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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내공의 신 스틸러 조우진, 영화 '도굴'로 관객들 마음도 훔칠 수 있을까

글 두경아

2020. 11. 05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온 조우진이 영화 ‘도굴’로 돌아왔다. 그간 주로 맡아왔던 ‘슈트발’ 세우는 직업이 아닌 잔망미와 아재미가 제대로 빛나는 도굴꾼 역할이다. 스스로 ‘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찾았다’는 그의 진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배우 조우진’하면 사람들은 머릿속에 2가지 장면을 떠올린다. 첫 번째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의 팔과 다리를 가리키며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여! 썰고, 여 하나 썰고… 거기 말고 여 썰으라고!” 지시하는 조 상무의 모습, 또 하나는 드라마 ‘도깨비’에서 어색하면서도 깜찍하게 걸 그룹 트와이스의 ‘TT’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장면이다. 두 작품 모두 양복을 차려입고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설정이지만 극과 극의 캐릭터로 조우진(41)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1999년 연극 ‘마지막 포옹’으로 데뷔해 눈에 띄지는 않지만 꾸준히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던 조우진은 2015년 영화 ‘내부자들’과 2016년 드라마 ‘도깨비’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과 영화 ‘남한산성’ ‘더킹’ ‘1987’ ‘창궐’ ‘봉오동 전투’ ‘국가부도의 날’ ‘돈’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작품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그는 올해 ‘도굴’(11월 4일 개봉, 박정배 감독)을 시작으로 ‘서복’ ‘외계인’ ‘블랙콜’ 등 4편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도굴’은 천재 도굴꾼 강동구(이제훈)가 자칭 ‘한국의 인디애나 존스’라 불리는 벽화 도굴꾼, 삽질의 달인(임원희) 등과 함께 땅 속에 숨어있는 유물을 파헤치며 짜릿한 판을 벌이는 내용을 담은 범죄오락영화. 이 작품에서 조우진은 고분벽화 도굴 전문가인 존스 박사 역을 맡았다. 이제껏 작품에서 보여준 어둡고 강한 느낌에서 벗어나 밝고 경쾌한 캐릭터다. 그동안 맡아왔던 배역들과 확연히 구분되다보니 “이번 캐릭터가 연기 인생에서 넘어야 하는 하나의 산이었다”고 고백할 정도. 하지만 이런 우려와는 달리 영화 속 그는 아주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잔인한 조 상무로 열연한 조우진.

영화 ‘내부자들’에서 잔인한 조 상무로 열연한 조우진.

-이제훈 씨와는 드라마 ‘비밀의 문’ 이후 6년 만에 다시 만났어요. 

제훈 씨는 영화 ‘파수꾼’을 통해 좋게 봤던 배우였어요. ‘비밀의 문’에서 일대일로 만나는 장면을 찍으며 많이 흥분되고 부담이 됐던 기억이 나요. 그때가 드라마 중반쯤이어서 제훈 씨는 피로가 많이 쌓인 상태였어요. 개인적으로 말을 많이 걸지 않았지만 몇몇 장면이 쌓이다 보니 편해지더라고요. 제훈 씨가 상대 배우에 대한 배려심이 깊어요. 알게 모르게 편안하게 해주고, 잘 받아주는 스타일이지요. 또 어른스러워요. 동생이라 ‘제훈아’부르며 편하게 대하지만, 작품에 임하는 태도와 현장에서의 모습을 보면 예의바르고 영리해요. 마치 모범생이나 반장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그에 비하면 전 오락부장이죠(웃음). ‘도굴’에서도 그 친구가 중심을 잘 잡아 연기해준 덕분에 제 캐릭터가 조금 더 수월하게 잔망미와 아재미를 전달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드라마 ‘도깨비’와 ‘미스터 션사인’에서 잔망스러운 모습이 있었지만, ‘아재미’는 처음인 것 같아요. 

외모 신경 안 쓰고, 동네 지나가다 보면 만날 법한 그런 스타일이에요. 존스 박사 착장은 누구나 친근하게 보일 수 있도록 했어요. 감독님도 ‘인디애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를 흉내 내고 싶어 하지만 빈틈이 많고 보기 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아재미’가 필요했죠.
 
-극중 노점상 아재에서 도굴을 제안 받고 순간 ‘인디애나 존스’ 같은 모자를 쓰고 변신하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대본에는 존스 박사가 모자를 쓴다는 설정은 없었어요. 다만 감독님, 제훈 씨와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존스 박사가 순간적인 태세 전환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며, 동네에서 노점상만 하는 아저씨가 아니구나’하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프레임 밖으로 나갔다가 모자를 쓰고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면, 조금 현실성이 떨어지더라도 스크린에서 넘치지는 않겠다고 판단됐습니다. 다행히 촬영 현장에서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감독님도 잘 살려주신 것 같아요.

-애드리브를 좋아하고 잘하는 듯해요. 

관객들이 ‘대사나 좀 잘하지’라고 하지 않을지 걱정돼요(웃음). 방금 느낀 건데 모자 쓰는 장면은 넣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훈 씨와 만들어간 소소한 케미였던 것 같아요. 영화 보는 맛은 그런데 있는 게 아닐까요.




드라마 ‘도깨비’에서 잔망미 넘치는 김 비서 역으로 존재감을 보여준 조우진.

드라마 ‘도깨비’에서 잔망미 넘치는 김 비서 역으로 존재감을 보여준 조우진.

-실제 ‘인디애나 존스’ 같은 영화에 대한 로망이 있었나요. 

어린 시절 영화 ‘백투더 퓨처’ 시리즈와 ‘인디애나 존스’를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어요. ‘도굴’을 만나면서 한국 영화에 이런 소재를 다룬 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선했죠. 물론 ‘인디애나 존스’의 인물 스케일과 매력은 따라갈 수 없어요. 흉내라도 재미있게 내봤는데, 귀엽게 봐주시길 바라요.  
 
-‘도굴’이 흥행에 성공하면 ‘인디애나 존스’처럼 시리즈를 기대해볼 수 있겠네요. 

목표를 크게 잡진 않았지만 관객들이 좋아해주신다면… 갑자기 전투력이 생기네요(웃음). 만일 시리즈로 다음 편을 찍는다면 그때는 존스 박사가 조금 더 잘 싸우고, 더 잘 캐내고, 더 스케일 있는 일을 맞닥뜨려 전문성을 업그레이드 시켰으면 해요.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나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는데, 만약 다음 편에서 해외로 가게 되면 스케일도 커지고 존스 박사의 활약도 두드러질 것 같네요.
 
-예전에 비해 역할이나 비중이 커졌는데 부담감은 없었나요. 

어떤 역할이나 작품이든 부담감은 있어요. 긴장감을 갖는 게 배우 본연의 자세라고 생각해요. 그런 긴장감이 있어야 저를 바라보는 다양한 기대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여기고요. 관객들의 기대감과 제 불안감은 비례한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더 작품에 열심히 매진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야말로 연기자들의 ‘티키타카’가 빛나보였어요. 

대본에 배우들끼리 대사를 주고받는 리듬감이 모두 담겨 있었어요. 각자의 개성이 녹아있는 대사와 동작이 있어서 따라하면 됐죠. 대본을 리딩할 때부터 속도감과 리듬감이 있어야 찰진 대사가 잘 전달될 거라 느꼈고, 현장에서 그걸 최대한 살리고 편집점과 이어지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죠. 배우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리허설이나 촬영 과정에서 크게 어려움이 없었어요. 마치 두세 작품을 함께 해온 사람들처럼 호흡이 잘 맞아떨어졌고요. 편집도 그걸 잘 살렸죠. 시나리오, 감독님, 능수능란한 편집,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귀엽고 밝은 영화가 완성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어둡고 센 역할과 작품을 선호한다고 들었어요. 작정하고 코미디 연기를 해보니 어땠나요. 

확실히 조금 더 유연하게 현장에 임할 수 있더군요. 연기도 마찬가지고요. 그동안 영화를 찍을 때면 힘을 주고 긴장감을 팽팽하게 살리다보니 혈압이 막 올라가고 심장이 계속 두근두근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보면 ‘내가 너무 어두운 쪽으로 즐기고 있는 건 아닌지’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곤 했고요. 관객들도 이런 제 모습에 피로감을 느끼기 전에 밝은 캐릭터를 해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마침 ‘도굴’을 만났죠. 전작에 비해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분석도 하고 아이디어도 나눴어요. 현장에서는 존스 박사 캐릭터처럼 유연하게 장난도 치면서요. 배우나 스태프들 모두가 신나게 함께 하길 바랐어요.
 
-어둡고 강한 역할을 좋아했던 이유가 궁금하네요. 

제 취향인 거 같아요. 술도 도수가 높고 짙고 어두운 걸 좋아하는데, 감정이 밝든 어둡던 극한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영화도 주로 어두운 쪽을 즐기며 감정이입해서 감상했었어요. 일종의 길티플레저(Guilty Pleasure ·죄의식을 동반하지만 했을 때 즐거운 일) 같은 느낌이랄까요. 뭐라고 형용할 수는 없는데 자꾸 그런 역할을 쫒아가더라고요.
 
-영화에 비해 드라마에서는 재치 넘치고 바른 역할을 해왔잖아요. 

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됐네요. 제가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방향은 ‘어떤 작품 캐릭터든 주어진 대로 열심히 해보자’였어요. 영화 ‘내부자들’ 때 가졌던 마음가짐인데, 이런 신념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도굴’에서의 밝고 경쾌한 역할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면 더 다양한 작품과 인물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연기를 하다 보면 캐릭터에 영향을 받을 듯해요. 

어두운 내용의 연기를 한다고 병원에 가거나 심리치료를 받지는 않아요. 솔직히 작품을 겹쳐 하면서 바쁘게 지내다보면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고요. 하지만 어느 정도 캐릭터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봐요. 촬영 현장에서 보더라도 배우들은 캐릭터에 흡사한 사람으로 있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물론 내공이 충만한 분들은 수다를 떨다가도 “큐~” 하는 순간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요. 

배우를 하면서 좋은 건 캐릭터마다 배우는 점이 있다는 거예요. 캐릭터를 통해 평소 발견하지 못했던 점을 찾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면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제 직업이 무척 고마워요.


조우진은 영화 ‘도굴’에서 존스 박사 역을 맡아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조우진은 영화 ‘도굴’에서 존스 박사 역을 맡아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존스박사를 통해서는 어떤 면을 발견했나요. 

‘나도 촐랑댈 줄 아는구나’하는 점이요. 현장에서 정말 많이 오버했어요. 누가 과하다고 그러지 않는 이상, 찍어 누르지 않는 이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직까지는 따귀를 맞거나 감독님에게 꾸중 듣거나 ‘그만 좀 하라’는 말은 듣지 않았네요(웃음).
 
-이번 영화가 전환점이겠네요. 

그렇게 되길 바라요. 앞으로 행보에 대한 것이 아닌 제 마음가짐에 대한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어요. ‘나는 좀 더 다양하게 해내야만 한다’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전과 비슷하거나 더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아요. 칭찬 받은 건 잊고 잘할 수 있는 작업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스스로 ‘정신차리자’고 되새기고 있어요. 근래 들어 경력에 비해 많은 작품을 해왔는데, 함께 연기한 선배님들은 그야말로 국가대표급이세요. 훌륭한 선배님들을 보며 저 역시 자극을 받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잡고 있습니다.
 
-‘내부자들’ 이후 1년에 서너 작품씩 다작을 해왔는데 각각의 캐릭터에 몰입하기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 복잡해지는데 그럴수록 역으로 단순하게 생각해요. 여기서는 이것만 집중, 저기서는 저것만 집중하는 식이죠. 각 촬영 현장에서 최대한 몰입하려고 애쓰다보니 다행히 캐릭터들이 가진 감정선의 밀도가 느슨해진 적은 없었어요.
 
-굉장히 진지한 성격인 것 같아요. 

요즘은 덜 한 편이지만, 예전에는 다가서기 힘들다는 말을 종종 들었어요. 선배님들께 ‘뭔지 모르지만 네게는 편하게 못하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요. 그런 과정에서 ‘협업을 하는 사람인데 한 명이라면 불편하게 했다면 그건 내가 잘못한 것 같다’고 반성했죠. 지금은 좀 더 오픈마인드로 다가서기 만만한 사람이 되려고 해요.
 
-조우진 하면 ‘신 스틸러’라는 수식어를 빼놓을 수 없죠. 

어떤 사람은 ‘씬히틀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과분하죠. 진짜 ‘스틸(훔치는 것)’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스틸’하면 큰일 나는 거 아닌가요? 제가 나오면 장면은 안 보이고, 저만 보이면 안 되니까요. 연기할 때 늘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극중 ‘욜로족’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거금이 생긴다면 어떤 것을 하고 싶나요. 

확 지르는 스타일도 아니고, 철두철미하게 재테크를 한다거나 돈을 불리는 성격도 아니에요. 재테크에 밝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 가족도 있으니 맡기려고요. 만약 거금이 생긴다면 소소한 것들을 지를 것 같아요. 휴대폰과 연결된 기기들처럼요. 최근에는 스피커나 헤드폰에 꽂혀 있어요.
 
-스피커나 헤드폰으로 어떤 음악을 듣는지 궁금해요. 

영화 음악을 좋아해요. 요즘은 영화 음악의 대부인 엔리오 모리코네의 모든 음악을 계속해서 듣고 있어요. 또 영화 ‘집시의 시간’을 작업한 고란 브레고비치의 음악도 들을수록 좋더라고요. 가을에도 잘 어울리고요.
 
-‘슈트발’이 잘 서는 연예인으로 유명한데 실제로도 패션에 관심이 많은가요. 

순전히 스타일리스트 분들의 노력이에요. 평소 제 모습은 존스 박사가 노점상할 때 입었던 그런 의상이에요. 공식 석상에서는 주변에서 입혀주는 대로 입고 나가요. ‘도굴’ 제작보고회 때 ‘오랜만에 양복 벗었습니다’ 했는데, 바로 ‘서복’ 제작보고회에는 슈트를 입고 나갔어요(웃음).
 
-슈트발을 살리려면 몸매 관리도 중요하잖아요. 

식단 조절을 해요. 슈트발이 좋으려면 근육이 너무 많아도 또 적어도 안 좋거든요. 슈트가 어울리는 적정한 그 사이의 무언가를 찾아야 해요. 그 지점과 캐릭터에 해가 안 되는 범위에서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하죠. 근데 이런 관리는 모든 배우들이 하는 거 아닌가요? 민망합니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제 요즘 이슈는 ‘이 사람이 장면에 등장했을 때 편하게 볼 수 있는 연기’에요. 잘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얼마만큼의 공감을 이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받기 위해 보기 편한 감정선이나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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