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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입고 철인3종 하는 사나이, 42세 대표이사 김세호

EDITOR 김명희 기자, 김지은

2020. 05. 20

1978년생, 숭실대학교 섬유공학과 졸업, 2003년 쌍방울 입사, 2019년 부사장 취임, 2020년 CEO로 승진. 재벌 2세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공채 출신으로 40대 초반에 CEO 자리에까지 오른 쌍방울 김세호 대표의 따끈따끈한 인터뷰.



변화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가령 이런 것. 

“쌍방울 김세호입니다. 어제 인터뷰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인터뷰 후 기업의 대표가 직접 문자 메시지를 보내온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사진 촬영 땐 슈트 대신 쌍방울의 기능성 웨어를 입고 이렇게 말했다. 
“쌍방울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김세호입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이력을 가진 40대 초반의 남자가 국민 속옷 기업 쌍방울의 대표 자리에 올랐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나 재벌 2세도 아니고, 해외 유수의 MBA 과정과 화려한 이력으로 무장한 전문경영인도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다녀본 회사라곤 쌍방울 한 군데가 전부인 공채 출신의 내부 직원이 순식간에 회사의 최고 결정권자 자리에 올랐다는 건 그야말로 굉장한 성공 신화다. 



“내부적으로도 ‘그냥 운 아니야?’ ‘생각보다 임기가 무척 짧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없지 않습니다. 저도 동의하는 부분이고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회사가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다.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쇼윈도식 인사가 아니냐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이 있을 것”이라며 쿨하게 인정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흥미로운 이슈로 회사에 도움이 될까.’ 

경영 혁신의 첫 단추를 꿴 중요한 시점에서 대표이사가 해야 할 일이 줄어들었을 리는 만무하다. 승진 이후 그는 아이들이 깨어 있을 시간에 얼굴을 볼 여력이 없어졌고, 퇴근 후 아내와 맥주 한 캔 같이하며 산책하던 시간이 줄었으며 시시콜콜 일상의 안부를 주고받던 주변 사람들은 은근슬쩍 그를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느닷없는 인사에 당황한 사람은 김세호 대표 자신이 아닌 그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선후배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있을 때마다 최대한 거절하지 않고 시간을 쪼개보려 노력한다. 아내에겐 “미안하다. 회사가 안정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달라” 말하고 선후배들에겐 “내가 혹시라도 사람이 변하면 당장에 이야기를 해달라” 신신당부를 해두었다. 괜히 일하느라 바쁜데 방해가 될까 전화 한 통 제대로 못 하고 계신 부모님께는 “그러지 마시라”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망한다

그는 지난해 쌍방울의 사내공모전 ‘내가 쌍방울의 경영진이라면?’에서 신랄한 비판과 직관적이고 현실성 있는 아이디어가 담긴 편지글 형식의 ‘새로 오시는 부사장에게 드리는 글’로 우승을 차지하며 경영진의 주목을 받았다. 그것이 승진을 기대하는 기회가 되긴 했다. 내부적으로도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피와 살을 깎는 경영혁신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고,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성 있는 나침반 역할을 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차장에서 부사장으로 발탁되고 다시 4개월 만에 대표이사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격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저 외에도 많은 분들이 후보에 올랐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큰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에는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었고, 그 변화의 시작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남아 있었던 거죠. 다만 그 과정에서 외부 인사 영입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쟁사나 다른 회사의 임원 또는 대표를 영입할 수는 있지만 조직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인사가 그다지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터였고, 오히려 밑바닥부터 회사의 구석구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야 현재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한 진단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가 공모전에 제출했던 차기 부사장에게 쓴 편지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 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가 운이 억세게 좋은 것도, 가십을 만들기 좋은 포지션인 것도 이유가 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 인사에서 대표이사 후보로 거론되었던 이들 중에는 그의 선배들을 비롯해 다양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생각은 조금씩 달랐지만 경영 혁신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대한 분명한 인식과 미래 비전은 모두가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평범함을 뛰어넘는 사소한 비범함

쌍방울 기능성 웨어 쿨루션을 입고 사진 촬영에 나선 김세호 대표.

쌍방울 기능성 웨어 쿨루션을 입고 사진 촬영에 나선 김세호 대표.

김 대표는 지난 18년간 쌍방울에서 기획부터 영업과 마케팅, 매장 관리 등의 업무를 두루 섭렵한 정통 쌍방울맨이다.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긴 했지만 그는 2008년 한 해 동안 11차례나 사내 ‘우수영업사원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인 2009년에는 전북 익산의 물류창고에 쌓인 65억원어치의 재고를 순식간에 털어버린 속옷계의 전설이다. 회계나 경영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자금의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캐치해내고, 그에 따른 상황 판단 또한 남다르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스스로 매장 컨설팅에 정통한 덕분일 거라 설명했다. 

거래처인 속옷 매장 하나하나, 그리고 그 매장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사업부들을 작은 기업으로 인식하는 점도 특별하다. 영업사원의 업무를 단순한 매장 관리가 아닌, 하나의 기업을 컨설팅하고 비즈니스적 관계를 이어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마인드는 사내에서뿐만 아니라 그와 거래하는 매장의 오너들에게도 상당한 귀감이 되어왔다. 

“제가 선배들보다 실력이 뛰어나서 실적이 좋았던 건 아닙니다. 다만 총각 시절엔 퇴근하고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거래처를 내 집처럼 드나들곤 했죠. 매장에서 사장님들이랑 같이 저녁 식사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친구처럼 지냈거든요. 사실 대부분의 속옷 매장 사장님들은 굉장히 고독한 싸움을 하고 계신 거거든요. 장사가 잘되면야 좋지만 대부분은 그렇지가 못하다 보니 사업이 영세하고, 매장에 따라서는 하루 손님이 열 명 안팎인 곳도 있어 온종일 대화할 상대가 없는 거예요. 그럴 때 제가 찾아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손님이 오면 대신 응대해드리기도 하면서 좋은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굳이 안 들여놓아도 되는 저희 회사 물건을 하나둘 받아주시기도 하고, 다른 회사 제품에 비해 마음을 조금 더 써주시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지금의 자리가 그저 운이 좋아 거저 얻어진 것이라 하기엔 그간 국내 속옷업계의 현실이 너무나도 빡빡했다. 물론 한때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토종 브랜드 쌍방울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은 단순히 시장 환경이 변해서, 속옷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쌍방울은 1980년대 후반 이미 한 차례 브랜드 이미지 노후화로 위기를 겪은 바 있었다. 당시 그 대응책으로 선보인 것이 TRY였다. TRY는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 이덕화를 내세운 섹시 콘셉트 광고와 젊은 감각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쌍방울을 기사회생시켰다. 하지만 그 젊고 파격적인 이미지의 TRY도 어느 순간 늙고 고루해졌다. 확실한 변화와 혁신만이 답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고, “이러다 정말 망할 것 같다”는 말을 누구도 감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지금에 와서 누가 승진이 되고 안 되고 이런 것들은 중요치 않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에게 총괄경영을 맡긴다는 것의 의미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사원들 모두가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취임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직 개편이었다. 대리에서 바로 사업부장으로 승진한 사람도 생겨났다. 인사 이동 전 팀장급 이상의 부서장들과 일일이 면담을 거치며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반발이 만만치 않을거란 예상도 있었지만,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회사를 나가라는 뜻이 아니라 업무 체계의 효율과 변화를 위해서라는 점을 강조하며 설득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정기적으로 열리던 전체 회의도 없앴다. 불필요한 보고와 회의를 없애고 직급에 관계없이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는 사람, 그래서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사업부장의 자리에 앉으면서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업무에 빠르게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지난 몇 달간 단 한 명의 퇴사자 없이도 성공적으로 조직 개편을 완성한 배경이다. 

“어떤 조직이든 역사가 오래되다 보면 늘 정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조직이 정체되다 보면 의사 결정 자체가 너무 느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도 시도조차 못해보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그리고 ‘내 일만 하면 되지 뭐’ 라는 인식들, 변화를 싫어하는 마인드가 팽배해져 그냥 생각 없이 회사만 다니면 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말단 직원들은 어쩔 수 없는 입장이라 쳐도 팀장이나 사업부장처럼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면 정말 안 되는 건데, 조직이 오래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는 사람, 조금 더 실무를 아는 사람들을 사업부장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부서의 의사 결정권자가 되면 불필요한 결제 과정을 없애고 소통의 활로를 마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지는 건 싫지만 그래도 즐기는 게 우선

쌍방울 스포츠웨어를 입고 주목을 받기 위해 복면을 한 채 ‘복 스파르탄 레이스’에 참가한 김세호 대표.

쌍방울 스포츠웨어를 입고 주목을 받기 위해 복면을 한 채 ‘복 스파르탄 레이스’에 참가한 김세호 대표.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 정도면 파격적인 인사에 대한 이슈화도 충분히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보수적인 조직 문화, 트렌드에 부응하지 못하는 노후한 마인드, 쌍방울의 모든 임직원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에 대한 실질적인 해답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다행히 쌍방울은 지난해 마스크 사업에 뛰어들어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악화될 뻔한 경영 상황을 방어하는 데 1차적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나머지 속옷과 패션 부분의 실적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마스크 사업이 반짝 잘되었다고 그쪽에만 힘을 실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회사의 코어가 되는 속옷 사업의 정상화,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패션 브랜드의 확장 등은 그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선결 과제다. 꼭 해내야 한다는 부담은 모두가 갖고 있지만 그것이 부담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직원들 각자의 능력치를 끌어내는 것 또한 그의 몫이다. 

“제가 생각하는 쌍방울의 히든카드는 해외 영업입니다.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은 결국 땅따먹기 같아서 우리가 매출 실적을 조금 더 올린다 해도 시장성이 커지는 구조가 아니라 다른 경쟁 기업의 매출을 조금 빼앗아오는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올해 쌍방울은 중동 시장에만 2백억 매출 목표를 잡고 있다. 현재로서는 기본 아이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사업을 확장해가다 보면 패션 분야로까지 접근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갖고 있다. 중동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미주 시장 등에 열린 가능성은 더 크다. 

해외 시장에 대한 열린 생각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몇 해 전 중국 시장을 바라보며 야간대학 중국어과에 입학하고, 졸업 후에는 강남에 있는 중국어학원 새벽반에 다니며 공부했다.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다른 나라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를 알아야 하고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언어를 배우는 것이 기본이라는 그의 생각은, 비즈니스의 시작은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나름의 경영 철학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잘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했던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어떻게 극복해왔냐는 질문에 그는 느닷없이 마라톤 이야기를 꺼냈다. 군대 전역 직후 체력이 좋아진 것에 한껏 기분이 업된 그는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고 한다. 

“연습도 해보지 않고 무작정 나갔는데 한참을 뛰다 보니 제가 3시간 30분대 서브들과 같이 가고 있는 거예요. 35km까지는 그렇게 신나게 달렸죠. 그러다 급수대에서 머리에 물을 끼얹는데 순간적으로 다리에 마비가 오더라고요. 그때부터 하는 수 없이 걸었죠. 그러고도 4시간 40분대의 성적이 나왔습니다. 그 뒤로는 연습을 하다 보면 담배도 끊을 수 있을 거 같고 해서 6개월간 정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두 번째 대회에서 거둔 42.195km의 기록은 2시간 58분. 아마추어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 다음에는 철인3종경기에 도전했다. 마라톤과 달리 철인3종경기는 제대로 준비를 해야 할 것만 같아 동호회에 가입하고, 수영도 새로 배웠다. 어릴 적 작은 강에 빠졌던 기억 때문에 물가에만 가면 몸이 뻣뻣해지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부터가 관건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첫 대회에서 3등을 했다. 아무래도 지고는 못 배기는 성격 때문에 죽기 살기로 연습한 덕이 아닐까 싶은데, 그는 지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대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들과 며칠 미리 내려가서 캠핑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놀다가 오는 것이니 즐기는 쪽이 더 크다고 했다. 

“골인 지점에 아들을 목말 태우고 들어오는 것이 철인3종경기를 하는 사람들의 소원인데, 저는 이미 큰아들을 목말 태우고 둘째 아들 손을 잡고 골인 지점을 통과해보았으니 소원성취를 이미 한 셈이죠.” 

코로나19가 좀 잠잠해지면 올가을에는 관심 있는 직원들과 함께 가면을 쓰고 장애물경기 대회에 출전해볼 계획이다. 물론 이런 대회가 있을 때마다 쌍방울의 스포츠웨어를 입고 출전하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변화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이다. 정말로 변할 준비가 되었는가. 쌍방울의 대답은 “YE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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