제까지라곤 못 하겠지만 저는 앞으로도 인물화를 계속 그릴 거예요. 그러다 보면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역시 제 그림이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 궁금해요. 사실 이번 개인전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놓은 작품 모두가 전시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들은 아니라는 거예요. 처음부터 전시회를 생각했다면 일관된 콘셉트로 작업했을 텐데, 지금은 마치 제 유화 작품의 일대기 같은 느낌이라(웃음). 앞으론 그림의 모습이 점점 변화할 거라 전시회에 오시는 분들에겐 보는 재미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나중에 선보일 그림은 어떻게 변할지 유추할 수도 있고요.

그림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요. 미술을 전공했는데, 왜 연기자의 길을 선택한 건가요.

원래 서양화를 전공하고 싶었는데, 비전을 고려해 디자인으로 방향을 바꿨죠. 가고 싶었던 대학이 있었는데, 낙방했어요. 입시라는 게 나중에 돌아보면 그렇게 큰일이 아닐 수 있지만 당시 저에겐 그렇지 않았어요. 인생에 있어 첫 좌절이자 실패로 느껴졌죠. 허탈함을 느끼던 차에 2003년 길거리 캐스팅이 됐어요. 사실 배우를 꿈꿨던 적도 없었는데, ‘나는 유명한 연예인이 돼야지’라는 생각으로 홧김에 연기를 시작한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죠(웃음). 정말 겁이 없었어요. 그럼에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연기만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 저는 운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갈증을 계속 느꼈을 것 같아요.

원래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니까요. 그림은 계속 그리지 않으면 금방 손이 굳어버려요. 직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데뷔 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렸죠.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운동 좋아하시는 분들이 근육 손실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과 비슷한 듯해요(웃음). 전 그림 그리는 게 정말, 너무 좋아요.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정신적으로 정돈이 되는 기분이고 시간도 금방 가버리죠. 그림을 그리느라 한번 앉았다 하면 대여섯 시간은 훌쩍 가 있고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예요.

연기와 그림은 낮과 밤의 관계

K아트상 수상작 ‘에고’와 박기웅. 그는 ‘에고’에 자신을 가득 담아냈다.

K아트상 수상작 ‘에고’와 박기웅. 그는 ‘에고’에 자신을 가득 담아냈다.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컸을 것 같은데, 왜 최근에서야 공개한 건가요.

우선 부끄러움이 컸죠. 사실 지금 전시한 작품들이 완전히 만족스러운 건 아니고 ‘더 잘 그렸으면 좋았을걸’ 싶은 게 많아요. 또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저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건 고등학교 때 함께 그림을 공부했던 친구들이에요. 그들 중엔 작품 활동만으로 먹고살 수 있게 된 친구도 있지만,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하거나 아예 그것만 하게 된 친구도 있어요. 저는 유명인으로서 ‘혜택’을 받는 느낌이 싫었어요. 물론 지금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만약 ‘박기웅’이라는 이름표를 뗐다면 제 작품들이 이 정도로 이슈가 되고 사람들이 좋아해주진 않았을 것 같거든요. 제 친구들을 비롯해 그림을 업(業)으로 삼고 있는 분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연기 활동과 그림 작업은 서로 영향을 주나요.

매우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연기와 그림은 모두 대중예술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차이점도 분명해요. 예컨대 연기는 사람 간의 작업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있어요. 상대 배우나 연출자, 스태프, 제작자 등이 모두 생각이 같을 순 없으니까요. 물론 서로 굉장히 잘 맞을 때 느끼는 희열도 있지만요. 반면 그림은 혼자 하는 작업이죠. 캔버스 앞에 앉으면 여긴 온전히 제 공간이자 제 것이에요.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되는 거죠. 잘해도 내가 잘한 것이고 못해도 내가 못한, 이런 느낌이 정말 좋아요. 어릴 때부터 쭉 그랬어요. 그림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연기로 해소할 수 있고, 연기로 채워지지 않는 건 그림으로 해소할 수 있죠. 오히려 둘이 다르기에 가능한 것 같아요. 연기와 그림은 합이 잘 맞아요.

만약 연기와 그림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기준에 따라 다르죠. 현실적인 이유를 따지면 연기겠죠. 돈을 더 잘 버니까요(웃음).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그림이 더 재미있어요. 그런데 굳이 선택해야 하나요(웃음)? 둘은 한 가지를 위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에요. 마치 낮과 밤의 그것과 같다 생각해요.

사람들이 박기웅 씨의 그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길 바라나요.

대중예술은 즐기는 사람들의 것이에요. 물론 다수에 의한 표준은 존재하겠죠. 하지만 누군가 저보고 “박기웅 연기 못해”라고 하면 그 사람에겐 그게 맞는 거예요. 잘한다고 하면 잘하는 거고요. 그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이따금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지인들에게 제 그림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내가 그림은 잘 모르지만…”이라고 하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반응하더라고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유명한 화가의 작품일지라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적어도 나에겐 좋은 작품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 편안한 마음으로 제 작품에 다가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연예계 생활 16년 만에 색다른 변화가 있었잖아요. 지금부터 16년 후의 박기웅 씨는 어떨까요.

저도 궁금해요(웃음). 외모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는 알 것 같아요. 전 누군갈 보면 그 사람이 나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 알겠더라고요. 하지만 어떤 배우가 돼 있을지, 어떤 화가가 돼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기대되기도 해요.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거니까요.

앞으로가 기대돼요. 향후 계획이 있나요.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정말 멋있게, 큰 포부를 말씀드려야지’ 싶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아요(웃음). 그저 건강 잃지 않고, 제 연기와 그림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좋은 연기와 좋은 그림으로 보답하고 싶어요. 커다란 획을 긋는 연기, 그림을 선보이기보단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고요. 여성동아 독자 여러분도 모두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마운틴무브먼트



여성동아 2021년 5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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