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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issue talk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소장

EDITOR 정혜연 기자

2020. 01. 12

지난 연말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성남 어린이집 아동 간 성폭력 사건은 과연 가해 아이와 부모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지난 12월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동 간 성폭력 사고 시 강제력을 가진 제도를 마련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어린이집에서 만 5세 딸아이가 같은 반 남자아이에게 아동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 

법적으로 청원인의 자녀는 성범죄 피해자에 해당하며 가해 아동은 법에서 정의하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성범죄자다. 하지만 만 14세 이하는 형사법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다. 이에 분개한 부모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법적 제도 마련을 촉구하는 글을 올렸고, 청원 참여 인원이 20만 명을 넘어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단순히 아이들끼리의 장난이라고 여기기에는 불안에 떠는 학부모가 너무도 많다. 인터넷 맘카페에는 ‘우리 아이도 당할까 봐 걱정된다’ ‘괜히 딸아이에게 반 친구들은 어떤지 물어보게 됐다’ ‘우리 어린이집도 선생님들이 원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을까 봐 걱정된다’ 등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에서 사건의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보육 당국의 책임 있는 해결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아동 및 청소년 성폭력 상담과 학부모 성교육 강좌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소장을 만나 사건의 본질, 최근 아동 성의식 동향, 그리고 일반 가정에서의 성교육 지침 등에 대해 들었다.

성남 어린이집 아동 간 성폭력 사건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가해 아동이 너무 어리지만 성폭력인 것은 분명합니다. 행위의 잘잘못을 떠나서 가해 아동이 동급생에게 선생님이 오는지 망을 보게 하고,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라고 입단속시켰다는 것만 봐도 자신의 행동이 ‘좋지 않은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죠. 20여 년간 상담을 해왔는데 사실 7세 미만의 미취학 아동보다는 초등학교 이상의 아이들 사이에서 성추행과 성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연령대가 낮아지는 것을 느껴요. 



미취학 아동이 성기를 만지려고 강압하는 수준을 성폭력이라고 규정할 수 있나요. 

성폭력의 정의는 ‘성을 매개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심리적, 물리적, 법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폭력적 행위’를 말해요. 개인적으로는 범위를 더 넓게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가 동의 없이 머리카락을 만진다면 그것조차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나라는 많은 판례가 성기중심주의라 처벌이 미약해요. 일례로 백화점 직원들이 휴게실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한 남성이 여성의 쇄골을 만졌다고 해요. 이 여성이 돌아서서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빠 몇 시간 후 남성에게 사과를 요구했는데 남성은 사과를 거절했고 결국 여성은 고소를 합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쇄골은 성적 부위가 아니다’라고 판결을 내렸어요. 법적으로만 보자면 이렇게 범위가 좁아져요. 그러나 지하철에서 누군가 동의 없이 사진을 찍는 것에서부터 레깅스를 입은 여성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범위를 넓히면 모두 성폭력에 속하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 사건에 대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그런 시각으로도 볼 수 있나요. 

의미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아이들이 서너 살 정도 되면 성적 호기심이 생겨요. 자신의 성기를 만져보기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더 만지기도 하죠. 나아가 엄마나 아빠, 다른 사람의 성기에도 관심을 갖는데 이는 성적 발달 단계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단순히 ‘어린이의 성적 호기심에 의한 행동’으로 보기에는 행위가 매우 의도적이에요. 반복적으로 동급생 여자아이의 성기를 만졌고, 계속 만지려는 의도도 갖고 있었죠. 또 아이 스스로가 ‘나쁜 짓’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가는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아동 간 성폭력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부모가 어느 정도 있나요. 

20년 전 청소년 상담센터를 운영할 때부터 초등학생 성폭력 사건은 있어왔죠. 상담하러 온 한 초등학생 여자아이는 질 분비물이 심해져서 부모가 산부인과에 데려갔더니 질에서 초코볼과 레고 조각이 나왔다고 해요. 또 초등학생 딸을 홀로 키우던 한 아버지는 아이가 임신 8개월에야 그 사실을 알고 상담을 받으러 오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아동 성폭력 연령대가 더 낮아지고, 건수도 늘어나는 추세죠. 영국에서도 2018년 13세 미만 아이들의 또래성범죄가 2백68건 발생했고,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미취학 아동 및 초등학생 성폭력 건수는 2016년 2백76건에서 2018년 4백65건으로 늘었어요. 스마트폰의 영향이 큰데, 아이들이 게임을 하다가도 광고를 클릭하면 음란물 사이트로 곧장 빠지거든요. 그런 식으로 아이들이 빈번하게 각종 음란물에 노출되다보면 학교생활에 착실한 얌전한 아이들도 잘못된 성의식을 갖게 되죠. 

아이들이 잘못된 성의식을 갖게 되는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는 걸 체감하시나요. 

최근 대학생 대상 강좌에서 ‘처음 성에 대해 인지한 나이가 언제인가’를 물었어요. 10년 전만 해도 ‘포경수술 받을 때’ ‘길가에서 콘돔을 주웠을 때’ 등 다양한 답변이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백이면 백 ‘인터넷 포르노를 접했을 때’라고 답해요. 그걸 접한 시기에 대해서도 빠르면 ‘유치원생일 때 봤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여고생’ ‘하숙집’ ‘당나귀’ 등 아무것도 아닌 단어를 누르면 관련 사이트가 뜨니까 노출되기 너무 쉽죠. 그에 반해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1년에 13시간 이상 성교육을 했지만 지금은 교과 선택제로 바뀌어서 교장이 과목을 결정하는데 학부모는 모두 교과 관련 수업만 더 하길 원하거든요. 성폭력 발생 연령대는 낮아지는데 학교에서 성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돼요. 


이번 성남 어린이집 사건 이후 가정에서의 성교육도 필요하다는 이가 늘었는데, 어떻게 가르쳐줘야 하나요. 

대여섯 살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할 때는 ‘생명의 소중함’부터 알려줘야 해요. 너도 나도 소중한 존재라는 걸 인식해야 몸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죠. 너의 몸이 소중하듯 다른 친구들의 몸도 소중하기 때문에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되고, 누구라도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줘야 해요. 생명 존중에서 시작된 성교육은 나아가 청결한 몸 관리와 성적 자존감 상승으로 이어지죠. 또한 성적 동의에 대한 가르침도 필요해요. ‘노 민즈 노(No Means No)’가 아니라 ‘예스 민즈 예스(Yes Means Yes)’라는 걸 알려줘야 하죠. 우리나라 남성은 단호하게 거절해도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남녀 관계에 있어서 상대가 ‘싫어’ 하면 그만둬야 한다는 걸 인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좋아’라고 동의했을 때만 가능하다는 걸 명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어요. 

자녀가 성폭력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야 할까요. 

피해를 입은 후 부모에게 말하라고 할 게 아니라 언제든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진다면’ 말하라고 가르쳐야 해요. 아이들이 어릴수록 좋은 행동인지 나쁜 행동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이상하다는 느낌’이 기준이 되어야 해요. 또한 자신이 당하지 않았어도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면 주변 어른에게 말하도록 해야 조기에 문제를 개선할 수 있죠. 그런데, 어른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도 성적인 것에 수치심을 가지고 있어서 말을 잘 못 해요. 아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을 부모에게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평소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이미 피해를 입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린 시절의 성폭력은 평생을 가는 트라우마로 남게 돼요. 애완견이 죽었다고 자해를 해 부모가 센터에 데리고 온 한 여성이 있었어요. 알고 보니 어릴 때 사촌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엄마에게 말했다가 오히려 야단을 맞아 상처를 입은 후 오로지 애완견에게만 애정을 쏟았더라고요. 이런 케이스만 보더라도 어린 시절의 정신적 충격을 제때 치료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죠. 이번 성남 어린이집 사건의 피해 아동은 상담 치료가 매우 시급해요. 또 성장 발달 단계에 따라 치료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하고, 평생을 두고 치료해야 하죠. 또 가해 아동 치료도 반드시 이뤄져야 해요.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친구의 성기를 만지는 행위를 한 걸로 추정컨대 가해 아동도 성적 학대를 당하거나 관련 동영상에 노출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을 거예요. 이 역시 상담 치료를 통해 문제 행동을 개선해나가야 하며 부모도 같이 성상담을 받아야 해요. 

사실 2018년 초에도 서울 서초구의 한 유치원에서 6세 남자아이가 동급생에게 “부끄러운 놀이를 하자”고 말한 것이 알려져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습니다. 미취학 아동에 대한 성교육 지침이 없는 것도 문제인데 사회적으로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요. 

우리 사회 일부에서 ‘아직 어린데’ ‘애들끼리 놀다가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예요. 또 일부는 ‘아이들은 무조건 선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선악이나 아이들 성향의 문제가 아니에요. 문제는 환경이죠.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스마트폰 포르노에 노출되고, 길거리에는 야한 사진이 프린트된 티켓이 나뒹굴죠. 이런 환경에서도 바른 성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실 초등학교는 학폭위가 있어서 거기에서 성폭력 등의 문제를 다루지만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지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가족부에서 매뉴얼을 만든다고 해요. 어린아이들이니만큼 올바른 성의식을 갖출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방침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청와대 청원 게시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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